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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Mar 16. 2024

무엇이든 시작은

자전거 타는 여자, 요리하는 남자


 도서관 사서 일은 실로 무료하기 그지없었다. 정보를 탐색하고, 해석하고, 재정리하여 분류해 내는 업무로 일관된 하루하루가 내겐 그랬다. 새로운 정보를 찾으러 오는 사람에게는 목적을 달성하면 되돌아갈 길이 있지만, 나에겐 그곳이 목적이 있는 곳이자, 되돌아갈 곳이었다. 처음엔 막막했고 날이 갈수록 더 무료해졌다. 가끔 만나는 같은 과 출 신 동창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전혀 다른 업을 사는 친구들이 전공을 살려 일하는 나보다 더 다이내믹해 보여 부러웠다. 


하루하루 들어오는 신규 서적과 열람 정보를 정리하고 대출입 업무를 마무리하면 어느새 늦은 오후였다. 한 번은 도서관 지하 식당 아주머니께서 앞치마를 걸친 채로 달려 들어오시더니 분야 인덱스를 열심히 찾으시다 ‘생활·취미’ 분야 구획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한참을 나오지 않으셨다. 반 시간이 지나 나오시며 뭔가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궁금했다. 분명 무언가 체한 듯이 들어가셨다가, 나오실 때엔 얹혀 있는 걸 해결한 듯한 만연의 미소를 지 으셨다. 도대체 뭘 보셨길래. 


폐관 마무리 10여 분 전. 그 섹션을 가 보니 책 하나가 다 꽂히지 않은 채 열에서 흐트러져 있었다. ‘약과 음식의 궁합’. 잠시 펼쳐 보니 음식 재료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가 이드북 같았다. 아마도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식재료에 대 한 궁금증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나도 모르게 두 시간이 지나도록 퇴근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서 재미있게 탐독했다. 


한데 이게 엄청난 즐거움의 시작이었다. 


되돌아갈 곳이라 생각하면 막막하기 그지없는 도서관의 모습이었지만, 무언가 흥미로운 주제를 세우고 보니 실로 탐독의 시간이 즐거웠다. 매일매일 같은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무언가 내 관심사 주제를 한번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여가/요리/음식’ 섹션의 책들을 하나둘 완독 했다. 그러면 서 더 즐거워졌다. 살아 있는 듯했다. 심지어 생활에 변화를 주자는 결심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주말을 이용해 요리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평일에 도서관 업무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 지난 주말에 배운 요리를 다시 만들어 보고, 이렇게도 바꿔 보고 저 렇게도 바꿔 보며 지냈다. 요리 하나를 15분 내에 마치자 는 목표도 세워 보고, 직접 저녁을 만들어 먹고 난 후 한 시간 뒤엔 양념을 조금 더 진하게 활용하는 야식 만들기를 수행. 그러다 보니 요리 강습반 내 조리사 자격증 취득을 목적해서 다니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조금 다른 모양새와 맛을 가진 음식들에 심취하는 습성을 보였고, 이내 요리 학원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상의 활력을 위한 취미였다. 하루에 쌓인 무료함과 쓸쓸함을 달래 주는 취미에서 남은 인생의 업으로 바뀔 줄 누가 알았겠는가. 차디찬 책장 사이를 걷 는 것보다 지지고 볶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고, 식재료와 향신료 또는 양념이 만나면 새로운 심미함을 만들어 내는 일. 이 요리할 때가 더 활기차게 뛰는 가슴을 맞이하는 것 은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양념과 장젓가락을 들고 오가며, 연신 흔드는 채칼을 사용할 땐 나도 모르게 입 모 양이 삐쭉해지는 버릇도 새로 알게 되었고. 


주로 주말을 이용해 학원에서 6 개월의 연수를 마무리하 고, 조리사 자격 2급을 취득하여 수료증이 나올 무렵이었다. 선생님의 조언이 내 활기에 기름을 부었다. 선생님께선 당신의 경험을 떠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더 열정적으로 배우는 것에서 하나 더 나아가려는 내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다고. 혹시 정말 진지하게 해 볼 생각 없냐고. 원한다 면 상급 위 코스를 소개해 주겠다고. 귀가 솔깃했다. 상급 위 코스라니. 말 그대로 상급 위 코스는 두 가지. 실제 셰프의 주방에 들어가 일하며 배우는 방법과, 학업의 수순으로 유럽 쪽의 프랑스나 이탈리아 국제 요리 학교로 유학을 다녀오는 것을 권유했다. 300 인 이하 중소기업 재직자나 상공인에게 주어지는 교류 유학을 알선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체재비만 개인이 해결한다면 학비는 정부와 학원 연 합에서 지원한다고. 조건은 2년간의 유학 기간 내에 커리큘럼의 코스 그대로 연수를 마쳐야 하고, 도중하차할 경우 학비는 반납해야 한다는 무서운 페널티도 있었지만. 


도서관에서의 일과 중 얻는 다양한 정보 습득 기회도 나쁘지는 않았다. 도서관 근처의 산책로도 좋았고. 철마다 찾아오는 산책로의 나무와 꽃들도 좋았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퇴근할 때마다 내가 오늘 일한 것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생산적으로 난 무엇을 했나 되물으며 우울해지기 쉬웠다. 


