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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Mar 10. 2024

작은 공간 큰 정성

자전거 타는 여자, 요리하는 남자


 지난번 이모님 조언 후 가게 자리에 앉는 손님이 많아지 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모님이 장로로 계시는 행운교회 집사, 목사, 이모님 친구분들이 예배 후 점심을 위해 방문해 주셨고. 신경 써서 내놓은 음식이 입맛에 맞 으셨는지 소문을 좀 타기 시작했다. 그분들의 가족, 그분들 의 자녀, 그리고 그 자녀들의 친구들까지.


교회. 교회 사람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교회 안의 종 교적 신념에 대한 문화. 크리스천 고등학교를 나왔고, 안국 동 도서관 사서 일을 할 때 접했던 종교 서적들과, 이탈리 아 유학 중 그 멋진 두오모 성당들을 드나들었던 덕분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크리스천의 종파, 복음의 역사. 그들의 생리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환경보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선호가 심각한 만큼 권사 이후의 전도사, 준목사, 예비 목사, 목사, 장로까지 여자는 발도 들일 수 없는 문화가 팽배한 곳이었다.


특별한 지위나, 교회에 공헌을 통해 은퇴 장로가 되는 정도의 예외가 있긴 하다. 수진 이모가 그랬다. 많은 신도 들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공정하지 않은 그들만의 환경 에서도 이모님이 유일하게 은퇴 장로로 계신 이유. 교회를 세우고 경기도권에서도 핵심 복음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에 터를 잡으시고 돌아가신 이모부의 공헌 때문이었다.


세상 만연의 미소만 머금고 사시던 이모부의 비보. 선교 활동 중, 뜻밖의 심장마비 사고사였다. 그 독실한 신자의 슬픔을 무심한 신께선 또 외면. 아버지를 존경하고, 그 뒤 를 밟겠다며 미국에서 신학 유학 생활 중 집으로 돌아오지 않던 아들마저 수삼 년 뒤 싸늘한 비보로 되돌아왔다. 하 지만 이 모든 게 신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며 오히려 이 모부께서 세웠던 교회에 더 매달리셨고—가족의 흔적이 있 는 모든 집과 환경을 정리 후, 1 년여 가까이 교회에서 나 오지 않으실 정도였다고—교회를 방문하는 모든 신자들은 그 모습이 안쓰러워 예배를 가서도 이모님과 대화하는 것 으로 슬픔을 많이 나누며 유일한 장로로서 자립하는 데 많 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유학이랍시고 뒤늦게 돌아온 내 게 이처럼 대해 주시는 것도 남다른 의미로, 어머니의 말 씀으로 받아들인다.


장로라는 주어진 역할이 워낙 교회와 교회 안에서 큰 영 향력이 있다 보니 입소문의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맛있 는 음식보다는 장로님 조카라는 소식에 오시는 분들이라 소원하게 대할 수 없어서 더 긴장해야 했다. 하나 더 드리 고, 한 움큼 더 신경 써서 다듬어야 했고, 정갈한 한식 위 주의 음식도 자주 내었다.


이곳 정자역의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고, 어느덧 초 겨울에 열어 자리 잡은 이 가게 안 하나의 테이블과 주방 앞 다찌의 여섯 개인 자리 중 반 이상의 자리는 항상 차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 이제 좀 괜찮아졌니? 너 혼자 먹고살 정도는 되었지?


— 아. 예. 다 이모님 덕분이죠.


— 내 덕은 무슨. 한 달에 두 번 교회 오시는 전도사님들 중에 네가 해 주는 수제비가 다시 먹고 싶어서 멀리서 오 시는 분도 계실 정도니 네가 요리사로 유학까지 다녀온 실 력은 되나 보다.


— 수제비는 이모님 입맛에 맞춘 것뿐이에요.


— 내 입맛이 있다니? 하여튼 이제 먹고살 정도가 되었 으면 쉬는 날도 좀 만들고, 좋은 사람도 좀 만나고. 더 늙 기 전에 엄마 유언을 지켜야지?


— 네, 그래야죠. 하하.


— 항상 저 짧은 대답. 싱겁기는.... 간다.


당신께서 겪었던 인생의 무게를 감히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 때문에 짧은 인사와 당부 말씀이지만 마 음속엔 항상 가지고 있는 다짐. 아들처럼 다하여 매일 뵐 수는 없더라도, 항상 가까이 곁에 있는 이곳에서, 웃으며 있을 것임을. 앞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변화가 아니라면, 내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이라면 항상 이곳 ‘맛있는 밥 한 끼’로 곁에서 함께할 것임을.


그래서 이모님을 어머님으로 생각하며, 사촌이었던 아들 의 역할은 조금은 부족하겠지만 제가 하겠습니다. 제 어머 님도, 사촌이었던 그 녀석도 그걸 바랄 테니까요.




