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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Mar 09. 2024

봉크

자전거 타는 여자, 요리하는 남자


 오랜만의 야근이 이어지는 회사의 새 프로젝트는, 주말 중 하루의 일부만 운동을 허락할 정도로 다급하게 돌아가 고 있다. 주말 하루 출근해서 다음 주 프로젝트의 진행 계 획을 다듬어야 할 정도. 온갖 에너지를 다 쏟아부은 토요 일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다 겨우 일어난다.


그 와중에 이제 허벅지 근육의 결을 바꿀 정도로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운동. 오늘도 라이딩으로 몸 상태를 개 운하게 만들기 위해 나섰다. 두 시간여를 달렸을까. 이제 고작 누적 50km를 넘어섰을 시점. 그러나 지금은 한여름. 매미 소리가 탄천의 아스팔트로부터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를 비웃는 듯 크게 울렸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라이딩 의 시원한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바람 한 점 없 는 뙤약볕 아래 페달링이 힘들다. 하필 검은색의 빕과 저 지로 나서는 바람에 열기는 온몸으로 축적된다. 대퇴 근육과 햄스트링의 2시간 소화 가능한 할당량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 글리코겐 활성은 이미 한계점. 어딘가 중간 휴식이 필요하다. 다행히 탄천변에 익숙한 간판이 보인다. 그래, ‘가자 gO!’로 가자.


— 이 시간에도 탔어?

얼마나 어떻게 어디를 타고 왔는지보다 라이딩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 올인하는 질문부터 날아든다. — 미안. 대꾸할 힘도 없어.


 — 여~ 이제 자덕 다 되었네. 물 좀 마셔라.


‘철렁.’


정수기 레버에 자전거 물통을 격하게 들이밀어 시원한 냉수를 받고, 반쯤 채우기도 전에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털썩 앉아 버렸다.


— 4년이나 되었으면 이제 좀 약삭빠르게 타야 하는 거 아냐? 새벽에 타고 빨리 끝내. 너 그러다 정말 큰일 나.


— 알아. 배고파. 두 시간 반 내내 쉼 없이 탔어. 먹을 거 없어?


— 이 가게 이름 알지?


의아하지만 반응은 해 주자는 차원으로 짧게.


— 가자 고.


— 그래, 가. 여긴 음식점이 아냐. 중간 라이딩 중 먹을 만한 미네랄워터, 리커버리 워터밖에 없다.


팔자 눈썹으로 바뀌며 널브러진 두 다리에 팔마저 늘어 뜨린 내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 뭔가 떠올랐는지,


— 아! 성희야. 여기 두 블록 더 가면 말이야. 탄천변에 행운교회 알지? 그 교회 골목 들어서자마자 작은 음식점 하나 있어. 가 봐라. 거기 사장이랑 내가 잘 아는 사이야. 기가 막힌 맛집. 내 미리 전화해 둘게.


— 라이딩하다 먹으면 뭔들 맛이 없어. 뭐든 입에 털어 넣으면 맛있는 거지. 무슨 초코파이도 하나 없는 곳을 라이딩 숍이라고 운영해?


까칠해진 입 모양 그대로, 돌아서며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가는 점은 미안하지만. 타박 한마디는 제대로 털고 가자.


— 기백만 원짜리 자전거를 한 대 팔아 줬으면 서비스는 좀 제대로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다시 덤벼드는 열기에 목표는 집 이 아니라 ‘두 블록 넘어 음식점까지만이라도 잘 가 보자.’ 로 변경. 아, 성급히 나섰다가 황망하게 저질 체력 인증하 는구나. 먹으러 가자. 두 블록 페달링도 힘겨울 지경이다.


— 예예, 고객님 미안합니다. 다음번엔 방문 전에 미리 말씀해 주세요~!


탄천변 중에서도 좋아하는 부근이다. 봄에는 아름다운 꽃길. 여름엔 그나마 푸른 녹음이 어우러진 그 코너 길에 들어서니 행운교회 십자가가 보인다. 조금 마음이 아늑해 지는 헤어핀 로드. 항상 이곳을 지날 때면 괜스레 숙연. 라 이딩 중에 자주 지나쳤던 곳이라서인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기시감. 마치 어제도 지나 본 느낌이랄까. 서서히 페 달링을 멈추고,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생각도 못 한 연보라 파스텔 톤 간판에 압도적 반전의 미시감.


