ep26.날것의 현장에서, 남편을 다시 보다

지하 30미터에서 지켜온 그의 시간

by 봉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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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30년 차 '토목쟁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품질관리를 한다는데, 무엇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물어본 적도 없다.

그저 서류 보고 도장 찍는 일쯤으로 생각했다.


요즘 남편은 30년만 채우면 미련 없이 은퇴하겠다고 한다. 쉰여섯.

그럴 나이인가 싶다가도, 아무 대책 없이 “일하기 싫다”는 말을 들으면 은근히 화가 났다.


"요즘 왜 그렇게 일하기 싫다고 그래?"

내가 묻자 남편은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체력도 딸려.” 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현장은 신경 쓸 게 많다며 푸념도 덧붙였다. 나는 속으로 ‘엄살 아닌가’ 생각했다.


남편은 요즘 지하철 공사를 한다.

그동안 하늘로 뻗는 도로와 다리를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땅속으로 들어간다.

“지하는 답답하고 위험해.” 그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러다 이번 설 연휴에 처음으로 현장을 따라갔다. 터널 입구에 들어서자 차갑고 눅눅한 공기가 훅 끼쳤다.

내가 알던 반듯한 지하철역은 없었다. 천장에는 거대한 환기막이 길게 매달려 있었고, 희미한 전등 몇 개가 어둠을 겨우 밀어내고 있었다. 거친 시멘트 벽은 흙을 막아내고 있었고, 바닥에는 한뼘식 파내려가듯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여기가 내가 매일 걷는 길이야."


안전모를 쓴 남편의 목소리가 터널 안을 울렸다. 커다란 터널 속에서 남편은 작아 보였지만, 이 어둠을 버티게 하는 사람처럼도 보였다. 붕괴의 위험을 살피고 사람들의 안전을 담보해온 시간들.

그가 말하던 “신경 쓸 게 많다”는 말이 이제야 조금 이해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 사실은 가장 무거운 일이라는 걸.


현장을 나오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가 차올랐다. 그리고 남편이 조금 달라 보였다.

나도 이제야 겨우 철이 드나 보다.


"남편 30년 잘 채워서 멋지게 퇴직하자. 퇴직하는 날, 내가 꽃목걸이 걸어줄게"

그때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 글로 이렇게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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