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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Mar 17. 2024

당신의 손과 발

자전거 타는 여자, 요리하는 남자


 2주 후. 장마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의 기대와 달리 또 토요일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장마와 같은 때엔 실내에 서 롤러 장비를 가지고 자전거를 탈 수 있지만, 바닥 진동 이 부담스러워 그만두었다. 연립주택 아랫집에 진동 피해를 줄 순 없으니. 


연초에 정비한 이후 오랜만에 자전거를 세차나 할 겸 베 란다로 들고 나와 앞뒤 바퀴를 풀었다. 레버를 풀자마자 가벼운 카본 재질의 휠은 쉬이 분리되었다. 베란다 수전 호스로 연결된 센 물살을 이용해 자전거 프레임과 바퀴에 묻은 흙과 먼지를 털어 내고, 물티슈로 간단히 닦아 낸 체 인에 다시 오일을 발라 주는 정도로 마무리. 오후는 책을 좀 읽다가 자덕의 생활 습관인 일기 예보 확인. 다행이다. 내일의 날씨는 비는 없고 약간의 바람과 흐림이다. 여름의 뙤약볕보다는 흐린 날씨가 오히려 최적이다. 바람이 없이 흐리다면 당연히 습도가 높을 것. 습도 역시 스포츠 라이딩에는 적합하지 않다. 습기마저 전방으로 향하는 속도를 방해하니까. 오히려 바람만 잘 탄다면 해 없이 시원하게 탈 수 있다. 지난 3주간 주말마다 타지 못한 것을 몰아서 라도 타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내일은 100 km 주파를 목 표로 오전 시간을 온전하게 사용해 봐야지. 


얼마 동안 쌓인 습관이었던가. 보통 주말 운동 준비의 과정은 일기 예보 확인, 타이어 공기압 확인, 브레이크 라 인 청소 순이지만, 이제 하나가 더 늘었다. 신나게 운동 후 ‘맛있는 밥 한 끼’. 미리 메시지를 보내어 예약한다. 늦여름인 이제 카톡 메신저로 간단하게 보내도 되는 단골이 되었고, 이제 서로 간의 오더 룰은 업그레이드되었다. 


— VIP, 내일 10~12 시, 단 음식 or 밥 or 면. 


체면치레라도 하듯 미사여구로 포장해서 보낼 필요 없다. 요점 정리만 해서 보낸다. 준석 셰프의 손에서 나오는 음 식이 내가 오더 하는 특정한 메뉴로 발현되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고품격 실력임을 인정하므로, 메뉴명은 가급적 보 내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예의가 아니리라. 그저 맡기면 되는 것이고, 최악의 경우는 겪어 본 적이 없지만 운동 후 먹는 음식이 맛없을 가능성은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 린다. 그럼 라이딩하는 당일, 운동을 마치기 한 시간 전쯤, 준 석 셰프는 내게 오늘의 메뉴를 대충 일러 준다. 


— 장어 덮밥.


준석 셰프의 답장을 받고 나면 운동을 마무리하고 리턴하는 구간의 페달링이 즐거워진다. 힘으로 달리던 것에서 기어를 하나 풀고 회전수로 달리는 케이던스 주법으로 바 꾼 뒤 마음을 즐겁게. 속도는 크게 떨어지지 않지만 마무 리 쿨다운에 있어 적합하리라.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서며 즐겁게 외쳤다. 


— 잘 먹겠습니다. 


기대감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안녕하세요.’가 아 니라 ‘잘 먹겠습니다.’라니. 


— 어서 와요. 오랜만이네요. 


식탁 쪽 건너편 테이블에 세 분의 손님이 있었고, 마주 앉았다 일어서시며 내게 환하게 웃어 주신다. 준석 셰프의 이모님, 수진 이모님이셨다. 예배를 마친 분들의 식사 모임 인지, 테이블 한쪽엔 벽돌만큼 두꺼운 성경책들이 나란히 올려져 있었다. 


— 어머. 제가 목소리가 너무 컸던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 아니에요. 마무리하고 일어들 나는 상황이었네요. 정말 오랜만이군요. 요즘도 열심히 운동하시나 봐요? 


— 아 네. 현우 오빠랑 준석 셰프님께 이모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몇 차례 수준이지만, 현우 오빠나 준석 셰프 모두 공통의 키워드로 이모님을 설명했었다. ‘어머니 같은 분’. ‘세상을 많이 아시는 분’. 그리고 무엇보다 이모님의 환한 미소 가 달가운 나머지 좀 더 편하게 다가서고 싶어 그랬다. 물 론 내 복장은 그러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저지와 빕숏에 또각또각 경박스러운 클릿 소리가 나는 신발 상태이지만. 아니나 다를까. 


— 이 녀석들이. 그리 좋은 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지난번이나 지금이나 아주 날씬하고 예쁘시군요. 볼 때마다 부럽고 또 놀랍네요. 그 나막신 같은 소리를 내는 신발은 신기하고요. 


— 고맙습니다. 아, 불편을 드리려는 건 아니었는데. 자 전거 전용 신발인데 페달에 고정하기가 좋아서 이런 소리가 납니다. 살살 걷도록 할게요. 


— 괜찮아요. 궁금해서 물어본 것일 뿐. 내 가게 아니니 마구 세차게 걸어도 돼요. 호호. 


— 이모님.


한참 장어를 손질하던 준석 셰프가 다찌 좌석으로 날 안 내하며 이모님의 말씀을 앞서 잡았다. 복도 가운데와 가장자리는 나무로 되어 있으니 미끄러지기 쉬울뿐더러, 또각 소리를 내는 클릿 슈즈가 약간의 생채기를 남기진 않을지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었을 테니까. 


— 조금만 기다리세요. 거의 다 되어서, 마무리하고 있으니까. 


냄새가 짭조름한데 준석 셰프의 등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살짝 비켜 앉아서 보려 했는데, 프라이팬을 손으로 들고 흔들더니 뭔가를 붓 같은 걸로 연신 바르고 있어서 알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단내와 함께 간장 졸였을 때 올 라오는 짠 내가 적절히 코를 자극한다. 혹시나 하고 생각하는 상황을 눈치챘는지 준석 셰프가 묻는다. 


—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 네? 글쎄요. 일요일이잖아요? 


— 하하. 네. 일요일이긴 한데 좀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복날이라 부르는 날이죠. 그중에서도 말복입니다. 때마침 이모님께서도 말복 음식이 먹고 싶다 하셔서 이렇게 준비해 봤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복날의 장어 덮밥입니다. 


이런. 그랬구나. 짙은 갈색 그릇에 담아낸 장어가 세 줄. 장어를 구워 낸 냄새와 함께 달콤 짭조름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살짝 식초처럼 톡 쏘는 냄새도 배어 있다. 이내 덮밥과 함께 내어진 김치와 생강 냄새가 코를 자극하 더니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 잘 먹겠습니다. 


— 아시겠지만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입니다. 살짝 비릴 수 있어서 약불로 조리며 소스로 여러 번 굽긴 했습니다만 혹시 작은 잡내에도 민감하시면 생강을 함께 드시면 좋습니다. 생강채는 가급적 잘게 썰어 드렸으니 조금씩만 드셔 도 되고요. 생강은 향이 강한 식재료라 많이 드시면 오히 려 장어의 담백한 맛을 반감시킬 수 있어요. 천천히 드세 요. 