— 아니 코너 돌면 바로 다른 세상이었네. 바로 1.5미터 아래 탄천에선 안 보이는 이런 모습이라니. 게다가 가게 이름은 왜 이리 친절히 서술형인 거야.‘맛있는 밥 한 끼’?


별 기대 없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온화한 노란 등이 인상적이다.


목조 위주의 내부, 노란 등과 어울리는 1인석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테이블은 겨우 하나뿐이고. 주방과 동선이 하나인 복도와 1인석들. 주방과 턱 없는 이 자리들이 처음 온 사람들에겐 꽤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느 일본 거리 식당처럼 복도는 좁고. 회색 콘크리트의 복도 벽엔 비어 있는 우드 벽걸이만 휑뎅그렁. 주방인지 식탁인 지 알 수 없이 훤히 개방된 이곳이 식당이 맞나 싶었다. 그 와중에 내가 앉을 자리인 것을 안내하는 양 요리사 바 로 앞 식탁에 물이 한 잔 놓인다.


— 안녕하세요. 여기로 앉으세요. 오늘 땀... 아니 운동하 고 오시는 길이시죠?


단골에겐 쉬이 허락되는 자리이겠지만, 살짝 부담스러운 그곳으로 바로 앉으라니.


— 안녕하세요. 네, 땀 나는 운동했어요.


하나뿐인 식탁을 혼자서 독차지하기엔 욕심 있다 여길까 싶어 군말 없이 안내하는 대로 앉았다. 탁 트인 주방. 실로 식탁은 널찍한데 주방 안의 요리사는 남색 조리복에 반차 이나 칼라, 더블 매듭 단추 모양. 한데 한여름에 웬 긴팔. 대답할 힘도 없이 스멀스멀 들어서는데,


— 자전거는 매장 앞에 두시면 됩니다.


문을 다 열어도 한두 명 지나면 꽉 들어찰 폭 좁은 복도 이다 보니 자전거 페달이 거추장스러워지겠다 싶다. 대답 도 않고 문밖으로 다시 거치했다.


— 걱정 마세요. 비싼 자전거니까 저도 자주 볼 거고 앉 으신 좌석에서 창밖으로 바로 보입니다.


— 배고파요.

— 네, 안 그래도 준비 중입니다.


— 네?


— 아. 현우에게 전화 받았어요. 자전거 타고 오셔서 펑 크 날 지경이시라고. 단백질 위주로 빠르게 해 줄 수 있는 음식 좀 준비하라던데, 맞나요?


— 아 네. 그새 전화를 했나 보군요(양심은 좀 있나 보 네). 한데 펑크요?


운동과는 좀 거리가 있는 분이구나. 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지만, 그 와중에....


— 훗. 펑크가 아니고 봉크라고 했을 거예요.

— 잠시 이거 한 잔 드시고요. 봉크요? 봉크랑 펑크랑 다른 거예요?


시원한 얼음물 한 잔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단숨 에 들이켜고 모자란 감에 각얼음 하나를 오른쪽 볼 안으로 밀어 넣었다.


— 아, 네. 저혈당 쇼크라고 들어 보셨어요? 힘쓰며 운동을 하고 나면 사용할 수 있는 글리... 그냥 쉽게 지구 력을 사용하는 운동을 오래 하고 나면 모든 열량을 다 쏟 아붓는 거예요. 그럼 혈당치가 낮아져서 벽에 부딪힌 듯한 쇼크가 오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걸 봉크라고 하는데... 에휴, 여하튼 그래요.


지금 내가 무슨 설명을 누구에게 왜 하고 있지. 나는 누 구 여긴 어디. 이 상태란 말이다. 말 많은 사람처럼 비틀어 진 첫인사가 될 듯하니 자세한 설명은 그만두자. 자칫 요 리사의 잃어버린 맛 음식이 나올까 싶다 하는데,


— 아 그렇군요. 자전거 타면서 힘을 많이 쓰셨다는 것이 고, 근육을 많이 사용하신 것이라는 말씀이군요.


— 네?


