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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Mar 23. 2024

그들만의 시간

자전거 타는 여자, 요리하는 남자

당신과 나의 일기


어느 시점부터일까. 라이딩 끝내면 항상 들르는 곳으로 정해졌나 보다. 누가 약속이나 한 듯이. 이제 성희 씨가 예약 없이 들러도 당연히 셰프 바 테이블 중 한 자리는 남아 있다. 라이딩 후 자연스럽게 그곳에 앉아 메뉴 주문도 없다. 내가 내어놓는 요리 그대로 취한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성희 씨의 표정과 걸음걸이, 어깨를 들썩이며 걷는 호흡의 정도를 보고 짐작하며, 자리에 앉아 오늘의 운 동량과 현재 몸 상태가 어떤지 이야기해 주면 주문 접수 상황 종료다.


성희 씨가 홀로 앉는, 이런 날이 누적될수록 불현듯 손이 떨린다. 다 잊었으리라 싶었다. 하지만 아직, 아물지 않았나 보다. 그리움이 이렇게 깊었나. 14년이나 지났는데. 잊으려 애썼고 노력했지만 아직도 쉽지 않다니. 그나마 한국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착각이었다. 성희 씨 같은 단골이 생길 줄을 누가 알았겠나. 그것도 친구의 소개로 발길 닿게 된 단골이라니. 예상하지 못한 손님으로 인해, 하필 다시 그 사람을 떠 올 리 게 되다니. 드러난 착각 때문인지 왼팔의 생채기가 더 선연하게 드러난다.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그 사람을 떠올리는 날이 더 많아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또다시 왼팔이 저려 온다. 어떻게든 이 아물지 않은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는데.


오늘도 맛있는 한 끼 식사를 내어 주고, 테이블 손님들의 식단을 서빙 후, 빠르게 정리하려 했다.


— 준석 셰프님께 궁금한 게 있어요.


— 네? 아, 네. 말씀하세요.


— 15분 만에 뚝딱 음식을 차려 내는 것도 정말 신기한 데요. 매번 다른 요리를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만들어 내시는지. 기억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 제가 그리 기억력이 좋거나 한 사람은 아닙니다. 저 역시 매번 하다 보면 레시피와 다르게 하는 경우도 있어서 맛이 달라지기도 해요. 중간중간 양념을 내었을 때, 불을 사용한 후, 메인 요리 위에 데코 들어가기 전 짬짬이 맛을 보기도 해요.


성희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준석 셰프가 맛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니. 손이 빨라서인가. 그리고 같은 메뉴를 한 두 번 맛보았을 때 맛이 그대로였다. 아마도 십수 년간 한 길을 걸어온 장인의 손에 익은 맛일 터. 하지만 매번 내어 오는 요리마다 또 다르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었다. 요리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 직업일지도 알지만, 원초적인 의 식주 중 내 몸을 건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음식을 다루는 직업이니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 사실 좀 궁금해요. 어떻게 그리 다 순서를 외우시고, 양념도 그렇게 맛있게 내어놓으시는지. 음식과 잘 어울리 는 양념은 무엇일지. 저도 간간이 집에서 요리를 하긴 하 지만 말 그대로 생활형일 뿐, 정말 맛있다고 느끼는 경우 가 없어요. 아주 가끔이거든요.


— 음. 절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거 같아요.


준석 셰프는 멋쩍게 웃을 때마다 허공을 바라보는 버릇 이 있다. 싱크대 수전 뒤로 보이는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그 표정이 그대로 보인다. 조금은 부자연스럽다. 한참을 창밖의 탄천을 바라보고는 이내 한숨을 쉰다.


— 제가 너무 셰프님 직업을 관통하는 심각한 질문을 드렸나 봐요.


— 아, 아니에요. 천천히 제 일과를 말씀드리면 이해가 되실 듯하네요.


사실 준석이 느끼기엔 성희의 질문이 한 방에 훅 들어온 건 맞다. 요리사라는 사람이 사실 태생부터 맛을 가려내는 능력이 특출 난 사람은 없다. 이탈리아에서 경험했던, 로마에서 셰프들에게 배우며 일했을 때에도 그랬다. 그들 역시 심각한 수준으로 그리고 꾸준하게 공부하고, 항상 새로운 식재료, 새로운 맛을 탐구하며 생활했다. 잠시 생각해 보니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아침 7시 눈을 뜨자마자 채비를 하고 매장으로 나와 오 전 두 시간은 빠르게 식재료를 확인하고, 육류나 어패류의 숙성 재료 냉장 상태를 다시 확인한다. 청과일의 정리를 시작으로 영업 준비를 빠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영업을 시작한다.


요리를 내어놓는 데 사용했던 주방 기구와 나이프, 믹서, 불을 다루었던 팬과 접시들을 모두 깨끗하게 씻고, 테이블과 손님용 다찌를 정리하고, 싱크대 위 미드웨이를 따라 상·하부장의 제자리를 청소하고 깨끗이 잡아 둔다. 아일랜드 식탁의 도마를 세워 두고, 쿡탑과 쿡탑 옆의 그릴러를 살펴본 뒤 필요할 때마다 그릴 솔로 밀어 하부장 쪽으로 음식 찌꺼기를 내려가도록 하고, 불을 다루는 곳 역시 청 결하게 만든다. 이게 하루 일과 중 1 차 마무리다.


청결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그 냄새는 식재 료를 변하게 만든다. 변한 식재료는 다시 사용할 수 없다. 변하기 전이라 할지라도 식재료 본연의 색이나 향이 변했다면 중간 재료로도 사용하지 않는다. 한번 내 손에서 나 간 음식은 그만큼 원래 목적과 부합한 요리여야 하고, 손님께서 가진 기대감과의 차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셰프의 욕심이다. 이 욕심이 변하면 음식 맛이 변하고, 변한 음식 맛에 단골손님은 다시 찾지 않는다. 그만큼 작은 허영에도 손님의 변심은 냉정하다.


이제 그럼 일과가 끝났으니 2차 마무리를 시작한다. 사실 일과의 마감은 이제부터다. 내일부터 사흘간 예약 손님 이 있는지 스케줄을 확인하고, 식재료 확보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한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기상하자마자 시장으로 달려가 청과, 육류를 추가 확보해야 한다. 어패류의 경우 딜리버리 날짜가 있으니 그때그때 제대로 되었는지 인수받으며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육류의 경우는 다르다. 바로 전날 확보한 것만 사용한다. 육류를 들여와 냉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단백질 영양소는 모두 파괴되고 맛 역시 변하기 쉽다. 육류는 숙성 목적이 아닌 이상 가급적 하루를 넘기지 않는 편이다.


식재료 확인이 모두 끝나면 3차 마무리. 이제 공부의 시간이다. 매번 내어놓을 음식은 하루 전 저녁 이 시간에 직 접 해 보거나, 머리로 시뮬레이션하며 레시피의 순서를 익힌다. 그리고 레시피 북이나 쿡 디자인 북을 들추어 다시 확인한다. 십 년 가까이 만들어 온 레시피 북은 가급적 공개하지 않는 편이지만 성희 씨에겐 잠깐 보여 주었다.