요리 학원 선생과의 대화는 한 달을 더 끌었다. 이제 한 번 바꾸는 직업이라면 인생 말년까지 봐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사람과 부대끼는 것보단 오브제와 부대끼는 것이 맞는 성격이니. 도서관도 진저리 날 정도는 아닌데. 요리는 식재료와 각종 주방 기구와 불과 물에 내가 맞닿아 치르는 것. ‘전쟁’ 같다 표현해도 그 앞에선 오롯이 나라는 존재가 있기 마련인데. 유학을 가서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공부를 해야 하는 것도 솔직히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전업을 하겠다 마음먹고, 번듯한 직장 버리고 다 시 유학을 떠나는 길에 대해 우려하시는 어머니를 설득하 고, 비자신청서, 여권, 국문기본증명, 여행자 보험증서 등 유학에 필요한 각종 구비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동분서주.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원했다. 그리고 한국을 잠시 떠나며 마음속 깊은 울림으로 나 자신을 다잡았다. 당당히 셰프로서, 사람의 건강을 위해 경계하는 나만의 맛으로, 나만의 가게, 나만의 식탁에 서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유학길에 올랐다. 시작은 실로 비장했고, 경건했으며, 무릇 용감했다. 


비가 내린다. 늦여름에 와서야 맞이한 늑장 장마. 여느 때보다 한두 시간 일찍 장사를 마감할 수밖에 없는 날이다. 딱히 일찍 닫아야 하나 싶어 식탁에 기대어 앉아 유학길에 오르기 전 상황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드르륵.’

 갑자기 문이 열린다. 


— 안녕하세요. 비가 계속 오네요.

— 아니, 운동하시는 날도 아닌데 이 시간에 어인 일이세요? 


웬일인가. 비 오는 날 문이 열릴 순 있는데 VIP다. 주말 운동하면 들러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가기에 친구 같은 VIP. 최근에서야 이름을 물어 알게 된 성희 님. 이제 단골 VIP. 오늘은 저녁 장사가 한창일 무렵이지만 손님이 없어 마감을 일찍 해야겠다 하는데도 웃으며 식탁 중앙 자 리에 앉아 버리는 VIP. 이걸 어째야 하나 싶은 표정을 지 으니, 


— 너무 배가 고파서요. 미안해요. 주말에도 비가 온다 해서 이번엔 이렇게 평일에 일찍 왔네요. 


마감하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에 괜한 상념에 빠져 있는 걸 건져 준 건 고맙다. 잊지 않고 미리 왔다니 괜히 더 고마워진다. 한데 어쩌나. 마감하며 재료는 정리해 버렸는데. 테이블 냉장고에 정리해 둔 보충 식재료와 몇 가지로만 만들어야 하니. 그래, 그렇게 해야겠다. 시간이 걸리는 면이 나 반죽보다는 밥이 빠르겠다. 우선 그릴러에 돌솥 올려서 밥부터 안치자. 빠르게 쌀을 씻고 밥을 먼저 안치자. 오케 이. 자, 뭘 만들까. 성희 님께 물어볼까? 


— 마감을 하던 터라, 주 메뉴 재료는 거의 소진되었고요. 미안하지만 음식값은 적게 받을 테니 대신 제가 알아서 만 들어 드려도 되죠? 


— 하루 종일 회의만 하다 이제 첫 끼니예요. 아무거나 입에 넣을 거 주시면 돼요. 


— 이런 이런. 나쁜 회사군요. 


— 아니에요. 제가 하자고 한 거고. 어차피 주말에 태풍 소식까지 겹쳐서 운동을 못 하니, 집에서 늦잠 자고 늘어지게 쉬거나 운동하고 싶어서 제가 몰아세우며 했던 회의 라 어쩔 수 없었어요. 


— 그렇군요. 나쁜 상사 코스프레 하셨군요. 자, 그럼 빨 리 해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마감하며 비닐 포장으로 냉장해 둔 것들을 기억해 본다. 계란, 양파, 당근, 소고기 안심 조금, 빨리 움직여 만들 수 있는 음식. 그리고 잠시 귓가를 스친 단어. 


— 조금 전에 주말에 무슨 소식이 겹쳤다고 하셨죠? 


— 네? ......태풍요? 


— 아,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 오늘은 앉으신 자리에서 식탁이 어차피 보이니 제가 만드는 과정을 한번 같이 보세요. 짧은 시간에 만드는 음식이니 지루 하진 않으실 거예요. 


그래도 정성이니 작은 솥에 올리고. 그 사이에 카레를 만들면 되겠지. 


자, 양파와 당근을 빠르게 채 썰고, 소고기 안심도 잘게 썰고 다져서 프라이팬으로. 밥이 다 되었는지 보고. 오케이. 딱 맞았네요. 밥을 보슬보슬하게 퍼 올려서 이렇게 주방용 선풍기 대령. 


— 밥에 왜 선풍기를....
 

