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 습한 바람이 가로수를 흔들었다.
저 바람이 멈추면 비가 온다.
그것은 경고였다.
모두가 알았고,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자비는 없었다.
최선은 피하는 것. 차선은 우산. 그뿐이었다.
바람은 도시를 꼼꼼히 훑었다. 승환의 사무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설픈 휘파람 소리와 함께 방충망으로 들어온 바람은 승환의 보고서 두 장을 기어코 통로로 날렸다. 승환은 바람이 들어온 창문을 노려봤다. 창밖이 시커멨다.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에이, 참.” 하며 통로로 나간 그는 보고서를 주우려 힘겹게 웅크렸다. 통유리 출입문에 그의 모습이 비쳤다. 188cm, 120kg.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얼마 전 봤던 동물원의 식빵 줍던 곰을 떠올렸다. 웃기면서 불쾌했다. 문명화된 곰은 보고서를 줍는 내내 종알종알 투덜댔다. 나지막하게 저기압이니, 기압골이니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혼신의 힘을 다해 바람을 투덜댔다.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렸다.
보고서를 주워 돌아오던 승환은 동료들을 힐끔 살폈다. 그의 오른쪽 자리, 이 과장은 오늘도 스마트폰 주식에 한창이었다. 물론, 모니터에는 데이터가 빽빽한 위장용 엑셀 파일이 떠 있었다. 이 과장 맞은편의 윤 차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모니터를 보며 간신히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코가 벌름거리는 것까지는 참지 못했다.
‘어휴, 저 냥반 또 인터넷 유머 보고 있네.’
100원. 승환은 그들의 시급은 많이 쳐줘봤자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직장 상사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그냥 그러려니 하며 ‘상무님 보고자료 Rev.12’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열두 번째 수정 파일 ‘Rev.12’는 승환이 처음 작성했던 보고서와 거의 똑같았다. 그는 처음 ‘Rev.0’보고서를 작성한 뒤, ‘맙소사, 이토록 훌륭한 보고서를 진정 내가? 나의 재능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이제는 내 재능이 두렵다, 쉬바.’라며 뿌듯한 마음으로 상사들께 제출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보고서는 상사들에게 위아래, 여기저기, 꼼꼼하게 까여가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 결국 ‘상무님 보고자료 Rev.11’이라는 괴물로 변신했다.
그 괴물은 승환의 훌륭한 상사분들의 고상하고 세련된 피드백을 담고 있었는데, 문제가 터져 유감이지만 내 책임은 절대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되, 그 뜻이 드러나지 않도록 온갖 미사여구들과 교묘한 단어들로 화려하게 치장하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 똥꼬 위에 코가 붙은 것 같은 고약한 모양의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보고서를 훑은 성 부장은 ‘바로 이거지!’라고 환호하며 상무님께 쫄래쫄래 들어갔다가 곧 뒤지게 혼나고 황급히 승환의 첫 번째 보고서를 찾아 들고 들어갔다. 성 부장이 승환에게 “네 해골 속에 든 건 푸딩이냐? 이렇게 썼다가 우리 다 뒈지라고?!!!”라며 열정 가득한 피드백을 하사하신 그 첫 번째 보고서였다.
성 부장은 상무님께 “그래, 이게 훨씬 낫네! 여기 문구 조금만 손보면 되겠네.”라는 말을 듣고 와서는 되려 윤 차장에게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라며 사자후를 날렸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 감미로운 사자후는 윤 차장에서 이 과장으로, 이 과장에서 승환에게로 즉각 하사되었다.
‘쉬바, 이 등신들은 도대체 왜 맨날 이러는 거야.’
승환은 상사들이 한심했지만, 데자뷔같이 반복되는 일인지라 딸과 아내를 한번 떠올리고 그냥 넘겨 버렸다.
******
‘자, 문서는 다 작성했고, 이제 지난번 품의서만 첨부하면 되겠다.’
지긋지긋한 보고서를 오늘 안에 마무리하고 싶었던 승환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옆자리의 이 과장에게 말을 걸었다.
“이 과장님! 아까 윤 차장님이 말씀하신 품의서 갖고 계시죠? 그거 첨부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메일로 전달 좀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답이 없었다.
‘아, 또 그새 어디 갔어? 이 꼴초... 또 담배야?’