당신의 카레라이스, 당신의 울테그라



실로 오랜만이었다. 오사카 출장 때나 맛볼 수 있는 깊 고 부드러운 맛의 카레였다. 첫맛은 치즈의 우유 맛이 부 드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바로 잠시 후 진한 카레 향. 한데 다른 맛도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향이 하나 더 다가왔 다. 집에서 인스턴트로 해 먹는 텁텁한 카레의 진한 향과 전혀 달리, 입 안에서 맴도는 카레의 향은 좀 달랐다. 노릇 한 우유 치즈 향은 빠르게 지나가고 상당히 부드러웠다. 궁금한 나머지 카레만 몇 번 따로 더 떠먹어 볼 정도. 물 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봉크 상태였다. 향을 느끼기 무섭게 다가온 밥맛은 침샘을 더욱 자극하며 식욕을 당겼 고, 입 속에 맴돌 만한 크기의 고기는 바로 넣어 씹기 시 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 넘김에 있어 마치 물과 함 께 삼키는 듯한 부드러움을 느꼈다. 물어보고 싶었다. 특히 주말이 지나고 닥쳐온 생업의 일주일 내내 그 맛이 계속해 서 떠올랐다. 아마 처음 느껴 본 맛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나흘 뒤 목요일. 현우 오빠에게 연락을 취해 미리 연락 처를 받았다. 전화번호를 왜 묻냐며 의아해했지만 친구와 식사 한번 하러 간다고, 테이블이 하나밖에 없어 미리 예 약해야 할 것 같아 그런다고. 휴대폰 번호만 달라고 무던 한 톤 앤 매너로 물어봐 알아낸 다음. 전화를 할까 하다 짧게 메시지만 보냈다.


— 안녕하세요. 지난 일요일에 봉크 나서 갔던....


이라고 쓰고 머뭇댔다. 날 뭐라고 써야 기억할까. 한참 고민하다 한 단어가 떠올랐다. 그래, 그 단어를 기억하겠다 는 생각에 문장에 다시 넣어 보냈다.


— 안녕하세요. 지난 일요일에 봉크 나서 갔던 현우 오빠 VIP 입니다. 이번 주엔 하루 일찍 토요일에 운동하려 합니 다. 운동 후 아침밥 먹으러 가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메시지를 보내고 바로 올 줄 알았지만 답이 없었다. 내일까지 회신이 없으면 용감하 게 전화를 해 보리라 생각하고, 해가 질 무렵까지 한창 토 론·회의 중이었다. 휴대폰이 울린다. 메시지 1 이라고 쓰인 휴대폰 화면은 빨리 회의를 마치라는 듯했다. 회의실을 나 오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 안녕하세요. ‘맛있는 밥 한 끼’입니다. 제가 아침 장사 는 하지 않습니다. 가장 빠른 시간이 토요일은 11 시입니다.


처음엔 ‘뭐지, 이런 불친절한 멘트는.’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조차도 음식점에 이른 아침에 가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래 대부분 점심 장사부터 하 겠구나. 한데 11시면 너무 늦다 싶었지만, 운동 후 돌아오 는 길의 가장 최적의 지점이라 반보 뒤로 양보하기로 맘을 바꿔 보자 생각했다. 그리고 짧게 ‘토요일 11 시에 뵐게요.’ 라고만 적어 보냈다.


— 아!VIP님. 안녕하세요. 제가 잠시 중요한 분을 몰라 봤네요. 토요일 11 시부터 시작입니다만 이번 주엔 특별히 10 시로 오픈하겠습니다. 편하게 오세요.


오호? 하지만 그리 달갑진 않다. 지금은 오전 10시만 되어도 뙤약볕에 25 도가 넘는 여름의 한복판이고, 심할 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그 복사열에 오전부터 견디기 힘든 때다. 이런 삼복더위의 라이딩은 새벽 5시나 혹은 6시에 출발해서 9시면 끝내는 것이 좋다. 자칫 정오까지 달리다 가는 더위를 먹기 쉽고, 심각하게 탈수증까지 오면 여지없 는 봉크이기 때문에. 특별히 맞춰 주신다니 고맙기는 하다만, 미안하지만 9시 30분까지 가서 작은 그 가게 문부터 두드려야겠다. 친절하지만 좀 더 겁 없는 인상을 남겨 주 리라. ‘네. 일찍 갈게요.’라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데 뜻하지 않은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 편하게 오시되 영업시간보다 일찍 해 드리는 것이니, 느긋하게 드시고 다음 손님 오실 때까지는 앉았다 가시는 겁니다. 자전거 운동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도 많이 해 주시고요. ^^


기대하지 않던 장문의 메시지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하나 싶다가 의례적인 인사이려니 싶었다. 말 그대로 평소 대비 1시간 넘게 일찍 여는 것이니 그 사이 손님이 없을 것이 고 자신과 말벗이나 하다 가라는 뜻 아닌가.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이지만 사이클도 중요한 운동법이 있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 스트레칭과 함께 조금씩 워밍업. 몸이 운동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시간. 이 준비의 시간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풀 리지 않은 몸 상태에 따라선 페달링이 여느 때와 달라져 힘겹게 운동하게 된다. 극렬한 유산소 운동이므로 심장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 더불어 워밍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쿨다운이다. 운동하는 시간이나 거리의 기준으로 볼 때 마무리 10%는 이 쿨다운을 기준으로 두고 유 념해서 서서히 운동을 마무리하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방법은 페달링의 속도를 늦추거나 쉬면서 달리는 것. 근육 의 결 사이에서 산화하여 발생하는 젖산. 젖산이 분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마무리 방법이다. 보통 이 쿨다운 시간을 두지 않고 바로 몸을 멈추면 호흡은 쉬 워질 수 있지만 팔다리, 어깨, 몸통, 발까지의 관절과 근육 은 운동 중 발생한 경직 상태에서 풀어지지 않고 남아 있 게 된다. 흔히들 ‘운동했더니 결리고 알이 배긴다’는 게 이 런 쿨다운 구간을 두지 않은 운동의 후유증이다.