— 아, 뜸을 들이기보다 빠르게 프라이팬으로 들어갈 거 라 수분만 없애는 겁니다. 수분이 가미되면 볶은 재료 맛 도 변하고 밥이 많이 부서져서 영양소도 상하거든요. 


자, 낮에 해 둔 카레를 살짝 데우도록 전자레인지에 돌 려 두고. 프라이팬에 오일을 두르고 데친 다음. 자, 밥과 함께 볶고 소금을 한 꼬집. 불은 잠시 끄고. 식초 한 번 두 르고. 


깨끗한 프라이팬 하나를 그릴러 옆 불에 올리자. 올리브 유를 두르고, 센 불로 달구는 사이 계란 두 개를 노른자까지 풀어서 준비. 그릴 위의 프라이팬이 다 달구어지면 풀 어 둔 계란을 슬며시 붓고 기다린다. 계란이 반숙 이전 상 태가 되면 주방용 장젓가락을 중앙에서 누르고 돌리자. 시 계방향으로 끄응. 그렇지. 오케이. 


— 우와. 그게 뭔가요? 계란 소용돌이가! 


— 하하. 네. 자 이렇게 볶아 둔 밥 위에 올리면! 되었네 요! 휴. 


마무리로 데워 둔 카레를 주변에 두르고. 


— 자, 여기 나왔습니다. 태풍 모양의! 회오리 볶음밥입 니다. 


— 이런! 왜 물어보셨나 했더니 이런 센스 만점 셰프님! 놀랍네요. 정신없이 휘몰아쳤는데 어느새 이렇게 뚝딱 나 왔네요. 으음~ 음~ 카레 향과 부드러운 계란을 보니 침이 넘어가요. 잘 먹겠습니다!!! 


— 휴. 마감 정리 상황에 뚝딱 만들려니 힘들었네요. 맛있게 드세요. 


— 음... 이 카레 향. 음~ 이 부드러운 계란과 함께 먹으 니 더 부드럽고 달콤하네요. 역시 맛있어요. 현우 오빠에게 듣기로는 유학 다녀오셨다고 하던데요. 일본이나 인도로 다녀오신 건가요. 


— 아니요. 유학은 이탈리아로 다녀왔고요. 카레라이스는 사실 그전부터 배웠지만, 일본에서 좀 더 이해하고 익힌 건 맞습니다. 


— 네? 일본에서 익히다니요? 


— 네.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유학이 끝나 갈 시점에 취업 비자를 받았어요. 노천카페 식당에 취업해서 4년 반 동안 현업 요리를 또 배우게 되었죠. 유학 중에는 흥미로운 이 탈리아산 재료를 배웠다면, 실제 요리를 하며 손님들의 반응을 본 건 이때부터고요. 사정이 있어 나중에 로마로 옮겼어요. 좀 개인적인 사정이라 자세한 건 지금 이야기하긴 좀 그렇고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가 생겼어요. 로마 이탈리 아 정통식당에서 일하는데, 일본 도쿄 시내에 서브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었으니 그곳에 셰프로 가서 일본 요리도 배 울 겸 해 보지 않겠냐 해서 고심하다 일본으로 가게 되었 죠. 


— 아, 네. 한데 서브 브랜드라면 일본에서 이탈리아 음 식을 선보이는 게 아니었고요? 


— 아, 메인 브랜드는 이탈리아의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하고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음식점들이 함께 있는 플래그 십 매장이었어요. 그중에 이탈리아 섹션의 셰프를 담당하 게 되었죠. 일종의 승진이긴 했는데 좀 힘들었네요. 이탈리 아 유학 시절에야 정해진 코스대로 배우며 익히면 되니 편 했는데 실제 취업 이후에야 제 솜씨를 익히기 시작했어요. 역시 셰프 라인에서는 실전에서 힘든 점도 달랐죠. 작업대 앞에 서서 하루 12시간 가까이 다듬고, 냄새 맡아보고, 손질하고, 달구고, 씻고. 숙소에 가면 녹초가 되는 게 반복이었어요. 그 반복을 계속하다 보니 손맛이 생겼죠. 그 즈 음이 되니 메인 셰프가 일본의 자리를 제안해 주더군요. 그래서 일본으로 가게 되었어요. 


— 일본에선 어떠셨어요? 카레 소스 맛이 사실 호텔급 이상으로 느껴져요. 너무 맛있어요. 


— 네. 천천히 드세요. 이탈리아에선 향신료와 함께 밀가루 그리고 치즈나 버섯 발효 식품 같은 자연 재료로 불을 활용해서 요리하는 과정이 많았다면, 일본에선 전혀 달랐어요. 오모테나시. 즉, 손님으로 오시면 최대한 맞추어 정 중히 만족스러울 때까지 대해야 하는 서비스 정신. 철저하 게 고객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지 않으면 반응이 바로 달라졌어요. 점포의 손님 수도 빠르게 반응한 편이라고나 할까 요? 경쟁이 너무 심각한 상권이라서이기도 했지만 일본의 국민성도 잘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즉, 음식의 재료와 불과 물의 상태에 따라 타협하는 게 아니라 고객의 입맛과 타협해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어요. 한국인 셰프에 대한 약 간의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손님으로 왔을 땐 일본인처럼 보여야 하는 신경을 써야 하기도 했어요. 