승환은 의자를 뒤로 빼 파티션 너머 이 과장 자리를 살폈다. 그의 예상과 달리 이 과장은 자리에 있었다. 다만 엎드려 있었다.
“과장님?” 승환은 이 과장을 나지막이 불렀다. 답이 없었다.
‘왜 이래? 주식이 망해서 우나?’
하지만 이 과장 손에 들린 스마트폰 주식 화면에는 빨간 숫자들뿐이었다.
‘빨간 숫자면 오른 거 아냐? 왜 엎드려서...’
“과장님, 괜찮으세요?”
승환은 다시 그를 조용히 불렀다. 역시 미동이 없었다. 승환은 그를 슬쩍 흔들었다. 무반응.
‘뭐야, 설마 지금 자는 거야? 업무시간에?! 가지가지 한다. 너는 진짜... 시급 50원도 아깝다.’
승환은 그를 최대한 조용히 깨우려 했다. 이 상황을 성 부장에게 걸렸다간 자는 놈, 자는 걸 깨운 놈, 근처에서 숨만 쉬던 놈들에까지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승환은 다시 조심히 이 과장을 흔들었다. 그는 깊이 잠들었는지 전혀 깰 기미가 없었다. 승환은 혹여나 걸릴까 슬며시 고개를 들어 성 부장을 살폈다.
“뭐지?!”
그는 눈을 의심했다. 성 부장부터 세경까지 승환의 팀원 모두가 잠들어 있었다. 성 부장과 윤 차장은 의자에 기댄 채로, 이 과장과 세경은 책상에 엎드린 채로.
‘이상한데? 분명 조금 전까지 다들 깨어 있었는데... 아, 뭐야? 어제 세경 씨 사건 때문에 과음했나?
참나, 어제 야근한 건 나뿐인데 잠은 지들이 쳐 자고 있네.’
승환은 마음을 비우고 다른 업무를 시작하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했다. 어제 소동 탓에 홀로 남아 야근했던 것도 열 받는데 그 소동의 주연들이 버젓이 자고 있다니. 그의 속이 지글지글 끓었다.
******
30분이 지났지만, 아무도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승환은 ‘어휴, 그러게 술 좀 작작들 먹지.’하고 투덜댔지만, 마음 한구석 작은 불안감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가끔 성 부장의 코 고는 소리가 정적을 깨며 불안을 상쇄시켰으나, 그때뿐이었다.
승환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키보드를 타이핑 했다. 메아리치는 키보드 소리에 그는 문득 4층 전체가 고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일어나 다른 팀들을 살폈다.
‘뭐야! 다들 왜 이래?’
옆 팀 사람들은 물론 4층 사람들 전부가 잠들어 있었다. 고요했다. 에어컨 소리만 윙윙 울릴 뿐이었다. 승환은 창밖을 내다봤다. 먹구름 때문에 어둡긴 했지만 분명 낮이었다. 사람들도, 차들도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이곳만 꿈나라였다. 그는 손목에 찬 시계와 휴대폰 시계를 몇 번씩 확인했다.
‘낮 3시가 분명한데...’
시커먼 하늘에서 한두 방울 비가 떨어졌다. 곧 매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승환은 조금씩 무서워졌다. 분명 다들 숨은 쉬고 있었다. 승환은 순간 뒷골이 싸했다.
‘설마, 아까 노돈이가 얘기한 전염병은 아니겠지?’
승환은 휴대폰을 꺼내 절친 노돈과 아침에 주고받았던 메시지를 살폈다.
노돈/
[야]
승환/
[왜?]
노돈/
[곧 국가재난사태 선포한대]
승환/
[또 음모론이냐? 너한테 돈 맡긴 고객들은 니가 이러는 거 아시냐?]
노돈/
[진짜야 지금 무슨 전염병 도는데 전파속도가 장난 아닌가 봐]
승환/
[진짜야?]
노돈/
[존나 극비다. 내 친구 중에 의사 있잖아. 거기서 나온 소스야]
승환/
[치사율은? 높대?]
노돈/
[그건 아닌데 그 병이 좀 특이한가 봐]
승환/
[왜?]
노돈/
[특별히 아픈 증상이 없대]
승환/
[똥싸네. 아프지도 않은데 그게 무슨 병이냐? 나도 지금 안 아파 임마. 그럼 나도 걸렸겠네?]