그렇다. 라이딩을 마무리하는 쿨다운 기간에 ‘맛있는 밥 한 끼’가 좋은 지점이다. 서서히 속도를 낮추고 멈출 무렵 가볍게 아침이나 점심으로 식사하고 오기에 좋은 지점. 그 래서 어쩌면 그날의 10시 약속이 더위보다는 더 좋을 것 같다.


오늘도 날이 맑다. 주말 아침 자전거로 가장 넘기 힘들 다는 늦잠령을 설정해 둔 알람으로 겨우 넘었다.6시에 눈 을 뜨고 마그네슘과 당분이 적절한 바나나 하나로 배를 채 운다. 이제 타이어 공기압을 점검하고 장비를 챙겨서 운동 에 나선다. 가볍게 평지 구간을 워밍업으로 달린다. 온도는 24 도. 새벽이라 아침 바람은 시원하다. 어제 잠시라도 비가 와서 그런지 파란 하늘에 구름이 마치 바다 위 일렁이 는 파도 같다. 온전히 나만의 힘으로 페달링해 앞으로 나 아간다. 그 무엇도 방해 없이, 잡념 없이 앞으로만 나아간 다. 내가 만들어 낸 동력으로, 내가 만들어 낸 시간에, 나 만의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이다.


평지 구간을 마무리하고 이제 평균 경사도 6% 정도의 언덕을 오른다. 이른바 평지가 아닌 경사도가 있는 가파른 곳을 자전거로 오르는 업힐(uphill)의 수준은 고개, 산, 치, 령 순으로 난이도가 세다. 멀리 원정을 가지 않는 한 동네 에서의 업힐은 고개를 두세 개 정도 넘는 수준. 이곳 정자 동에서 하오고개, 여우고개, 말구리고개 정도를 넘고 한 바 퀴 도는 운동을 하면 대략 50km. 유산소 운동으로 1천 칼 로리를 소비하는 데 적절한 난이도와 거리다. 러닝으로 치 면 약 15km 정도를 걷지는 않고 뛰는 수준으로 3시간 가 까이 해야 하는 소비 열량. 자전거로는 2시간 좀 넘는 수 준이니 이 소비 시간 대비 열량은 다른 운동에 비해 자전 거가 매우 높은 편이다.


현우 오빠에게 배워 자전거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 도 이런 운동의 효율이나 효과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 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이젠 내 몸을 더 이 해하고 운동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몸을 다치지 않고 운동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공부해 가며 운 동해야 한다는 것, 이로 인해 좀 더 계획적으로 내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온전한 내 힘으로 다잡아 서 는 시간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좀 더 효과 좋은 운동 방법 을 찾게 되었고 이제 시간과 코스를 정하면 계획한 시간 이내에 마치는 편이다.


9시 30분. 숨은 좀 가쁘지만 다짐했던 시간에 도착했다. 골목으로 들어서며 살펴보니 다행히 가게 문은 연 듯 창 안쪽으로 노란 등이 켜져 있다. 자전거를 세우고 가게 미 닫이문을 옆으로 밀었는데, 엇. 문이 열리지 않는다. 너무 이르게 왔나 싶어 안을 들여다보니 ‘쥔장’ 아저씨는 주방 여기저기를 계속 오가고 있었다.30분 일찍 오는 것이 도 움을 주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탄천변으로 걸어 나와 나무 밑 벤치에 앉았다. 행운교회 앞의 탄천엔 그리 깊지 않은 물이 흐르 고, 오리가 호젓하게 흐르는 물을 타고 있고, 잉어와 긴몰 개나 납자루 혹은 동자개가 오간다. 산들바람이 불 때면 흰뺨검둥오리 위로 왜가리가 날고, 미동도 없는 깝짝도요 는 멀리서도 나와 눈을 마주치는 듯하다.


잠시 땀을 식히고 있다가 시간이 맞았으리라 싶어 일어 나, 다시 자전거를 가게 앞에 세우고 있으니 문이 스르륵 열린다.


— 어서 오세요. 딱 시간 맞춰 오셨네요.


— 아, 네. 맛있는 밥 한 끼 부탁드리려고요.


들어서려는데 이미 다른 한 분이 아일랜드 식탁 부근에 앉아 계시는 것이 보인다.


— 거봐라. 일찍 여니 손님이 일찍 오잖니?


— 네. 맞네요! 흐흐.