쿡 디자인의 경우 요리의 마무리인 식기 위에 놓인 음식의 정렬이다. 차거나 뜨겁거나 담아내는 그릇이 음식과 궁합을 이루어야 하고, 양념이 배어든 모양은 취하는 이로 하여금 식욕을 돋우는 중요한 요소다. 이 때문에 한 방울 잘못 흩뿌려진 고추장 양념도 마무리로 아일랜드 식탁 위에 올려놓을 땐 주의해야 한다.


오늘 매장의 요리에서 기억해야 하거나, 새로 시도했거나, 나 스스로도 몰라 의아했던 사항이 있으면 무조건 일기에 담고 레시피 북에 기록한다. 아마 셰프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일기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 게다. 이 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맛이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내는 원천으로 삼는다. 로마나 도쿄에서 있었던 여러 셰프 들과는 마무리 회의를 하며 이런 내용을 공유하기도 했지만, 각자 자신만의 이름을 내건 매장을 준비해서 하나둘 확장해 나갔다. 한데 나가기 6개월 전부터는 이 회의에 참여하는 열의가 조금씩 줄어든다. 당연하다. 본인의 손으로 만들어 내는 본인만의 맛을 공유하는 레시피 북으로 탈바꿈하는 시기다. 이때의 레시피 북이 그만큼 중요하다. 특히나 장사를 하는 셰프라면.


이 모든 공부가 마무리되면 이제 가게 문을 닫고 퇴근한다. 대략 새벽 1시다.


—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레시피 북이 완전 그림책 같아요. 우리 초등학교 다닐 때 썼던 그림일기 같은 모습인데요?


— 네. 손과 발이 바쁘고, 머리로 생각하고, 코로는 향을, 입으로는 맛을 음미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가급적 비주얼 하게 그림으로 남겨요. 그 의미를 생각하거나 기억하기에 더 좋더라고요.


— 아. 셰프도 정말 힘든 직업이군요. 체력이 여간해선 안 되겠어요.


— 아. 아니에요. 저희 매장은 월요일은 쉬잖아요.


— 그럼 셰프님 쉬는 월요일엔 뭘 주로 해 드세요?


— 라면 먹거나 짜장면 시켜 먹어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준석 셰프의 대답에 그만 큰 웃음이 터졌다. 대화가 더할수록 바 테이블 앞 셰프 쪽으로 상체를 숙여 가까워지는 성희는 자신의 이야길 하고 싶었다. 그런 반가운 모습을 준석도 함께 느끼는 듯, 성희 쪽으로 가까이 다가앉았다.


— 이제 제가 모든 걸 다 기억하는 로봇은 아닌 건 아실 테고요. 저도 성희 씨에게 질문이 하나 있네요. 자전거로 가면 항상 같은 코스로 가시진 않지요? 지난번에 차로 이동하는 투어도 다녀오셨고요. 저는 길치 성향이 있어서 잘 외우질 못하는데 자전거로 가는 길은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성희에겐 쉬운 질문이지만, 설명은 꽤 어려운 질문이다.


아, 이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보통 이런 위치를 따라가는 라우트 코스에 대해 기억하고, 추적하며 가는 라이딩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억 방법은 역시나 같다.


— 역시나 같아요.

— 네?


— 저 역시 그날의 일기를 쓴답니다. 자 여기 보세요.


스마트폰을 열어 항상 사용하는 라이딩 기록과 함께, 코스 경로를 보여 주었다. 소셜 네트워크 형식을 빌려 운동 기록을 공유한다. 라이딩한 코스와 함께 난이도 그리고 어느 정도의 힘을 사용하여 열량을 소비했는지, 이동한 시간과 평균 속도, 운동한 결과를 다양한 기준으로 분석해 주는 일지다. 이를 본 준석 셰프의 표정이 복잡해 보인다.


— 이... 이건 너무 어려운데요?

— 보이는 것만 그렇지 실제로 기록하는 건 상당히 쉬워요. 다시 찾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걸 바탕으로 그날마다 일기를 작성해 두죠.


설명을 듣기 위해 다가와 앉는 준석 셰프가 싫지 않다. 운동을 하면서도 그날의 생각은 오만 가지다. 여느 때처럼 같은 코스를 주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은 상쾌하고, 어떤 날은 힘겨우며, 어떤 날은 불쾌한 경험도 있다. 이런 날의 일기를 작성하는 것을 습관화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직업 특성이리라. 마케팅은 그날그날 혹은 계절의 변화에 둔감하지 않게 배우고 느낀 것을 기록해 두었다가 보편화된 생각처럼 다시 풀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일기도 그 형식을 한몫했다. 다시 되돌아 읽어 보면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하나의 일기를 묶어 두었다가 필 요한 것만 다시 발췌해 정리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습관화된 메모의 힘이리라.


— 일기의 주요 내용은 그날 운동하면서 느꼈던 것, 감상했던 장소의 면면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몸의 변화 등을 기록해요. 항상 남겨 두는 형식에 기온, 날씨, 미세먼지, 자외선, 복장, 경로 파일까지 더해서 기록해 둬요. 어쩌면 셰프님께서 매일의 요리를 내놓고 나서 밤에 작성한다는 일기의 형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 그런가요? 한데 기온, 날씨, 뭐 이런 항목까지 남겨 둘 필요가 있나요?


— 한 해 한 해 운동하면서 실외에서 하는 운동이다 보니 전년도 이 시기의 날씨나 환경이 어떠했는지, 무슨 복 장으로 운동했는지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보면 큰 도움이 돼요. 특히 초겨울에서 늦가을까지 운동복의 변화가 있는데 이걸 참고하면 운동 복장을 미리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요.


— 음. 음식 식재료에 따라, 오늘의 날씨나 상황에 따라, 요리의 물과 불을 사용하는 정도에 따라 준비하는 칼의 길이, 불의 정도, 식재료를 다루는 주방 도구들의 배치가 달라져야 하는 것과 비슷한 거겠군요.


— 네. 그러네요. 특히나 라이딩은 지리를 활용해야 하는 운동이기도 해서요. 그날그날 어느 정도의 힘을 소모했고, 코스 중 어느 구간에 힘을 소비해야 할지, 힘의 안배에 대한 주안점을 두었는지도 중요해요. 여러 가지 참고해서 달릴 수 있어 좋아요. 그래서 일기를 남겨 두고요. 셰프님처럼.


직업상의 일상화된 기록일 텐데, 마치 새로 발견한 공통점인 듯 서로 신기하다는 분위기. 당신의 요리가, 나의 라이딩이 이렇게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 기대하지 않았던 대화 안에서의 세렌디피티. 하나씩 알아 가는 사이가 되어 가는 걸까. 잠시 길게 마주친 눈이 서로에겐 싫지 않았는지 한참을 응시하다 놀라, 둘은 넌지시 시선을 달리했다.


— 아. 운동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해야 하는군요.


— 공부라기보다는 정성의 문제인 거 같아요. 아. 다만! 디지털화된 몇 가지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고요.


— 기계의 힘이요?


— 네. 아까 설명드린 코스의 기록이나 지도, 고도, 사용한 힘의 크기나 운동 시간, 심지어 심장 박동까지요. 이걸 제가 무슨 수로 기록하겠어요. 당연히 라이딩에만 집중하고 기계가 기록해 주는 거죠.


넌지시 손을 뻗어 가게 문 너머로 보이는 성희의 자전거를 가리킨다.