무엇이든 시작은 우연이었고, 진행은 나의 것이었으며, 결말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사이 


집으로 가는 길목이 조금이라도 가벼우라는 듯, 식사가 끝나 갈 무렵 어느새 비는 가늘어졌다. 정중히 인사하고 값을 치렀다. 또 종이 박스에. 집으로 돌아와 준석 셰프님 의 궤적에 따라 어떤 생활을 했을지 잘 몰라 검색을 해 본 다. 내가 먹은 요리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배경을 좀 알고 싶었다. 아마 이것도 마케터의 직업병 중 하나. 자로 잰 듯 모르면 못 넘어가는 성격이니. 어쩌면 셰프님과 좀 더 가까운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작은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센 스 있는 남자 셰프에게 가는 작은 호감의 시작인가 싶기도. 


검색해 보니 일본은 1910년대 초 덴노 시대 이후 경제 가 발전하기 시작한 나라. 조금씩 경제가 발전하자 고기 소비가 늘었다. 늘어난 소비량 대비 고기가 부족한 섬나라이니 고기를 대체할 식재료를 찾았고 그래서 나온 다이쇼 대체 식품. 그중에서도 남의 것을 가져와 자신들의 것처럼 만들어 내는 그들의 문화 습성. 그것을 그대로 반영한 3대 음식으로 유명한 카레라이스, 고로케(크로켓), 돈가스. 그중에서도 인도의 대표적 향신료인 매콤한 향신료를 가져와 감자, 야채를 곁들여 밥에 얹어 먹기 시작한 게 카레라이 스였다. 인도의 카레라이스는 난을 찍어 먹는 것이 주이고 밥에 올려서 먹지는 않는데, 일본은 이를 가져와 고수나 터머릭을 추가해서 맛에 변화를 주었다. 본인들의 음식처 럼 재탄생시킨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일본인 유학생이 미 국 유학길에 인도를 거쳐 영국으로부터 넘어온 카레를 일 본으로 가져왔다는 설도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음식을 준석 셰프는 자기만의 맛으로 변형한 것이다. 아니, 자기만 의 맛이라기보다는 먹는 이들의 상태에 맞는 음식을 만드는 것 같다. 역시 식재료를 모두 이해하고 내어 주는 음식이라 믿음이 간다. 


‘딩동.’ 


검색을 마무리하고 소파에 앉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에 알 림이 뜬다. 


— 성희야 밥 먹자. 


— 응? 지금? 


— 아니. 미쳤니, 이 야밤에. 카. 주말에 비 온단다. 운동 못 할 테니. 주말에 근사한 음식점 가서 고~오~기! 콜? 


— 진짜야?


— 얘가 속고만 살았나. 꼭 먹자 고오기!!!

— 아니 비 오냐고. 


—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니? 4개 날씨 서비스, 공중파 확인 완료. 


비가 온단다. 그것도 주말에. 올해는 유난히 평일도 아닌 주말에만 비가 오는 경우가 많다. 그 이야긴 주말에 라이딩을 못 한다는 것이고. 라이딩 중에서도 장거리, 그중에서 도 차도 사람도 별로 없는 좋은 도로가 전국에 펼쳐져 있어 그리로 떠나는 원정도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매번 기록하는 결과 그래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전년도 대비 꽤 많이 줄어 버린 누적 거리 그래프는 게으름보다는 비 때문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 여름, 가을 딱 세 계절을 달리되, 무더운 여름은 새벽에서 오전 혹은 밤 위주로만 할 수 있는 운동. 이 운동을 시작하고 난 뒤에 비가 오는 주말이 가장 싫다. 너무 싫어하는 상황이 또 도래하니, 한동안 답을 해야 하는 상황임을 망각하고 있다 놀란 토끼처럼 뱉어 냈다. 


— 고기는 고기인데 라이딩을 못 하니 미치겠네.

— 그러니까 같이 먹자 고오기~ 그럼 주말에 행운교회 


앞에서 봐. 


고기는 고기인데 왜 행운교회 앞이지. 묻지 않았다. 행운 교회 앞이라면 당연히 ‘맛있는 밥 한 끼’이고, 그렇다면 센 스 있는 준석 셰프를 만나 고기를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일 테니. 회사 앞의 시시껄렁한 서서갈비 스타일의 원형 통에 둘러앉아 먹는, 기름 냄새와 연기 풀풀 풍기는 고깃집이라 면 이제 신물이 난다. 남들 다 한 번씩 해 본다는 고상한 바 분위기에, 테이블 앞에 앉아 레드 와인 잔 두고 흐르는 음악에 심취하기도 하지. 큼지막한 등심 썰어 가며 텁텁하게 넘기는 스테이크 역시 팀 단위 회식 자리로 자주 다녔다. 그리 유쾌한 기억으로 남지 않는 건 아무래도 솔직한 심정의 일상 이야기를 터놓고 하는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 이리라. 