첫맛은 단데, 뭔가 상큼하다. 정갈하게 담겨 있어 조심스럽게 장어를 살짝 들어내는데 모락모락 피어올라 다가오는 밥 냄새가 더 좋다. 상큼한 맛의 정체가 궁금했다. 


— 생각보다 깔끔한 맛인데요? 상큼하기도 하고요. 


— 맛술, 청주로 우선 잡내를 잡고, 생강즙으로 양념을 했는데 양념은 길게 졸이지 않아서 시큼한 맛도 조금 남았을 거예요. 더위에 너무 진득한 단맛만 강조하면 부담스러울 거라 생각했고요. 


역시 준석 셰프다. 식재료 하나하나의 맛을 잘 이해하고 만들어 주니 그 정성이 고맙다. 세 번째 장어 조각을 얹고 입에 넣어 음미하는 순간 뭔가를 또 내어 내 앞에 놓아준다. 


— 무채 즙입니다. 장어 덮밥을 즐기실 때 중간중간 입을 씻어 낸다 생각하고 한 번 떠서 드시고 나서, 다시 장어 덮밥을 드셔 보세요. 


회사에서 점심식사 시간. 식사 후 양치를 하면 그 텁텁함을 좀 부드럽게 하고자 녹차를 즐겨 마시는데 그런 이치라고나 할까? 무채 즙을 한술 떠서 오물거리다 삼키고 다 시 덮밥을 먹어 보니 첫술을 뜰 때와 같은 느낌이다. 최대 한 다시 즐겨 보라는 듯. 이거 참 고맙다. 


갑자기 셰프 캡을 벗어 내려놓더니 어딜 가려나 보다. 


— 맛있게 드시고요. 저 잠시 자리 좀 비울게요. 다른 예 약 손님은 없으니 불편하시지는 않을 텐데, 저 밑 손질 식재료 받으러, 잠시 요 앞 차도에 다녀올 테니 식사하시면 서 가게 좀 부탁해요. 


— 아서라. 어여쁜 손님에게 그런 부탁을 하면 안 되지. 이모가 너 올 때까지 기다려 주마. 뭐가 저리 급한지.... 원. 


이모님께 연신 굽신 두 번 인사를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나가는 준석 셰프. 이모님은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시곤 말씀을 이어 가셨다. 


— 저 녀석 이탈리아인지 어딘지 가서 요리 공부 마칠 때쯤인가, 나 외롭다고 가게 차려 주겠다고 했는데도 응답 이 없었다우. 통사정을 해도 안 오길래 솔직히 이야기해 보라 했더니 세상에 누구 좋은 사람이 생겼는지. 도통 들어오겠단 소리를 안 하더라니까. 


— 아 현우 오빠에게도 잠깐 들었어요. 


말하는 순간 바로 후회했다. 이모님이 준석 셰프에 대한 내 단순한 궁금함을 혹 깊이 있는 호감으로 생각하실까 봐 조심스럽다. 남다른 호기심이 시작되었다는 걸 들켰을까 봐. 그리고 그 생각이 이모님을 통해 준석 셰프에게 닿을 까 봐. 혼자서 가볍지 않게 부풀어 올랐나 싶지만. 


— 기다리고 기다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해서는 일 본으로 가야겠다고 하는 거야. 이번엔 무슨 좋은 일자리가 생겼다나? 그러더니 거기 가서 만날 사람도 있다고 변명을 둘러대길래 내 잔소리도 귀찮아서 참고 말았다우. 한 1년이나 있다 오겠지 싶었는데 세상에 마흔이 넘고 노총각이 되어서야 오더라니까. 요리하고 결혼을 했어, 요리하고. 


난 이모님이 이야기하는 만날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유학까지 했고, 가게까지 내주겠다는데 일본으로 갔다는 건 분명 무언가 중요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장어 덮밥을 먹으면서 일본에서 일하며 배웠던 여 러 음식들 중에 하나를 먹는다 생각하니 더 궁금해졌다. 언젠가 한번 넌지시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왠지 준석 셰프의 요리 하나하나를 먹어 볼 때마다 더 궁금해지는 셰프, 아니 남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그나저나 식사하면서 들어보슈. 내가 사실 이곳 교회를 자주 오가면서 교회에 오시는 목자님들과 자주 걷기도 하고 하는 곳이다 보니 겁이 난다우. 가끔 누가 소리를 쳐 서 뒤돌아보면 자전거를 탄 여러 사람들이 줄지어 달려들 어서 깜짝 놀라 선 적이 몇 번 있어. 


— 아. 팀 라이딩을 하는... 여러 명이 줄을 서듯 같은 방 향으로 함께 탈 때가 종종 있지요. 


— 근데 들려오는 소리도 그렇고, 어찌나 빠르게 달려드는지 한 번은 부딪힐 뻔도 했었어요. 


이모님과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게 도 관심을 보이시며 자전거 이야길 꺼내어 주시니 더더욱. 


— 이제 말씀 편하게 놓으세요. 저 여기서 자주 뵈었고, 앞으로도 자주 뵐 거 같으니까요. 저도 이모님이라 말씀드려도 되죠? 


— 아, 그럴까? 암, 되고 말고. 그나저나 교회는 다니지? 그래서 말인데, 그렇게들 달려들면 내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 네. 다들 조심히 타는데 가끔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보통 탄천은 시속 20~25 km 정도의 속도로 제한되어 있는데, 운동하는 셈 치고 빠르게 달리길 원하는 경우 들이 있거든요. 그런 속도에서 부딪히면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 모두가 조심하는 게 좋죠. 제가 놀라지 않는 쉬운 방법 가르쳐 드릴까요? 


— 아, 그런 방법이 있어? 


— 네. 몇 년간 타다 보니 저도 배우게 되었어요. 우선 첫 번째는 탄천의 자전거 도로와 나뉘어 있는 인도로 다 니시는 게 가장 좋고요, 두 번째는 탄천에서 건너가야 하는 건널목 위주로 이동하시는 게 좋아요. 그리고 마지막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요, 뭔가 다가온다 싶으면 손을 들면서 소리를 지르셔도 돼요. 오히려 멀리서 다가오는 자전거 타 는 사람에게는 눈에도 잘 보이고 이모님 소리를 듣고 속도를 줄이게 될 거예요. 그럼 이모님은 더 안전하게 되는 거 죠. 


— 아, 손만 올려도 그런 게 되려나? 


— 자전거 타는 사람은 항상 앞을 주시하게 되어 있고요, 그럴 일은 없더라도 탄천로는 항상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에 혹여나 자전거 타는 사람이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면 화를 내셔도 되니까요.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거든요. 


— 음. 그렇지. 사람이 우선이어야지. 차가 우선이면 안 되지. 


—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사실 교육을 받고 타야 해요. 탄천로나 강변 옆에 컨테이너로 된 지역 클럽이나 다양한 동호회 활동을 통해서 보통 자전거 타는 교육을 먼저 받고 시작해요. 라이딩 초보 교육이죠. 탄천에서 유의해서 몰아 야 하고, 사람이 우선이며, 무엇보다 입으로 하는 신호나 손으로 하는 수신호에 대해 잘 외우고 익혀야 하는 것을 배우고 탑니다. 