— 뭐든 힘들더라도 장사는 부지런한 거지. 교회도 마찬 가지다. 수요 새벽 예배, 주일 새벽 예배를 왜 하겠니. 다 들 마음도 채우고 배도 채우려는 마음은 같은 게지. 옜다. 다 다듬었다. 나는 오후 예배 준비하러 가 봐야겠다.


돌아 일어서시며 나와 마주쳤다. 청푸른 여름에 맞게 하 늘거리는 원피스에 레이스 달린 팔 토시를 살짝 감으셨다. 좁은 복도를 걸어 나오시다 내 운동 복장을 위아래로 훑어 보신다. 이내 여느 카페나 음식점에서처럼, 몸매가 다 드러나는 저지와 빕 차림의 이 모습에 반감의 표정이 일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분은 좀 다르다. 활짝 웃으시며 어서 오라 팔로 안내까지 해 주신다. 안내하는 손동작이 매우 여성스럽게 느껴지는 분이다.


— 네. 고맙습니다.
 짧게 인사하며 목례만 했을 뿐인데 한 번 더 소리 내어


웃으시며....


— 멋진 운동을 하시는 분이네(싱긋~). 자 그럼 준석아, 손님 잘해 드리고. 이따 오후에 친구들과 오마.


— 아, 네... 고맙습니다.

— 오늘은 어떤 밥을 해 드릴까요?


— 아, 오늘은...(또 카레라이스라고 하면....).

— 오늘도 카레라이스는 아니고요. 마침 고기가 숙성이 덜 된 상태라. 오늘은 좀 다른 걸 해 드려도 될까요?


— 셰프님 편하실 대로요. 오늘은 제가 너무 일찍 온 것 같으니. 한데 방금 그분이 첫 손님이세요?


— 아. 아니에요. 바로 앞 교회에 계신 이모님이세요. 자 그럼 잠시만요.


손님이 아니었구나. 잠시 도와주시는 분인가 했다. 첫 손 님이 나일 테고, 평상시보다 이른 예약이고, 시간이 남아 함께 있어 달라 했던 정도이니. 손님이 아니라면 이 가게 셰프님과는 가까운 분이겠구나 싶다.


그나저나 ‘준석’. 셰프님 이름이었다. 다행히 오늘은 일 찌감치 나서서 여유 있게 운동을 마무리했다. 다른 때와 달리 힘을 내어 타진 않았다. 페달링 회전수 위주로 타고 오는 길이라 허기가 질 정도는 아니었다. 들어오기 전 탄 천에서 잠시 쉬고 들어왔으니 호흡도 운동 전 상태로 돌아 간 상태. 오늘도 카레라이스 주시려나 싶었는데 그날의 냄 새와 또 다르다. 내게 오셔서 잠깐 미소를 보이곤, 주방 안 의 건너편 아래쪽으로 구부려 앉았다 일어나시더니 양손으 로 든 큼지막한 뭔가를 보여 주신다. 밀가루 반죽 같다. 오 늘의 요리라며 또 한 번 웃으신다. 이분 참 도통 모르겠다. 오늘도 말씀도 없이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잠시 후, 프라이팬을 달구고 있다가 갑자기 뭔가를 부어 넣고는 좀 기다려야 한다며 내게 묻는다.


— 자, 잠시 3분 정도 기다려야 하니까 하나만 여쭐게요. 장이 우유나 크림에 민감한 편은 아니시죠?


— 아, 네. 요즘도 바삐 출근해야 할 땐 우유에 콘플레이 크가 아침인걸요.


— 흠. 그건 고단백 음식은 아닙니다만. 여하튼 알겠습니 다.


— 저 자전거는 매우 비싸 보이는데 현우가 원래 비싼 자전거만 판매하나 봐요?


— 일반적인 동네 나들이용 자전거와는 다른 운동 목적 이다 보니 비싼 편이에요. 구매하기에 살짝 부담은 되죠.


— 현우 말로는 별로 돈 안 된다며 죽는소리하던데 다 엄살이었군요. 자 거의 다 되어 갑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처음 입문할 때야 나도 몰랐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각 종 스포츠 라이딩용 자전거 브랜드와 등급 그리고 장비를 접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내 업도 이런 제품과 서비스 를 알리는 일이다 보니 시장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이탈리아 와 프랑스의 고급 브랜드가 대표적이고 그 장비 공급을 위 해 국내 몇 개의 유통사가 자리 잡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실제 시즌과 비시즌 사이에도 가격 차이가 발생하고, 공급 물량 대비 소화하는 문화의 규모가 다르면 꽤 변화무쌍한 시장이다. 한데 이걸 다 설명하려니 쉽지 않을 거 같아 긴 설명은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도 음식 이야기나 좀 물어봐 야겠다.


— 요리 공부를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지난번 카레라이스 도 제가 여행 갔을 때나 한국에서 먹었던 인도 카레, 일본 카레라이스와는 조금 다른 맛이었고요.


— 아, 원래 요리사 할 생각이 아니었어요. 사회생활은 사실 도서관에 사서로 시작했고요. 한데 그게 어찌나 무료 하던지. 책과 안내서 등을 정리하는 일에서 시작했지요. 자 연스럽게 접하던 생활 분야의 요리책에 관심이 가기 시작 하면서 전업을 고민했어요.


