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행하는 소설 03
< 전함. >
이어폰과 외이도 사이의 진동을 납치한다.
앞으로 이어폰을 끼는 사람은
어떠한 소리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귓바퀴와 공기 사이에 인공물을 제거한 자만이
음악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외이도에서 미끈한 동그라미가 사라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육성으로 직접 소통을 주장하는 소통소통 분파로부터
지구의 이어폰 해킹소탕이 성공한 것이었다.
- 귀를 막고 대화한다는 것이 말이되는가.
우리는 자연-대화로의 귀의를 바란다.
그것이야 말로 인간들을 불통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야.
소통소통 분파의 대장 김소통의 주장이었다.
그의 하위에는,
1. 업무시간에 이어폰을 빼라고 했다가, MZ사원 맑눈광에게 "이게 더 집중이 잘되는데요?" 대꾸를 들은 박부장과
2. 집에서는 이어폰을 빼고 온 가족이 대화하자고 중2 아들을 채근하다가, 아들이 집을 나가버린 강팀장이
왼팔과 오른팔로 존재했다.
김소통은 턱수염을 길러 양 쪽의 관자놀이를 연결하는 데에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는 본인 스스로의 양쪽 귀를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전 생애를 받쳐 관자놀이 수염 연결을 완성했다.
- 비로소 양 귀의 소통이 완성되었다!
그에게는 가시적인 연결만이 소통으로 정의되었다.
눈맞춤과 음성대화, 스킨십 없는 인간 소통이 가능하겠냐는 기조였는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의 시점부터, 스무 해에 걸쳐 재택근무가 만연해진 사회에서
사람들을 대면의 현장으로 끌어놓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그간 꾹 참고 있었던 부장팀장과장대장쌈장 등이 모두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 각각의 전문성을 투입하여
여러해에 걸쳐 '외이도-이어폰 진동 제거' 연구를 진행했고
몇 차례의 베타 테스트 끝에 완성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세상에는 혼자 듣는 소리가 삭제되었다.
사람들은 이어폰을 껴도 그저 무음만이 전달되었고
본인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것은 SNS를 통해 빠르게 알 수 있었다.
- 귀가 열린 사회가 다시 도래할 줄은 몰랐는데..
이어폰을 잃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필수적으로 끼게 되었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 초입때처럼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누구는 이어폰 좌우를 바꿔 끼면 들리는 것 같다고 한다던가
누구는 줄 이어폰을 끼고 사운드 볼륨을 맥스로 올리면 미약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주장들은 이어폰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환청이었음을, 사람들은 금세 알 수 있었다.
혼자 듣는 방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점이었다.
점점 사람들은 다시 이어폰을 되찾을 수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서 앉거나 설 법한 스피커가 있는 방이 대표적인 그것이었다.
서서 들을 수 있는 방은 20분당 1만원, 앉아서 들을 수 있는 방은 20분당 1만 5천원으로
결코 저렴하지 않은 비용이었으나, 입소문을 타고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사람들의 혼자 듣기에 대한 욕구가 지속적으로 해소되지 못하자
사진이나 노래를 부르던 부스들마저 속속들이 혼자 듣는 방으로 전환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바깥에서 어떠한 도피처 없이 대화와 교류를 해야했고
그것에 지친 사람들은 폰 부스처럼 들어찬 혼자 듣는 방으로 숨어들었다.
심지어 내향적 성정이 큰 사람들에게는
그 방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 자원이기도 하였다.
그 사람들은 끼니를 굶어서라도 돈을 아껴 혼자 듣는 방을 찾아갔다.
결국. 참지 못하고 김고요가 나섰다.
그녀는 과거 자거나 씻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이어폰을 항시 착용하는 사람이었다.
비대면 소통의 대가로 채팅과화상미팅의 대화만으로 200억 짜리 계약을 성사시키는 능력자였다.
그녀는 이어폰을 잃고 대면 소통이강제되기 시작하면서
지속적으로 회의실이나 카페 공간으로 호출되었고,
그것은 스트레스 누적과 퍼포먼스 저하로 이어졌다.
심지어 집에서도 이어폰이 단절되어
온전한 휴식을 잃게 되자, 더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김고요는 소통소통 분파의 본거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포부를 듣고 알음알음 동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1. 홀로 고프로, 무선 이어폰, 스마트워치만으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심셀프와
2. 대중교통에서 이동시간의 플레이만으로 사천성 모바일의 세계랭킹을 놓고 쥐지 않았던 천집중이
대표적인 멤버였다.
김고요는 심셀프와 천집중과
매주 토요일 7시 혼자 듣는 방 낙천점에서 만났다.
셋은 꾸역꾸역 한 방에 들어가 작당모의를 설계했다.
그렇게 착착 소통소통 분파를 찾기 위한 여정이 계획되기 시작했다.
천집중은 2주간의 집중을 통해서 백엔드 엔지니어링과 블록체인을 공부했고,
자투리 시간만으로 사천성 세계랭킹에 오른 그의 명성이 부끄럽지 않게
마침내 소통소통 분파의 서신이 충남 서산 마이산에서 발송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주, 심셀프는 그의 탐지와 탐험 능력을 바탕으로,
마이산에 침투하여 김소통의 본거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의 탐색 행동은, 가히, 레브라도와 셰퍼드의 장점만 그러묶은 아트에 가까웠다.
그는 구르다가. 또 걷다가.
가끔은 나뭇잎의 냄새를 맡았다.
그가 비화식 라면밥을 네번 쯤 먹었던 때,
번쩍 하고 스치는 푸른 불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박부장이 '이어폰 외이도 진동 삭제' 파동을
가시권 파동과 같이 전송해버린 찰나의 실수였다.
심셀프는 푸른 불빛을 바로 캐치하였고,
빛의 직진성을 따라서 근거지를 찾아갈 수 있었다.
- 설마 이곳인가.
그가 도착한 곳에는
소통이 있을거라고 찾아보기 어려운
각 방으로 닫힌 철문이 세 개 있었다.
그는 숨을 필요도 없이
투사 안경을 꺼내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철문 안에는
MZ사원과 중2아들에게 마음의 상처가 누적되어
문을 닫아버린 박부장과 강팀장이 각각 들어앉아있었고
관자놀이 수염이 어깨까지 자라나 귀를 모두 덮어버린
김소통이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들은 이어폰 해킹소탕을 성공한 후
처음에는 같은 방에서 성공을 축하하며 신나는 소통의 현장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통을 좋아하는 그들에게도 혼자의 시간이 필요해졌고
이어폰 해킹을 멈춰보려고 했지만
미처 원복하는 기술은 개발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셋은 원복 기술을 만들지못하고 결국 갈라서게 되었지만
사람들이 혹여 알아볼세라 마이산 밑으로 내려가지는 못하였다.
결국 주변의 마이산 안내센터 부스의 벽을 뜯어서
철문 세 개를 세운 것이다.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였던 '이어폰 외이도 진동 삭제' 파동은
천집중의 일주일간의 집중으로 원복되었고
지구인들의 귀에는 반질반질 이어폰이 다시 자리하게 되었다.
대면과 비대면 소통이 공존하는 것의 기쁨을 여실히 알게 된 사람들은
김고요와 심셀프, 천집중의 기여를 높이 사서
이어폰이 다시 들리게 된 날을 고요와 셀프 집중의 날로 기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고요와 셀프 집중의 날>에
동네의 카페에서 다같이 모여 대화한 뒤
각자 이어폰으로 원하는 음악을 듣는 의식을 이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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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