4년 넘게 자전거를 타다 보니 경험을 통해 눈으로 보고 익혔던 것이다. 보통 이런 #라이딩 기본기를 제대로 배우 지 않고, 어설프게 탄천로에 나서는 사람들이 대부분 사고를 내거나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특히나 헬멧이나 글라스 같은 안전 장구를 하지 않은 채 자전거를 타면서 좌우 신 호조차 내지 않고 탄천에서 바깥으로 회전하듯 타는 이가 있다. 십중팔구 초보다. 그리고 높은 비율로 사고를 내는 장본인들. 이런 설명에 웃으며 반응해 주시니 식사를 마무 리한지도 모르고, 연신 설명해 드리고 있었다. 준석 셰프가 이미 주방 제자리에 돌아온 줄도 모르고. 준석 셰프는 살 짝 어깨를 들썩이며 나와 이모님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웃고만 있었다. 식사를 마무리하려고 수저를 내려놓을 때 가 되어서야 준석 셰프가 돌아서며 말했다. 


— 우리 이모님. 성희 씨 이야기가 재미있으신가 봐요. 제 이야기는 잘 들어주지 않으시면서. 


— 아, 당연하지. 설명도 재미있게 잘하고, 이렇게 예쁘 고, 나 다치지 말라고 이렇게 신경 써서 이야길 해 주는데 당연한 거 아니니? 그나저나 자꾸 눈이 가서 하는 소리인 데, 너 그 옷 긴팔은 정말 못 봐주겠다. 이 더운 한여름에 그 긴팔 자꾸 고집할래? 


— 별로 불편하지 않아요. 


— 그리 티도 나지 않으니 이젠 그만 반팔로 입으려무나. 아휴. 식사하는데 또 말만 많아 가지고 이 늙은이는 일어 나 봐야겠다.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생각해 보니 준석 셰프는 항상 긴 팔의 조리복 차림이었다. 아무래도 요리사라는 생각에, 말끔한 속내까지 예의를 갖추려는 자세려니 생각하고 그의 불편함은 보지 못했다. 수진 이모님께서 일어나시고, 식사 가 끝나 갈 무렵. 


— 짧은 하절기 조리복이 편하지 않으시겠어요?

— 사실은 팔에 약간의 상처가 있어서 혹 식사하시는 분들이 불편하지 않으실까 해서 가리고 있어요. 


— 아, 네.......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건네는 어투에,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보기 힘든 어두운 표정이었다. 묻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에게 쉽게 다가가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 야기할 상황은 아니리라. 오늘은 그의 뒷모습이 약간은 비 틀어진 모습이었다. 



#셰프 로그: 복날의 장어 덮밥 



내어놓은 이유: 


복날 음식. 여러 마리 준비해서 성희 님과 동시에 수진 이모님이 예약하신 팀에 함께 내어놓기 좋은 음식이다. 단 백질이 많은 편이니 운동 후 원기 보충에도 꽤 적합한 음 식이리라 생각했다. 


내어놓는 생각: 


최대한 식감을 살리면서 비린내를 제거하는 것을 중요하 게 생각했다. 마침 손님들이 모두 여성분들이니 식감보다 는 향에 더 신경이 쓰였다. 


이 요리의 특징: 


무엇보다 손질과 양념이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붓질을 통해 두세 번 구워 내는 것. 최대한 부드러움을 유 지하면서 양념이 배어들도록 신경 써서 작업해야 하므로 여러 마리를 모아서 요리하는 것에 적합하다. 


준비하기: 


4인분으로 장어 2마리, 쌀밥, 깨 네 꼬집 정도.
두 가지 양념 소스 용도로,
— 장어 소스(가바야키): 간장, 미림, 청주, 꿀, 생강 

— 초밥 소스: 식초, 꿀, 소금, 맛술. 


요리 시작: 


우선 초밥 양념을 미리 만들어 둔다. 식초와 꿀은 비율을 유사하게 넣고, 소금, 맛술을 이용해 간을 해서 작은 종 지에 담아 둔다. 


이후, 장어 손질. 두 번의 손질 과정을 거쳐야 한다. 


— 첫 번째 손질: 장어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손질이다. 피를 뽑아야 하고 가시도 하나하나 들어내 뽑아야 한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직접 하는 방법도 있지만 요즘 같은 여름, 예약 시간을 다투는 요리를 해야 할 경우에는 미리 손질된 장어를 구한다. 특히 부드러움을 살리려면 장어 살 중앙의 두꺼운 가시 부분은 잘 발라내고 가장자리 지느러미 부분도 말끔하게 잘라 준다. 


— 두 번째 손질: 장어는 야행성으로 주간에는 보통 흙에 파묻히는 습성이 있어 흙냄새가 강한 편이고 껍질에 냄새 가 강도 높게 배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반드시 두 번째 손질 작업을 해 주어야 한다. 껍질 표면의 점액질 제거가 그것. 주로 밀가루를 이용해 장어 겉 표면을 문질 러 준다. 껍질 자체에 점액이 많다고 손에서 느껴지는 경 우는 밀가루가 흩어지는 느낌일 때인데 이럴 땐 칼로 살짝 긁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성희 씨가 하루 전에 연락을 해 주었기 때문에 일찍 작업을 시작해서 이 두 번의 손질 과정을 미리 해 두었다. 


이제 장어 소스를 만들자. 올리고당이나 꿀을 넣고, 약불 (센 불이면 산화되어 신맛이 깊게 남을 수 있다.)로 10분 정도 끓인다. 양이 어느 정도 졸여져서 줄 정도까지 끓인 다. 


초밥 소스로 장어 덮밥의 밥을 미리 준비해 둔다. 지은 밥에 초밥 소스를 붓고 휘저어 섞은 후, 잠시 감행 천을 덮어 둔다. 가급적 밥의 온기가 서서히 스며들도록 하고, 잠시 내버려 두어야 초밥 소스가 밥알 골고루 스며들어 밥 맛이 좋아진다. 


— 장어 굽기: 초벌 이후 세 번 정도를 굽는데 손질해 둔 장어 1마리 정도를 1/2등분으로 잘라 두 마리, 총 네 등 분을 가로로 눕혀서 초벌로 10분을 굽는다. 소스를 팬에 둘러 발라 주고 앞뒤로 한 번 더 발라 준 뒤 앞뒤로 불 조 절하며 5분간 또 굽는다. 


팬에 장어를 덜어 내고 팬의 기름을 닦은 후, 장어 양념을 다시 바르고 마무리로 구워 주는 게 중요. 소스를 계속 바른 채로 또 사용하지 말고, 한 번 굽고 나면 깨끗이 비 우고 다시 바르면서 굽는 게 중요하다. 


덮밥 위에 구운 장어를 올리고(필요하면 4cm 길이로 잘 라 두어 늦지 않게 섭취하도록 돕는 것도 좋다.) 구운 깨를 뿌려 준다. 


