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더욱 강렬하게 남는다.
사랑도 그렇다. 누군가와 행복했던 잔잔한 순간들을 떠올리기보다 서로의 의견이 달라 다투고 무시하고 이별한 기억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만약 100일간의 연애에 좋은 날이 90일이고 안 좋은 날이 10일이었다면 개중에 좋은 날 3일 정도와 안 좋은 날 10일이 떠오를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나에게 좋은 사람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해준 선의와 함께한 추억들은 흐리게 기억될지라도 나와 다투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심어준 사람들은 명확히 떠오른다.
극도로 미워하게 된 감정은 이따금 사랑과 구분이 안될 때도 존재한다.
싫어하지만 마주쳐야 된다면 흠을 안 잡히기 위해서, 내가 너보다 잘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꾸미고 노력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
그리고 더더욱 마주치지 않기 위해 평소에 하는 것과 가는 장소를 모두 보게 된다. 또한 꼬투리 잡을 만한 일이 있을까 싶어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히 보게 된다.
사실 '싫다'라는 단어를 빼고 보면 마치 그 사람의 팬이 된 듯한 기분이다.
주변에서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그렇게 욕을 한다. 그런 쓰레기 같은 게임을 왜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다음날이면 또 하루종일 경기를 보고 있다.
결국 미움도 관심이다.
정말 관심이 하나도 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행동이나 거취에 신경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면 '나와 안 맞는 사람이구나'하고 멀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겹치는 것이 많아서, 자연스레 마주쳐야 해서 생겨난 관심이 무시가 아니라 미움을 택하게 하는 것이다.
아마 좋아하는 사람보다도 그 사람에게 더욱더 큰 인정을 받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나를 좋아해 주는 이들과 했던 이기적인 연애의 기쁨보다는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떠나간 이들이 더욱 떠오른다.
그들을 지금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는 절대적으로 부정을 할 테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내 감정을 떨쳐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참 그렇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동경하는 게 자연스러움이라 하더라도 분명 다른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과 나를 버리고 떠난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 간사한 감정이 이를 알지 못하게 만들어버려서 눈먼 채로 떠나간 이를 뒤쫓으려 한다.
경험이 말했다. 행복한 순간에 속아서 아픈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지 말라고.
그래, 난 알고 있다. 사랑이란 감정에 담긴 것도 대부분이 부정적인 감정임을.
어느 순간부터 사랑을 모르는 체하고 도망치던 이유도 알고 있었다. 겪어온 아픔들이 또다시 재현될까 봐, 말도 안 되는 행복에 속아서 또 나의 아픔을 모른 척할까 봐.
더 이상은 힘들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