— 저기 제 자전거를 한번 보시죠. 손을 얹는 핸들 바 앞 쪽으로 보시면 뭔가가 달려 있죠? 그리고 안장 아래쪽에 뒤를 바라보고 있는 기계도 보이고요. 앞뒤로 카메라같이 생긴 건 블랙박스예요. 자동차 블랙박스와 같은 목적이라 보시면 되고요. 운동하는 코스의 길을 자세히 기록하는 것과 동시에,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방편이죠.


한데 카메라 위에 뭔가 하나 더 얹어져 있죠? 속도계이자 GPS 기반 위치를 기록해 주는 장치예요. 위성과 연결되어 현재 위치 값을 수치화해서 계속해서 저장하고 있죠. 특정 이동거리 대비 사용하는 힘, 바퀴의 크기까지 감안해 서 회전수를 계산하면 현재 가고 있는 길의 경사도까지 출력해 줘요.


준석은 성희의 설명이 생경했다. 요리사는 동적으로 움 직이나 요리사의 도구들은 대부분 한 곳에 머물러 정적으로 동작한다. 모든 식기류가 그렇고 심지어 전기로 동작하는 타이머까지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동적으로 움직이는 자전거 위의 다양한 장비라니. 이건 경험에 공부를 더한 구력이다.


— 이런 기계는 자체적으로 개발된 통신을 하는데요. 지금 보시는 제 손목에 뭔가 시계가 채워져 있죠? 이게 심박 계예요. 실제로 분당 심장이 뛰는 숫자를 기록해서 속도계로 보내주죠. 이렇게 보내 준 수치는 제가 라이딩 중에 언제라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 주고요.


초보 시절엔 전혀 몰랐던 운동 방법. 하나씩 배우고 익혀 가며 내 몸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가면서 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파악한 내 몸의 상태에 따라 어느 정도 힘을 사용해도 되는지, 얼마 동안 운동을 하고 어느 정도의 길이를 달려야 하는지를 미리 감안할 수 있다는 것. 힘 소비의 안배가 장거리 라이딩엔 반드시 필요하 니 자연스럽게 공부하며 익히게 된다.


— 보통 일반 사람이 운동하는 경우의 심박은 220. 자신의 나이를 최고치로 두고 가급적 그 수치를 넘지 않게 하는 게 좋아요. 때문에 힘을 들여서 속도를 낼 때나 경사도가 높은 고개를 올라갈 때 심박 수치를 감안하며 운동하는 것이 건강에 매우 중요하죠.


— 성희 씨는 꽤 과학적인 운동을 하는군요. 그만큼 더 재미있겠어요.


— 글쎄요. 꽤 가학적일 수도 있어요. 수치를 알게 된 뒤로부터 숫자 지옥에 빠지게 되거든요.


— 숫자 지옥이요?


실제 그랬다. 운동하는 날이 쌓여 가면서 그 기록은 다음 기록을 기대했다. 같은 코스를 30분에 주파하던 것에서 1분 더 줄이기 위해 좀 더 힘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더 높은 경사도의 코스를 찾게 되는 욕심. 속도계, 심박계, 파워 미터와 같은 디지털 장비의 힘을 얻게 되면서 그 욕심은 더 커져 갔다. 욕심은 과욕을 불러 가끔 봉크나, 주행 초기에 모든 힘을 써버려 쉬게 만들었다. 문명의 이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압도감에 더 큰 불을 지핀 것이 있다. SNS 형식을 빌려 운동기록을 서로 공유하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이런 서비스들을 선보이 면서 ‘경쟁’이라는 기름을 끼얹으니 기록 경신의 욕심은 더더욱 피하기 쉽지 않았다. 마음속에 도사린 욕심이 계속해서 커져만 가듯, 기록 단축을 위해 계속해서 수치를 들여다보는 것. 기록을 디지털화하고, 공유하게 해 준 서비스들은 등수, 갱신 기록 등과 같은 마성의 경쟁 기준치를 계속해서 들이밀었다. 스포츠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를 헤어 나올 수 없는 ‘숫자 지옥에 빠졌다.’라고 표현했다.


— 그래도 나날이 달라지고 좋아지는 체력이나, 본인의 모습에서 보람도 있겠어요. 한데 그게 다 이런 운동방법이나 장비에 대해 공부나 기본기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사람은 못 하겠죠.


— 제가 기본기가 잘 갖추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알아 가면서 운동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분명했던 것 같아요. 취미 삼아 시작해서 한 달 정도만 함께 타다가 그만두시는 분들도 꽤 많거든요. 그런데 전 사실 많은 부분을 현우 오빠에게서 배웠다고 보시면 돼요. 운동 마치고 집에 가서 밥을 먹기 전에, 현우 오빠 숍에 가서 이런저런 새로 들어온 장비나 소식들을 접하며 배웠어요. 숍에서 운영하는 아마추어 팀도 있는데 그 팀과 함께 타면서도 많이 배웠고요. 아무래도 혼자 독학하는 것보단 빠르게 배운 게 그 이유 때문인 듯해요.


— 현우가 그냥 대충 하는 장사치가 아닌가 보군요. 그 녀석 종종 지 머리가 좋다고 자랑하더니 빈말은 아니었나 봐요.


— 요리에 있어서도 그런 기본기가 필요한 거 아닌가요? 그래서 해외유학도 다녀오신 거 아닌가 싶어요.


— 아. 지난번에 수진 이모님께 설명해 주실 때, 마침 요리 처음 배우고 공부할 때가 떠오르긴 했어요. 아시겠지만 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제 이름 걸고 음식점을 시작할 수 있으니, 저 역시 자격증 공부를 먼저 하려고 달려들었었죠.


사실 유학을 통해 배웠던 대부분의 기본 요리법은 유학 전에 다니던 학원에서 배웠던 것과 식재료만 다를 뿐이지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 나라의 색다른 식재료와 맛, 발효와 숙성의 방법과 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맛의 차이, 문화에 맞는 요리의 전달 방식 정도가 대부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문화의 차이는 극명했다. 다양한 요리 나 방법 그리고 시간을 넉넉히 즐기는 식문화는 우리의 한상차림과는 또 달랐다. 하지만 식재료 그대로의 맛을 최대한 활용하고,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최상의 방법을 찾는 요리법이 요리사의 기술이다.


— 요리 기본기 좀 가르쳐 주세요. 전 집에서 해 먹는 요리 수준이란 게 인스턴트만 쌓아 놓고 사는 노숙자 수준이라.


— 글쎄요. 요리의 기본기라. 수진 이모께 설명해 주신 라이딩의 기본기처럼, 요리에도 기본기는 몇 가지 있겠네요. 크게 물, 불 그리고 칼을 잘 이해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우선 칼 쓰기, 양념장 이해하기, 음식 재료를 잘 이해해야 하고요. 일례를 들자면, 지난번 해 드린 오징어 볶음과 같은 경우도 그래요. 집에서 오징어 구워 드셔 보셨죠?


— 네. 가끔.


— 기억하시겠지만, 오징어를 구우면 동그랗게 오므라들어 버립니다. 제 스스로. 오징어라는 식재료의 특성이에요. 요리를 하면서 물이 없어지면 수축되는 경향이 꽤 강한 식재료다 보니 질감을 고려해야 하죠. 자칫 오징어 손질 방 법을 잘못 이해해서 칼집을 가로로 내는 경우가 있죠. 이런 경우 데침이나 굽는 요리를 하면 바로 말려 버려서 일부만 익기도 하고, 말린 안쪽과 바깥쪽의 맛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꽤 식감을 떨어뜨리죠. 양파나 무를 잘 써는 칼을 보고 잘 들고 잘 썰어진다 하지만, 사실은 칼을 이용하는 것은 식재료의 성질을 잘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 칼을 단순하게 봐선 안 되겠네요.