생무를 깨끗이 씻고, 껍질을 잘 깎아 낸 다음, 깍둑썰기해서 믹서에 돌린다. 잘게 갈아 나온 무즙을 종지에 담고 거즈 채에 내려서 물기를 빼 준 상태를 확인. 물기를 살짝 걷어 내주고, 양념처럼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내놓았다. 중간중간 담백한 장어의 맛을 새롭게 느낄 수 있기에 좋은 방법이다. 성희 씨도 만족하는 듯하다. 일본에서 일할 때 이 무즙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는데 주로 간장 조림 소스와 매우 잘 어울린다. 한여름 음식인 메밀국수에도 무즙을 넣어 상큼하게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라이딩 일기: 라이딩 기본기 


수진 이모께 설명하는 순간 한번 정리해 봐야겠다는 마 음을 먹었다. 자전거를 타는 순간 자전거도 중요하지만 당 신의 손과 발을 잘 써야 한다. 이 기본기를 제대로 익히고 타야 다치지 않고 건강한 운동으로서의 라이딩이 가능하다. 남성보다야 천천히 달린다 할지라도, 바퀴는 둥글고 내가 가만있어도 남이 달려오면 어쩔 수 없다.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해 본 나로서도 이 일기로 제대로 정리하 지 않을 수 없다. 소위 개처럼 오르고 정승처럼 내려가야 하는 게 자전거다. 


자전거를 준비했고, 이제 탈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면 꼭 기억해 두고 연습해 두어야 할 기본기. 상식적인 것 열 가지만 기억해 두고, 연습해 두자. 사고는 늘 가까이 있다 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 보행자가 갑이다,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바퀴 달린 것이 외발이든, 자전거든, 킥보드든 충돌 대상 이 보행자라면 무조건 가해자 쪽은 바퀴 위의 안장에 앉아 있는 나다. 


이 때문에 유의해서 타야 하고 보행자를 우선하는 마인 드를 가져야 한다. 탄천 자전거 로드에서 보행자와 사고 나면 100% 당신 과실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과정이 어쨌건 무슨 연유에서건,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와서 건 다 필요 없다. 당신이 보행자가 아니라면 가해자이기 때문에 접촉 이 없는 게, 사고가 나지 않는 게 당연히 최선이다. 


2. 피치 못할 접촉에 의한 사고가 걱정된다면 자전거 운행용 보험을 들어 두는 게 좋다 


자전거 전용 보험은 없다. 하지만 안심 동행이나 운전 안심 보험에 함께 특약 조항으로 넣어서 자전거 배상 책임 보험을 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큰 사고(작은 사고는 보상액도 전치 4주 이상이어야만 월 20만 원 정도 나 오는 수준)에 대비할 수 없더라. 


3. 안장 위에서 하는 수신호는 공부하고 탄천에 들어서자 


손을 왼쪽으로 들면 좌회전.
손을 우측으로 들면 우회전.
손을 들 수 없는 수준의 운전 능력이면 소리라도 크게 지르기.

손을 뒤로 들며 나비처럼 나풀거리면 뒤에 오는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라는 뜻.

손을 뒤로 들며 손바닥을 보이는 것 역시 속도를 줄이라는 뜻. 


탄천에서 공도나 아파트 단지로 진입하는 단축 도로로 들어서기 위해 아무 신호 없이 들어가는 자전거가 대부분이며 주요 사고는 여기서 많이 발생한다. 


4. 수신호 공부도 하기 싫고 난 모르겠다 싶으면 이렇게 하자 


— 탄천 길 밖으로 나가는 길
— 보행자 전용 횡단보도 표시가 된 지역
— 중·고등학생들이 등하교 목적으로 탄천을 걸어가는 경

— 뒷모습으로 볼 때 연세 든 분이 앞서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경우

— 귀에 이어폰 꽂고 자전거나 킥보드 타는 사람 혹은 보행자

— 휴대폰 통화를 하며 자전거를 앞서 타고 가는 사람

— 휴대폰 들고 통화하며 걷는 보행자 


이런 사람들이 보이면 무조건 속도를 줄이자. 이게 수년간 경험으로 얻어 낸 정답이다. 


5. 기본예절 


앞서가는 자전거의 속도가 느려 추월할 때의 방향은 항 상 왼쪽이다. 폭이 좁은 편도 1차선, 왕복 2차선으로 이 루어진 탄천로 같은 곳에서 추월을 할 땐 당연히 중앙선을 살짝 넘어야 하거나, 중앙선 가까이 가야 추월이 가능하다. 우선 뒤를 살짝 보고 더 빠르게 뒤따라오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부터 해야 한다. ‘나는 추월이 가능한가.’라고 자문한 뒤에 확신이 서면 추월해야 한다. 


추월 시작 시 반드시 앞서가는 사람이 인지할 수 있게 ‘지나갑니다.’, ‘지나갈게요.’와 같이 말로 신호를 해 주는 게 중요하다. 추월을 하면서 옆 혹은 앞서가는 사람의 자 전거나 안장 위의 사람에게 손을 대서는 절대 안 된다. 가 해 행위에 해당한다. 


내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속도를 내는 것보단, 내 능력 수준에서 속도를 내는 것이 좋다. 자칫 오버페이스는 봉크 가 온다. 하지만 봉크라 할지라도 속도를 줄이거나 서는 등, 본인 스스로가 해결책을 내리고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이것이 때에 따라 다른 이에게 사고 원인으로 동작할 수 있다. 가령, 너무 힘들어 섰는데 길 가장자리도 아니고 중앙에 갑자기 서 버리거나, 앞에서 넘어지는 낙차가 발생하 면 뒤에 오는 이에게 큰 사고 위험 요인이 된다. 


6. 기어 변속 


시선은 앞에 두면서, 기어 변속을 자주자주 바꿔 주고 페달링은 일정 속도를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 직하다. 


7. 가속 


가속을 통해 속력을 내려한다면 집중하고 코어 기본자 세를 갖추고 페달링해야 한다. 그저 다리만 빨리 움직이거 나 많이 엎드린다고 가속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내 몸의 중심에 힘을 모아 집중한다는 생각으로, 팔꿈치는 살짝 구부리고 허리도 앞으로 숙여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8. 감속 


브레이킹이라고도 하며 초보는 뒤쪽 브레이크(주로 오른손 레버) 위주로 잡지만 바퀴 두 개 달린 장비들은 앞바퀴 브레이크를 잘 써야 한다. 특히 스포츠 라이딩에 적합한 로드 사이클의 경우 타이어 장폭이 매우 좁기 때문에 브레 이크 레버를 아무리 세게 잡는다 하더라도 앞으로 밀리게 되어 있어 체중을 뒤로, 안장 뒤쪽으로 빠져서 앉으며 브레이킹 하는 웨이백 자세를 많이 연습해야 한다. 로드 사이클은 급정지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브레이킹 연습을 많이 하는 게 좋다. 


9. 팀팩 라이딩 


평지에서 여러 명이 함께 타는 라이딩을 뜻하는데 보통 한 줄로 진행한다. 두 줄로 하는 경우는 사고를 유발할 수 있고, 도로 폭이 좁은, 특히 자전거 도로나 탄천로에서 두 줄은 불법에 가깝다. 