— 그럼 근력 회복에 좋은 단백질과 포도당 보충을 위해 단것이 필요하겠네요. 한데 자전거가 그렇게 격렬한 운동 이었나요?


— 아, 네. 정확히 그래요. 일반 동네나 탄천을 오가는 자전거 운동은 말 그대로 가벼운 운동이고요. 제가 하는 건 로드사이클로 하는 #스포츠 라이딩이라고 해요. 일반 자전거와 달리 조향 능력과 속도를 중시하면서 상당량의 지구력과 순발력을 요하죠.


오랜만이야, 이런 찰진 요약 능력. 뭐지, 이 사람? 길게 설명했는데 한 줄 요약하는 사람은 오랜만이네. 회사에서 도 그리 긴 문장 한 줄로 고쳐 오라 조언해 줘도 못 줄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여하튼 나 스스로도 기특하게 정 확한 개념은 전달했다.


— 그래서 시작했어요. 저희 ‘맛있는 밥 한 끼’의 특별한 카레라이스를 대령하겠습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 카레. 자취 생활 때부터 회 사원 내내 혼밥 때마다 자주 먹었던 카레동. 다디단 맛도 가끔이었는데. 그래,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라이딩 일기: 스포츠 라이딩


일반적인 러닝이나 하이킹과 같이 유산소 운동으로 자전 거를 활용한다. 하지만 자전거 역시 지형과 문화, 그리고 이용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달해 왔다. 자전거는 운동 목적에 따라, 즐기는 형태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 뉘고 있다. 대표적으로 로드, MTB, 하이브리드 등으로 나 뉜다.


현우 오빠에게 연락하자마자 각종 질문이 쏟아졌다. 내 목적에 부합하는 자전거가 무엇일지 골라내기 위한 작업이 었다. 난 내 목적은 하나로 설명했고 이곳 정자동 탄천에 서 바쁘게 벌어지는 여러 운동 행태 중에서도 자전거 위에 서, 정형화된 동작으로 지나가는 이들에게 관심이 갔다. 그 리고 그걸 설명하자마자 현우 오빠는 다양한 자전거 종류 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설명 하나하나가 처음 듣는 내용이고 장황했다. 현우 오빠는 설명을 이어 가며 중간중 간 내게 운동의 목적을 되묻는 형태로 점검하는 듯했다.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정리해 보자면,


우선 로드 바이크.27인치라는 큰 바퀴 사이즈와 큰 기 어비. 역삼각형의 자전거 프레임에 손잡이가 아래로 곡선 을 이루는 드롭 바가 특징. 다른 바이크 대비 가벼운 무게 와 기어비를 바탕으로, 타이어 장폭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다른 자전거에 비해 속도가 빠르고, 순발력과 수준급의 조향 능력이 필요하다. 높은 경사도도 오를 수 있는 12단 기어에, 손으로도 들리는 7kg의 카본 프레임이 추세인데 무게가 적게 나갈수록 비싸다. 선수급의 파워를 낸다면 70km/s의 속도까지 낼 수 있어 바람을 가르며 빠 르게 달릴 수 있다. 사실 내 눈에 들어온 자전거 운동이 이거였고, 여러 명이 팀팩이라는 그룹을 이루며 라이딩하 는 모습에 더 매료되었던 듯싶다.


이 로드 바이크도 또다시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세부적 으로 평지 위주의 시간 단축을 목표로 하는 타임 트라이얼, 벨로드롬이라는 트랙 전용으로 개발된 트랙 로드, 울퉁불 퉁한 오프로드를 달리는 사이클 크로스로드와 비포장도로 전용 로드로도 불리는 그래블로 나뉜다.


나의 경우 가벼운 장비를 기반으로 스피드를 즐기는 스 포츠 라이딩용으로 로드를 선택했고, 그간 이 로드 하나로 운동해 왔다. 스피드도 스피드이지만, 자세 하나하나 배워 나가며 성장한다는 느낌이 충만할 수 있는 운동이다. 무엇 보다 긴장하고 집중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라, 운동 중 잡 생각을 싹 잊을 수 있는 운동인 점이 나를 매료시켰다. 하 나 배우면 머지않은 시간에 효과가 보여 성장한다는 느낌 이 좋다.