— 아, 그런 사연이.... 요리는 책으로....


— 에이, 설마요. 직업으로 요리사를 하려면 제대로 공부 해야겠다 싶어, 우선 학원을 좀 다니다가 학원의 소개로 이탈리아로 넘어갔다가, 거기서 2 년 공부하고, 취업해서 꽤 오래 고생 좀 했고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가 생겨서 다 시 일본으로 갔어요. 일본에서 2년 정도 일하다 이리로 왔 고요.


— 어머, 대단하신 분이군요.


— 자, 오늘의 요리를 대령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아니, 이건 뭐지. 처음 본 음식이다. 직장에서도 실무 베 테랑으로 불리는 경력이 10 년이 넘어갔다. 무언가 이해시 키는 것이 업이고, 이 업을 해 오면서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 보고, 먹어 볼 수 있는 것도 나름대로 다 먹어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처음 봤다. 크림수프 안에 수제비도 아니 고 떡볶이도 아닌 것이. 또 특이하다.


— 오늘은 정통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로 많이들 해 먹는 음식입니다. 이름은 뇨키라고 합니다. 한국에선 다들 파스 타다 스파게티다 피자다 하며 이탈리아 정통이라 알려져 있어 사실 이 가정식은 잘 모르실 겁니다. #뇨키는 우리나 라로 치면 수제비 같은 평상시 음식이라 보심 되고요.


뇨키.

그래, 이름은 들어 본 듯한 음식인 듯. 멸치와 다 시마로 우려낸 맑은 국물에 고춧가루 뿌리고 밀가루 반죽 을 듬성듬성 찢어 끓는 국물에 넣어 먹던 수제비와 모양새 가 판이하게 다르지만. 같은 맛이려나 싶기도 하네. 이탈리 아 정통 식당도 아닌 이런 가정식 집에서 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디 첫맛은....


— 어머, 이건 또 처음이네요.


식감도 밀가루가 아니다. 이건 도대체. 음. 그래. 감자 맛이다. 으깬 감자를 이렇게 식감 좋게 데쳐 낸 거구나. 한 데 물기 하나 없는 마른 감자라기보단 쫀득함이 있어 마치 면의 매끈함과 쌀의 끈적임이 함께 있는 식감. 입에 넣고 오물거리기에도 무리 없다가, 전해 오는 우유의 부드러움 까지. 아 그래서 우유가 괜찮은지 물어보신 거구나. 한데 이런 느낌 말고 다른 느낌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첫 향. 이 건 단순한 치즈 향과는 좀 다른데.


— 맛있어요. 특이한 향도 느껴지고.


— 네.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운 걸 냉동으로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향료로 주로 활용합니다. 지난번에 드신 카레라이스의 카레 향신료와는 또 전혀 다른 느낌을 받으실 겁니 다.


— 네. 맞아요. 뭘 넣으신 건가요?


— 미안합니다. 영업 비밀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 아. 네. 맛있어요.


오랜만에 특색 있는 음식이다. 이 향과 식감을 즐기며 먹고 싶다. 일부러 오늘은 천천히 먹었다. 삼십여 분간 크 림수프까지 충분히 즐겼다. 스푼을 내려놓는데 특이하게 느껴진 것 한 가지 더. 보통 접해 온 이탈리아 음식 중 재 료로 많이 쓰인다는 마늘은 없었다. 아무튼 가정식으로 먹 는 음식으로 좀 더 따듯한 마음을 보상받은 느낌이다. 서 서히 채비하려 가격을 묻자, 좀 더 앉았다 가라며 차 한 잔을 주신다. 특이한 향의, 부드러운 우유 맛과 감자의 구 수함 이후 차 한 잔이라. 이건 또 색다른 차다.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다.


— 이건 무슨 차인가요?


— 네. 몸의 온도를 낮춰 주어 운동 후에 먹기 좋은 차입 니다. 작두콩 차라고 하고요. 저도 한국 들어와서 알게 되 었는데 많이들 즐기십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 많은 분들이 경험하시는 알레르기성 환우를 조금 낮춰 준다고 하고요. 웬만한 분들 대부분 거부하지 않는 차예요. 천천히 즐겨 보세요.


— 지난번 카레도 정말 맛있었어요. 카레 소스도 꽤 부드 러웠고요. 자극적이지 않아서 매우 좋았어요.


— 고맙습니다. 지난번 카레라이스의 숨은 맛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토마토입니다. 토마토는 카레의 맛을 중화시켜 부드럽게 만들어 주면서도 수분이 많기 때문에 운동 후 드 시기에 좋았을 겁니다.


— 아 그런 비법이 있었군요. 오늘 음식은 얼마인가요?


셰프가 식탁 위 내가 앉은 방향으로 뭔가를 내어놓는다. 뭔가 현금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 하나가 트인 노란 박 스를 내민다. 현금만 받나 보다.


— 음. 자 여기요. 첫 손님이시니 원하는 대로 내시면 됩 니다. 작은 금액을 넣으셔도 되고요. 아 그리고 아직 다음


손님 오시기에 시간이 좀 있으니 저도 비법을 설명해 주실 래요?