한 줄로 진행하며 맨 앞의 사람이 어느 정도 구간을 달 린 뒤 맨 뒤로 이동하고, 그다음 사람이 앞으로 나와 팀을 이끄는 방식으로 라이딩할 수 있는데 이걸 드래프팅 혹은 로테이션이라고 한다. 로테이션은 보통 선두가 오른쪽으로 살짝 빠지고 뒤따르던 사람은 왼쪽으로 추월하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위치를 바꾸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 은 사전에 신호를 잘해야 한다는 것. 말로, 혹은 왼쪽 팔꿈치를 살짝 들어 올려 로테이션을 요청하는 방법을 많이 사 용한다. 맨 앞의 사람은 바람을 맞으며 이끌어 주는 역할 이기 때문에 무한정 계속 맨 앞을 이끌 순 없어 교체하게 되는데, 반드시 자기 능력 수준에서의 속도로 이끌어야 한 다. 남들 속도에 맞추기 위해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되면 팀 팩 라이딩 자체를 힘들게 할 수 있다. 


10. 업힐 


평지가 아닌 오르막을 오르는 것을 업힐이라 부른다. 경 사도가 오르기 전에 기어를 풀어 페달링 힘이 덜 들어가게 하는 게 좋다. 눈앞에 경사도가 보이는 업힐 시작점이 보인다면 그전에 기어를 풀어 두는 게 좋다. 경사도 입구에 들어서고 나서 변속하면 체인에 무리가 갈 수 있어 좋지 않고, 힘의 분배 효율에도 좋지 않다. 경사도가 10% 미만이라면 큰 무리 없는 속도로 오를 수 있지만, 그 이상이라면 저속으로 오르게 된다. 이런 경우 매우 늦은 속도에서 도 평형감을 잃지 않도록 핸들을 잘 조향 할 수 있어야 해 서, 연습을 많이 해 두어야 한다. 평소 안장에 앉는 자세 (seating)도 중요하지만 평형감을 연습하기 위해 페달을 밟고 일어서는 스탠딩 자세를 연습해 두면 좋다. 




까까머리



스포츠 라이딩을 하면서 익숙해지기까지 주로 평지 위주였다. 초보 10 점. 


시간에 비례해서 전반적인 라이딩 운동 방법과 장구를 다루는 법을 익혔다. 초보 50 점. 일명 늅늅이. 


그리고 여러 사람과 함께 민폐 없이 어울려 타게 되었다. 중급으로 업그레이드! 


시즌과 시즌 오프 시기를 저울질하며, 시즌 중 철마다 다니는 코스와 타는 거리가 길어졌고, 팔과 다리에 탠 라 인(일명 사이클 라인)이 지워지지 않게 되었다. 오케이, 중 급! 


여러 사람이 함께 타면서 운동하는 방법, 자세를 잡는 법, 좀 더 안전하게 타는 법을 배웠다. 중급 중에서도 자덕 이! 


무엇보다 함께 타는 것이 좀 더 효과적으로 운동하는 데, 좀 더 근지구력을 발휘해 오래 멀리 타면서 지방을 태우는 데에도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덕은 자덕끼리! 


소위 자전거 덕후라 불릴 만큼 실력도 쌓이고 일상생활의 많은 대화를 자전거로 풀어내는 시점. 이 시점은 시작 이후 3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공과 사를 구분하듯 업과 취미 생활을 구분하다가도, 업을 더 오래 할 수 있게끔 하 기 위한 필수 취미 생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물론 이 취미가 취미를 넘어서기도 한다. 랜도너 혹은 숍 매니저! 


하지만 마케터라는 내 업을 잊고 살지 않았다. 그 경계 선이 모호한 나머지 회사 프로젝트 중에도 자전거와 관련된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경험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안장 위에 앉는 것을 업으로 하는 건 아직까지 경계하고 있다. 그건 아마도 지금의 일이, ‘일이 아닌 취미로 넘길 수 있을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역지사지해 보면서 말이다. 


이제 가끔이라도 원정을 떠난다. 대한민국의 고개라는 고개는 모두 오르고 타 봐야 직성이 풀릴 듯. 한 자덕의 성정은 어딜 가도 비슷하다. 지역마다 동호회도 많고, 아마 추어 팀까지 끌어올리는 경우도 보았으며, 전국구로 불리는 도싸(도로 사이클 동호회), 자출사(자전거로 출근하는 사 람들)와 같은 그룹도 팀복까지 맞춰 입으며 열심히 타고 있다. 원정을 가면 그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고, 같은 취미 생활이다 보니 팀팩 라이딩에 편하게 뒷줄에 서게 해 주는 등 꽤 친절한 편이다.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외곽으로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 고 가는 여행. 보통 투어 간다고 표현하는데 주목적은 운 동이지만 그 외의 수확도 크다. 


우선 바람의 질, 즉 공기가 다르다. 차가 별로 없고, 사 람도 별로 없다. 한갓지고 고즈넉한 로드. 편도 1 차선이라 할지라도 도로교통법 13조 1항을 준법 준수 가능하다. 즉 도로 가장자리는 온전히 내 라이딩 영역으로 확보 가능하며, 가끔 추월하는 일반 차량도 나를 피해 가는 센스가 풍 성한 곳. 


두 번째 수확으로 산천 관광이 가능하다. 차를 몰고 한 시간만 나가면 가능한 곳일 뿐인데, 일상생활의 장면과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자연의 광경! 장관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고품질 인증 사진을 남기는 덤까지! 


세 번째 수확으로는 성덕 지수 높은 고수들을 만날 수 있다. 팀팩 라이딩의 로테이션을 제대로 돌면서 서로 힘을 안배해 가며 일정한 속도로 고삐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가 는 프로들. 함께 타다 보면 힘은 들지만 실제 내 한계점, 내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도 하게 된다. 


올해 시즌 시작하고 몸을 끌어올리자는 차원에서 나섰다. 길이 깨끗하고 산천의 광경을 함께하며 달릴 수 있기로 유 명한 곳 중 하나. 서울 근교 한 시간 거리인 가평. 가평역 근처 공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자전거를 차에서 내린다. 청평 호반을 끼고 호명산을 도는 코스다. 


청평호를 달리는 녹음 진 공간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바람이 잦아들더니 이내 볼을 타고 한 뼘 땀이 흐른다. 이 미 두 개의 고개를 타고, 다시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는 낙타를 타다 중간 보급을 위해 잠시 쉬는 때. 주변을 보니 쁘띠프랑스라는 관광지 입구가 보이고, 입구 건널목 건너편에 편의점이 보인다. 


‘잠시 쉬었다 가자.’ 


중간 보급용으로 유용한 초코파이 하나와 콜라 하나를 사 들고 나왔다. 자전거 걸이대까지 만들어 둔 걸 보니 많은 라이딩 팀들이 즐겨 가는 곳이리라. 갈증을 없애려 한 모금 콜라를 들이켜고 나니 건너편 관광지로 줄 서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관광 중이라니 부러운 면도 있지만 이미 나도 관광 중이다. 걸어서 관광하느냐, 안장 위에서 건강을 챙기며 하는 관광이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 기분은 상쾌하다. 초코파이를 한입 베어 무는데, 11 인승 회색 밴 한 대가 내 뷰를 막고 선다. 양쪽 사이드 미러가 관광버스만큼 크다. 


특이한 건 이 사이드 미러 위, 차량 앞 유리 방면으로 지붕 양쪽에 큰 확성기가 붙어 있다는 것. 사설로 설치한 것 같은데 무슨 차량이길래. 혹시 방송 차량이나 교회 혹 은 내가 극렬히 외면하는 정치 선전 차량인가 싶었다. 그 런 차량치곤 깨끗한 편이다. 차량 뒷문 쪽으로 시선을 옮 겨 보는데 눈이 멈추었다. 


