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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Mar 24. 2024

우상

자전거 타는 여자, 요리하는 남자


‘딸칵. 턱. 드르륵.’


평일. 그것도 오후인데. 가게 문을 열고 성희 씨가 들어 선다. 표정이 좋아 보인다. 가게 문 옆엔 자전거가 세워져 있고 역시나 운동복 차림이다.


— 어서 와요. 아니, 어쩐 일이에요. 평일 이 시간에. 오늘 출근 안 했어요?


— 지난번 프로젝트 방향성 수립하고 보고를 했는데 제대로 드라이브 걸자는 피드백이에요. 한마디로 컨설팅 포 인트가 먹힌 거죠. 그래서 받았습니다. 포상 휴가!


— 아. 군대에서나 들어 보던, 포상 휴가군요.


— 주말까지 고생했다고 하루 쉬라고 해 준 것뿐이에요. 다른 포상은 없고요. 모처럼 날씨도 맑아서 저 멀리 양수, 두물머리까지 100km! 채우고 왔네요. 여름도 끝나 가는지 오늘은 바람도 더 시원해진 듯하고요. 막 배가 고파와요. 밥 주세요.


— 알겠어요. 잠시만요.


— 아, 오늘은 오더가 있습니다! 지난번 그 회덮밥 맛있던데 그거 또 주세요.


— 아이고. 네. 한데 어쩌죠? 그날은 현우가 미리 언질을 주어서, 단백질 보충에도 좋은 속살과 등살만 별도로 주문 해서 미리 챙겨 두었었는데요. 오늘은 아카미 살로 별도 준비를 해 둔 것이 없네요. 참치는 그날그날 맛도 달라질 수 있어서 오래 묵혀 두지 않는 편이라서요.


— 아, 그렇군요. 입 안이 텁텁해서 시원하면서도 상큼한 걸 원했거든요.


— 음. 잠시만요. 그렇다면! 비슷한 음식을 준비해 드리죠.


갑자기 준석 셰프가 주방 아래쪽으로 고개를 숙여 하부 장에서 뭔가 길고 묵직한 걸 꺼낸다. 그러곤 연신 칼을 겹치고 비벼 댄다. 칼날을 날카롭게 다그치는 듯하다. 양손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성희의 눈을 마주치곤 슬며시 웃는다. 갑작스러운 미소에 살짝 놀랬다. 아니, 왜 웃는 걸까.


— 아. 놀라실 필욘 없어요. 오늘 해 드릴 요리에 사용할 칼이 좀 낯설게 다듬어진 듯해서 미리 좀 다듬는 거예요. 블레이드 타입의 스틱이에요. 보통 칼 가는 건 돌로 된 걸 쓰는데 주저앉아서 갈고 있으면 주방 바닥의 위생에 영향이 있을 듯해서 때때로 이걸 쓰죠. 사선으로 이 각도를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팔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 모습이 성희 씨에게 우습게 비추어질 듯싶어서 저도 웃은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건가. 내 웃음에 오히려 성희 씨는 놀란 것 같아,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 앞으론 미리 설명을 하고 움직여야겠구나 싶다. 어설픈 시도였으니 그래, 얼른 음식 설명으로 가야겠다.


— 지난번 참치회 덮밥 드실 때 식감이 어떠셨어요?


— 사실 참치회라고 알고 먹으니 그런 건데 돌이켜 보면... 음... 그냥 시원했고, 담백했어요. 식감만으로는 고기 먹는 느낌도 있었어요. 아 이렇게 표현력이 뒤떨어져서야. 마케팅이 제 업인데, 반성할게요.


— 제 생각엔 정확히 표현하셨는데요. 약간은 단백질 보충을 감안하기 위해 지방질이 많은 뱃살이 아니고 등살과 속살을 사용해 횟감을 사용한 거예요. 운동하고 오셨으니까요. 자 오늘도 그래서 준비합니다. 기다려 주세요.


오늘은 한식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밥과 고기의 조합. 다만 탄수화물은 조금 줄이면서 단백질 보충에 포인트. 시원하면서 달달한 식감을 원하니 그에 맞는 요리를 대령해 보자.


가장 먼저 하부장 옆 냉장실에 보관한 소고기 엉덩이 부위 살들을 꺼낸다. 잘 갈아 둔 칼로 소 엉덩잇살 안쪽의 우둔살(약 100g)을 잘라 낸다. 그리고 바로 옆 길게 늘어진 홍두깨살을 100g 정도 잘라 내자.


홍두깨살은 그대로 접시 위 키친타월을 받쳐서 식탁 위에 올려 두고 공기에 숨 호흡하게 노출시키자. 그래야 좀 더 부드러워질 테다.