— 네? 제가요? 어떤?


— 탄천 바로 앞이다 보니 운동하는 분들, 산책하는 분들 많이들 오세요. 오시면 항상 자전거를 앞에 세우도록 안내 해 드리는데, 너무 애지중지하셔서 막무가내로 가게 안으 로 들고 들어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모르는 소리 말라며 매우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운동하시는 분들이 함께 오시면, 두세 분이 함께 오시는데요. 심하니 시마노니 하시며 계속해서 말씀을 나 누시는데 도통 용어를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요. 오늘은 자전거 설명을 좀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아.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네요. 전 무슨 요리 이야 기인 줄 알고 겁부터 먹었네요. 왜 소중하게 다루냐면 그 만큼 많은 비용이 들어간 것 때문이기도 하고요. 부품 하 나하나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성능을 내기 때문에, 누가 만지는 것조차 싫어하기 때문일 거예요. 자전거 성능별로 등급도 꽤 자세히 나누게 되는데 설명해 드려도 될까요?


— 네. 저처럼 자전거 모르는 사람이 귀동냥으로 아는 수준 정도라도 좋겠습니다.


— 네. #로드 자전거 등급에 대해 설명해 드릴게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가 장황하게 설명한 시간이 30 분이 넘었다는 사실을. 손목의 심박 밴드에 보인 시간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 이거 참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네요. 운동하는 데 있어서 이젠 공부하면서 하지 않으면 못하겠는 수준인걸요?


— 하루아침에 알게 된 것은 아니고요. 제 업이 모르는 분야의 개념이나 재원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을 좀 하다 보 니. 그간 운동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된 것들이에요.


— 그럼 자전거 핸들에 쓰여 있는 브랜드를 보니 VIP님 은 울테그라라는 등급을 타시는 거군요.


— 네. 어떻게 아셨어요?

— 창문 너머로 바로 보여서 봤습니다. 음. 그렇군요. 지금 입고 계신 운동복도 그런 원리로 만든 것인가요?


역시 준석 셰프. 디테일한 요리 솜씨에 걸맞은 눈썰미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마케팅을 하는 나로서도 정말 놀랄 수밖에 없는 수준인 듯하다.


— 아, 네. 자전거 전용 복장 맞고요. 일명 속된 표현으 로 쫄쫄이로 부르는데요. 좀 민망하지만 몸매가 다 드러나 게 달라붙는 것이 특징인데 이것 역시 바람의 영향을 최소 화하기 위한 거예요. 육상선수도 단거리 시합을 할 때 보 면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옷을 입고 뛰잖아요. 같은 이유라 보심 돼요. 상의와 하의가 나뉘어져 있는데 이렇게 하의의 경우는 어깨에 걸고, 팔을 끼워 입는 형태이고 빕 숏이라 불러요. 무슨 레슬링복 같죠? 잘 늘어나는 재질이 라 몸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 입기는 수월해요.


— 아. 자전거는 정말 바람의 영향이 큰가 보군요.


— 일명 ‘똥풍’, ‘순풍’이라고 부르는데요. 자전거를 타는 방향으로 불어서 등을 밀어 줄 때에는 순풍 혹은 등풍이라 고 하고, 반대 방향에서 불어와 앞으로 나아가기를 버겁게 만드는 걸 똥풍이라고 불러요. 그만큼 짜증 난다는 뜻의 표현이기도 하고요.


— 아. 이거 로드 자전거는 정말 공기역학 운동이군요!


— 그럼 저도 하나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전 요리하 는 분들 모습 중에 파, 무, 양파 등을 썰 때 빠르게 후다다 다닥 자르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어요. 얼마나 연습하면 그렇게 되나요? 연습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귀동냥이라 했지만 사실 더 많은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간 운동을 하면서 다른 친구들과도 많은 이야길 나눴지 만 주로 동일 수준의 경험과 지식 수준이라 짧은 호흡의 대화뿐이었는데. 정말 색다르고 맛나는 요리를 즐기는 것 과 동시에 내가 이야기하고픈 만큼 긴 호흡으로 이야기하 고 나니 일주일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리고 힐링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이 셰프님 이상한 매력이 있다. 살짝 엷게 띤 미소로 계속 이야기를 들어 주며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 는 모습. 나를 더 말하게 만들고 더 흥미를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 잠시 웃으시곤, 사람마다 다른데 다음번에 설 명하겠다며, 점심 장사를 준비한다면서 양해를 구한다. 아 쉽지만 그럼. 내가 이야기하고, 혼자 즐겁게 힐링 후, 나홀 로 아쉬워하는 이런 생경함이란.


준석 셰프가 내민 종이 박스에 오늘 먹은 음식의 값을 현금으로 치렀다. 그리고 일어나 나오려는데 셰프님이 다시 날 불러 세운다. 한 가지 규칙을 정하자 했다. 점심 장 사는 11시부터이니 일찍 와서 이렇게 서로 대화하고 싶다 면 오늘처럼 메시지를 미리 남겨 주고, 가급적 한 시간 일 찍 오라는 것. 매주 주말 이렇게 내가 VIP로 대접받는 듯 한 공간과 시간이라면 오히려 내가 감사할 일. 단 한마디 로 대답했다. “네!”