노돈/
[아, 몰라. 어쨌든 심각한가 봐. 빨리 생필품이랑, 상비약 관련 주식 사라ㅋㅋㅋ]
승환/
[ㅋㅋㅋ오키. 근데, 좀비 이런 거 발생한 거 아니야? 지난번 유튜브에서 좀비마약 먹은 사람들 봤는데 존나 무섭던데;;]
노돈/
[야, 내가 음모론자지만 그래도 좀비는 안 믿는다 멍청아]
승환/
[똥싸고 있네. 랩틸리언인가 파충류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는 새끼가]
노돈/
[그건 사실이라니까 ㅋㅋㅋ 암튼 또 소식 있으면 알려줄게]
승환/
[ㅇㅋ]
승환은 휴대폰에서 눈을 뗐다.
‘쉬바, 설마 이게 그 전염병? 어쩌지? 119에 신고해야 하나? 근데 왜 나는 괜찮냐? 나도 곧 잠들려나? 별로 안 졸린대. 근데 이게 그 전염병 맞아? 그냥 단체로 피곤해서 그런 거 아냐? 설마 이 시키들 나만 빼고 뭐 먹은 거 아냐?’
오만가지 생각이 승환의 머리를 스쳤다.
“삑! 드르륵” 사무실 출입구가 열렸다.
“아, 쉬바, 깜짝이야.” 승환이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어흐, 비 더럽게 많이 오네.”
한 남자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입구로 들어왔다. 승환과 같은 팀 김 과장이 1박 2일간의 지방 출장을 마치고 막 돌아온 참이었다. 흰 와이셔츠 차림의 그는 한쪽 어깨와 불룩 나온 배가 비에 젖어 속살이 비치고 있었다. 아름답다 말하기는 힘든 모습이었다.
“허 대리, 와 혼자 서 있노?”
“김 과장님!!”
승환은 안도감과 반가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어, 왜?”
“과장님, 여기 좀 와보세요. 지금 사람들이 다 자고 있어요.”
“일마 이거 덩치는 산만한 기 호들갑이고. 확 마! 뭔데?”
김 과장은 자기보다 15cm는 더 큰 승환에게 장난스레 손을 올려 위협하는 시늉을 하고는 잠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승환은 전염병이 의심된다는 얘기를 꺼낼까 하다 그만뒀다. 팀원들에게 다가간 김 과장이 사람들을 살폈다. 승환의 우려와 달리 김 과장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열도 없고, 그냥 자는 것 같은데? 일마들 뭐 단체로 잘못 뭇나?” 김 과장이 말했다.
“어제 과음한 것 같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시간이 몇 신데, 단체로 말이야.”
“근데 우리 팀만 그런 게 아니라 4층이 다 그런데요?”
김 과장이 고개를 빼꼼 들고 사무실 전체를 훑었다.
“어? 진짜네? 와이라노? 야, 허 대리 니 뭐 테러한 거 아이가? 왜 니만 말짱하노?”
“아, 과장님. 제가 무슨 테러를 해요.”
“농담이다 임마. 새끼 쫄기는.”
“119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일단 이 과장이랑 윤 차장님 먼저 함 깨아보자.”
김 과장은 윤 차장을, 승환은 이 과장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이 과장님, 일어나보세요! 과장님!”
아무리 흔들어도 이 과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승환이 깨우기를 포기하려는데 문득 이 밉살스러운 이 과장 탓에 어제 늦게까지 홀로 야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쉬바. 얄미운 새끼. 지는 술 먹으러 가면서 나한테 야근을 시켜?’
승환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이 과장의 뺨을 소심하게 ‘톡’ 쳤다. 반응이 없었다.
‘이것은 결코 어제의 복수가 아니다. 다만 깨우기 위한 행위일 뿐.’
승환은 고개를 들어 김 과장 쪽을 살폈다. 김 과장은 윤 차장을 열심히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승환은 다시 이 과장을 향해 ‘요놈 새끼 한 대 더 맞아라!’하고 이 과장의 뺨을 한 대 더 때렸다. 하지만 여전히 소심했다. 소녀의 볼 터치 마냥.
