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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Mar 02. 2024

#1 선택의 이유

자전거 타는 여자, 요리하는 남자

극렬한 반응 


회사원. 원래 희망했던 직업과는 달랐다. 그림을 그리는 것, 피아노 건반을 치는 것이 오히려 즐거웠다.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에, 그럴듯하게 있어 보이는 수준은 아니어도 실물에 가깝게 그려 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문헌 정보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한 것과 동시에, 돈을 벌어야만 하는 집안의 경제적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빠르게 사회생 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원으로 계획을 바꾸고 좀 더 현실적인 풍경을 그렸다. 그래도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PC와 인터넷으로 일을 하고 퇴근하는 화이트칼라 직 업이라는 것에서. 거기서 만족했다. 평범한 회사원 만족감. 


그래도 직업 전선에 뛰어들 땐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커리어 우먼을 꿈꿨다. 하지만 해가 가면 갈 수록 기성 라이프 스타일에 적응해 가기도 쉽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상상 속에 그리곤 했던 커리어 우먼이 지금 이라고 생각하면 제대로 착각한 것이겠다. 어쩌면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모두가 생각하는, 안정감 충만한 회사원. 그걸 대학 졸업하자마자 이루어 냈다는 것이 좋았던 시절 도 있었다. 시간에 쫓기고 매일 상사로부터 듣는 말투—들 을 땐 모르는데 뒤돌아서면 혼이 난 느낌의—는 식사 후 입 안에 남은 이물질 같은 여운을 남기곤 했다. 지각을 피 하려 평소보다 일찍 나선 이른 아침 시간에도 발걸음은 빨 랐다. 늦지 않게 도착해도 회사 자리에 앉아야만 가졌던 안도감. 커피 한잔의 여유를 배우는 데에도 수개월이 걸렸 던 긴장감으로 똘똘 뭉친 신입 시절을 지나, 이젠 면역력 이 어느 정도 쌓인 회사원 경력 8 년 되시겠다. 


이제 어느 정도 회사라는 조직의 생리를 알기 시작해서 일까? 시간에 쫓기는 게 일상이었던 시절을 지나, 이젠 다 행히 내 시간을 만들어 일을 할 줄 알게 되었다. 남들은 회의를 통해 일을 한다고도 하고, 사회 초년병 때엔 회의 를 따라가기도 바쁜 일상이었지만. 이젠 상사나 협력 회사 가 다음으로 어떤 일을 맡길지, 다음 회의까지 무엇을 준 비해야 하는지, 회의 도중에도 어느 정도는 미리 가늠한다. 어느 정도 이 회사에서 돌아가는 상황만 판단해 보고, 미 리 일을 진행해 두고, 때에 맞춰 부랴부랴 쓴 것처럼 보이 는 보고서를 들이미는 연기력도 생겼다. 갑처럼 느끼는 회 사와의 회의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손쉽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정도의 호소력도 가능해졌다. 다른 말로 쉽게 말하자 면, 쪽잠을 자지 않더라도 잠시 짬을 내어 내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여유는 생기게 된 터. 


이제 회사에서도 눈치 보이는 파티션을 경계로, 자연스 럽게 작업 전환을 해서 쇼핑도 하고, 보고 싶은 여행지 사 이트도 살펴보는 공력이 쌓인 것이다. 이것이 비록 얕은 술수로 취급될지라도. 


그렇게 해서 만든 내 시간은 온전히 나에게 도움이 되는, 나를 가꾸고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길 바랐다. 나를 가꾸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 일이 아닌 즐기는 시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현자 타임. 


쌓인 하얀 눈이 도시로 쓸려 온 황사와 바람에 맞물리는 시간을 지나 어느덧 초봄. 세찬 겨울바람이 잦아드니 여유 가 좀 더 생기려는지, 외부 미팅은 살짝 줄어들었다. 그리 고 좀 더 자리에 앉아 후배들에게 일감을 나누어 주고, 계 획을 세우는 위주로 일을 하던 다소 여유 있는 간절기 시즌. 


집중해서 인터넷을 서핑하다 우연히 발견한 대학 동창 현우 오빠의 SNS. 올라온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찌 보면 가냘퍼 보이지만, 곡선은 부드럽고, 앞뒤 균형 있게 분배된 모습이 좋았다. 그 모습 뒤로 보이는 곧은 도 로와 가로수는 선 굵은 조연으로 충분한 듯. 손과 발을 올 려 두면 편한 느낌이 들 것 같은 왠지 모를 안도감까지 들 었다. 대학 시절의 촌티 나는 남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 다. 사진을 잠시 확대해 보고, 꽤 오랜 경험을 가진 것처럼 매우 숙련된 모습의 현우 오빠가 달리 보였다. 


—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해?
 오랜만에 남긴 것이 짧은 인사도 아닌 문의 한 줄. 남기 


고 보니 실로 예의 없어 보였다. 다시 수정 버튼을 누르고. 


— 안녕 현우 오빠. 오랜만. 멋진데? 이런 건 어떻게 해 야 해? 나도 해 보고 시포요~. 