그리고 밥. 100g 수준으로 쌀을 씻고, 솥에 밥을 짓되, 대가리를 없앤 콩나물을 다듬어 두고, 날카롭게 간 칼로 편채를 썰자. 자. 우둔살아, 예쁘게 세로결 따라서 갈라지자. 그래야 너의 부드러운 식감이 밥과 어우러져 발현된 아밀라아제와 춤추리라.


간장, 다진 파·마늘, 참기름으로 살짝 양념을 만들어 주고. 고기에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솥에 씻은 쌀, 물기 많은 콩나물이 들어가니 물의 비율은 1:1로 넣고, 그 위에 양념 고기를 얹는다. 자 이제 10분만 그릴의 불은 중불로.


콩나물밥 앉히는 데 10분이 빠르게 흘렀다. 다시 밥이 되는 10분간 빠르게 마무리하자.


빠르게 재료 준비! 마늘은 편 썰어 두고, 파는 함께 다져 두고. 잠시 흑설탕 출동!


배를 얇게 채 썰어 두자. 잠시 배 위에 흑설탕을 버무려 두었다가 물기만 제거하자. 설탕물에 넣곤 했는데 물기 빼 기에 시간만 많이 갈 뿐이지 담백한 식감은 사라져 버린다. 핏물 제거용으로 키친타월을 받쳐 둔 홍두깨살을 얇은 폭 으로 고깃결과 반대 방향으로 채 썬다. 채 썬 홍두깨살 고기 위에 살짝 몇 꼬집 흑설탕을 뿌려 둔다.


자 이제 한국인의 대표 양념 소(금)설(탕)파마(늘)후(추)깨 참(기름) 몇 꼬집, 한 스푼 넣어 양념을 만든다. 양념의 마 무리엔 새우젓을 살짝 넣어 깊은 구수함을 더하자.


양념을 홍두깨살 채 썰어 둔 고기 위에 뿌려 버무리면 된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


하나. 절대 손으로 주물거리거나 비비면 안 된다. 손가락만 살짝 이용하거나, 가급적 손보다는 긴 요리용 장젓가락 을 활용하여 버무리자. 손의 온도는 고기 맛을 변하게 한다. 손바닥 표면의 온도는 높다. 손바닥으로 버무리는 바람에 고기 표면이 약간 변색되어 일본에서도 메인 셰프들에게 그렇게 욕을 먹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흠칫 헛웃음이 나온다. 접시 위에 데코하고 잣을 올리자.


콩나물밥에 콩나물이 찢어지지 않게 조심히 밥을 뜨고 한 공기 정도 올리자. 그리고 멀찌감치 육회를 낸다.


— 자, 오늘의 맛있는 밥 한 끼 대령이요. 콩나물밥과 육회입니다. 콩나물의 물기와 함께 씹으시기 편할 거고요. 말씀하신 달달하면서 시원한 육회의 식감이 지난번 참치회 덮밥과 닮았을 겁니다.


— 아, 그래요? 오늘도 정말 맛있게 먹겠습니다.


숟가락을 들며 웃는 그녀의 표정이 좋다. 나도 모르게 설명을 더한다. 다만 성희 씨가 부담스럽지 않게 조용히. 그저 그녀의 식사에 조금의 양념처럼 느껴지길 바라며. 손가락이나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사용하지 않는 육회 조리법. 고기 표면이 버릇없이(?) 익어 버리는 불상사를 떠나 함유된 비타민에도 영향 주지 않고 섭취하기에 좋은 음식이다. 익을수록 질겨지므로 매우 조심할 부분이리라. 원래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진 음식이지만, 일본으로 넘어가 한때 유 행하다 일본은 다시 어패류가 강조되면서 현재는 잘 만들지 않는 음식이다. 그저 일본 내 한식당에서나 가끔 선보 일 정도. 우리나라 대표 음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게 소고기 외에도 다양한 고기 살로 회처럼 편을 뜨거나 채를 썰어 자주 먹는 음식이다. 담백한 맛을 위한 양념 위주이고 약간은 쓰거나 강한 생강을 더할 때에는 그 양을 최소 화하며 겨울과 같은 때에는 온도를 생각해서 가염하기도 한다. 과일 중 배를 활용하는 것은 그만큼 연한 식감을 그 대로 유지하기에 더 좋기 때문이고, 강하지 않은 첫맛의 인상을 유지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 네, 맞아요. 부드럽고 시원한데 달달해서 힘이 보충되 는 느낌이네요. 미식가와는 거리가 먼 아마추어 입이라서 그런지 정말 지난번 참치회 덮밥에서 느낀 시원한 식감도 느껴지고요.