#셰프 로그: 뇨키


내어놓은 이유:


뇨키. 정식 이름은 뇨키 디 파타테. 감자를 으깨어 만드 는 뇨키라는 뜻이다. 특히 이탈리아 남부 로마 지방에서 즐겨 해 먹는 음식. 운동을 하고 온 상태이므로 어느 정도 탄수화물 보충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식감이 부드러운 것으로 쉬이 넘기기 좋은 음식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우유와 상큼한 야채 그리고 버터나 치즈가 어울리는 음식. 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음식으로 해 보자.


내어놓는 생각:


지난번처럼 근 손실이 일어날 정도의 상태로 보이진 않 으니 적당한 힘을 보충하는 음식이 좋겠다. 식사를 하면서 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빨리 식지 않을 음식이 좋겠 다.


이 요리의 특징:


보기와 달리 밀가루가 아닌 감자의 식감에 살짝 궁금해 할 것이다. 이어서 넘어오는 향긋한 밀크 수프에, 물기를 잃지 않은 감자 반죽이라 금세 입 안에서 녹는 식감, 마무 리로 향긋한 트러플에 온화한 느낌을 받는다.


준비하기:


감자 3개, 소금·후추 조금, 계란, 중력분(감자와 중력분 의 비율은 7:3). 즉 중력분은 거들 뿐. 이외에 버터, 올리브 유, 우유, 휘핑크림 약간, 파르메산 치즈, 마늘을 준비한다.


요리 시작:


감자를 주 요리로 한다. 감자의 크기는 가급적 비슷한 것을 사용하는 게 좋다. 같은 시간에 비슷한 정도로 익히 는 데 사이즈가 같은 게 좋기 때문이다. 당연히 재료 손질 이 우선인데 특히 감자는 그냥 씻은 채로 쪄야 한다. 다 찔 때까지 껍질을 벗기지 않는다. 다 익고 나서 수분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으깨어 식감을 살려 반죽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다 찌고 나서 껍질을 제거해야 한 다.


이후 감자를 으깬다. 감자를 으깨는 데에는 매셔를 활용 하면 된다. 주로 손목의 힘에 의존해야 하는 라이서도 있 지만 매우 고르게 으깨어 식감을 부드럽게 하고 싶다면 매 셔를 사용하면 편하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는 매셔를 활 용한다.


이제 반죽 치대기. 으깬 감자 위에 계란을 풀고, 소금, 후추를 조금씩만 뿌려 준 다음, 버무린다. 다 버무린 상태 에서 밀가루를 넣고 반죽을 시작. 너무 치대면 수분 증발 량이 많아질 수 있으니 가급적 적당히 찢어 내기 좋은 점 성이 될 때까지만 치댄다. 반죽이 모두 준비되었으면 파르 메산 치즈를 살짝 뿌려 주고 밀가루 반죽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 주고 마무리.


수분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숙성할 필요 없이 길게 늘 어뜨린다. 마치 엿 혹은 가래떡처럼. 가래떡보다는 얇은 사 이즈로. 그리고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사이즈로 잘라 낸다. 모양을 내기 위해 이탈리아 뇨키 보드를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이 역시 반죽의 수분을 빼앗는 요인 중 하나로 피하는 편이다.


이제 뇨키를 끓는 물에 데친다. 살짝 익을 정도면 된다.


프라이팬에 크림과 우유를 살짝 넣고 데친다. 여기에 마 늘을 조금 썰어 넣고 마지막 뇨키 반죽을 넣고 중불에 데 친다. 마무리로 파르메산 치즈 가루를 좀 뿌려 주고, 준비 해 둔 비장의 카드. 냉동해 둔 트러플을 갈아서 가루를 뿌 려 주어 그윽한 향을 가미한다. 트러플은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 비싼 재료에 해당하니 몇 꼬집만 사용한다.




#라이딩 일기: 로드 자전거 등급


매우 자세히 설명하면 하루 꼬박 설명해도 부족할 내용. 1719 년에 시작된 자전거의 역사, 그중에서도 로드 자전거 의 모형을 갖추기 시작한 건 100년에 가까운 역사이니 얼 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내게 고품격 맛의 진실을 알려 주는 좋은 분을 만났으니 30분용으로 설명해 드려야겠다. 자전거. 그중에서도 로드 자전거. 로드 자전거 의 선택을 위해 결정해야 하는 큰 기준이라면 ‘균형’이다. 자전거를 만드는 사람 입장을 잠시 생각해 보면, 최근 경 향으로 크게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해서 만드는데 무게, 강 성, 아름다움이 그것.


무게는 말 그대로 자전거의 무게로 자전거 속도에 큰 영 향을 끼치는 요인 1순위다. 무거울수록 당연히 앞으로 나 아가는 자전거는 느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최근까지 경 향은 ‘최대한 가볍게 가볍게’다. 로드의 구동계 등급이 올 라가고 프레임의 가격이 올라갈수록 더 가벼워지는 경향으로 보면 된다.