그러곤 다른 페이지를 보려는데, 웬일인지 뜬금없는 연 락에 극렬하게 빠른 반응. 오히려 첫 댓글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다니. 


— 오, 성희구나. 오랜만이네. 몇 년 만이지? 


첫 질문부터 시간 차 추적? 대학 졸업 후 꽤 지난 시점이니 그렇기도 하겠지. 그래도 학창 시절엔 나름 우리 과 에선 내 긴 머리칼이 좋다는 둥, 파일 안에 구겨 넣은 전 공 서적을 들고 있는 내가 좋다는 둥 다양한 이유를 들며 캔 커피 건네는 남자가 많았다. 몇 년 만에 대한 계산. 나 에게 기회를 넘기는 이 무심함은 SNS의 단문 소통 방법 의 특성이려니 하며 존심은 버리고 일갈. 


— 8년. 오빠 밥 뺏어 먹으며 살던 그 시절 이후 벌써 8 년. 


이라고 썼다가, 혼자만의 기억이겠다 싶어, 오해할까 봐 다시 백스페이스키를 눌러 취소. 


— 8년이나 지났지. 너무 오랜만이지? 근데 이건 어떻게 해야 해? 나도 해 보고 싶다. 


자 이제 지나온 시절에 대해선 가볍게 계산된 인사를 남 겼고. 이제 내가 한 질문에 답을 줘야지? 


하지만 현우 오빠는 오후에 남긴 질문에 그날 퇴근할 때 까지 응답이 없었다. 


다음 날. 또 다른 나만의 시간. 잠시 결제를 미뤄 카트에 담아 두었던, 봄에 어울릴 만한 연녹색 스커트를 결제하고, 다시 SNS를 찾았다. 그리고 미리 받아 둔 전화번호.8년 만에 새로 받은 전화번호. 하지만 전화번호는 그대로였다.


음식으로 소통하는 곳 


드디어 마련했다. 나의 가게. 정확히는 14 년 걸렸다. 그 동안 팽팽한 긴장감 가지고 살면서, 아끼지 않아도 될 수 준의 작은 부분까지 아꼈다. 일부는 은행 빚, 이모님께 얻 은 빚이지만. 번듯하게 나의 실력을 발휘해 사람들에게 인 정받을 만한 공간. 열 평 남짓한 이 작은 공간.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면 좁은 복도, 바로 왼편엔 주방, 그리고 앞으 로 길게 늘어선 스탠딩 의자에 걸맞은 다찌 형식의 바 테 이블. 바 테이블을 지나면 아일랜드 식탁이 주방으로 연결 되는 통로의 구획을 짓고 있다. 다섯 명 정도 앉으면 그만 인 다찌 공간. 이 공간을 지나 맨 안쪽엔 네 명 정도가 앉 을 수 있는 테이블 하나. 빼곡한 느낌이더라도 손님이 편 안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같은 문헌 정보학을 전공했고, 조금이나마 독서에 안도 하며 지냈던 친구. 같은 마음의 궤를 놓던 친구. 직업까지 평행 지어 가게 될 거라 예상하진 않았지만, 젊은 시절 함께 사서로 지냈던 친구. 돌연 내가 유학을 떠나겠다고 했 을 때 놀란 나머지 충격적 표정을 드러내던 녀석. 오른쪽 눈썹 꼬리가 그렇게 많이 올라간 녀석의 표정은 실로 우주 최강급이었다. 


유학 중인 내게, 돌연 직업을 바꿨다고 짧은 몇 줄과, 인 증 사진 한 장과, ‘복수’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내왔던 녀석. 책만 읽던 녀석이 어느새, 그라인더 앞에서 오늘 쇼핑했다 며 원목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어엿한 목수였다. 사서에 서 목수라. 재미있고, 정신없이 바쁘다 했다. 직업을 바꾸 는 것조차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게다. 


— 바 테이블에 파티션처럼 생긴 칸막이 설치는 어때? 


— 정작 요리보다 ‘혼밥’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거 냐? 혼밥 하는 사람이 요새 많아서? 음식은 장사 아냐? 장 사 안 할 거야? 이 구석진 교회 앞에서 그래 가지고 몇 달 버티겠어? 너 그래서 이 촌구석에 이렇게 차리려고 유학까 지 다녀온 거야? 


한마디 물었는데 돌아오는 이 녀석의 거침없는 핀잔 침 대포를 맞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긴 했다. 


— 촌구석은 무슨. 그래도 한 시간이면 서울 중심부까진 금세 가. 현우 네 눈에도 보이는 것처럼 탄천 바로 앞이라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고. 


— 너같이 굼뜬 녀석이? 그리고 저 길이 이동이냐? 운동 이지? ‘운동하다 배고프면 들어오세요.’라고 입간판 하나 더 만들어 줄까? 하아~. 


안 되겠다. 얼른 궁금한 거나 물어봐야 이 녀석 잔소리 가 줄어들겠다. 


— 아무래도 주방과 마주 바라보는 방향으로 착석하다 보니, 좀 더 안정감 있게 보이려면 식탁 위에 칸막이를 두 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 것뿐이야. 