아무튼 근사한 고깃집이라 하니 짧고 명확하게 이야기했다. 


— 라이딩도 못 하는데 고기는 적어도 준석 셰프님이 고 를 수 있는 수준은 돼야.... 


— 준석 셰프? 벌써 그렇게 표현하는 사이인가? 빙그레~. 그래 알았다. 


그런 사이


참 오랜만의 표현이다. 대학 시절 단순한 미팅 한두 번. 졸업 후 취업 준비에 몇 번 실패하고 친구들이 소개해 준 자리 몇 번. 일면식 없는 이를 만나, 작위적 관계를 활용해 나누는 부담감 있는 대화. 항상 말씀 많이 들었다는 인사치레로 시작하는 대화가 대부분. 그 외 인상적이었던 인사 말이 하나 있다면 ‘좀 외로워 보이세요.’였다. 외로워서 나 온 게 아니라 대부분 등 떠밀려 나간 자리. 딱히 이성에 대해 호감도 없고, 필요성조차도 없던 내게 외로워 보이다 니. 물론 ‘제가 한 시간밖에 시간이 없어서요.’로 짧고 명확하게 응수했지만, 그 뒤로 한 시간의 대화 역시 냉담했다. 나 스스로가. 직장인이 된 후 내게 호감을 느꼈는지 업 무 외 화제로 말을 걸어오는 이들은 많았지만 그때마다 주말의 일정은 나 홀로 시간이 1순위였고, 소위 ‘사이’를 만들어 내는 만남의 경우는 중간 순위에서조차 밀려 있었다. 딱히 필요성도 못 느꼈지만 업무 외 여유 있는 시간은 주말 중에서도 일부분이었고 그 시간은 오롯이 나로서 남 는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그만큼 회사 생활은 내겐 ‘영혼’ 은 집에 벗어 두고 출근 후, 돌아오면 다시 챙겨 입는 일 상의 연속이었으니까. 조금이나마 그 버거움을 벗어 낼 수 있도록 해 준 게 라이딩이었으니까. 샤워 후 발그레한 무 스 타입의 마사지 크림을 발라 종아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떠오르는 주말 비 예보에 심쿵하다 잠자리에 들었다. 


이틀 뒤 주말. 올해 속된 표현으로 구라청이라 욕을 먹 던 기상청이 웬일로 비 오는 날은 유난히 잘 맞춘다. 비로 인해 물 건너간 라이딩 시간 내내 이불 안에서 뒹굴었다. 오랜만의 휴식 같은 느낌이지만 이미 매주 적응된 운동 시 간에 이러고 있으니 눈은 말똥말똥한 상태로 천장만 응시하거나 별 의미 없는 휴대폰 뉴스나 SNS에서 지인들의 삶을 살짝 엿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점심 무렵. 행운교회 앞 탄천에 비가 줄곧 내리고 있다. 괜히 한 발을 길게 내밀어 물을 차듯 움직여 보는데 저 멀 리 탄천 길가에서 누가 손을 흔든다. 파란 모자에 넝마처 럼 생긴 트렁크 티를 입은 모습이 영락없이 현우 오빠다. 고개만 끄덕이고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 행운교회 앞 골목에서 여느 때와 같은 남색 앞치마에 셰프 캡을 눌러쓴 그가 잠시 가게 입구 발을 넓게 펼치고 있다. 비에 손님들이 젖을까 눈치 보듯 연신 핸들을 돌리니 어느새 처마처럼 길게 내세워졌다. 그리고 마주치자마자 내게 손을 흔들며 오라 해 주니, 반대편에서 현우 오빠가 걸어오는 속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마 반가움보다 정성이 담긴 요리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 안녕하세요. 고기를 먹자던데요. 


— 네. 어제 현우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안 그래도 어제 미리 주문해서 오전부터 숙성해 둔 상태입니다. 들어가시죠. 


비 오는 날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가게 안엔 손님이 없다. 난 항상 준석 셰프가 안내해 준 곳인 셰프 식탁 앞자리로 앉았다. 항상 그러했듯이. 자연스럽게.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테이블로 향하던 현우 오빠는 살짝 옆자리로 앉는다. 


— 그냥 셰프 앞 이 자리가 성희 자리가 되었나 보구나. 


— 누구 자리가 어디 있어. 편한 데 앉는 거지. 그래, 고 기가 먹고 싶다고? 


— 응. 넌 이 한여름에도 긴 요리사 옷을 입고 있냐. 이 제 반팔로 좀 입어라. 


— 알면서 그러냐. 하여튼. 당부한 대로 준비해 뒀다. 


뭔가 또 둘만 아는 사정이 있나 보다. 나는 둘 사이의 이야기가 굳이 궁금하지 않았다. 가게 안의 노랗고 따스한 느낌의 조명을 바라보다 다시 바 테이블 의자를 당겨 고쳐 앉았다. 


— 오늘은 내가 고기 사는 날이니. 맛깔나게 대령해 줘. 우리 성희 님까지 모시고 왔으니 솜씨 발휘 좀 해 달라고. 성희는 오늘이 두 번째 방문일 테고. 