이 외에 산으로 들어가기 위한 자전거로 불리는 MTB(Mountain Bike)는 타이어 장폭이 굵고 크다 보니 표 면장력이 좋고 흔들림이 없다. 스피드보다 장거리 혹은 변 화가 많은 도로 포장 상태를 고려한 바이크로 좌우로 일자 를 이루는 핸들 바 형태. 비포장, 오르막, 내리막을 즐기며, 앞 혹은 뒤에 서스펜션 장치가 있어 진동과 충격을 완화해 준다. 케이블 TV 방송에서 보면 진흙탕을 지나며 마구 페 달을 밟는 크로스컨트리 경기와 같은 장면을 많이 연출하 는데 이게 MTB 다. 세부적으로 비포장의 오르막이나 내리 막을 달리는 크로스컨트리, 앞뒤 모두에 서스펜션이 있어 초보적인 다운힐이나 크로스컨트리 모두 가능한 올마운틴, 안장이 낮고 뒤로 처져 내리막 전용의 다운힐, 계단이나 난간을 거칠게 주행하는 프리라이드로 나뉜다. 하지만 사 고의 가능성도 높아 운동 효과는 꽤 좋지만 내게는 잘 맞 지 않는다 판단. 나중에, 좀 더 나이가 차면 여행 삼아 전 국을 돌기 위해 MTB로 전향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마지막으로 하이브리드. 로드 바이크의 속도, MTB 의 충 격 완화 등의 장점 중 일부를 각각 차용해 만들어, 우리 주변 일상생활용으로 자주 보는 자전거다. 일자형 핸들과 좁은 바퀴 장폭으로 가볍게 달릴 수 있어 스피드나 장거리 보다는 짧은 거리의 운동이나 생활용으로 자주 활용되다 보니 진지하게 고려했었다. 정말 생활 속에서 가볍게 땀 흘리는 정도로만 운동을 할까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선택지 중 하나로 나를 흔들었던 자전거다.


결정적으로 ‘가자 gO!’ 숍에서 나는 ‘스피드, 코어 집중, 운동 효과’로 핵심 선택 기준을 잡았고 그래서 로드 자전 거를 선택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석 달여 시간이 지났을 때 현우 오빠의 이실직고—선택의 상담 시간 1시간 중 30 여 분을 현우 오빠의 주 판매 바이크인 ‘로드 바이크’ 위주 의 설명을 늘어놓음—에 의해 살짝 당한 기분이었지만, 운 동 효과가 좋은 편이어서 눈감아 주기로 했다.




땀 냄새 나는 손님


쉽게 시작한 일이 아니기에 자리 잡기까지 꽤 오랜 시간 이 걸렸다. 물론 그 무엇보다 수진 이모님의 도움이 컸다.


— 이렇게 장사가 안돼서 입에 풀칠은 하겠니?

— 아, 오셨어요. 흐흐.

— 실없이 웃기는. 네 엄마랑 웃는 것도 똑같구나. 아....


잠시 머뭇하시는 듯한 이모님의 어감. 이해한다. 어머님 돌아가셨을 때에도 막 일본에서 취업해 일하던 중 잠시 들 어온 거였고. 살갑게 어머니 옆에서 자리를 지키는 아들 역할은 전혀 못 했었다. 급작스러운 병환에 모든 이가 이 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악화된 어머님 상태를, 잠시 귀국 후 공항에서 병원으로 직행하며 듣던 설명으로나 알았으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 겨우 다시 잡은 일 방해된다고 모두에게 연락하지 말라 하셨다는 무정함. 수진 이모는 어 머니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단다. 병원에서 내내 고통 에 겨워 계시다, 아들이 귀국했다는 소식에 놀랍게도 일어 나 앉아 세안을 하고 화장을 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에 놀라 셨다고. 잠시 귀국한 조카 녀석의 몰골이 정상인처럼 보이 지 않아 한 번 더 놀라셨다 했다. 명색이 요리사라는 녀석 이 거지꼴을 하고 나타났지만,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반 가이 맞아 주셨다가, 사흘 만에 병환을 이기지 못하고 가 셨다. 나는 겨우 임종이나마 지킨 불효자로 남았다.