— 아서라. 내 싼값에 해 준다고 했더니 그걸 안정감이라 고 치부하고 자빠졌네. 그건 안정감이 아니라 도서실과 만 나서는 안 되는 분식집 같은 연출엔 최고겠지. 오히려 중 압감만 더 줘서 공간 협소해 보이고, ‘조용히 밥만 먹고 퇴 실하세요.’ 같은 느낌 아닐까? 공간 디자인은 요리와는 전 혀 다른 분야다. 


연타로 뼈 때리는 녀석의 충고에 한마디 응대하려다 곱지 않은 표정 한 번 지어 주고 말았다. 


하긴, 가게에 들어서는 사람에겐 크게 딱 두 가지가 인 상적으로 보여야 한다. 


하나는,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온화한 느낌을 주는 음 식 냄새. 다른 하나는 메뉴판보다 미리 주방에 맞닿아 앉 아 있는 앞선 손님의 수저 든 손과 앞에 놓인 음식. 유학 때 귀가 닳도록 듣고 느낀 것. 되돌아 짚어 보니 이 녀석 인테리어는 공으로 공부한 건 아닌가 보다. 앞선 손님의 음식이 보이게, 그래. 


— 그래, 그럼 트이게 두자.

— 오케이. 자 그럼 마감 작업 들어간다. 


— 얼마나 걸릴까?

—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다음 주 일요일? 


— 그렇게 오래? 


— 아님 다른 사람 부르든가. 그 가격에 그 일정에 그 나무는 못 쓴다. 


신선한 식자재가 바삐 오갈 주방과, 다찌 상판 작업대 가까운 공간에 주방에서 홀 쪽으로 바로 나가는 통로를 크 게 마련하고, 통로로 바짝 붙인 아일랜드 식탁 데크는 너 무 두껍지 않게. 그래. 내 가게는 음식으로 소통하는 곳이 고. 이곳은 이야기하는 손님과 턱을 두지 않는 것으로. 개 방감 좋아야 하는 공간이니 그렇게 하자. 그래서 일자형 통원목의 바 테이블 형식이자 아일랜드형 식탁을 작업대와 평행하게 배치하자. 


— 알았다. 그럼 그 사이 나는 주방 기구 계약하고 식자 재 공급해 주시는 분들 마무리 주문하면 되겠다. 


— 건 모르겠고. 시간 날 때 나가서 손님들이 이 교회 앞, 이 탄천 앞에 어떻게 하면 더 오실지 그 연구나 해 봐.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녀석의 핀잔. 유학 시절 받았 던 녀석의 푸념들이 그냥 했던 소리는 아니려니. 행운교회 구역에 들어온 녀석의 조언들이 아무 의미 없이 던지는 말 은 아니려니. 이곳 상권에 자리 잡기에는 올드한 선배이기 도 하니. 주중에 계속해서 식사 전후 시간을 기준으로 한 번 마실 삼아 돌아봐야겠다. 



#셰프 로그: 대화가 있는 곳 


아일랜드 식탁을 기준으로 입구까지 바 테이블로 연장하 는 데크를 두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내가 바라는 세 가지 를 현우는 제대로 이해하고 설계해 주었다. 

하나. 전체 공간이 테이블을 여러 개 둘 정도로 큰 곳은 아니다. 서빙을 보는 종업원을 둘 생각도 없다. 그저 손님 과 내가 마주 앉은 근거리감이 주를 이루는 공간이다. 이 때문에 주방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둘. 당연히 딜리버리가 빠른 주방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종업원 없이 요리가 끝나는 대로 바로바로 딜리버리가 가 능한 이동 동선을 고려했다. 상하부장이나 냉장고에서 나 와, 헤드 그릴러나 도마를 거쳐 나온 음식은 아일랜드 식 탁에서 마무리 데코와 클리닝을 하고 점검해야 한다. 그리 고 팔을 뻗어서, 함께 연결되는 다찌로 바로 딜리버리될 수 있어야 한다. 


셋. 그렇게 딜리버리가 되면 손님의 반응을 바로 살필 수 있다. 손님의 추가 요구 사항이나 내가 더할 수 있는 정성이 부담스럽지 않게 마무리되어야 한다. 


가구만 하는 줄 알았는데 공간 인테리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까지. 가구 팔려면 알아야 한다나. 여하튼 현우는 나름 자신의 분야에서 독한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유학 후 힘 들게 두 나라를 거쳐 오며 저축해 두었던 것과—딱히 쓸 시간도 없었지만—수진 이모께서 도와주신 목돈으로 힘들 지 않게 대금을 치렀다. 물론 현우는 그만한 원가와 소정 의 인건비만 추징(?)했다고 했다. 마치 오래된 친구 사이에 치르지 못한 우정의 값을 치러 내라는 것처럼. 수진 이모 께서 주신 목돈. 계속 신경 쓰인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 기로 했다. 목돈이라 쓰고 투자금이라고. 반드시 이 가게에 단골손님들이 자주 오고, 더 자주 오게 해서 돈을 모아 이 자 붙은 목돈으로 되돌려 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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