그는 한 번 더 김 과장 쪽을 봤다. 이쪽은 안중에도 없었다. 승환이 그렇게 몇 번을 더 때렸지만, 이 과장은 역시 미동이 없었다. 두세 번의 소심한 범죄가 들키지 않자 승환은 큰 용기를 얻었다. 평소에 쌓여있던 악감정이 그의 용기를 북돋웠음은 물론이였다.
“짝!! 짝!! 짝!!”
고요한 사무실에 이 과장의 뺨 맞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승환은 본인이 해놓고 본인이 더 놀랐다. 김 과장이 승환을 보고 있었다.
“이 과장님!! 일어나보세요!! 이 과장님!!”
놀란 마음에 승환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이 과장을 격하게 흔들며 좀전의 싸대기 역시 그저 깨우기 위한 행동의 연장이었음을 강하게 어필해 보였다. 그런 승환의 모습을 본 김 과장은 뭔가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덩달아 윤 차장 뺨을 때려댔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채, 굿거리장단에 맞춰.
하지만 그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윤 차장도, 이 과장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참 뒤 김 과장이 후련한 표정으로 승환에게 다가왔다.
“헉헉, 때리는 것... 아니, 깨우는 것도 힘드네. 허 대리!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119 부르자.”
“헉헉, 역시 그래야겠죠? 알겠습니다.”
승환은 119에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장소는 어딘지, 인원은 몇 명인지 어떤 증상인지 등을 알린 후 전화를 끊었다.
‘아참, 노돈이한테 물어봐야겠다.’
승환/
[노돈아]
노돈/
[ㅇㅇ]
승환/
[니가 아까 얘기했던 전염병 있잖아. 좀 더 자세히 알아봐 줄 수 있어?]
노돈/
[오키. 기다려봐]
“지-잉” 3분여가 지난 후 승환의 휴대폰이 울렸다.
노돈/
[걔도 잘은 모르는데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잠이 든대. 근데 왜 묻냐?]
승환/
[야, 아무래도 그거 우리 회사에 퍼진 것 같다.]
노돈/
[진짜?]
승환/
[지금 나랑 과장님 한 분 빼고 다 자고 있어]
노돈/
[이 대낮에?]
승환/
[응. 존나 무섭다.]
노돈/
[넌 괜찮어?]
승환/
[응, 다행히. 아 ㅅㅂ 나도 걸린 거 아냐?]
노돈/
[뭐 단체로 먹거나 한 거 없어? 아니면 단체로 어디 갔다던가]
승환/
[특별한 건 없는데]
여러 대의 차 소리에 승환은 창밖을 내다봤다. 구급차 6대가 건물 앞에 막 도착하고 있었다. 저 멀리 몇 대가 더 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모두 사이렌을 끈 상태였다.
승환/
[야, 구급차 왔다. 이따 또 연락할게]
노돈/
[ㅇㅋ 조심하고 꼭 연락해라]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때문인지 거리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구급차에서 군인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 왜 군인이?’
장대 빗속 방독면 차림의 군인들이 이동식 들것과 함께 건물 로비로 들어왔다. 승환은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실감했다. 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도 감염된 거 아냐? 딸하고 아내한테도 이미 옮긴 건 아니겠지? 아냐, 내가 걸렸으면 쟤네처럼 자고 있겠지.’
엘리베이터를 통해 군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승환은 사무실 출입문을 열어 그들을 맞았다. 군인들은 아무 말 없이 사람들을 하나씩 실어 날랐다. 승환은 그들에게 다가가 “어..”, “으흠...”, “저기...”라며 말을 건네려 했지만, 결국 무시당하고 김 과장 곁으로 돌아갔다.
“과장님, 뭔가 좀 무시무시한데요.”
“그라게... 이거 심상찮은데?”
방독면을 쓴 군인 한 명이 무전기를 들고 계단으로 힘겹게 올라왔다. 방탄모 정면에는 검정 다이아몬드 2개 계급장이 달려 있었다. 중위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승환과 김 과장에게 다가왔다.
“헉헉, 어휴 힘들다. 신고했죠? 같이 가시죠.”
“어... 음... 저기... 근데 지금 이게... 무슨 일이죠?” 승환이 머뭇머뭇 용기를 내어 물었다.
“야! 여기 두 사람도 데려가!”