‘낙동중 사이클 팀.’ 


차량 뒤쪽에도 같은 팀 브랜드 래핑이 씌워져 있다. 그 리고 그 아래엔 당연히 이런 문구가.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구나. 팀 서포트 카다. 보통 도로 스포츠 사이클을 하다 보면 여러 명이 팀팩 라이딩을 할 경우 그 속도가 시 속 40km를 시작으로 50, 빠를 땐 60에 육박하며 내리막에 선 80~90을 넘기도 한다. 동행 길의 다른 차량이 기다리며 양보를 해 주어야 하거나 추월하는 팀에게 양보해야 하 거나 여러 상황이 있다. 그렇다 보니 이런 글귀는 서포트 카라면 당연한 래핑이다. 


초코파이를 하나 급하게 먹고, 이제 다시 가 볼까 하고 일어났다. 페달에 클릿을 끼우는데 한 팀이 오고 있다. 두 줄로 나란히 평행을 그리며 십여 명 정도. 모두 숨이 벅차 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낙동중 사이클 선수들이 다. 중학생이라지만 신체는 이미 성인과 다름없이 키도 크 다. 역시나 라이딩 팀이라 그런지 모두 날씬하다. 온몸의 태닝은 심각한 수준으로 보일 정도. 새까맣다. 팀 서포트 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선수들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선수들은 하나같이 짙은 남색 저지에 에어로 타입의 헬 멧을 쓰고 검은색 스포츠 글라스. 통일되어 있다. 멀리서 봐도 멋지다. 어린 학생들이지만 이미 성인 수준에 버금가 는 속도를 내는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이 수삼 년 내에 실 업 팀으로 가고, 국가를 대표하는 경기에 나가 금메달도 획득하겠지. 미래의 멋진 선수들에게 박수를. 


솔로 라이딩 중이라 너무 큰 소리를 내기엔 창피하지만, 선수들을 위해 큰 소리로 박수를 쳐 주었다. 


— 낙동중 파이팅~(그리고 물개박수). 예상치 못한 선수들의 응답이 돌아왔다.

— 같이 타요! 같이 가요! 같이 타요!!!

 서... 설마. 내게 하는 소리인가? 정말?

— 누나, 같이 타요. 같이 타면 재미있어요. 


그러더니 확성기 한 대에서 놀라울 만큼 큰 소음. 선수 들이 선다. 차량의 지시등이 깜박인다. 뭔가 대기한다는 의 미인가. 아 이런. 나를 기다린다는 뜻이구나. 


— 나 그리 잘 못 타요. 그냥 가요.


— 괜찮아요, 누나. 재미있을 거예요. 저기 맨 뒤에 서세요. 저희가 바람 다 막아 드릴게요. 


맨 앞의 친구가 계속 나를 오라고 안내한다. 맨 뒤. 팀 라이딩에선 가장 편한 자리는 맞다. 앞에서 펠로톤(라이딩 대열)이 모든 바람을 막고 편하게 달릴 수 있도록 해 준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가볍게 합류했고, 이제 오롯이 달리기 에 열중한다. 그래도 실제 선수들과 달리는 건 처음이다. 비록 나는 30대 후반 누나이고 대충 스무 살 가까이 아래 동생들일지라도 이 친구들은 매일 훈련하는 선수이고, 나 는 주말을 이용해 운동 삼아 페달링 할 뿐. 순수 아마추어 가 선수들과 같이 달리는 상황. 상상도 해 보지 못한 긴장 감이 밀려든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언덕을 지나 다운힐에서부터 속도 가 남다르다. 중학생들이라 지방이 1 도 없는 몸무게. 엉덩 이를 들어 안장 뒤로 완전히 배를 숙이는 웨이백 자세부터 다르다. 이 친구들은 복부가 거의 안장에 맞닿을 정도로 숙이고 시선은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응시한다. 나보다 더 가벼운 몸무게로 보이는 친구도 이 내리막에서 점점 먼 저 내려가는 형국이다. 


— 누나. 팔꿈치까지 안쪽으로 붙이세요. 그리고 고개를 좀 더 숙이시고요. 


바로 옆 까까머리 친구 하나가 내게 친절히 코칭을 해 준다. 


내리막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시 오르막이 오는 낙타 구 간. 이 낙타 구간의 좌우로 도는 헤어핀을 세 번 정도 돌 자 힘에 부친다. 라이딩 대열의 힘에 눌렸던 기운에도, 조 금 힘을 내 보자던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젠 이 친구들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계속해서 함께 따라가는 것 자체가 목표다. 고개를 오르는 업힐. 경사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나도 모르게 핸들 바를 더 움켜잡고 페달을 밟는다. 


— 누나. 페달링 좋네요. 그런데 업힐에서는 상체를 좌우로 흔들기보다는 그냥 기댄다고 생각하시는 게 편해요. 


다시 옆 친구가 내 자세 하나하나를 봐준다. 내가 4년 동안 타 오던 습관적 자세와 또 다른가 보다. 하나하나 일 러 주는 대로 조금 고쳐 보니 그나마 이 대열의 친구들과 자세가 비슷해지는 느낌이다. 


— (띡.) 자. 잠시 속도를 높이자. 자, 선두 파워 두 번, 길게 가자. 힘내고. 지금 그 파워 가지고 안 돼. 어제보다 30 은 느려! (띡.) 


뒤에 따라오던 서포트카의 스피커의 용도를 알았다. 한데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난 지금 최고조로 끌어올린 힘을 계속 쏟아 넣고 있는 상황인데. 이 대열의 친구들은 어제보다 느린 속도란다. 


— 두 번, 길게. 이건 무슨 소리니? 


— 아, 네. 길게 두 번 스프린트 쳐서 앞으로 치고 나가 라는 뜻이고요. 지금 파워 미터에 찍힌 기록이 어제보다 느리니 좀 빨리 밟으란 소리죠. 


— (띡.) 야 이 자식아. 안 들려? 오늘은 운동 아니고 데 이트야? 힘을 내란 말이다. (띡.) 


반강제적 표현과 욕설 같은 어조가 섞인다. 아, 이 선수들의 뒤통수에 이런 억압의 스트레스가 있었다니. 잊고 있었다. 이 친구들은 운동선수였고, 이 대열 펠로톤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트레인과 같았다는 걸. 동호회의 몇몇 아마추어들과 타던 모습과는 다르다. 


— 원래 확성기로 욕도 하시니?

— 흐. 오늘은 누나가 있어서 안 하시는 건데요? 정말 


저희끼리 탈 땐 귀가 아플 정도예요. 


— (띡.) 자자, 선생님. 지금 선생님 속도에 애들이 맞춰 가고 있어요. 좀 힘을 내주세요. 하하. (띡.) 


그랬다. 이 녀석들이 나보고 함께 타자고 한 이유는 다름 아닌 쉬어 가고 싶기 때문이었다. 난 더하고 더한 힘을 지금 쏟아부어 넣고 있는데 말이지. 안 되겠다. 손을 들자. 