— 《어우야담》에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에 주둔했던 중 국군이 우리가 육회 먹는 걸 보고 야만인 취급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만큼 역사도 오래된 음식이기도 하지만 우리 문화에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이기도 하 지요. 긴자를 기점으로 미슐랭 3개까지 받은 초밥집 시야야바시 지로라는 집이 있어요. 오노 지로 선생님의 초밥집. 스시 하면 당연히 다랑어나 여타 생선, 어패류 위주죠. 그런데 최근엔 잘 사용하지 않는 육회를 재료로 초밥이 만들 어지기도 해요. 한국으로 건너와 우리 방식으로 만들어진 육회 스시가 다시 도쿄로 건너가 유행했던 적도 있고요. 그만큼 육회는 스타 셰프들에게 있어서도 함께하는 맛 좋은 음식이기도 해요.


— 오노 지로... 아, 미스터 초밥왕으로 불리는 그분이시죠? 만화 본 적 있어요.


— 맞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나이인데도 예순 살에 가까운 아들 둘에게 초밥을 전수하시죠. 일전에 설명해 드린 TV 쇼보다는 맛과 전통으로 승부하신 분이에요. 초밥에 관련된 열 권이 넘는 저서를 저술하기도 하셨죠.


— 이탈리아나 일본에 계시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셨나 봐요.


— 네. 요리사라면 당연히 그래야죠. 장인들의 음식을 맛 보지 않고서 어찌 배운다 하겠어요. 특히 연세 많으신 분 들의 장인 정신은 요리사라면 더 필요해요. 당연히 경험해 보거나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배워야 하는, 마치 TV 쇼에 나오는 선망의 대상인 연예인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연예인 같은 스타 셰프들. 기억 속에 많은 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80년부터 자체 식당을 하다 퓨전 스타일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식당을 개업하고, 계속해서 퓨전 요리를 개발하고 있는 모리모토 마사히루, 71 세로 일본 전통 요리와 중남미 식재료를 혼합해 유명해진 식당의 노부 마쓰히사.


일본 요리 배틀 TV 쇼 〈아이언 요리사〉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지긴 했지만 65세 때까지 다양한 요리를 선보인 미치바 로쿠사부로 같은 일본인 요리사들의 장인정신은 실로 배울 만한 가치 그 자체다.


제이미 올리버라는 요리사의 스승으로 8세에 요리를 시작해서 71세까지도 계속해서 요리를 만들고 계신 제나로 콘탈도 셰프. 이탈리아 음식 문화에 걸맞은 전통적인 야생 식품과 버섯을 가장 잘 다루는 분이시다. 이탈리아 국민 요리사로까지 불리는 카를로 크라고 선생도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아직도 밀라노 시내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며 새로운 요리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쪽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된장과 한정식을 응용해 리소토에 반영해 낸 음식을 감명 깊게 맛보았던 경험이 있었다.


한 분 한 분 이 스타 셰프들은 장인 정신과 인내 그리고 본인의 이름을 내건 전통 있는 식당으로 흔들림 없는 자신 들만의 길을 가고 있는 분들이다. 나도 그들에게 받은 영감을 그대로 이어 내 이름을 건, 전통과 퓨전을 적절히 응 용하되 한국인의 맛있는 밥을 온전히 담아낸 나만의 전통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그게 목표다.


— 이런. 준석 셰프님 생각보다 뜻이 깊은 분이셨네요.


한참을 설명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나의 꿈까지 드러냈다. 잠시 성희 씨에 대한 편안한 느낌이 이렇게 까지 자라난 건가 싶어 헛웃음이 나 버렸다. 빨리 화제를 돌리자.


— 성희 씨는 어때요. 안장 위의 스타들도 많지 않아요?


— 안장 위의 스타? 그건 내가 더 잘 알지. 나도 밥 주라. 같은 걸로. 나 육회 하면 그냥 댄싱 친다.


어느새 들어와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 이상향이나 꿈과 관련된 이야기의 나래를 신나게 펼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연신 격앙된 톤 앤 매너로, 이 가게 안엔 온통 성희 씨와 나 둘만 있는 것처럼. 가게 안팎을 오가는 사람들은 일절 신경 쓰지 않은 채.


— 어. 언제 왔어? 그래, 잠시만.


— 웬일이야? 휴가?


— 네. 현우 오빠 덕분에 지난번 프로젝트 방향성 잘 잡 았다고. 하루 쉬게 해 주네요.


— 그래? 문화. 핫플레이스? 뭐, 여하튼 너도 프로젝트 장사는 네 장사이니 잘했을 거라 생각은 했어. 잘되었다니 너무나 다행이네. 오늘 밥 사.