무슨 섭섭한 말씀. 거의 매주 왔는데. 그러나 나도, 준석 셰프도 아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폰을 보 고, 준석 셰프는 바로 요리를 시작했다. 테이블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낸다. 꽤 두꺼운 등심. 팬 위에 버터를 둘러 달구 고는 불을 꺼 버렸다. 그리고 꺼낸 숙성 고기에 뭔가를 흩 뿌린다. 


— 성희 님, 평소 어느 정도의 굽기를 좋아해요? 


— 글쎄요. 그냥 너무 익어서 딱딱할 정도만 아니면 돼요. 


— 알겠습니다. 숙성은 했지만 건식으로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부드러운 느낌일 겁니다. 잠시 손질을 하겠습니다. 


준석 셰프가 바삐 칼을 움직이는 모습이 생경했다. 한참을 고기의 겉면을 쓸어 내더니 이내 소금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뿌렸다. 그리고 후추 그라인더로 한바탕 휘젓는다. 그라인더를 갈지자로 흔드는 모습이 TV 요리 쇼에서나 보 던 장면 같다. 과감하게 휘젓는 모습이 멋지게 보였다. 자 신감 있어 보였다. 뿌려진 소금과 후추를 살짝 손으로 비 벼 누르더니 이내 다시 식탁 한쪽 모서리에 그대로 올려 둔다. 이상한 모습에 현우도 못 참겠다는 듯 묻는다. 


— 고기 안 굽고 뭐 하냐? 


— 아, 보통 이런 시즈닝은 잠시 시간을 줘야 하는데. 오히려 겉면에 같이 녹아들면 좋기 때문에 잠시 두는 거야. 보통 20분 정도 두는데, 그 사이에 고기에 바르거나 주변에 두를 소스를 만들지. 스테이크 소스처럼 만들어 줄까? 아니면 약간 짭조름하고 드라이한 소스로 해 줄까? 


— 아무거나 성희 입맛에 맞는 걸로.


— 그럼 일반적인 스테이크 소스의 시큼한 맛은 식상하니까 피해 보자. 부드러운 게 좋겠다. 잠시만. 


소스를 만든다는 사람이 갑자기 양파를 불에 굽는다. 그 러더니 물과 간장 그리고 설탕을 꽤 넣고는 냉동고에서 꽁 꽁 언 생선을 내어놓고, 채에 갈아 낸 생선살도 바로 함께 넣는다. 꽤 오랜동안 끓여 조리더니 일본식 간장 소스로 불리는 쯔유란다. 보통은 우동이나 소바에 어울리는 사이 드 소스로 쓰지만 일본에선 종종 고기에 조리듯이 뿌려 먹 기도 한다고. 


— 생각보다 유럽이나 다른 나라 그리고 유독 한국에서 도 이 일본식 영향도가 있더라고. 고기 먹기에도 나쁘지 않아. 


— 인정하기에 마음이 편친 않지만 자전거에 있어서도 일본이 영향은 있어요. 국내외 유통되는.... 


— 네. 압니다. 지난번 설명해 주신 구동계. 시마노 말씀이시죠? 


갑작스러운 준석 셰프의 앞선 말에 현우가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 아니 니들 그런 이야기도 나눈 사이야? 장사꾼은 난 데 웬 음식점에서 구동계 이야기를? 


— 그렇게 되었어. 자 이제 고기도 어느 정도 구울 타이 밍이다. 마무리하자. 


얇은 팬으로 바꾸고 센 불로 달군다. 초기 굽기는 육즙 이 빠지지 않게 바깥 한쪽 면을 바싹 굽고, 센 불에서 계 속 굽는다. 얼핏 보기엔 탄 것처럼 보인다. 이윽고 잠시 그 릴러의 불을 줄이고 팬을 한 손으로 비스듬하게 잡으니 기름이 고기 쪽으로 모인다. 이 오일을 다시 고기에 직접 닿도록 연신 부어 가며 굽는다. 팬과 그릴러가 맞닿아 내는 잡음도 박자를 만들어 낸다. 


— 건식 숙성 때문에 첫 시어링은 가볍게 짧게 했어요. 스테이크는 크게 두 번에 걸쳐 굽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첫 번째 굽기는 겉면을 크러스트로 만드는 과정인데, 육즙 이 못 나가게 막는 겁니다. 다만 성희 씨에게 맞는 굽기를 내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기름을 많이 둘러 길게 두 번째 단계인 돈네스 굽기를 했습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첫맛과 씹는 맛이 좀 다를 거예요. 일부는 어슷 썰어서 함께 올려 드렸습니다. 함께 비교해 보며 맛보시기 좋을 거예요. 일반 스테이크 소스와 쯔유로 졸인 소스를 함께 드 시는 것도 좀 다른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드셔 보 세요. 


— 야. 넌 내가 왔을 땐 이런 설명 한마디 없더니 성희가 오니까 이러기냐? 이거 차별이 너무 심하고만. 아무래도 올 때마다 성희랑 함께 와야겠어. 