— 네. 십수 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어요. 한참 배우던 학원 시절이나 유학 시절에도 종종 있었던 경험이 있어요. 요리사에게 칼은 매우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조심하면서 또 잘 익혀서 다루어야 하는 도구죠. 시험 검정을 치르거나, 한창 손님들에게 요리를 내어야 하는 상황에서 칼을 떨어뜨리면 시험에서 바로 실격하거나, 주방 안에선 메인 셰프로부터 불보다 더 뜨겁고 찰진 욕을 듣게 된답니다.


학업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된 서브 조리사는 칼을 사용하는 기본 기술이 안 되어 있으면 꽤 큰 낭패였다. 깍둑썰 기, 어슷썰기, 채썰기, 편 뜨기로 알려진 우리나라 썰기 방식은 이탈리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주어진 식재료에 따라서 어느 정도 크기만 오더가 내려오면 알아서 식재료에 맞는 썰기를 보여 줘야 했다.


— 조리사 시험은 꽤 어렵겠네요.


— 네, 사실 쉽지 않아요. 옛날 우리 과거시험 때 시제문이 열려 문제가 떨어지면 열심히 붓으로 써야 했던 것처럼, 음식 주제가 등재되면 주어진 시간 대략 20분 안에 두 가지 음식을 내어놓아야 해요. 한식의 경우 쉰네 가지 요리 주제 중 어떤 게 선정될지 모르기 때문에 쉰네 가지 모두 마음속에, 머릿속에, 손과 발에 숙달되어 있어야 하죠. 요리 과정 중에 절대 맛을 봐선 안 되고, 주방 기구나 칼을 떨어뜨려서도 안 돼요. 바로 감점 요인들이 됩니다. 만드는 순서 역시 조리 과정 중에 계속해서 감독관이 오가며 살펴보고 있어서 긴장의 연속이지요. 유럽권이나 일본의 음식 특징 중 하나가 원재료에 한두 가지 양념을 주로 활용하는 것이라면, 우리나라 음식에 사용되는 양념은 사시사철 그 정도가 달라서 꽤 힘들어요. 갖은양념, 고추장 양념, 소금 양념, 매운 양념 등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요리마다 그 조화와 호흡을 달리하죠. 일부 양념이나 식재료를 잘못 사용하면 맛이 크게 변하는 경우도 잦으니 조심해야 하고요. 그 대표적인 것이 서양 음식의 경우 후추, 한식의 경우 생강과 같은 식재료예요. 아주 조금만 더 쓰면 원식재료의 맛과는 전혀 다른 향과 맛이 나다 보니 꽤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죠.


— 아. 어렵네요. 좀 배워서 집에 가서 해 보려는 것도 저의 과욕이군요. 그냥 여기 와서 먹을 테니 알아서 해 주 세요.


준석 셰프와 성희의 사이. 식탁 위엔 깨끗한 행주 몇 장 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대화 중에 점심시간도 훌쩍 넘 겨 오후 해넘이로 가고 있었다. 성희에겐 도마 위의 깨끗 한 칼 한 자루를 조심히 다루는 준석 셰프가 계속해서 떠 오를 것만 같았다. 매주 토요일 정오 가까이만 되면, 자전 거를 타며 계속해서 속도계를 힐끗 보며 달리는 성희의 모 습도 준석 셰프에겐 떠오를 법한 대화의 밤이었다.




핫플레이스





지역 카페를 새롭게 랜딩 하는 프로젝트가 발생했다. 10 만여 주거형 아파트가 들어선 소도시 단위와 5만여 소도 시를 잇는 구간. 고속도로 사이에 새로운 마을이 들어서며 입주식 전원주택과 함께 빌리지가 형성되는 사이사이 상권을 형성한다. 상권 내로 접어드는 15만여 주민 규모의 도 시와 함께, 경부와 영동을 잇는 경기 남부 도로까지 함께 유입된다. 대형마트 몇 곳과 스웨덴 가구 공장형 마트가 들어선다. 동시에 유동인구에 불을 댕기듯 백화점 브랜드 합작으로 프리미엄 아웃렛이 이웃한다. 단지와 아웃렛 내에서 분명한 상권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많은 소비가 이루어지리라 예상했지만 토목 전문 회사의 분석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해외 유사 구조의 지역 사례를 분석해 본 결과 본원적인 생활 물품 구매 외의 여가형 실질 소비는 주변 바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 이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빌리지 사이에 지역 카페 문화 마케팅을 활성화하여 유동인구의 중간 거점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프로젝트다.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이제 1인 1가구 세 대로까지 변화하고 있는 마당에 차를 몰고 이동할 수 있는 여러 방편이 있고, 제1·제2 영동고속도로와 함께 새로 열 리고 있는 2시간 생활권의 강원도를 고려하면 자칫 빈 마 을이 되어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겁부터 덜컥 났다.


3 주가 되도록 고민했지만 별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게 마케팅 포인트이고, 인프라와 함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주변 사람들과 계속해서 이 고민을 함께하고 있었다. 보통 운동할 때에는 근력과 호흡 그리고 조향 능력에 집중하느라 다른 잡생각을 버리고 운 동 자체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버거운 프로젝트 라 그런지 성희의 마음에 계속해서 저항력 있게 날아들었다. 라이딩 후, 답은 의외의 구석에서 날아들었다.


— 음. 그래. 지난번 그 고민이 아직도 안 풀리는 거구나. 그냥 해결하려니 했는데 꽤 오래가네. 흠. 그 뒤로 나도 한 번 생각이 들긴 했는데. 자 들어 봐. 내가 장사를 오래 해 봐서 아는 건데. 내 생각은 좀 달라. 아무리 맛집들이 들어온다 한들 스타 셰프나 공장형 커피 업체가 들어오지 않는 한 사람들이 머물다 갈 곳은 아닐 거야. 네 말대로 프랜차 이즈 몇몇 브랜드가 들어온다 치더라도 대부분 경기 외곽 은 보통 본사 직영이 아닐 거야. 점주 형태로 돌릴 테니까 아무래도 점주 입장에서는 위험부담도 크지. 그러니 브랜 드 가치만 믿고 퇴직금 쏟아부어서 그곳에 점포를 쉽게 열 까?


— 그렇지? 현우 오빠가 생각해도 아무래도 무리지?


계속해서 쏟아 내는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프로젝트를 발 주한 업체로부터도 리젝트 상태였다. 이 리젝트 상태가 앞으로 2주 연속 계속되면 마케팅 컨설팅 회사 입장에선 꽤 골치 아픈 상황으로 떨어진다. 명제에서 명제를 낳고 명제를 벗어나지 못해 명제와 함께 숨을 거둔다는 일명 모래지 옥. 성희는 내심 모래지옥 상태로 빠지는 순간이 두려워 이곳저곳 상황과 함께 질문을 던지고 있던 터였다.


— 핵심은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아니라 그곳은 카페 거리이니까 팔 게 정해져 있으니 그걸 먹으러, 사러 오는 사람들은 어디 있는 사람들이냐 아닐까?