— 그래요. 지난번에 밥 사기로 했으니. 한데 안장 위의 스타? 단연 피터 사간 아닌가요? 슬로바키아 출신. 청소년 시절부터 안장 위에 올라서 MTB부터 다양한 대회를 휩쓸 었고. 투르 드 프랑스에서만 17 스테이지를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죠. 맨날 그린 저지를 차지하다 보니 그 눈도 연녹 색처럼 보여서 멋있고요. 각종 팀으로부터 초대도 받고요. 스페셜라이즈드, 피터 사간 스포츠 글라스라 불리는 100% 글라스까지. 다양한 제품을 스폰받는 황태자 중의 황태자. 거기다 잘생기기까지. 연봉이 70 억에 이르고.


—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 1등만 좋아하는 자세 난 고쳐야 한다고 봐. 그 외에도 많은 선수가 있지. 하지만 이제 신예를 봐야 한다고. 서른 살 넘은 피터 사간이 누적 우승이야 많다 쳐도 어쩌면 이제 지는 별일지도 몰라. 신예로 떠오르는 선수들을 보자고. 에간 베르날이나 줄리앙 알라 필립을 보자고. 작년부터 웬만한 리그 스테이지는 싹쓸이 하다시피 하잖아? 스물여덟 살인 줄리앙 알라필립은 업힐이면 업힐, 평지면 평지, 그냥 공격적으로 어택해서 포인트를 얻어 내고 투르 드 프랑스 같은 대회는 싹쓸이하듯이 씹어 먹는다고. 올라운드 타입이면서 매우 공격적이어서 요새 매우 인기가 많지. 거기다 잘생겨서 프랑스인들에게 꽤 많은 사랑을 받지. 2019 년 대회에선 프랑스 대통령까지 와서 끌어안고 축하해 줄 정도였다고. 에간 베르날. 가장 장래성이 높다고 봐. 23세밖에 안 된 신예고. 무엇보다 가장 유명한 팀 중 하나인 이네오스를 이끌 스프린터로 꼽히지. 콜롬비아 출신으로 투르 드 프랑스, 스위스를 우승하고, 파리에서 니스 대회까지 우승했어. 되게 촌스럽게 생긴 것 같아도 인기는 많아. 콜롬비아 고지대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서 산악자전거로 시작한 친구인데 그렇다 보니 시골에서 용 난 선수로 불리지. 투르 드 프랑스 대회 우승 후엔 자기나라 전세기를 받아서 입국 환영회를 할 정도였다고.


— 줄리앙 알라필립이 잘생겼다는 건 인정. 하지만 산악하면 또 다른 인물이 있죠. 나이로 킨타나! 클라이머 중의 클라이머. 산악 구간을 달리며 인간의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 준 산증인이죠. 역시 판자촌 출신이지만 성공해서 연 봉이 190만 유로. 25억이 넘는다고요.


— 좀 노쇠하긴 했어도 역시나 건재한 노장들도 있지. 게 런트 토마스와 크리스 프룸. 둘 다 영국 사이클 선수로서 유명하지만 한 팀에서 보여 주는 협력과 리더십도 멋진 친구들이지. 영국 BBC 가 매년 올해의 스포츠 선수를 선정하는데 영국에서 그 인기 많은 톱 스포츠 F1 레이싱 선수들을 제치고 올해의 스포츠인에 선정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고. 이 친구 사생활도 매우 깨끗해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태도도 멋져 보이지. 크리스 프룸. 한국에도 여러 번 방문했는데 이 친구 성실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 투르 드 프랑스, 지로 디탈리아, 부엘타, 각종 대회 우승은 물론이고. 아, 2019 년 대회에선 사고로 불운했지만. 그래도 건재 한 노장이라고.


한참을 들어도 모르는 이름들이다. 이렇게 분야가 다르게 느껴지지만 저 둘의 대화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맞장구 한번 쳐야 할까 싶다가, 그 사이 준비한 육회를 내놓으며 현우에게 약간의 아는 척을 해 보자는 식으로 물었다.


— 듣다 보니 죄다 서양인 같아. 팔다리 긴. 역시 다리가 긴 사람이 유리한 스포츠인가 봐?


갑자기 성희 씨가 수저를 내려놓더니 다급한 소리로 외 친다.


— 천만의 말씀!


— 아, 천천히 다 드시면서 말씀하세요. 하하하. 서양인 아닌 사람도 있군요. 아까 이야기한 콜롬비아 선수들도 그 렇고요.


— 캘럽 이완! 25 세. 아버지는 호주인이지만 어머니는 한국인이에요. 키 큰 서양인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아담한 편 이고요. 그렇지만 마지막 결승선에서의 폭발적인 힘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해요. 2015 년 한국에서 열린 투르 드 코리아 대회를 휩쓸고 가면서 한국인 어머니께 우승 트로피를 안겼고요. 최근 투르 드 프랑스, 지로 디탈리아, 영국 투어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대단한 선수예요. 그 밖에 한국이나 대만 출신 선수들 중에서도 조호성 선수처럼 올림픽 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우리 나라나 아시아 출신 선수들이 콘티넨털 팀에 들어가지 못하는 문화의 차이가 오히려 더 걱정이에요. 아직 선진국 대비 대중화되어 있지 못하다 보니 뒤늦게 사이클 선수 생활을 하는 편인데 앞으로 차차 더 좋아지겠죠.


