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인정하다

인정해 버렸다. 속았거니 다시는 믿지 않을 것이니 해왔던 말들을 모두 버려두고 우선 내 눈앞의 사람에 대한 감정을 인정했다.

명백히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는 감정이다.

근데…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달려가서 그냥 좋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여느 사람들처럼 주변을 맴돌며 애매한 표현을 건네며 반응을 살피며 기회를 엿보기에는 그런 성격이 되지를 못한다.

감정을 인정하고 나니 더 어려운 산들이 다가온다.

사실 내가 사랑을 포기하게 된 이유에는 이런 피곤한 과정들도 한 축을 차지하지 않을까.

고작해야 지나가다 마주치면 인사하고 얘기를 몇 번 나눠보고 다 같이 보는 자리에서 술자리를 가져보았을 뿐, 둘 사이에 딱히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간 적이 없다.

갑작스레 뭔가 물어보고 관심사에 관련된 질문을 던지며 조금 추파를 던져보거나 가까워지러려는 노력을 시도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은 사랑을 시작할 때 활기차고 무엇이든 할 것처럼 굴고 실제로 아무리 멀고 귀찮더라도 잠시라도 볼 수 있다면 달려가곤 하더라.

나는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겼다고 해서 크게 변화되지는 않는다.

매사에 하나의 고려사항이 될 뿐 나머지보다 유별나게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물론 다른 것 보다 더 우선권정도는 있겠지만.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마음을 전하기 시작해야 할까.

고민해 보자. 나는 사랑에 서툴다고 느끼면서 모든 것을 느껴봤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표현하는 게 정답이었던가.

어차피 이따위 고민을 해봤자 앞에 서면 똑바로 못하고 생각과 다른 말과 행동이 나오곤 했다.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달라지기를 바라며 또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인정하기 시작한 후에 전과 달리 그녀의 반응도 달라져 보인다. 아직 아무런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너 역시 나를 의식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이유 모를 불쾌함. 즐기게 된다면야 그것만큼 스릴 넘치는 감정이 없겠지만 이유 모를 순간에 찾아오는 기시감은 분명 불쾌함이다.

나의 사소한 행동변화에 신경 쓰이기 시작한 지금, 그녀는 나를 불편히 여기며 동시에 같이 신경 쓰기 시작한다. 이 끝이 아름답기 위해선 분명 그녀도 이 불쾌함이 사랑으로 바뀔 수 있도록, 즐기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어렵다. 이런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뀌게 노력해야만 하다니. 인정을 후회해도 또 보게 되면 역시나 맞다고 생각해 버리니 돌아설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