— 이젠 엄마 걱정은 그만하고, 장가가서 행복하게 살아.


유언으로 남기신 이 마지막 말씀을 아직도 지키지 못해 죄송할 뿐.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도 황망히 보내 드린 어 머니 생각과 당시 겪고 있던 갈등 때문에 한동안은 멍하니 살았었다. 내 얼굴에 들이닥친 매출 전표들과 함께, 그 흔 하지 않은 일본어 욕지거리가 날아오기 전까진 무엇이 나 를 아프게 했는지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니까.


— 장사가 좀 되어야 장가가고 행복하게 살지.


— 네, 그래야죠. 하.


— 안 되겠다. 내 교회 집사들한테 소문 좀 내마. 사람들 오면 음식이나 맛있게 내놔. 맛있는 음식만 기억하고 다시 오게. 안 그래도 모두 양푼에 비벼 먹는 주말 비빔밥에 지 쳐 있다.


— 에이, 그러지 않으셔도....


— 아서라. 군소리 말고 하라는 대로 해.


쉴 새 없이 말씀하시곤 가게를 나서시는 이모님의 모습 에 어머니의 정이 훈훈하게 남았다.


음식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른 입맛을 충족해야 함과 동 시에, 사람의 기분을 맞출 수 있어야 하고, 시기적절한 재 료의 맛 그대로를 살려야 하며, 심지어 동행자와 이야기하 며 먹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운을 북돋울 수 있어야 하 기 때문에 그저 음식이 맛만 좋다고 될 일은 아니다.


때를 맞추어 오가는 사이에 어떠한 인연이 닿아 문을 열 고 들어온 손님. 이 손님이 내 손과 정성의 운을 담아 다시 한번 찾아와 주는 것에 감사한 것. 오롯이 단골손님으 로 남아 주시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것이 일상일지 모른다 각오하고 시작한 내 장사. 이 때문에 규모의 장사보다는 정성을 담는 장사를 선택했다. 단골 고객의 요리를 소화하 는 시간 사이에 그들의 일상을 듣고자 하는 음식점. 소박 한 동네 음식점이지만 기억에 많이 남아 다시 발길을 만드 는 음식점. 그래서 가게 이름도 ‘맛있는 밥 한 끼’로, 소박 해 보이는 이름으로 지었다.


대신 손님들에게 자주 기억될 만한 관용어에서 가져왔고, 누구든 대화 중에 떠올릴 만한 이름으로. 오롯이 엄마가 해 주는 정성 어린 하얀 쌀밥을 기억해 주길 바라며.


청소를 마치고, 새벽에 다듬어 두었던 밑 재료를 만져 보며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데 여느 때와 다른 휴대폰 진동.


— 네, 맛있는 밥... 아... 여보세요?


— 전화 주문도 받냐? 카

— 버릇이 되었나 봐. 누가 문 열고 들어오는 줄 알았어.


— 그래. 가긴 간다. 곧 손님 한 분 도착할 거야. 근데 땀 냄새 나는 손님. 내 VIP. 오늘 같은 더운 날 아침부터 운동을 열심히 하셔서 상당히 힘드시단다. 밥 먹고 원기 충전하셔야 하니까 가급적 단백질 넉넉한 걸로 좀 준비해 서 드려라. 내 단골이시기도 하니 음식값은 내 앞으로 달 아 두고.


그간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없는 녀석이 웬일인가 싶기도 한데, 이 녀석의 쉼 없는 설명에도 불구, 중요 단어만 캐치 하듯이 골라내어 ‘땀 냄새 나는 손님’이란 표현 하나만 우 선 건져 냈다.


한데 첫 입맛을 모르는 분이니 가장 잘 이해되는 음식이 무엇일까 고민된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많이들 입맛에 남아 있고 부담 없 는 음식이 좋겠군. 이 삼복더위에 땀 흘려 운동을 했다? 그럼 당장 수분 보충과 함께 단백질 보충이 필요할 테고. 너무 맵거나 짠 음식은 가파른 체력 저하 상태에 독이 될 듯하니 피하기로 하자.