강성은 안정성과 직결된 프레임의 탄성과 강한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안전하게 타려면 당연히 강성이 좋은 것 이 낫겠다. 가벼우면서 강성이 좋기 위해 많은 소재 개발 이 이루어졌고, 알루미늄·철에서 출발해서 최근엔 섬유 재 질을 고압축하여 만들어 낸 카본이라는 소재까지 발달하여 보통 풀 카본이라 함은 전체 프레임과 주요 구성품이 카본 으로 이루어진 자전거를 의미한다. 어느 정도 높은 구동계 등급을 가진 로드 자전거라면 대부분 풀 카본이라 보면 된 다.


아름다움. 자전거를 타면서 일상적인 생활이 아니라 운 동을 겸하는 스포츠 라이딩의 재미를 더하는 것으로 아름 다움이 있다. 쉽게 말하면 못생긴 자전거보다는 예쁜 자전 거가 더 좋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아름다움을 보고 느 끼는 건 개인의 취향마다 다를 텐데, 프레임이 직선형이거 나, 휠이 카본형이거나, 핸들 바가 에어로 타입이라거나 하 는 모양새 하나하나가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된다. 물론 아 름다울수록 구동계도 높고, 가격은 더 높은 편이다.


이 세 가지가 적절한 타협을 이루는 것을 구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전거를 타는 환경이나 용도에 따라서 이 세 가지 요소의 밸런스가 달라진다고 보면 되겠다. 가령 내가 타고 있는 로드 자전거는 업힐과 평지를 모두 달리기 좋은 올라운드형으로, 가벼운 풀 카본을 사용하면서 강성 은 산악용보다 좀 낮더라도 에어로 타입으로 예쁘게 빠져 서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자전거라 보면 된다.


위 세 가지 요소의 ‘균형’을 이야기하며 공통적으로 나오 는 단어가 구동계인데, 사실 보통 자전거의 등급을 구분하 는 구동계 등급을 뜻하는 것으로, 자전거가 성능이 좋을수 록 구동계가 높은 등급을 갖게 된다. 즉, 성능에 따라, 가 격에 따라, 본인의 경험과 능력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구 매하게 되는데 낮은 등급에서 높은 등급으로 올라갈수록 성능이 좋은 부품의 구동계를 사용하고, 이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게 된다. 아마 이 가게에 오시는 분들 중 많은 자덕 분들이 등급 이야길 많이 하셨을 게다. 사실 등급이란 자 전거의 핵심을 이루는 것 중 프레임과 핸들을 제외한 구동 계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게 보편적이다.


보편적으로 유통되는 구동계의 세계적인 브랜드는 크게 세 가지. 일본 회사 시마노, 미국 회사 스램, 이탈리아의 캄파놀로인데 우리나라에선 가성비와 유통 역사를 고려했 을 때 시마노 계열이 가장 많이 사용되어 왔고, 최근엔 스 램도 많이 다루고 있는 편이다. 시마노 계열의 로드 자전 거 구동계만 놓고 설명하더라도 초보자용에서 프로용, 저 렴한 가격에서 고가 순으로 나열해 보면 클라리스, 소라, 티아그라, 105, 울테그라, 듀라에이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듀라에이스에 전자식으로 기어를 변속하는 듀라에이스 Di2에 이른다. 클라리스, 소라의 경우 50만 원 수준의 낮 은 가격이지만, 듀라에이스급까지 올라가면 기백만 원의 구동계 가격을 형성하기 때문에 보통 자전거 타는 사람들 의 용어로는 ‘기함급’이라고 부른다. 구동계의 가격 + 프레 임의 가격 + 안장과 핸들 바의 가격 + 각종 장신구 가격을 모두 합쳐야 로드 자전거 가격이 나온다고 보면 된다. 실 로 수십만 원에서 천만 원이 넘는 가격을 형성하니 어디에 가더라도 귀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스포츠 라이딩용 로드 자전거에 있어서 중 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무게인데, 무게를 최 소화하면서 속도를 내기 위해 중요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바로 에어로 타입. 즉, 공기역학 구조를 감안한 자전거다. 쉽게 말하면 바람을 맞으며 가더라도 그 영향을 최소화하 는 모양으로 만들어진 자전거를 뜻한다. 자동차의 외관을 만들 때에도 각종 공기역학을 고려해서 바람을 잘 극복하 도록 디자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10 년대서부터 다루 어진 일반 자전거에서 스포츠용으로 용도가 다양하게 나눠 지면서 전문가용 자전거를 형성한 것이고, 제조사들도 공 기역학 디자인 설계를 위해 선험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한다. 가령 스페셜라이즈드라는 브랜드의 회사가 맥 라랜이라는 스포츠카 제조 회사와 제휴하여 공기역학 모양의 자전거 프레임 디자인을 설계, 매번 새로운 모델을 개 발할 때면 자체 테스트 공간에 윈드터널이라는 밀폐 공간 을 만들어 테스트한다. 테스트를 위한 밀폐된 실내 공간에 서 자전거를 세워 두고 수십 개의 날개가 바람을 일으키는 데, 이런 공간과 장비를 활용해 바람을 얼마나 잘 극복하 는지 수치화하여 설계한다고 한다.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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