성희는 아무 소리 없이 나이프와 포크부터 잡았다. 준석 셰프가 이야기한 대로 썰어 둔 고기 먼저, 그리고 직접 썰 어 나누어서 한 번은 일반 스테이크 소스, 한 번은 쯔유 소스를 곁들였다. 씹는 첫맛은 일반 등심 스테이크 같았지 만 식감은 안심처럼 부드러웠고 생각보다 많은 육즙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입술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려는 걸 겨우 다물어 막았다. 그리고 잠시 부드러운 버터 느낌이 나더니 이내 향긋하다. 


— 혹시 지난번 그.... 


준석은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이내 오른 손바닥을 내밀 어 보이며 조용히 신호만 한다. 그러곤 돌아서는 듯하더니 싱크대를 정리하며 


— 트러플!

— 응? 뜬금없이 그건 무슨 소리냐? 


— 아, 아냐. 별거 아냐. 


비싼 요리 재료를 당신께만 드렸으니 옆의 손님에겐 이 야기하지 말라는 신호다. 맛깔난 스테이크 요리와 함께 셰프의 센스가 돋보이는 향은 성희만의 것이었다. 성희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둘만의 비밀인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 는 현우가 멋쩍은지 묻는다. 


— 성희야. 맛있는 거 잘 먹는 건 좋은데 말이다. 회사 집, 회사 집, 그리고 라이딩 라이딩 라이딩만 하다가 노처 녀로 늙어 죽을 거냐? 


— 아니 뜬금없이 무슨. 꼭 그럴 건 아니지만.... 


작업대를 정리하던 준석 셰프가 막아선다. 


— 우리 숙녀 단골 고객에게 쓸데없는 이야기 그만해라. 


— 오호~ 네가 숙녀라는 단어를 쓸 때가 있다니. 너 가 게 단골이 아니라 마음의 단골 아니냐? 


식탁 테이블 가장자리에 묻은 쯔유 소스를 훔치던 준석의 손이 잠시 멈칫하는 걸 성희는 보았다. 하지만 준석은 싱긋 웃어넘기고는 싱크대 수전의 물을 틀며 이내 정리 작 업으로 돌아선다. 테이블 식탁 사이, 잠시 정적이 흐르는 사이 앞서가는 현우를 막아서듯 성희는 화제를 바꿨다. 


— 시마노라는 회사가 참 재미있는 회사예요. 시작은 부 품으로 취급하는 일부를 납품하던 작은 회사였어요. 심지 어 우리나라에도 납품하던 철공소 회사였죠. 그런 회사가 1973 년도에 현재의 듀라에이스라는 기함급 구동계를 내면 서 40여 년 가까이 세계 자전거 부품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회사가 되어 버린 거예요. 


1940년엔가 창립한, 사실은 철공소 회사였다. 우리나라 삼천리자전거는 1944년에 창립해서 1979년에 자전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었다. 이때만 해도 시마노는 삼천리 자전거에 부품을 납품하던 일개 자그만 회사에 지나지 않았다. 


잠시 준석 셰프가 테이블로 나서며 건넨다. 


— 일본이 잘하는 게 그런 거잖아요. 남의 것을 가져와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에도시대 때부터 메이지 유신 이후 다시 나뉘어 버린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 개국과 정한론을 펼치죠. 국민의 눈은 전쟁으로 돌리고, 서남아시아나 네덜 란드와 교역하면서 문물과 종교를 들여오고, 이후 미국·영 국·러시아·청나라 등의 새로운 문화를 들여와 일본 고유의 것으로 자리 잡게 했죠. 일본의 고유 음식이라 불리는 것 도 그런 이유인 게 많습니다. 돈가스도 그중 하나죠. 


— 한데 자전거는 꼭 그렇다고 보기엔 어려운 게, 회사 문화 자체가 혁신을 만들어 주는 아이디어 환경이 좋았나 봐요. 시마노는 사실 자전거 외에도 낚싯대로 꽤 유명한 회사예요. 스노보드 제작사로도 유명하고요. 미국에 출장 간 사이 산에서 자전거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을 보고는 MTB를 만들었고, 낚시 용품 만든다고 워크숍을 떠나 한 달 넘게 연락이 안 되어 겨우 수소문해 보니 출장 간 직원들이 그랬다네요. ‘아직 낚시꾼의 마음을 모르겠다.’고. 


현우는 부러웠다. 한 달 넘게 아이디어를 위해 출장을 가고 그로 인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낸다는 자유분방한 문화. 그리고 자유분방함에서 나오는 실험정신. 국내 회사 에선 시도도 해 보지 못한 문화. 아마 그런 문화가 새로운 맛, 새로운 제품,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바탕이 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자 gO!’ 숍을 시작할 때만 해도 국내 배급사 사장의 도움을 받아 시장조사를 갔던 경험이 생각났다. 제대로 된 숍으로 자전거를 공급하기 위해 방문했고, 일주일간 투어 했던 그곳. #100 년 숍. 그런 가게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울 점이 많았던 100년 숍이 준석에겐 마음 깊은 앙금이 남아 있는 인연임 을 알지는 못했다. 