— 성희 네 말대로 고속도로, 아웃렛과 같은 인프라 상태 이면 거길 먼 길로 온 사람들이 대상은 아닌 것 같다. 15 만 소도시 입주민들이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그 사람들은 주로 경기 외곽, 그중에서도 남부에 거주하는 주거형 아파트가 주이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전원주택이라고 했잖아. 좀 더 경제적으로 넓고, 여유 있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분당이나 일산은 규모가 더 크지만 사실 경제 활동 형태나, 주거 생활 문화도 거의 다르지 않을 거 같단 느낌이 든단 말이지.


— 벤치마크를 해 보란 소리야?


— Exactly! 한데 직접 발로 뛰는 것보다 생각을 해 보 자고. 그곳엔 있는데 네가 고민하는 곳에는 없는 게 뭘까?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오갈 수 있게 하는 것.


아직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현우의 계속되는 조언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성희는 지푸라기 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오늘 라이딩도 1시간으로 줄여서 끝낸 터다.


— 현우야. 너 토목공사업자냐? 건설업자냐? 가구 디자이너냐?


— 요즘 시즌은 더운 터라 난 자전거 판매상이다 왜.


— 조언이 너무 서두가 길고 장황하잖아. 조금 쉽게 쉽게 설명해 달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듣기에는 너무 어렵다. 성희 씨도 그런 표정 같은데?


— 넌 자식아, 내가 부탁해 놓은 요리나 얼른 내놔. 입 안이 텁텁하단 말이야.


— 알았어. 알았어. 지금 썰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오늘 준석 셰프의 도마 위엔 웬 불그스레 깍둑 썬 것과 각종 야채들이 산더미다. 성희는 무엇인가 궁금하지만 지 금 거기에 집중할 수가 없다. 눈과 귀는 계속해서 현우의 설명에 꽂힌다.


— 가령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러 간다 치자. 자동차로 멀 리 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말 만날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가든가, 매우 유명한 맛집이 있든가. 하지만 후자는 너무 널렸어. 준석이가 아무리 손맛 좋은 바리스타여도 혼 자 간다고 손님들이 바글바글하진 않을 걸?


준석 셰프가 의외로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껄껄댄다. 아 무런 핀잔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에 절친 현우는 그냥 손목 들어 허공에 경례하는 듯, 한 번으로 짧게 양해를 구했다.


— 응? 강원도에 가면 테라로사, 경기도 북부에 가면 마 비노스, 서울엔 별다방이 깔렸고, 부산엔 광안대교 주변이 죄다 커피 맛집이고. 그 집들 커피가 정말 저 우주 멀리에 서 구해 온 희귀 커피야? 아니면 그 집들이 볶아 대는 콩 볶는 기계들은 죄다 금칠했나? 내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 거든. 커피 잘 내려서 그윽한 향을 전달하면서 마실 수 있도록 해 주거나, 아이스 같은 경우는 약간의 신맛을 느끼 게 해서 커피 향과 맛 그대로를 전달하면 되는 것 아닌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성희는 일 면 계속해서 빠져들었다. 3 주 연속 생각의 나래는 펼쳐지지만 다듬어지고 정리되지 않은 상황. 정교하게 다듬어야 방향성을 만든다. 방향성이 만들어져야 콘셉트를 세우고 메시지를 만들 수 있다. 묻는 이는 재촉하지 말고 답을 하 는 이에게 공손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 상권이라는 게 사람들 분위기에 휩쓸려 한 번 크게 발화했다가도, 특정 셰프의 큰 실수 한 번에 가라앉는 선 례도 많았어. 때문에 가게 점주와 무슨 오브제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특히 커피 등의 식음료, 맛있는 이탈리안 푸드나 한정식, 혹은 퓨전 요리 등의 오브제 자 체가 카페 거리 상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니었단 거지.


— 응. 우리가 별도로 제공받은 분석 리포트에서도 비슷 한 이야기가 있었어. 그래서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우 리 회사에 온 숙제고. 그 숙제를 내가 맡게 된 것이고. 그것도 3 주나 되었네.


3주간, 성희는 평일엔 거의 야근과 친구 하다시피 하루하 루를 보내게 되었고, 그래서 주말이 더욱더 가치 있는 자 신만의 시간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주어진 일을 제 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고, 답을 찾을 수 없다는 불안감에 운동 시간은 점점 줄고 있었다. 말 그대로, 다급함이 전이되어 주말 생활을 압도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연출가가 되고 싶진 않았다.


— 내가 그래서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문화, 분위기를 만드는 주변 환경이라고 생각해. 자리 잡게 될 그곳 주변에 어느 정도의 경치가 자리 잡고 있는지부터 파악해 보는 게 어떨까.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 이곳에서 커피를 들고 있다고 치자. 이 준석이네 가게에서 너와 내가 커피를 한잔 하며 같은 곳을 향해 바라보고 있지. 같은 곳. 그곳 엔 어떤 경치가 있지?


— 지금 우리가.... 음. 셰프님 등짝. 하. 아니 그리고 그 너머에. 창가. 창가 너머에... 나무와 벤치. 그리고 그 너머에... 탄천로.


하나둘씩 읊다 보니 이해가 되었다. 커피는 첫맛은 쓴맛. 그리고 잠시 향을 음미하고, 다시 쓰지만 단맛을 조금씩 느끼며 이야기를 더하다 보면 운치와 함께 매우 단맛으로 내려놓는다는 에스프레소 문화처럼. 하나하나 다시 생각해 보니 누가 오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즐기는지부터 제 대로 파악하고, 주변에 그걸 즐길 만한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다. 지금 이곳처럼 주변에 벤치가 있고, 사람들이 쉽게 즐겨 찾고 이동하는 탄천로와 같은 안온한 길이 있으며, 지금 함께하는 오직 그 사람과 온전히 이야기를 나누며 즐길 수 있는 강이나 물 그리고 산이 있는 풍경이 있는지. 그래, 그거였구나. 문화는 오브제가 아니라 사람과 그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환경도 중시해야 하는 거구나. 그게 형성되어야 상권 이 형성되겠구나.


곧장 빈 테이블로 옮겨 앉고서, 20여 분을 혼자 스마트 폰으로 적는 성희. 무엇이 큰 도움이 되었는지 연신 웃다 가 적기를 반복했다.


— 내가 뭘 잘못 말해 줘서 애가 실성한 거 같다. 어떡하지, 준석아?


— 짜식. 그러기에 내 뭐랬어. 선무당 잡듯 돌려서 이야 기는 그만하고 쉽게 설명해 달라니깐.


— 야. 난 그래도 꽤 쉽고, 줄여서 이야기했어. 내 숍에 서 이야기했어 봐. 녀석. 저녁까지 집에 못 가. 카카카카카.


— 프로젝트 방향성 키워드나, 채워야 할 방법에 대해서 바로 세웠어요. 다음 주 일하는 데 부담감이 반 이상 줄어 버렸네요. 오늘 현우 오빠 밥은 제가 살게요. 너무 고마워 요.


놀랍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준석과 현우는 몇 마디 오간 대화 덕에 뭔가 힌트를 얻어 냈다며 웃는 성희의 모 습에 그게 그만큼의 가치가 정말 있었는지 의아해했지만.