— 문화도 문화지만 선수들의 자세도 매우 중요하지. 운도 중요하고. 대표적으로 스키점프 주니어 월드 챔피언 출신인 팀 보라 한스그로헤의 프리모스 로글리치라는 선수. 스키 점프 선수로 활동하다 전향했지. 자전거 선수가 되고 싶어 서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무턱대고 프로 사이클 팀에 가서 그랬다는 거야. “자전거 엄청 많이 탔어요. 선수가 될 자격이 있죠. 전 3,000 km나 탔다고요.”


— 풉, 퐈핫. 아, 삼키던 거 걸릴 뻔했어요. 정말이에요?


난 사실 성희 씨가 왜 그리 웃는지 모르겠지만 어이없는 자랑이긴 했나 보다. 한참을 둘이 서로 보고 웃는 걸 보면 서 꽤 재미있는 대화였구나 싶었다.


— 말이 나와서 말인데 크리스 프룸은 어디를 가도 각광 받는 선수죠. 그렇게 많이 다치고 다시 재활하는 거 보면 정말 프로 선수들은 대단한 거 같아요. 재기를 노린다는데 팀 이네오스 리더로 자리 잡고 다시 올 라운드 플레이어로서 능력을 보여 줄지 궁금해요.


성희 씨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한다는 걸 느꼈 지만, 더 이상 묻거나 말하지 않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맛있게 먹었다는 그녀는 역시 종이 상자에 적지 않은 적립금 2인분(?)을 투하하고 일어났다. 현우는 좀 더 있겠다 며 그녀를 탄천로까지 배웅해 주고 들어왔다.


— 야. 육회는 좀 자주 만들어 놔라. 자주 들러서 먹어줄게.


— 성희 씨처럼 배려심 깊은 값을 치르면 언제든지 해 주지.


— 뭐, 이번 주 기함급 두 대 팔리면 두둑이 적립해 주마. 그런 의미에서 히레사케 한 잔 줘.


— 아직 더운 여름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어울리지도 않는 히레사케냐.


— 아, 그냥 줘. 그 맛 연초에 네가 들여 줬잖아. 이 좋은 육회 그냥 목으로 넘기기 너무 아깝단 말이야. 좋은 안주 삼아 좋은 술 한 잔만 하게.


복어 지느러미 말려 보관해 둔 걸 잠시 불에 살짝만 굽고 나서, 중간 사케 잔에 넣고, 데운 사케를 부어 잠시 후 내어놓는다. 깡마르게 말릴수록 오히려 해독·해장에 좋은 술. 더 부드럽게 마시라고 천천히 내놓았다.


— 이젠 좀 물어봐도 되려나. 그래도 불알친구니. 싫으면 할 수 없는 거고. 그 팔은 도대체 언제 어디서 다친 거냐. 상처가 얼마나 크기에 그리 가리고 살아. 그만큼 마음이 아픈 거야?


— 거참. 좋은 술 줬음 그냥 천천히 음미나 하고 갈 것이지 괜한 것까지 묻네. 거 그리 궁금하냐?


— 뭐, 싫음 말고. 한데 사실 너 팔 이야기만 나오면 손 떨리는 거 봤어. 괜한 정도가 아니면 내게 털어놓고 좀 풀지 그래. 언제까지 힘들게 끌어안고 살 나이는 이제 아니잖아 우리?


휴.... 좀 털어 내려놓으면 이 상처로 인해 느끼는 그리움이 좀 덜어지려나. 힘들게 이야길 꺼내야 하나. 어느새 오후. 해질녘의 석양이 준석의 마음을 더 흔들었다.




마사코


무슨 용기였는지. 요리 학원 선생의 조언만 믿고 혈혈단 신 떠난 유학.

아레나 원형 경기장과 시장통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북부의 베로나. 기다랗게 늘어선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 높게 섰고, 우거진 숲들이 아름다운 곳. 작은 언덕과 같은곳에 자리했던 요리학교 알마 스쿨 주변엔 별다를 게 없었다. 밖에서 보기에 생긴 건 무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의 생활은 달랐다. 요리 공부 외에는 신경 쓸 틈도, 힘도 없었다. 새벽 5시 기상, 아침 쿠킹, 오전 스쿨, 점심 그리고 오후 스쿨, 저녁 쿠킹 그리고 쓰러져 자기 바빴다.