음. 빠르게 15분 내에 해 드릴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 을까. 우선 단백질 보충용 고기를 다듬어야겠고. 뭔가 수분 보충이 필요하니 신선한 수분에 상큼한 맛이 입 안에 남아 돌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해야겠다. 오늘같이 무더운 여름날 에 땀을 흘렸으니 당분도 좀 보충해 드리자면, 그래 카레라이스로 준비하자. 너무 뻔한 음식 같지만 대신 기억에 남게.


그래, #기억에 남을 만한 카레라이스를 만들어야겠다.


잠시 후 늘씬한 자전거와 몸매를 자랑하는 손님이 한 분 도착했고, 잠시 머뭇하시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자전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제스처—문을 열고 들이려다 말고— 에서 여느 자전거와는 좀 다른 품격(?)을 느꼈고, 매우 애 지중지하는 모습. 그 모습이 마치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을 법한 자전거라는 듯했다. 창가로 바로 보이니 걱정 마시라 안내하고 마침 테이블 손님 두 분 외엔 주방 식탁에 아무 도 없어 좋은 자리를 내어 드렸다.


펑크로 듣고 이해한 그대로 이야기했다가 ‘봉크’였다는 걸 깨달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남았다. 이제 이 손님과 의 이야기, 시렁에 걸어야겠다. 단골손님이 되어 주신다면 이 손님 코드네임은 봉크 여신이다. 자전거도 이 손님도 한눈에 모난 곳 없는 몸매를 자랑했고, 자전거의 색상이나 이분이 입고 있는 자전거 운동복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니 봉크 여신이라 명명하고 나름대로 장기 기억 저장 소에 기억하자.


이어, 재료를 선반에 올려 마무리 손질을 하면서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 자, 여기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주스 한 잔 드시게 하고 잠시 다듬어 둔 양파를 썰어 믹 서에 넣고 숨을 돌리는 순간 바로 질문이 날아든다.


— 원래 메뉴판에서 고르는 게 아닌가 봐요?


 — 아, 여기 보시는 메뉴가 주 메뉴 맞는데요. 오늘은 현우가 이미 주문을 했고 비용도 냈습니다.


— 아, 그래요? 이런. 왜 냈을까.

 — VIP 시라고 하던데요.


— 이런 대우 첨이네요. 현우 오빠와는 그렇게 오래 지냈 어도 이런 대접을 받아 보지 못했는데. 드디어, 아니 이제 야.


— 영광입니다. 현우 VIP 를 저도 모시게 되어서.


— 현우 오빠와 친하신가 봐요.


돼지고기를 듬성듬성, 깍둑깍둑 썰고 있는 사이 계속해 서 날아드는 질문에 웃으며, 이 녀석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니 한마디 짧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라고 내민다는 것이 그만....


— 아 네. 불알... 아, 아니 죽마고우입니다. 초·중·고, 대 학까지 같이 다녔죠.


— 네? 대학까지요? 음. 이상하네. 저도 같은 대학 나왔 는데.


— 아 저는 군대 갔을 때였을 거예요. 현우는 신의 아들 이라. 그리고 전 한참 뒤에나. 작은 사정이 생겨서 바로 취 업해야 했거든요. 헤헤.


여긴 내 가게, 내 사업장. 하지만 내 이야기가 길어지면 안 된다. 내가 만든 요리를 경험하러 오신 분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취향을 더 얻어 내야 하니 잠시 웃음으로 때우자.


— 그럼 제 선배이시기도 하네요.


—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잠시만요. 재료를 좀 손보고요.


같은 학교 후배이면서, 친구 현우의 VIP, 자전거를 타고 오신 걸 보니, 현우 가게에서. 이 모든 정황을 조합해 보면 현우의 여자 친구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 정성을 들여서 우선 요리에 집중하자.




#셰프 로그: 기억에 남을 만한 카레라이스



내어놓은 이유:


꽤 많은 수분이 소비될 정도로 힘든 운동을 한 상태이고, 입맛보다 무엇이든 음식을 빠르게 섭취해야만 하는 상태. 이런 상태에서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도록 하는 것도 좋지 만, 누구나 좋아하는 보통의 음식으로 준비해 주자. 하지만 기억에 남을 만하게.