— 프로젝트 키워드는 ‘핫플레이스’ 예요. 그리고 핫플레이스의 정의부터 내려서 하나씩 채우고, 새로 들어서는 카페거리 가장자리 쪽에 탄천과 산책로가 함께 이어지는 길을 만들고 안내판, 가판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으로 채우려 해요. 말 그대로 몇 걸음 옮기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가 보면 몸과 마음을 모두 채울 수 있는 핫플레이스가 있다는 것.


— 오. 짧은 시간에 빠른 이해력인데? 얼개가 대충 맞아 들어가네? 내 생각도 그거였어. 한번 회사에 디밀어 보고 효과가 있는지 나중에 보고 좀 해 줘. 특히 새로 타이어나 브레이크 패드 같은 거 나왔으니 듀라에이스급으로 비싸게 교체할 때 와서 보고해 주면 정말 좋겠다.


— 공치사 확실하게 하는구먼. 현우야. 너 그러다 엉덩이에 털 난다. 성희 씨,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상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이런 힌트를 얻었다는 건, 성희 씨 다니는 회사에서 주장할 만한 근거 정도라도 되었으면 좋겠네요.


—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요.


준석의 경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리의 화려함이나 맛이 압도적이라 할지라도 그건 한철뿐이었다. 새로운 것, 새로운 소재가 아니라 전통적인 식재료의 맛 그대로를 가 감 없이 어떻게 살려 내는가가 오히려 중요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셰프의 이름을 알리는 정도였지 가게를 운영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고, 그러한 가게가 모인 상권이라 함은 또 다른 사람들의 몫이었다. 즉,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성희 씨가 표현한 핫플레이스로 남기까지는 꽤 복잡한 요인이 있었다. 예로서, 그들은 우선 아시아계 사람들에겐 냉담했다. 요리학교 알마 시절부터 느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면 마스터 셰프 선생들은 가차 없이 아침상을 내놓으라는 듯이 몰아붙였고. 기본양념과 아침에 걸맞은 브레드 요리를 내어놓으면, 오후 2시 전까지 기본 요리 방법과 칼질 그리고 주방 도구 다루는 법에 대해 쉴 새 없이 연습하는 것만 1년. 이탈리아 친구들은 빠르면 1년, 늦어 도 1년 반 만에 마스터 셰프의 추천서를 받아 밀라노나 로마까지 바로바로 취업 알선이 이어졌지만 내겐 그렇지 않았다. 핑계도 다양했다. 손이 작다는 둥, 향신료 냄새를 제대로 맡지 못한다는 둥. 좀 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게 이 유였다. 하지만 굴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베로나를 거 쳐 로마로 간 이후부터였다. 기본 셰프 자리까지는 승진하는 게 보였지만, 마스터 셰프는 꿈도 못 꾸었다. 속된 말로 더럽고 치사한 차별이 많았지만 참아야 했다. 내 직업으로 가는 길이니, 어련히 맞이하는 과정이리라 생각했다.


여덟 살 때부터 요리를 했다는 마스터 셰프 콘탈도는 제 자를 두지 않기로 유명했고, 그렇다 보니 식당 일을 배우 기만도 벅찼다. 지금은 일흔 살의 노장 할아버지이지만, 예 순 중반 때까지만 해도 이분 불호령 한 번에 식당은 떠나갈 듯하였고 우린 떨기에도 바빴다. 야생 식품과 버섯을 매번 칭송하며 제대로 칼질하고 다루라는 불호령에 잠 못 이룬 채 새벽녘마다 내 자비로 그 비싸디비싼 치즈와 버섯을 구해서 연습하기를 수개월. 그러고 나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리사들을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다그쳐서 만들 어진 식당의 유명세는 아니었다. 마스터 셰프의 경력과 그 경력에 걸맞은 책이 만들어졌고, 그 책을 근간으로 하는 콘텐츠를 PD들이 제안하여 전국에 유명세를 탄 TV 미디 어 쇼에 출연함과 동시에 미슐랭 가이드에 걸맞은 별 세 개를 따내자 그제야 알려진 식당이 되었다. 이 정도가 되 어야 각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올까 말까였다. 더불어 다양 한 요리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강연이 이루어지면서 셰프 로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각종 콘텐츠 코디네이터들이 펼쳐 놓은 로드쇼에 맞추어 거리가 알려지고 관광지와 함께 묶이면서 유명한 친구들이 잠시 방문하면, 그 광경이 함께 미디어를 타고 알려지기 시작해서 상권이 형성되는 형국이었다.


일본은 조금 달랐을까? 마스터 셰프의 조언에 따라 일본 도쿄로 가 보니 거긴 더욱더 심한 경쟁 시장이었다. TV로 드쇼가 트렌드였고, 이 방송들을 타지 못한 셰프들은 아쉬 운 모습 일색이었다. 오죽하면 요즘 한국에서 자주 나오는 요리 관련 프로그램이나 경연대회 TV 프로그램이 일본에 선 이미 2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방송될 정도였 다. 그렇다 보니 지금도 알려진 마스터 셰프들은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교토 등지에서 다양한 분점을 운영하고 있고, 이들은 모두 예순에서 일흔의 연령대다. 이탈리아 장인들의 음식점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좀 더 오래된 기간의 핫플레이스들이 많다는 것, 즉 전통과 역사를 그대로 유지하며 2~3대에 걸쳐 전수되는 음식점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가령 돈가스와 카레만 가지고도 도쿄 안의 유명한 핫플 레이스로 손꼽히는 곳이 많다. ‘저팬 돈카츄’와 같은 곳은 돈가스 하나로만 50년을 장사하는 곳이다. 풍성한 양배추와 매우 두껍고 촉촉한 등심으로 유명해서 후쿠오카나 오 사카 같은 곳에 이렇다 할 분점은 없지만, 돈가스는 등심으로 두꺼워야 한다는 속설이 만들어지며 카피캣들이 많아질 정도다. 약재를 이용한 특이한 카레를 만드는 도쿄 카 쿠라 약선 카레와 같은 집도 비슷하다. 호박, 당근을 달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오징어 먹물을 이용해서 검은색에 가까운 카레를 만들어 내는 집으로 유명하다. 조토카레 본 점의 경우 생빵가루 튀김 위에 카레를 구수하게 올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달걀노른자를 잘 활용해 묵직한 맛을 즐기게끔 하기로 유명하다. 사시미 나스시 그리고 빵과 튀김, 우동이 유명한 나라 일본은 더 다양한 핫플레이스들이 도쿄 시부야, 이케부쿠로 등지에 몰려 있다. 이런게 몰리며 큰 상권을 이루곤 했던 과거 기억을 떠올려 성희 씨에게 도움말을 전하는 현우에게 한 마디 더 보탰다.


— 제가 볼 땐, 그런 핫플레이스들이 좋은 교통권과 함께 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 음식의 다양한 맛집이 골고루 지역에 분포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아 물론 초기엔 어렵겠지만 한두 집이 알려지기 시작하면 늘어나기 시작할 것이고요. 굳이 카페 거리라 해서 커피만 있는 게 아니라 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상권으로 다양한 음식점이 들어서는 것이 장기적인 순서가 아닐까 싶군요.


— 이 자식 장사꾼 다 됐네. ‘나도 좀 그런 데로 데려가 슈.’를 뭘 그리 길게 돌려서 이야기하나.


— 아. 아냐. 난 여기가 좋아. 이모님과 한 약속도 있고.


