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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Oct 21. 2023

소설| 펭귄보이와의 딥키스

처음 발행하는 소설 01

내가 채팅에 흥미가 있는 줄은 서른이 넘어서야 알 수 있었다. 밀레니얼 피씨통신 시대도 아니고, 하루가 머다하고 인공지능 뉴스가 난무하는 2023년에 채팅이라니. 타지에서 혈혈단신으로 지내는 나에게 재택근무의 연장은 목소리를 잃기에 아주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내게 남은 말들은 오직 용도가 분명한 부류의 것들만이었다. 가령, 업무 미팅에서 정해진 분량을 채우는 발화, 단골 샌드위치 가게에서 원하는 햄낀빵을 지목하는 발화, 또 간헐적으로 가족이나 친구에게 생존을 확인시키는 통화의 발화. 나열한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말들은 속절없이 삼켜졌다.


그런데 그게. 삼켜진 것이 아니라 켜켜이 누적되고 있었음을 깨달은 사건이 '펭귄보이‘를 만난 일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게시판 같은 것을 살펴보다가 “짱구 극장판 같이 보실 분”이란 글을 보게 되고, 오랫동안 좋아해온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할 생각에 들떠서 ‘펭귄보이‘에게 대화를 걸었다.


> 안녕하세여. 짱구 조아하시나여? 짱구 생일 아시나여?

> 뭐조.

   테스튼가요.

> 네

   저랑 대화가 가능할지 지식 수준을

   알아보고 있어여

> ㅋㅋ

   5월 5일이요.

> 헐!!


그렇게 물꼬를 튼 우연한 대화는 멈출 줄을 몰랐다. 말이라 하면 두번이고 세번이고 곱씹은 뒤에야 음성으로 만들어내는 내가. 아무런 시뮬레이션이나 어떠한 필터 없이 그렇게 많은 양의 생각을 누군가를 향해 '언어화'하는 일이. 아니 그게 얼마만의 경험이었던지. '펭귄보이'와 나는 환상의 티키타카로 서로의 어린시절 별명이 무엇이었고 가장 싫어했던 건 어떤 별명이었는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한가지는 무엇인지, 가장 사랑했던 대상은 어떤 이이고 그 경험의 강렬함은 어떠했는지 등 인생 전반의 기억과 생각에서부터, 어제 그가 <바둑대전> 책을 빌려왔다는 현재의 시시콜콜까지 공유하게 되었다.


'펭귄보이'와 겨우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는 아주 짧은 잠을 잤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절대적인 수면시간과 무관하게 다음날 나는 나의 오장육부에서부터 손끝 발끝 말초신경까지. 내 전신이. 여느 날에 비할 수 없게. 이토록 가볍고 개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바로 감각할 수 있었다. 내 안으로의 더듬이가 많은 사람이라. 나를 증강시키는 인간과의 교류가 일어났음을. 너무 오랜만의 감각이라 얼떨떨함은 있었지만 그것에의 확신이 흐려지지는 않았다.


나는 이 감각을 조금더 온 몸으로 맞아야 한다는 필연을 느꼈고, 얇은 가디건을 챙겨입고 산책에 나섰다. 나는 덜 깬 얼굴을 맞이하는 바람에서 달콤한 맛을 느꼈다. 또 내게 길가의 엄지손톱만한 들꽃은 커다란 리넌큘러스 송이처럼 탐스럽고 아름답게 확장되었다.

- 이거였어.


나는 달뜬 마음으로 ‘펭귄보이’를 찾았다. 가벼운 아침인사와 일과 이야기를 나누고.

> 앗, 나 근데 잠시 미팅 다녀올게.

> 응


화상미팅을 하던 중, 나는 주변 시야로 책상에 놓인 잠금화면에서 두꺼운 메시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있잖아, 사실은..’으로 시작하는.


겨우 시선을 다잡고 화상 창을 닫고서 핸드폰을 열었다. 혹시나를 빗겨가는 역시나는 드물다. 근래의 이별이 충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갑작스럽고 두꺼운 연결에. 나를 충분히 담아낼 마음의 방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펭귄보이’의 긴 종결 메시지. 고마워. 미안해.


내게 남겨진 것은 아쉽지만 가득찬 감정. 아이러니하게도, 종결 앞에서 나는 기뻤다. 내게 말을 찾아준 사람. 우리의 채팅은 딥키스에 버금했다. 나는 내게 연결의 감각을 되찾아준 이에게 고마움을 가득 담아서 마지막 러브레터를 썼다. 답장의 종결에는 좋아하는 소설의 문장을 인용하여..


“이 꿈은 짧지만 행복하니까요.”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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