어느덧 오후 들어 빗줄기가 굵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릴 정도였지만 셋 모두 좋은 음식과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오후를 보냈다. 가게를 나선 후, 집으로 가는 탄천로. 


— 현우 오빠. 준석 셰프님은 자녀가 어떻게 돼요? 


— 무슨 소리야. 장가도 안 간 노총각이 자녀가 어디 있어. 


— 네? 아직 결혼도 안 하신 거예요? 


— 흠.... 했었나? 저 녀석, 내가 결혼 이야기만 꺼내면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바람에 자세히 더 캐묻지 않았어. 나와 동갑내기이니 이미 늦어 버린 거지. 친구들 대 부분 나처럼 애 낳고 잘들 키우고 있는데 이 녀석만 유독 이래. 마지막 카드지. 꽤 오래전 수진 이모께 듣긴 했어. 결혼할 뻔한 여자가 있긴 했다고. 이탈리아인가 어디선가. 한데 뭐 지금 저렇게 프라이팬과 칼 들고 있는 모습 보니 차였나 보다 싶었지 뭐. 


현우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버스 정류장에 잠시 섰다 다 시 걸었다. 버스로 두 정거장이지만 한결 차분해진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홀로 걷기로 했다. 성희는 자전거보다 비 가 반가운 날은 오늘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딩 일기: 100 년 숍 


출장을 통해 눈으로 보고 알게 된 부러운 사실. 일본의 자전거 역사는 자전거를 만든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걸 가능케 한 유통 구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중에서도 자전거 용품을 다루고, 자전거를 판매하는 판매 유통점이 선진국 수준이다. 매우 잘 갖추어져 있다. 수제품으로 자전거 용품 하나하나를 견고하게 만들어 내는 유럽의 여러 나라와 달리, 시스템화되어 만들어지는 자전거의 각종 부품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요컨대, 자전거 용품 유 통 선진국이 일본이다. 아마 제조와 유통이 함께 역할을 했기에 세계 일류로 발돋움했으리라. 대표적인 유통 회사 중 하나인 Y’s Road Shop. 매장에 들어가는 순간 자전거와 관련된 온갖 부품, 용품, 완차, 액세서리, 의복, 심지어 튜닝 장비까지. 들어가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고, 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이라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몇 시간을 구경해도 모자랄 지경.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자전거 덕후 가 만든 숍의 느낌 그대로다. 


1898 년 메이지 31 년에 창업한 회사다. 와이 인터내셔널의 전신인 합자회사 요시다 자전거를 출시하면서 영국에서 자전거 ‘빅토리’를 수입하기 시작하며 회사가 알려졌다. 당 시는 자전거를 사치품으로 여기며 기호 상품의 하나로 보 던 시절. 최초 1호 자전거를 약국에 판매했는데, 당시 판매한 사진까지 걸어 두고 홍보할 정도다. 


스포츠 사이클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1981년 이케부쿠로 도심형 매장을 열기 시작하면서 활성화되었다. 2012 년 이 되어서야 세계 최초로 자전거 휠 밸런스 서비스—자전 거 바퀴가 균형 있게 굴러가도록 스포크(바퀴 안의 거미줄처럼 생긴 빗살 무늬의 얇은 철선) 등의 밸런스를 조절하는 것—를 시작했다. 


이 회사, 경영 이념부터 재미있다. 


‘자전거의 세계로 지구를 구한다.’ 


캐치 프레이즈: 친환경 차량, 자전거, 심신이 건강한 인 간, 우리 모두의 지구를 구합시다. 


겨우 찾아낸 청춘의 길. 꿈에 본 멋진 미래로의 출발이라는 철학을 담아 Y’s Road Shop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것이라고 한다. 일본 전국 37곳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수백 명의 직원들 모두가 자전거 전문가 수준. 각 매장은 매장마다 주제 특징이 있고, 직원들 한 명 한 명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신제품, 자전거와 관련된 소식 등을 인터넷으로 발 빠르게 공유하며 고객을 관리한다. 


꼭 살 게 없더라도 출장 갈 때마다 이 매장은 들렀다. 들어설 때부터 매장 직원들이 꽤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매장이 있다면 좀 더 분업화된 자전거 유통과 개발 회사로 거듭나기에 좋지 않았을까 싶다. 삼천 리에 이어 계속해서 자전거 개발 회사는 나오지만 유통 채널이 대부분 기존 작은 숍 위주 혹은 해외에서 직수입해 들여온 자전거에 의존하기 때문에 매우 고가 아니면 매우 저렴한 시장으로 양분된 상태. 이 때문에 실제 개발에 들 어가 대중화되고, 스포츠 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전파되기까지 매우 단절된 양상을 보일 때가 많다. ‘가자 gO!’ 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나라에서 만든 자전거에 대해 알려 보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그 하찮게 느끼는 튜브 밸브의 캡마저도 정성스럽게 금 장 포장해서 판매하는 Y’s Road Shop 같은 곳이 국내에도 만들어지거나 내가 운영하는 숍이 커서 그렇게 된다면 좋겠다.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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