약속이 무엇일까 성희는 궁금했다. 혹 지난번 이야기한 수진 이모님이나 준석 셰프의 가족사와 관련된 것일까. 아 니면 다른 이유일까. 물어보고 싶은 찰나 오히려 준석 셰프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 성희 씨. 라이딩하실 때에도 핫플레이스가 있지 않나 요? 자주 가는 곳이나, 라이더들이 모이는 곳? 혹은 성지라 불리는 곳들이요. 알려진 좋은 코스라든가요.


— 많죠. 서울, 경기권에 핫플레이스가 넘쳐 나요. #그중 TOP 10만 뽑아 보자면요.


— 저, 이거 드시면서....


오늘의 점심은 현우가 별도 주문한 덮밥이었다. 그중에 서도 참다랑어를 올려 톡 쏘는 듯한 상큼한 맛에, 시원한 식감으로 즐기는 참치회덮밥.


쌀을 깨끗이 씻고 밥을 얹은 상태로 맞이한 두 명이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고추장에 물엿과 식초 그 리고 마늘 잰 즙을 넣어 톡 쏘되 흥건하지 않을 밀도로 준 비. 미리 주문해서 받아 둔 다랑어 아카미에 해당하는 등 살 적신과 속살을 얼린 상태에서, 해동을 위해 소금물에 씻은 후, 해동지로 20 여 분간 말린다.


그 사이 무와 오이, 양배추와 약간의 싱싱한 미나리를 준비한다. 성희 씨가 은근슬쩍 보더니 무슨 산더미 같은지 다시 본인들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릇에 담아 가지런히 놓고. 초고추장과 참기름은 원하는 만큼만 첨가해 드시라 고 식탁에 함께 올린다.

그러나 올려놓으며 던진 내 질문에 성희 씨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 쉴 새 없는 설명에 기가 찰 정도였다. 준석, 현 우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만 보았다. 다행이다. 밥 이 살짝 식어야 제맛인 참치회덮밥이니. 밥알에 알싸하게, 미리 살짝 식초를 더 뿌려 둔 이유가 적통 한 듯한 느낌. 아 이걸 언제 드시려나.




#라이딩 일기: 그중 TOP 10



1. 한강과 ‘반지’


총길이 50~80km. 평균 경사도 0~2% 평지 수준. 반포 대교에서 잠실철교 사이가 가장 기본적인 코스로 한 바퀴 도는 데 약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 서울 하 면 남북을 관통하는 강으로 한강이 유명하죠. 이 한강을 끼고도는 자전거 도로 인프라는 꽤 잘 만들어져 있어요. 그중에서도 핫플레이스는 ‘반미니’로 불리는 라이더들의 성 지. 미니스톱이라는 브랜드의 편의점 주변으로 라이더들이 잠시 쉬어 가는 곳으로 유명해요. 한데 2019년 기준 GS 마트로 변경되었고 지금은 그래서 ‘반지’ 혹은 ‘반지에스’로 불리는 곳입니다. 자동 자판기로 끓이는 라면이 이곳으로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서쪽으로는 아라뱃길까지, 동쪽으로는 양평에서 동해까지 길게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타기 위해 항상 들러 가는 중앙 지점으로 유명해요. 무엇 보다 그해 유행하는 자전거나 복장의 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죠. 관련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모델로 서는 라이더들도 자주 방문하는 코스.


2. 남북(남산과 북악 팔각정)

총길이 40km. 수도권 중앙에 위치한 업힐 코스로 유명한 곳. 우선 남산 국립극장 부근에서 출발해서 평균 경사도 6.3%, 거리 1.8 km로 초중급에 해당하는 업힐을 오르게 됩니다. 보통 15~20분 정도면 대부분 오르는데 남산 N타워 바로 아래 곰인형들이 들어서면서 유명한 핫플레이스가 돼었지요. 남산 N타워 지하층에 해당하는 곳과 연결되어 있는데 편의점이 있어 쉬어 가기도 좋고, 서울 한강 이남이 한눈에 들어오는 뷰가 장관이라 라이더들이 많이 촬영하고 가는 핫플레이스. 남산에서 남산도서관 방면으로 일방통행 길을 지나 숭례문, 광화문을 지난 다음 청와대 길을 지나 서 오르는 북악 팔각정 순환 도로. 평균 경사도 6.4%의 남 산과 유사하지만 거리가 2.8km로 남산보다 1km 긴 업힐을 오르는 코스. 북악 팔각정 뒤 편의점 주변에 자전거 거치 대가 비치되어 있어 이곳을 거쳐 잠시 쉬고 다시 내리막을 달리는 성지로 유명해요. 북악 팔각정에서 다시 다운힐로 내려오면 돈가스, 만두, 피자 등 다양한 맛집이 있고요. 라 이더에겐 탄산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집들도 많아서 유명합니다.


3. 북서부 헤이리


방화대교 아래 탄천로를 출발해서 파주 출판단지를 지나 헤이리 마을을 다녀오는 코스. 평균 경사도가 0.1~1% 미만으로 거의 평지를 달리는 스프린트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초중급자에게 신나게 달려 볼 수 있는 코스로 유명해요. 헤이리 출판단지 마을이나, 커피숍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잔 후 다시 돌아오면 대략 4시간 정도면 왕복 가능한 곳입니다. 평지 중에서도 차가 거의 없고, 도로면이 평평한 편이어서 라이더들에겐 많이 알려진 코스입니다. 그렇다 보니 혼자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 팀팩 라이딩하는 코스로 많이 활용되기도 하지요. 한강 서부에서 바라보는 일몰을 뒤로하고 달릴 때의 석양도 꽤 운치 있는 곳으로 유명해요.


4. 동부 5고개


경기도 양평의 양서면과 서종면을 지나 유명산을 경유해 돌아오는 순환 코스입니다. 산이나 고개로 불리는 업힐 전 문 코스로 중급 이상에게 적합한 난이도가 있는 코스예요. 총길이가 55.8km밖에 되지 않지만 고개 다섯 개를 넘는 누 적 고도가 총 1,200m에 가까워서 여간 마음먹지 않으면 쉽지 않은 코스죠. 힘과 경력과 실력 차이에 따라 3시간에 서 5시간 가까이 소요되기도 해요. 벚고개, 서후고개, 명달리고개, 다락재, 유명산까지 총 다섯 개의 업힐이 유명한 데 이 중에 마지막 유명산의 경우 평균 경사도는 4%로 낮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거리가 13.2km나 되기 때문에 꽤 긴


구간 지속적으로 힘을 써야해서 난이도가 있어요. 보통 봄가을에 벚나무와 가을 단풍을 배경으로 라이딩하기 꽤 좋은 코스인데 차량 이동도 많지 않아서 안전하게 탈 수 있어 더 각광받는 핫플레이스예요.