핸들 바 위의 장비를 보니 40여 km를 힘차게 달려왔다.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 청평이 바로 보이는 공터가 보인다. 바로 상체를 뒤로 틀어, 한 손을 들었다. 


— 좀 쉬어 가죠. 더 이상 저는 안 되겠어요. 


— (띡.) 너희들. 이 선생님 때문에 다행인 줄 알아. 어제 161 


보다 한 텀 빠르게 쉰다. 자, 이 공터에서 10분간 휴식. 중간 보급은 나눠 준 것으로 해결할 것. (띡.) 


잠시 쉬는 시간. 자전거는 그대로 바닥에 눕히고, 주저앉아 버렸다. 숨도 겨우 쉬고 있는 내 마음은 오로지 하나. ‘그래 난 아마추어고 너흰 선수들이니까 이해해 주겠지.’라 는 기대. 그리고 이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의 호흡을 빨리 가다듬는 것에만 집중하자. 습습, 후후. 


— 누나 이거 드세요. 힘드시죠? 헤헤.

펠로톤 대열 맨 뒤의 내 옆에서 친절히 가르쳐 주던 그 학생이 내게 뭔가를 내민다. 


— 이게 뭐니. 


— 아, 저희 이렇게 쉴 때 중간 보급용으로 먹는 파워 젤인데요. 하나 먹어 두면 다음 스프린트 때 힘내는 데 꽤 도움이 돼요. 


받는 둥 마는 둥. 팔에도 힘이 없어 떨구는 내 상태를 보더니 이 친구가 내 가까이 앉는다. 


— 사실 누나가 되게 잘 타신 거예요. 다른 분들은 10 킬로 정도 같이 타시면 그냥 가시거든요. 대단하신데요? 


— 어 그래? 지금... 누... 누나가 말할 힘이 없거든. 


— 그럼 제가 뜯어 드릴게요.

파워 젤의 입구 부분을 쓱 찢어 내게 다시 내민다.


— 고... 고마워. 이거 먹으면 정말 힘이 나니? 


—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요. 지금까지 안 드셔 보셨다면 좋을 거예요. 


물통의 물을 들이켜다 말고, 받아 든 파워 젤을 바로 입에 넣었다. 튜브형으로 된 케이스는 매우 얇아서 입으로 밀어 넣기 좋은 모양이다. 입에 들어가는 순간 화하고 밀려드는 민트 향의 첫 느낌 이후 바로 꿀맛 같은 단맛이 느 껴졌다. 어쩌면 초콜릿보다도 더 강한 느낌의 단맛이다. 심 한 운동 후 근육에 젖산이 분비되어 근육이 뭉치는 것을 방지할 때 단것을 먹는 것과 비슷한 목적이리라. 가파 왔던 숨을 겨우 다듬고. 편하게 다시 매무새를 고치고 앉았다. 


— 이름이 뭐니? 


— 아. 준이라고 합니다. 낙동중 2 학년이에요. 


헬멧을 벗는 순간 드러난 모습. 매우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가 인상적이다. 이제야 숨을 가다듬고 주변을 보니 모 든 선수들이 까까머리는 아니다. 이 친구만 유일한 까까머 리. 


— 준? 성은? 


— 킴준이라고 함니다. 


숨가쁜 상황이라서였을까. 이 친구 억양이 한국 사람과 약간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느꼈다. 지금 보니 헤어스타일이나 이목구비도 여느 학생들과는 조금 다르다. 눈은 작지만 옆으로 넓고, 짙지만 얇게 늘어선 양쪽 눈썹과 눈매가 날카롭다. 외모와 다르게 말투는 매우 부드러운 편이지만. 


— 김준. 아, 외자인가 보구나. 이거 줘서 너무 고맙다. 조금 회복이 되는 듯해. 


— 다행이군요. 누나 자전거 잘 타는 거 같스므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청평댐을 지나는 시점에 있는 큰 공원이다. 아, 여기까지인 것 같다. 원래 계획도 여기서 리턴해 서 코스를 돌기로 생각했었으니. 오히려 코스는 비슷해도 너무 빨리 달려온 나머지, 돌아가는 길은 몸을 다스리며 천천히 쿨다운 모드로 가야겠다. 


— 그, 그래. 한데 누난 여기까지인 거 같다. 너무 힘드네. 역시 선수들은 다르구나. 많이 배웠고 너무 즐거웠어. 


— 아. 아쉽지만 그럼 다음버네 또 뵙게쓰므니다. 여기 제 손 잡으십시오. 


벌써 휴식 시간 10분이 다 지난 건가. 준 학생의 손을 잡고 일어서 보니, 선수들은 이미 페달에 클릿을 끼우고 달리려는 자세다. 코치가 앉아 있을 서포트 카를 향해 공손한 마음과 자세로 인사를 했다. 여기서 꼭 헤어져서 극 한까지 달려 본 경험을 감사히 생각하며. 


— (빠앙~! 띡.) 자 모두들 인사드리고.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다음에 저희 학교 선수들 시합이나 밖에서 보시면 오늘처럼 격려 부탁드립니다. 


아 그거였구나. 이 친구들에게 힘든 상황에서도 주변도로의 사람들이 쳐 주는 박수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는 잘 안다. 여러 도로 사이클 경기에서도 볼 수 있는 훈훈한 장면 중 하나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도로 사이클 경기의 경우,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길가로 나와 선수들에게 박수 쳐주는 장면은 흔하다. 유독 우리나라만 비인기 종목이라서 박수에 인색하고 그저 고개를 들고 쳐다만 봐 줄 뿐이다. 서로 인사하고, 출발하는 선수들에게 다시 박수를 쳐 주며 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음에 또 보더라도 펠로톤에 날 넣진 말아 달라고. 


20여 km를 리턴해서 청평역 주차장으로 겨우 돌아왔다. 허벅지 햄스트링에 무리가 갔는지 뻐근한 상태. 그즈음에 서 마치고 선수들과 헤어진 것이 어찌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창밖의 청평호 도로를 지금도 라이딩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문득 그 학생들이 안쓰럽고, 한 편으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약해 보면 이 선수들이 내게 함께 타자고 했던 이유는 첫째,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코치의 욕을 덜 먹을 수 있다. 둘째, 그 욕을 덜 먹으면 서도 평소 대비 좀 천천히 탈 수 있다. 셋째, 남자만 득실 거리는 펠로톤에 여자가 있다면 더더욱 같이 타는 즐거움 이 있다. 아마도 이 세 가지 때문일 게다. 


집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거치해 두고 정리. 여느 때와 다르게 무리해서 타서인지,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 금 가도 되냐는 메시지를 준석 셰프에게 보내고 샤워를 한 사이 답장이 왔다. 


장거리 투어 후라서, 시간이 여의치 않을 늦은 저녁인데 도 준석 셰프는 기다려 주었다. 들어서자마자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를 모두 풀어냈다. 신기한 경험이라도 한 듯이 연 신 조리 외에는 도저히 내게 말을 걸 틈을 주지 않고 나 혼자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만큼 투어 중 만난 선수들과의 조우, 그리고 수준 높은 팀팩 라이딩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 힘들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내 재미없는 언변에도 준석 셰프는 어 깨를 들썩이고, 큰 소리를 내어 웃어 주었다. 


— 너무 웃지 말아요. 정말 힘들어서 그랬단 말이죠. 저도 모르게 손이 번쩍! 