내어놓는 생각:


식감도 좋으면서 목 넘김도 좋고, 운동을 한 상태이므로 단백질과 충분한 수분을 보충할 수 있고, 적정량의 당분과 탄수화물로 된 음식이어야 할 듯. 회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런 조건을 모두 감안해 보면 카레가 빠르고 적 합하리라.


이 요리의 특징:


‘물을 사용하지 않는 카레라이스.’ 물의 양에 카레의 깊이감 있는 맛이 많이 흔들릴 수 있어 적정선을 양파로 다 스리는 카레다.


준비하기:


돼지고기 50g, 양파 1개, 적토마토 1개, 감자 1/2개, 호박 1/4개, 당근 조금, 카레 분말 1봉지 30g, 파르메산 치즈 가루, 포도씨유 2큰술, 소금 1큰술, 후추 아주 조금.


당연히 재료 손질이 우선이다. 깍둑썰기로 감자·당근·호 박을 썰어 두고, 단기간 내에 체내 흡수를 요한다면 채썰 기로 변경한다(조금만 씹어도 되도록.).


돼지고기 등심을 썰어 두고, 소금을 조금 뿌려 둔다. 아 주 약간의 간만 들여 놓는다는 수준으로 흩뿌려 놓는다.


요리 시작:


토마토와 양파로 오늘의 물을 다스린다. 오늘의 핵심 맛 을 이끄는 재료다.


양파 두 개를 크게 썰어 갈아 둔다. 즙 상태여야 한다. 적토마토 두 개도 썰어 갈아 둔다. 즙 상태여야 한다. 이것만 모아도 수분량이 상당하다. 오늘 카레라이스 요


리는 물 대신 이것을 사용한다. 특히나, 피로 회복에 좋은 비타민이 풍부한 적토마토의 싱그러운 맛은 입 안이 말라 있는 사람에게 좋을 것이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썰어 둔 돼지고기를 데 친다. 어느 정도 익어 간다 싶을 때(바싹 익히면 돼지고기 는 식감이 단단해진다.), 갈아 두었던 양파와 적토마토 즙 을 넣는다. 이게 핵심이다. 약간 조려질 정도로 계속 데치 되, 돼지고기가 맛 좋게 익었다 정도까지만 저어 준다. 채 썰듯 썰지 않는다. 느끼지 못하는 얇은 식감으로 급하게 삼켜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운동을 하고 돌아와 허기진 상태로 기다리는 손님에겐 좋지 않은 방법이니 오 늘은 깍둑썰기를 하자.


고형 카레를 넣고—인도카레 가루나 강황을 이용해 직접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직접 다시 5분여를 약간 센 불 로 익힌다. 이때 불 곁에서 떠나지 말고, 곁에서 저어 주기 를 잘해야 한다. 두세 번에 나누어 카레를 넣어 주며 풀어 줘야 고형이 뭉치지 않고 카레의 깊은 향이 토마토 향과 조화를 이룬다. 서로 타협 없이 익숙하게. 넉넉하지 않은 시간일 때, 부드러운 일본식 카레를 별도로 만들고 싶다면 가급적 가루보다는 고형을 활용하고, 재료를 다 익히고 넣 기 전에 마지막으로 코코아 가루를 살짝 섞으면 매우 진한 색을 내며 감칠맛을 더할 수 있다.


쌀밥 한 주걱을 퍼서 접시에 놓고, 카레를 붓는다. 뜸을 잘 들인 상태의 위 밥층은 걷어 내고, 주걱으로 휘휘 두른 다음 살짝 식혀 둔다. 매우 뜨거운 김이 나는 상태에서 카 레를 올리면 카레와 토마토가 어우러진 향을 다소 잃어버 리기 쉽다. 살짝 식은 밥의 상태를 손등으로 확인하고, 접 시 밖으로 튀지 않을 정도의 끈적임과 함께 밀도가 느껴지 게 배려해서 둥글게 얹는다. 마지막으로 파르메산 치즈 가 루를 살짝 올려 녹여 준다.


수저가 닿으면서 들어간 자리에 파르메산 치즈가 자리 잡으면서 섞이고, 점점 녹아 달콤한 카레에 부드러운 식감 을 더한다.


봉크 여신의 평:


이런 부드러운 맛의 카레는 오랜만이네요.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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