5. 동남부 분원리


경기 동부 위쪽에 동부 고개가 있다면 바로 남쪽에는 분원리가 있어요. 총 40 km 코스로 보통 퇴촌면에서 출발해서 청평호를 끼고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며 평지를 탑니다. 중반 이후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으로 나오는 낙타 코스 가 유명하죠. 두 시간여를 열심히 운동한다는 목표 아래 달리다 보면 어느덧 칼로리는 최소 600 이상을 소모하고, 경치를 구경하다가도 힘을 써야 하는 업·다운힐이 나타나 서 쉽게 지치기도 해요. 유명 핫플레이스로 분원리 코스 중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홍가네 슈퍼가 있어요. 말 그대로 홍 씨 성을 쓰시는 쥔장이 운영하시는 슈퍼인데, 처음엔 작은 슈퍼였다가 지금은 건물까지 새로 지은 유명 핫플레이스. 보통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먹곤 하는 곳인데, 한둘 이 아니라 수십 명의 팀들이 자주 다녀가니 자전거 거치대 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기도 해요. 각종 자전거 장비들의 홍보장이 되기 시작했고, 유명 경기도 팀들이 다녀가는 곳이기도 해요. 분원리를 지나 평균 경사도 8.3%의 1.8km 구간 업힐 항금리를 지나서 1km 거리의 평균 경사도 7%의 짧지만 높은 염치고개를 넘어 돌아오면 순환 원을 만들게 되죠. 개인적으론 서서히 오르는 항금리보다는 급하게 오 르는 염치고개가 염치없이 힘들게 만들곤 해요.


6. 동남부 멧돼지


일명 멧돼지 코스로 불리는 총 90km 코스. 실제 모양을 보면 멧돼지 모양과 흡사해서 그렇게들 불러요. 잠실 탄천 합수부로 출발해서 한강 이남에서 하남을 지나 팔당까지 계속해서 한강 변을 달리게 되는데, 하남 부분의 직선 주 로만 지나면 그 뒤로는 꽤 재미를 느끼게 되는 코스로 유 명해요. 팔당을 지나자마자 광주로 들어서는 작은 업힐을 한두 개 오르고 난 후 남한산성을 오르게 되는데, 총길이 7.1 km에 평균 경사도 4.5%여서 초급도 집중하면 쉽게 오 를 수 있어 좋아요. 남한산성의 나무 그늘 길 사이를 오르 고 나면 여러 맛집들을 만날 수 있는데 막국수와 순두부 집들이 유명하고, 비빔밥도 맛집들이 많이 있어 라이더들 의 핫플레이스로 유명해요. 이후 복정동으로 가는 다운힐 은 힐링 코스로 유명하고 다운힐을 마치고 나면 송파동을 지나 다시 탄천 합수부로 연결되는 탄천로를 이용할 수 있어 안전하고 편한 코스로 알려져 있어요.


7. 남부 분당 나비 코스


서울, 경기도 남부 쪽의 성남을 지나 분당을 중심으로 해서 동서남북으로 여러 개의 업힐을 타 볼 수 있는데 이 걸 다 돌고 나면 마치 나비의 모양과 같다 해서 나비 코스로 불리죠. 보통 동쪽의 갈마치고개와 강남 100, 200, 300이라는 세 고개를 돌고 나면 분당 서현 부근에서 잠시 쉬 고, 서판교 쪽으로 넘어오게 돼요. 이후 다시 하오고개, 여 우고개, 말구리고개를 넘게 되는데 평균 경사도 6%대에 길 이 1~4km 내외까지 꽤 다양한 고개들을 오르게 되어 있어 긴 지구력이 꼭 필요한 중급 이상의 코스로 봐야 하고요. 4시간 정도를 모두 돌고 나면 예쁜 나비 모양을 그리게 되어 성취감이 크죠. 제가 주로 돌고 오는 코스로 준석 셰프님 가게가 거의 중앙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보통 강남 300고개를 넘고 난 후, 하오고개가 있는 운중동 부근에 쉬어 갈 수 있는 편의점이 있어요. 자전거 거치대가 여 유 있게 구비되어 있어 편해요.


8. 서울 남부 하트 코스


멧돼지 코스처럼 모두 돌고 나면 그 모양이 하트 모양 같다고 해서 하트 코스예요. 총 65km 코스로 큰 언덕은 별로 없고, 주로 평지 코스죠. 그래서 장거리 연습용 코스로 많이 활용해요. 잠실 탄천 합수부나 반지에스에서 출발해 서 양천·구로 쪽의 탄천을 지나 광명과 안양천을 지나서 과천을 경유. 다시 서초구를 거쳐 강남구로 이어지는 자전 거 탄천로를 주로 경유하는 곳이에요. 도심 위주로 돌다 보니 곳곳에 중간 쉼터가 많고, 경유하면서 편의점도 쉽게 쉽게 사용할 수 있어 많이들 도는 핫플레이스 코스죠.


9. 아라뱃길 코스


서울 북서쪽의 평지를 달리는 코스로 헤이리가 있다면, 서남쪽에서는 바다까지 달리는 아라뱃길 코스가 유명해요. 총 65km 코스로 성산대교 부근에서 출발해서 김포 한강갑 문까지 달려요. 계양대교, 사천교 등 코스 가까이에 편의점 들도 많아 쉬어 가기도 좋고요. 쉼 없이 한 번에 달리려다 가 바람에 당해서 봉크 오기 전에 쉬어 갔던 곳이기도 해 요. MTB를 타고 여행 삼아 서해 앞바다를 보러 가시는 분 들이 자주 애용하는 코스이기도 하죠.


10. 경기·서울 북부 장화 코스


역시 모두 돌고 나면 장화 모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코스예요. 코스 중간중간 맛집들이 알려진 지역들이라 힐링 라이딩 코스로 유명하기도 해요. 총 80km 정도이고, 광릉을 지나 의정부까지 가면서 200m 정도의 업힐을 마치 고 나면 계속해서 다운힐 혹은 평지여서 초급자들에게도 힘만 받쳐 준다면 좋은 순환 코스죠. 보통 구리에서 출발해 왕숙천을 지나 광릉수목원에 이른 다음 한 번 쉬어 가 요. 주변에 맛있는 숯불고기 집도 많고요. 광릉수목원의 우 거진 초원길을 지나다 보면 잠시 세우고 연신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광경을 맞이하게 되어 유명해요. 시 간이 맞는다면 의정부에 들러 점심으로 부대찌개를 먹는 것도 추천하고요. 이후 쭉 평지 혹은 경사도 낮은 곳으로 다운힐을 하며 도봉구를 지나올 때 주변의 도봉산, 멀리 백운대까지 보이는 광경이 인상적이고요. 중랑구에서 성동 구로 이어지는 탄천로를 계속 타고 내려오면 드디어 장화 모양의 코스 완성!


— 어떤가요. 이 외 전국 각지에 꽤 많은 핫플레이스와 코스가 있지요. 저는 유럽의 길거리에 버금가는 자전거 도로를 대한민국이 만들어 냈다고 자평하는 사람 중 하나인 데요. 매년 한 코스 한 코스 가다 보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게다가 서울, 경기 외에 강원도, 경상도, 서해의 다양한 해변, 남해 여수 코스 등 가 볼 만한 곳이 너무 나 많고, 수려한 금수강산을 자랑하는 나라이니 행복 라이딩, 힐링 라이딩 국가입니다. 바다 건너 제주도와 울릉도 해변 라이딩 코스는 아스팔트 위 모든 코스를 파란색 라인으로 가이드까지 해 두어 초행길이라도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는 좋은 나라랍니다. 아! 준석 셰프님이 자전거만 타 시면 모든 코스에 끌고 다니고 싶네요.


— 성희야. 나. 나는?


— 미안. 현우 오빠는 오빠 가게 팀이랑 다녀.




(8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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