매일같이 들이닥치는 선생들의 잔소리와 함께, 새로운 커리큘럼에 맞추어 도시 외곽 지역의 이런저런 식재료를 따라다니며 공부하기 바빴다. 익히고 냄새 맡고 맛보고 다루기에만 집중해도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몰랐다.


보통 2년 반이면 졸업하는 친구들과 달리, 언어 장벽도 한몫했다. 영어를 사용하면 다시 이탈리아어로 돌아가는 대화법에 익숙한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결국엔 손짓 발짓도 동원되었고, 그 흔하디흔한 물 한 번 바꾸기까지 다양한 시도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한 학기를 더 수강해야 하는 늦깎이 졸업을 했다. 몇 명 남지 않은 마무리 학기여서였나 보다. 그게 불호령인지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매시간 큰 목소리로 일관하던 선생은 내게 마지막 친절을 베풀 듯 이곳저곳 현장 취업을 알선해 주었다.


요리 공부 3년을 마무리 지어 가는 시점. 학교를 졸업하 자마자 베로나의 마치니 광장 노천카페에 서브 셰프 자리 가 있다며 소개받았다. 드디어 셰프의 길로 들어선다는 희망에 찬 마음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단 하루 만에 실망했 다. 프리미 파트장이라 불리는 셰프로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생각보다 저 멀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나는 인턴 취급을 받았다. 이유는 하나. 대부분의 셰프 지원자들이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자기 나라로, 자 기 지역으로 떠나는 불성실한 결과가 여러 번 지나간 후였 다. 난 그렇지 않다고 항변해도 그들은 나를 셰프의 오더 라인에서 배제했고 나는 내 성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베로나 중앙 공원급으로 여겨지는 피아차 브라는 노천카페들이 여럿 이웃했다. 베네치아 같은 수상 도시로 이동하 기 위해 거쳐 가는 도시라서이기도 하고, 아레나 원형 경기장의 쓰임새가 공연장으로 바뀌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방 문하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는 오페라 공연이 많아지고, 덥지만 사이프러스 나무 영향인지 벌 레도 별로 없는 깨끗한 고장이어서 관광객들이 오래 머무는 편이었고, 다양한 음식을 긴 시간 즐기다 가는 편이었다. 중세시대 귀족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대리석길 마치니 거리가 멀지 않게 연결되고, 17 세기 이후 지어졌다는 300 년 된 에르베라는 시장이 이웃하면서 길거리의 사람들은 마치 한국의 명동을 연상케 할 정도.


이 때문에 노천카페에는 관광객이 끊이지 않았고, 주방 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니, 정말 바쁠 땐 셰프와 서브 간에 몸이 뒤엉킬 정도로 아수라장이 벌어지기도 했 다.


그곳에서 일한 지 4년을 훌쩍 넘어설 때, 비로소 내 성 실성을 인정받아 파트 셰프라는 직책이 주어졌고, 파스타와 스테이크 라인을 직접 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하루 일과 중 수 분에서 많게는 한 시간 정도 잠시 숨 쉴 틈을 낼 수 있었다. 틈이라고 해 봤자, 마치니 거리와 시장을 돌아 들어가 새로 나온 식재료나 계절 식재료 그리고 최근에 연 매장의 셰프 음식은 어떤지 염탐하는 일을 하는 게 다였다. 남들은 시장 가는 게 좋다지만 요리사에겐 시장도 스트레스였다. 쉴 수 있는 곳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내겐 즐거운 곳이었다. 이방인 취급당하는 일이 종 종 일어나는 주방보다는 손님처럼 여겨지는 곳이었고, 다 양하게 숙성된 치즈를 맛볼 수 있는 노천 가판이 즐비한 시장이 좋았다.


손님들은 카페의 특성에 맞게 좋은 햇살이 들면 대부분 그 햇살을 맞이하길 좋아했다. 진한 선글라스에 에스프레 소 한 잔과 포르마지오나 돌체 정도를 곁들이며 노천 쪽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거나 관광객들을 살펴 보길 즐겼다. 마치 자신들의 고장을 자랑하는 듯 우쭐한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그런 와중, 그들과 전혀 다른 손님이 한 분 있었다. 항상 노천 방향이 아니라 바 테이블 안쪽에 앉아 뇨키나 주파 혹은 리소토를 주 메뉴로 식사를 즐기고 가는 분이었다. 긴 생머리지만 쪽 진 머리처럼 모아 올린 헤어스타일에, 항상 긴바지에 등산화처럼 목 높은 운동화를 신고 있는 여 자분이었다.


그랬다. 여실히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동양인이었다. 항상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여인이었다. 소박한 식사 같지만, 식사가 끝난 후에도 바 테이블 끝 그 구석 자리에서 그녀는 꽤 오랜 시간 무언가를 계속 적고, 살펴보다 일어났다.