중위는 승환의 질문을 가볍게 무시하고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아 쉬바, 요 쪼꼬미가 날 무시 해? 내가 고급스러운 어휘를 고르느라 좀 더듬었기로서니. 내 맘도 모르고... 아유 요, 어린 놈 요거, 내가 점심때 고기만 좀 먹었어도 한 방에 콱! 하지만 그 전에 준비운동은 필수겠지? 심장이 놀라면 곤란하니까.’
승환은 분노의 불을 지피기 위해 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 밤에나 겨우 붙을 것을 예감한 김 과장이 답답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뭐하노 허 대리? 어이! 저기요! 이거 뭐에요? 요 사람들 와 이래 된 겁니까? ”
“그냥 같이 가세요.” 중위가 귀찮다는 듯 답했다.
“아니, 이 냥반이 대답은 안 해주고 딴소리고? 왜 이러냐고 물어보잖아요.”
“저도 잘 모른다고요. 뭐하냐? 이분들도 데리고 가라니까!!”
중위가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군인냥반,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래도 돼요?”
“아저씨, 아저씨들도 감염 의심자들입니다. 여기저기다 세균 퍼뜨리고 다닐 겁니까?”
“뭐? 아저씨? 일마, 말 뽄새 보소? 이거 나이도 어린 걸 존대 좀 해줬더만 어데 막말이고?”
김 과장이 중위의 태도를 참지 못하고 결국 화를 냈다.
“저기요, 저희 아직 아무렇지도 않습니다요?”
승환이 험상궂은 인상을 쓰며 한마디 거들었지만, 말투만은 마지막 잎새의 소녀처럼 가녀리고 공손했다.
“아, 됐고요, 빨리 내려가서 구급차에 타세요.”
“일마, 이거 싸가지 보소! 딱 봐도 스물 몇 살밖에 안 돼 보이는구만. 어린놈의 새끼가! 야, 니 몇 살이고?”
김 과장과 중위의 언성이 높아져 갔다. 승환 역시 중위를 향해 가뜩이나 큰 덩치를 부풀리며 최대한 험악하게 인상을 지어 보였지만 소중한 자신의 안전을 위해 김 과장 뒤로 세 걸음 떨어져 있었다.
중위의 방독면 속 흐른 땀이 그의 눈에 들어간 탓에 언쟁은 잠시 멈췄다. 중위는 눈이 따가운지 연신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승환은 이 더위에 방독면까지 쓴 중위를 보며 짜증 날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죄송합니다. 구급차에 탑승 부탁드리겠습니다.” 중위가 말했다.
“그래, 이래 정중하게 얘기하면 얼마나 좋노? 어린 놈의 새끼가 말이야.”
김 과장도 그 안쓰러운 모습을 봤는지 노가 살짝 누그러져 있었다.
“저기 중위님, 근데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좀 알고나 갑시다.”승환이 물었다.
“사실 저희도 잘 모릅니다. 그냥 정신없이 출동명령 들어와서 이러고 있습니다.”
“아...”
“허 대리 가자.”
“어디요?”
“빨리 구급차 타야지.”
“아니, 과장님 갑자기 이렇게 순순히 따라가시는 거예요? 좀 전까지...”
“절마가 사과했잖아. 카고 혹시 모르니까 우리도 정밀검사 받아봐야지. 딴 사람한테 옮길 수도 있잖아.”
한 마디 사과의 힘은 대단했다.
승환과 김 과장은 1층으로 내려와 구급차에 올랐다. 구급차에는 같은 팀 윤 차장이 이미 실려 있었다. 들것에 누운 윤 차장의 왼쪽 볼이 뻘겋게 부풀어 있었다. 그의 눈가에는 왠지 억울해 보이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눈물은 곧 굿거리장단에 맞춰 흐를 것만 같아 보였다. 먼저 올라탄 김 과장이 윤 차장의 눈물을 애써 외면하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참고 있었다. 승환은 그런 김 과장을 보며 사나이의 비밀을 영원히 지키겠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김 과장 옆에 나란히 앉았다. 잠시 후 병사 한 명이 구급차로 다가왔다. 사나이들의 뜨거운 우정이 방독면을 뚫고 들어갔을까. 그는 구급차에 오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 후 뒷문을 닫았다.
맹렬히 쏟아지는 빗속으로 구급차들이 줄지어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승환이 탄 구급차도 그 행렬을 따라 서서히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