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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Oct 22. 2022

투명인간

시 열둘.

선생님은 종종 출석부 속 아이의 이름을 못 보고 넘겼다.
흐린 것도 아니고

뭐가 묻은 것도 아닌데
멀쩡히 써져있는 이름을 못 보고 지나쳤다.


이름이 불리지 않은 아이는 그냥 조용히 조회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운이 좋으면 어느새

지나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예를 들면 체육시간 같은 때 모두가 나간 뒤에 얼른 출석부를 열고 자기 이름 옆에 체크 표시만 하면 된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학년이 끝날 때쯤 어떤 아이들은 아이를 굉장히 이상하단 눈으로 노려보며 지나가기도 했다.

/얜 누구야? 왜 우리 반에 있어?/

같이 걷는 옆 친구가 대답해준다.

/우리 반 투명인간/



-

체육시간에는 구석에서 흙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미사 시간에는 손톱에 침을 묻히고는 천천히 말라가는 손톱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이가 조는 것처럼 보였다.


/한 단어면 충분하다.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이니까./

아빠는 말하곤 했다.


아이는  손으로 불을 꽉 눌러 그 단어를 짜내어 보았다.

단어가 튀어나왔는데 기도가 되진 못했다.

/이렇게 깊고 어두운 우물을 기도 하나로 어떻게 지나가나요?/

아이는 속삭였다.


아빠는 듣지 못했다.



-

어느 날 아이는 바로 눈앞에서 까치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까치는 급히 날 때도 저리 우아하구나.)

아이는 생각했다.
그런데 내려오까치는 의아했다.

항상 필요한 만큼의 날갯짓을 알맞게 경제적으로 하는 건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알 법한데도 까치는
명백히 한두 번의 날갯짓을 더 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목적지에 발이 바로 닿지 않고 살짝 떴다.
그리고 살포시 앉는데 그 자태가 참 고상하고 여유롭다.
잘 살펴보니 그 한두 번의 불필요한 날갯짓 덕분이다.

굳이 땅에 닿기 전 살짝 떠오른 것이

의도한 듯.
비상 때와 다른, 내려오기 위한 날갯짓이 따로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법과 내려가는 법을 구분해서 배웠나?)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는 바보 같은 자신의 질문에 웃었다.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따로 배우는 것이 옳다. 그러니 그랬음이 틀림없지.)

아닌 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보지 못하는 그 선생님이나

같은 반인 줄 1년 내내 모르던 아이들이 같은 계단을 지나가기라도 하면

가끔 아이의 다리는 어쩔 줄 모르고 굳어버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곳은 벼랑과 다름없었다.


/나도 너처럼 해야겠어. 불필요한 날갯짓을 몇 번 더 하는 거야./

아이가 까치에게 말했다.

아이는 깜짝 놀랐다.

까치가 미소 지으며 답을 했기 때문이다.



/추락이 아닌 착륙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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