나는 동양인이어도 셰프 캡을 쓰고 있었으니 짙은 검은색 눈썹과 눈을 가진 이탈리아 시골뜨기 남자처럼 보였을 지 모르겠다. 그녀는 눈치를 채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파르미 파트 셰프가 되고 나서 쓰고 있던 캡을 벗고 잠시 서빙 홀에 나갈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마스터 셰프에겐 성실성을 인정받은 걸 떠나 같은 동양인에게 다가가려는 내 태도를 그저 같은 남자로서 용인해 주는 분위기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어쩌면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서빙 로열티를 내게 맡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식사를 내어 주며 가벼운 인사를 하니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그제서야 내가 동양인임을 알아채는 듯했다. 그녀는 콧날이 서양인처럼 오뚝했지만 작고 귀여웠고, 옆얼굴 턱선은 길고 가녀린 모습이었다. 눈을 잠시도 뗄 수 없는, 동양인 중에서도 미인이었다. 이런 이국땅에 멀리나와 그것도 작업복 차림에 이런 아름다운 여성을 만났다는 건 큰 행운이었다. 눈인사 이후 돌아서서 매장 밖을 나왔다. 나올 일도 없었지만 괜스레 노천쪽 테이블에 오더나 체크할 일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는 척했다.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하는 내 모습에 지배인이 살짝 웃는 듯했다.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 지배인 눈에도 평소와 달랐나 보다. 내 뒷모습을 그녀가 응시할 줄은 몰랐다. 노 천에서 뒤돌아서며 안으로 돌아보니 그랬다. 그녀 역시 식사를 하다 나를 보고 또 식사를 하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노천에 비친 햇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는 날들이었다.


이런 날이 계속되었다. 하루가 갈수록 그녀의 식사 시간을 확인하고, 그녀의 자리를 비워 두고, 그녀의 모습이 기 다려졌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항상 그 자리 바 테이블에 앉아 TV를 보며 점심 혹은 저녁을 먹고 갔다. 그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가까운 곳에 딜리버리 반경을 두고 일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 살브. 피아체레. 시베이아모 라 프리마 보르타.


— 사... 살브.


유창했다. 난 인사말만 답을 했을 뿐. 고민하다 짧게 영어로 답을 건네려 하니 어색해하다 못내 살짝 웃었다. 하얀 치아가 드러나며 웃는 그녀의 입꼬리 옆으로 보조개가 살짝 생겼다. 그게 그녀가 내게 보내 준 첫 미소였다. 그걸 잊을 수가 없었다. 그 귀엽고 앙증맞은 보조개가 여성스러운 턱선을 따라 생기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중에 물어보니, 셰프 캡과 조리복 입은 모습이 멋져 보였단다. 그런 남자가 동양인이어서 놀랐단다. 그리고 그 멋진 사람이 와서 어눌하게 말하는 모습이 귀여웠단다.


이후론,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유학을 왔고, 취업을 했고, 이제 좀 자리를 잡은 상태의 내 모습에 꽤 대견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녀는 유학 온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터라 이곳의 생활 동선이 아직 생경하다 했다. 같은 동양인이었지만 그녀는 내겐 해외 사람이었다. 그녀는 일본인 이었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와 유럽의 역사 관계를 공부한다 했다. 그러곤 100 년간의 로마와 카르타고 포에니 전쟁을 100년 동안 설명하려는 듯 그녀는 꽤 의욕 있고 멈춤 없이 길게 설명했다. 물론 다 알아 듣진 못했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미소를 보느라 정신 없었다.


지중해를 끼고 남부 시칠리아를 점령하려는 카르타고가 10만 대군을 잃고 패전했듯이, 난 그녀의 미소 한 번에 무 너졌다. 로마가 23 년 동안 카르타고와 전쟁을 치르고 시칠 리아를 손에 넣었던 것처럼 23일이 흐르는 동안 그녀와 더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한니발 장군의 2차 전쟁. 코끼리를 앞세우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로 진군했던 것처럼, 그녀는 내게 큰 뿔을 가진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날 무너뜨렸다. 이후 자마레기아에서 대전투를 벌인 스피키오 장군의 대승에도 불구하고 15년간 에스파냐를 거쳐 로마까지 대전투를 벌이고, 3 차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그녀는 거침없이 진군해 날 사로잡아 버렸다.


