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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녀석 Oct 15. 2023

평범한 직장인에게 성공을 강요할 수 없는 이유

여기까지 직업을 갖기 위해 직장인들이 생각해 봐야 할 점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은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성공을 강요할 수 없는 이유와 직장인을 넘어 직업인으로 진화하기 위한 이 책의 결론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인간의 근본적 본성은 무리에 속함으로써 눈에 잘 띄지 않고 투명하게, 
혼자 지내길 원하는 것입니다. 

- 조던 피터슨 -



혼자 있고 싶은데 무리에 속한다니? 언뜻 이해가 안 되실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해하기 쉽게 조던 피터슨의 얼룩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얼룩말은 흑백 줄무늬를 갖고 있습니다. 이 줄무늬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위장 효과가 전혀 없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실용적인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얼룩말은 대체 왜 이런 쓸모없는 줄무늬를 갖도록 진화했을까요? 


멍청한 얼룩말


여러분이 사자라고 가정해 봅시다. 얼룩말 무리를 발견하고 사냥을 위해 다가갑니다.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개체를 사냥할지 특정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다 똑같은 줄무늬 때문에 잠깐 한눈을 팔면 다 똑같아보이거든요. 그런데 이때 무리 속에 빨간 페인트가 칠해진 얼룩말 한 마리가 들어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주변에 있던 모든 포식자들이 그 빨간 페인트를 향해 달려갑니다.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무리 속에 있더라도 끝까지 쫓아갈 수 있으니까요.  


사자


눈치 채셨나요? 얼룩말이 줄무늬를 가진 이유는 바로 무리 속에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입니다. 줄무늬는 혼자 있을 때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무리 속에 있을 때는 아주 효과적이죠. 혼자 있을 때는 위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줄무늬가, 무리 속에서는 오히려 한 개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위장책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얼룩말은 빨간 페인트 같은 특질을 갖지 않게, 최대한 다른 얼룩말과 같은 줄무늬를 갖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힘이 세고 똑똑한 개체일수록 무리의 중심을 차지하려는 성향을 보입니다. 같은 줄무늬를 가질수록, 무리의 중심에 있을수록 사자로부터 자신을 감추기 쉬우니까요.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깁니다. 


"얼룩말은 왜 하필 줄무늬를 만들었을까요? 

혼자서도 위장이 가능한 색을 갖거나

아예 사자와 싸울 수 있을 만큼 강한 신체적 특질을 갖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진화가 '최적화'가 아니라 '적응'을 위해 이뤄지기 때문에 발생한 클루지입니다. 모든 생물은 기본적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합니다. 당장의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인 방식을 택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무쓸모 하더라도 당장의 리스크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얼룩말이 최적화된 특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리 밖에서 홀로 위장하거나 포식자에 맞서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듯 야생에서의 새로운 시도는 생존에 대한 위협에 직결됩니다. 그리고 대개 죽음으로 끝나죠. 새로운 시도를 한 개체가 죽으면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개체가 지식을 획득함으로써 수혜를 입으며, 이로 인해 새로운 시도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고, 현 상태(무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일종의 집단적 당위가 만들어집니다.                               *클루지 : 어떤 문제에 대해 완벽하지 않은, 엉성한 해결책 



인간의 행동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자(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저마다 맞지 않는 줄무늬를 달고 삽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자기가 속한 무리의 중심으로 들어가고자 발버둥 치죠.  무리의 중심에 속하는 게 남에게 인정받고 자신의 안전을 추구하는 가장 좋은 선택지가 되며, 무리 밖에 나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불필요하고 두려운 선택지가 됩니다. 심리학 교수 조던 피터슨의 말처럼, 인간은 행복과 성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리스크와 실패의 회피를 추구합니다.


평범한 직장인에게 성공을 강요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무리(직장) 밖에 나가 리스크를 감수하고, 실제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유전자 속에 깊이 뿌리박힌, '무리 밖에서의 새로운 시도는 죽음으로 이어진다'라는 '고통 회피 클루지'를 극복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클루지는 누가 강요한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며, 극복하지 못하다고 해서 비판받을 것도 아닙니다. 본능적으로 모든 생물은 고통 회피를 우선하도록 세팅되어 있습니다.


섬뜩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지금껏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들을 통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만든 상황은 우리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유전자 속에 각인된 '고통 회피 클루지'로 인해 무리의 '집단적 선택을 추종해온 결과'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고등학교 때 우리는 왜 그렇게 인서울 대학을 가려고 했을까요? 대학을 졸업할 때는 왜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했을까요? 직장에 들어와서는 또 왜 그렇게 고과와 승진에 목을 맬까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어서? 그게 진짜 자기가 원한 거라서? 아닐 겁니다. 이것은 모두 더 견고한 무리에 속하고, 그 무리에서도 중심에 들어가려는 클루지의 오류 때문입니다. 자청의 '순리자-역행자 개념'도 결국 이 클루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성공을 위해 행동하기보다 고통을 회피하고자 자신이 속한 무리의 집단적 선택을 추종하며, 이로 인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좇지 못하는 조용한 절망'에 잠식됩니다. 


문제는 고통 회피 클루지가 과거에는 당장의 생존에 도움이 됐던 것과 달리, 오늘날에는 오히려 직장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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