— 그러게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손이 올라갔을까요. 핸들도 잡기 바쁘셨을 텐데 말이죠. 그런 대열을 펠로톤이라 하는 거군요. 그 이야기도 처음 들었는데 왠지 상상이 갑 니다. 가끔 이탈리아에서도 보았고, 취업한 가게 TV에서 도 본 듯해요. 무슨 큰 대회를 하는 거 같았는데 식당 안 사람들이 식사 중에 잠시 일어서서 사이클 선수들 대형을 보고 모두 박수를 보내더라고요. 


— 대형에 박수를 보낸 게 아니라 아마도 선수에게 보내 는 걸 거예요. 그 나라에서 TV에 나올 정도라면, 그 선수 들 꽤 유명하거든요. 


— 그렇군요. 아무튼 재미있는 경험 하시고 오셨네요. 자, 여기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오늘은 맛있는 밥 한 끼의 야심작 오징어 볶음밥입니다. 그간 한식은 많이 못 해 드 린 듯해서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손님이라서 그런지 남아 있는 식재료를 충분히 사용했습니다. 


— 아 여느 때보다 많네요. 그래도 다 먹을 수 있어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자마자 허겁지겁 오징어 살을 입에 넣었다. 허기진 내 몸을 보살피겠다는 강한 의지처럼 보였으리 라. 오징어가 탱글 하다. 칼집이 새겨진 오징어 살의 무늬로 달고 살짝 매운맛이 잘 배어든 느낌이다. 오징어 살의 채 무늬가 십자로 가지런하다. 한 결 한 결이 정성스레 보여 더 정직하게 오므려져 씹힌다. 무엇보다 오늘 힘들었던 라 이딩의 아스팔트 도로에서 맛보았던 회색의 텁텁함을 달고 매운 이 맛이 쓸어내려 준다. 


— 선수들이 그런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성희 님을 끌어들였다는 점에 저도 같은 생각이 상상되네요. 아마 나쁜 이유는 없고 좋은 이유 세 가지만 있었을 거 같군요. 하나 퀴즈를 낼까요? 드시면서 한번 맞춰 보세요. 음식점 #단체 손님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 글쎄요. 지금 그런 거 생각할 여지가 없어요. 한번 풀어놔 주세요.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음식에 관련된 음식점에 관한 문화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한참을 듣다 보니 우리나라 음식점에선 아직 예약이나, 음식점에서의 예절에 대해서는 상식 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은 듯하다. 어쩌면 ‘뭐 그래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걸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본 적이 있고. 나조차도 회사의 예정된 회식에서 메뉴를 휙휙 바꿔 버리는 선배들과 함께 새로 갈 음식점만 예약하고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던 듯하다. 준석 셰프에게 꽤 미안해지는 밤이다. 




#셰프 로그: 단체 손님이 좋은 점, 나쁜 점 





많은 분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답이긴 하다. 


이 가게 안에 테이블이 많지 않은 이유는 손님과 직접 대화하며 음식을 선보이고 이야길 나눌 수 있기 때문인데, 테이블을 하나 둔 이유가 그나마 단체 손님을 받기 위해서 다. 단체 손님이 좋은 첫 번째 이유는 하루 장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이라 함은 시간적으로도, 수입과 직결된 부분으로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실력을 그대로 선보일 수 있어서다. 온전히 내 실력이 침전하지 않고 살아 있고, 음식의 재료를 그대로 받아들이 고 그 맛을 살렸는지 점검해 보기에도 좋은 기회이다. 단 체 손님 한 분 한 분의 입맛에 맞아 평가가 나쁘지 않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두 번째라면 음식 재료를 일괄적으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의 단체 손님 음식에 결을 같이하는 파생 요리를 만들고 이를 활용해 일반 손님들께도 유사한 맛을 함께 선보일 수 있어 좋다. 가령 오늘 오전에 들른 현우와 일행분들처럼 해장국을 원하되 너무 칼칼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는 경우가 그렇다. 오징어를 최대한 가로 혹은 사선으로 얇게 칼집을 내어 부드럽게 손질한 다음, 무와 양파를 이 용해 끓여 내는 오징어 뭇국을 오전에 선보이고. 오후 일 부 손님들께 원하시면 오징어 볶음 요리를 선보일 수 있으니 좋다. 물엿으로 내는 감칠맛을 최대한 활용하면 저녁에 찾게 되는 약간의 자극적인 음식의 기억을 살릴 수 있어 좋은 아이템이기도 하다. 


세 번째라면 역시나 일반적인 단가 이상의 합리적인 가 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단체 손님들 대부분 이 함께 만족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때 단골손님으로 다시 뵐 기회들이 생기기도 한다. 단체 손님이 다시 가 족과, 친구와 방문하시는 경우가 많다. 즉, 단체 손님은 또 다른 기회다. 


맛의 선호, 제철 음식의 활용, 단체 손님 모임 자체의 성 격에 따라 고민한 메뉴, 그리고 개인 손님보다 더 정갈하게 음식을 내놓아야 한다. 이 중 하나의 요인이라도 잘 걸맞지 않거나, 너무 강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음식 외적으로 지저분한 환경 요인이 있다면 십중팔구 그날의 평은 좋지 않다. 별 한 개도 받기 어렵다. 하지만 그건 분명 실수에서 기인하고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정말 힘든 점은 다름 아닌 No Show, 즉 연락 없는 예약 취소다. 전채, 본식, 후식으로 이어지는 정식 코스 요리를 원하실 경우 혼자서 이 단체 손님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손이 많이 가진 않지만 플레이팅에도 신경 써야 하고, 점잖게 양념이나 소스를 만들어 내 선보여야 하는 전채 요리의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어 예 약 전날 혹은 당일 아침에 일찍 미리 해 두는 편이다. 이 탈리아나 일본 음식의 특징 중 하나가 프랑스 요리처럼 소스를 강하게 많이 사용하기보다는 음식 재료 본연의 맛 그대로를 살리는 데 더 집중하는 편. 그래서 나의 이런 작은 가게뿐만 아니라 규모 있는 식당인 경우 더 많은 시간을 본식 이전에 전채 요리에 할애한다. 손님들이 도착함과 동 시에 본식을 요리하기 시작하는데 막상 전채 요리는 내어 놓지도 못하고, 무심하게 연락이 없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 좀 더 규모 있게 음식점을 열지 않은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와 같은 유럽권 나라에선 상당한 비신 사적 행동으로 보는 문화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 번 No Show를 보인 고객에겐 다시는 내가 만든 음식을 선보이 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문화. 즉, 음식 자체도 내 몸의 일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매우 주의 깊게 신경 써 주는 모 습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No Show가 횡행해 실망이었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역시 잦은 편이어서, 일본에서 아시안 푸드 섹션의 셰프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귀국할 때 결심한 것이 크지 않은 나만 의 가게, 소통하는 가게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결심을 하고 이와 같이 장사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종종 No Show가 벌어지곤 해서 아쉬울 때가 있다. 성희 님의 단체 라이딩에서 그렇게 힘에 부쳐 당하는 아픔(?)과 유사하게 음식점 안에서도 이렇게 당하는 경우가 있다. 하 지만 그것 역시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또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 내는 것이 또 우리 아니겠는가.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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