난 유학 온 지 3년 후, 다시 4년을 더해 이렇게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어가 늘지 않는데, 어찌 그리 유학 1 년 만에 유창하게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지 궁금했 다. 아버지 사업 때문이라 했다. 한참을 무역 일을 하시며 이탈리아의 다양한 제품을 일본으로 공급하는 일을 하신다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이동을 했고 생활하며 익힌 이탈리아어라고 했다. 그녀는 내 입과 턱을 손으로 잡고 터치했다. 그리고 혀의 모양을 그려 주고 발음 하나하나를 가르쳐 줬다. 난 그 빌어먹을 이탈리어보다 그녀의 손길에 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에 더 진지해지고 싶었다. 어렵사리 인터넷으로 일본어 교재를 주문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공부를 해보니 어순이 한국어와 같아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 하지메마시테. 와타시와 세에프 준석데스. 도오죠 오 메시아가리 구다사이.(처음 뵙겠습니다. 셰프 준석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가상한 내 노력. 적어도 그 빌어먹을 이탈리 아어보다는 빨리 늘었다. 종종 관광객 중에 일본인들이 있었다. 친절했다. 특히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은 일본어를 하는 나를 자식 대하듯 대해 주었다. 매일 밤 공부를 하고 맞이하는 일본인 관광객에게 여러 차례 사용해 보며 점점 실력을 늘렸다. 오로지 한 가지 이유였다. 그녀와 정말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녀에 대해 알고 싶었다.


아버지 사업의 영향으로 부족함 없이 자란 듯 보였다. 역사학을 전공하긴 하지만 환경 문제에 더 관심이 많다고 했다. 아버지는 의류와 사이클 장비를 주로 수입해 간다고 했다. 자전거로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그녀의 아버지를 자 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사업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와 일본을 오가며, 이탈리아 역사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주요 역사 관광지를 돌아보며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공부 해 볼수록 일본과 이탈리아의 역사나 지리적 환경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무사정권, 남북조, 통일, 에도시대를 거쳐 근대화로 들어서며 메이지 유신을 통해 개혁이 이루어진 일본. 그리고 공화정, 귀족당과 평민 당, 군황제시대를 거쳐 중세 그리고 통일 사르데냐 왕국 이후 통일 이탈리아의 그것이 닮았다 했다.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장화 모양의 반도로 무역이 발달하면서 이집트와 동방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 문명에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 에겐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 눈엔 그런 재미없는 지리적 조건이나 역사보다는 오로지 그녀의 역사가 훨씬 더 중요 했다.


한 달 가까이를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는 찾아와 주었고, 두 달째가 되기까지 휴일 서너 날은 데이트를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데이트라고 해 봤자 멀리 가진 못하고 아레나 근처와 시장 그리고 골목길 사이로 펼쳐진 마치니 거리를 자전거로 오가며 본 젤라토 아이스크림과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것뿐이었지만 좋았다. 우린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 고 행복했다. 자전거에 오른 그녀는 꽤 좋은 실력이었다. 무거운 나를 뒷자리에 태우고서도 한 팔로 자전거를 조향 할 정도였으니. 뒷자리에서 넘어지면 안 되겠다 싶어 소심하게 안장 뒤 끝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그녀 는 내 손을 잡아채 자신의 허리춤으로 감싸 안으라며 이끌었다. 그녀의 머릿결과 등에선 항상 은은한 향이 느껴졌다. 화원에 앉은 느낌이었다. 우린 그렇게 가까워졌고 사랑을 나눴다.

그녀와 겪게 될 아픔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단, 한 가지 나를 움츠러들게 했던 건 그녀의 외모와 다른 자유분방한 마인드였다. 사랑엔 관심 있지만 비혼주의 라 했다. 결혼 후 생활에 미치는 영향 중 하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남성들과 계속해서 동등한 인격체로 함께 생활하는 데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영향인 듯했다. 단, 아이는 기르고 싶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겐 사랑 이상주의자이자 육아 비경험자의 욕심처럼 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마사코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식탁 앞 현우가 아니라 의자를 돌려 가게 입구 문밖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따 듯한 술 한 모금 넘기던 녀석은 내 긴 이야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본다. 물어본 녀석이 마치 다 안다 는 듯한 온화한 표정이다.


— 뭐냐. 애인 때문에 다친 거냐? 하아~ 찐한 사랑이었 나 보구나.


— 뭐, 대충 그렇지.


— (사랑 때문에 팔 하나가 날아갈 뻔했다니....) 역시나 사고 후유증이구나. 가슴 아픈 기억이었네. 내가 너무 답작 댄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갈게.


— 오래되어서. 이젠 뭐. 흐흐.


말끝을 흐렸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졌고. 한참을 듣고 난 뒤 일어서는 현우에게 잊으라 한마디 하려다 참았다. 일면 후련했다.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기억이었다. 잠시 내 려놓았다 생각하니 다시 아련해졌다. 손 떨림도 덜했다. 현 우는 내 어깨를 한 번 무심히 툭 치고는, 이내 조용히 가 버렸다. 한 잔의 술에 취한 듯했는데, 긴 여정의 이야기를 듣고는, 꽤나 날 걱정해 주는 표정이었다.


(9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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