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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Oct 21. 2023

자기다움의 회복2

나는 코메디를 하는 사람이야.

내가 나를 비디오로 내동댕이 친 것은

"입벌글"이 나다움이었기 때문이다.


우스꽝스럽지만 어쩌겠는가.

내게 주어진 나의 모습이었다.

(나도 억울하다.)



나는 철학하기에는 너무 가볍고,

문학하기에는 너무 짧다.

(이것까진 말 안하려고 했는데,

공학 하기에는 멍청하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나를 코메디 내지 엔터테인먼트로 정의내렸다.


나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얕고 쉽다.

그런데 그렇기에 더 가까이에서 소비되고

더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나는 내가 우습다는 사실이 기쁘다.

나는 나의 가장 열렬한 팬이기 때문이다.


나는 볕이 좋은 창가에서

흐드러진 블라우스를 입고 우수에 찬 프로필을 찍는

멋드러진 작가가 아니다.


나는 물세탁한 채도없는 니트를 입는 사람이고

유행하는 밈을 줄줄이 꿰고 있다가

기꺼이 "재치"를 위해 내 한몸 던지는 코메디다.




<창작과 비평>도 아니고 <문학동네>도 아니고,

인스타그램과 브런치, 유투브에

기준 없이 잔뜩 읽은 책 더미를 뭉쳐놓은 사람.

그게 나의 모양이다.





한동안 베스트셀러적인 글을 쓰지 못하는

나의 문체를 미워하던 시간이 떠올랐다.


나는 왜 김초엽이나 정세랑이 될 수 없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어이없는 발상이다.

너는 나누리이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블로그를 켜고

남몰래 그들의 글을 베껴 썼다.

(정확히는 아주 몰래는 아니고, 서로이웃공개로 썼다.)


지금 생각하면 그 행위는

스스로에게 하는 체벌에 가까웠는데

나는 내신 공부하는 여고생마냥

무엇도 음미하지 않고

그저 꾸역꾸역 "베껴" 썼다.


출근 하기 전에 40분 남짓을 소설 빽빽이했다.

두어 달은 지속했는데

당연한 결과지만

내가 쓰는 소설은 한줄도 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의 실패들은 흉내내기가 얼마나

얄팍한 발상이고

오히려 돌아가는 길임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 때부터 나는 내려놓기 시작했던 것 같다.



조각조각

엔터를 아끼지 않는

길게 쓴 시인지 에세이인지 모를 이 글은

눈물콧물 범벅 감동의 도가니가 되지도

심장떨리는 박진감이 넘쳐나지도 않지만


웃기다가

불쌍하다가

대견하다가

어이없다가


그야말로 한 손으론 지하철 손잡이 쥐고

감길랑말랑한 눈꺼풀 부여잡으며

엄지로 대강 내려

훌훌 읽기에 딱이다.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아한 작가들이 할 수 없는

(그들이 하고싶다고 한 적도 없긴 하다.)

“입벌글”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찍는 비디오에 원칙을 세웠다.

1. 주체성을 잃지 않을 것.

2. 주제에 한계를 짓지말 것.



유투브 업로드를 하면서

비디오를 게시하는 방법 등을 검색하기 시작하니

그간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던

비디오들이 나의 피드를 채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한달만에 구독자 1000명 모으는 법“

"클릭을 부르는 썸네일"


나도 좀 어떻게 얼레벌레 섞여서

따라가볼까 싶어서 캡쳐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려고 만든 채널이 아니다.

내 안에서 100%의 소화가 된 것만 게시한다.

(그게 우스꽝스러운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닌 것만이 문제다.)


이럴 때 보면

전생에 망한 사이비 교주가 아니라

정절을 고집하다 얼어죽은 천번째 열녀 언저리 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또 내 귀에 대고 말을 한다.


나는 코메디를 하는 사람이야.

비슷해져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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