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티븐 Mar 03. 2024

가자 go!

자전거 타는 여자, 요리하는 남자


가자 go!


40대 중반으로 가고 있다. 새로 만나는 사람 알아 가기 보다는 오히려 그간 지내 온 사람들과의 ‘시시껍절한’ 이야 기에 만족할 나이. 도서관이 회사라고 하기엔 절간 같은 곳이긴 하지만 엄연한 위계가 있었다. 선배 대우도 깍듯해 야 했다. 선배들이 사전 설명 없이 들여오는 이상한 서적 도 비치해야 했다. 사실 이런 조직 문화엔 적응 못 했고, 주말마다 경기도 외곽에서 배운 가구 만들기 경험만 믿고, 회사를 나와 그나마 남은 재주로 차린 셀프 가구점.


초기엔 밀려드는 손님 주문량을 맞추지도 못하다가 이것 도 이사 철 한철 장사라고 뜸할 땐 또 가는 길 묻는 나그 네 외엔 문 열리는 소리도 듣기 힘들 정도다. 도저히 안 되겠어 시작한 취미에 장사치 수완을 하나 더 발휘해서 원 플러스 원 가게로 확장. 나름 멀티숍이라 명명. 내가 그간 자르고, 다듬고, 그라인딩하여 만들어 낸 가구 평판에 더해, 내 튼튼한 두 다리로 돌리는 자전거를 직접 조립하고 난뒤 완성 차 단위로 판매하는 자전거 숍. 이름하여 ‘가자 go!’ 숍.


봄가을 이사 철에는 계획해 둔 인테리어 업자들의 스케 줄에 맞춘다. 원목 쇼핑을 마쳐 두었다가, 이사 철 시작과 함께 주방과 거실 그리고 평대나 책상과 같은 원목 인테리 어 가구를 만들고 납품. 이 작업이 나쁘지 않은 건 철야까 진 필요 없는 수준이라는 것. 교합하고 접합한 가구의 고 정대를 올리고 나면 잠시나마 시간이 남고 이때 나는 다른 일을 하거나 내 취미인 자전거로 운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 불황에 콤보로 달려든 부동산 경기 하락 때문에 이사가 줄면서 주문량이 서서히 줄기 시작. 생활력 을 조여 오는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탄천변에 아파트를 바라보 고 있는 주상복합 안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의 시선과 동 선을 쏠쏠치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점점 줄어드는 매상 에 걱정하고 있던 상황. 지난해 드렸던 책상 사이에서 빈 틈이 보여 연락해 주신 수진 이모의 방문이 또 다른 전환 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 현우야. 잘돼 가? 어떻게 뭐가 문제니?


— 변형되지 않고 고정하기 좋게 나무와 나무를 접합시 키는 클램프라는 장비로 작업을 하는데요... 그게....


— 어렵게 말하지 말고.

— 제가 하나 놓친 게 있는 거 같아 접합제를 다시 발라 지금 저렇게 물려 둔 상태예요.


— 그래 알았다. 언제 가져가면 되니?


— 늦어도 이번 주말엔 가져다 드릴게요.


— 한데 왜 이 공방에 만드는 가구가 내 것 하나밖에 없 니.


— 비수기라서요.

— 이래서 목에 풀칠은 하는 거니? — 사실 녹록하지 않아요.


— 어쩐다니. 너 맨날 가구는 안 만들고 자전거만 타더니 게슴츠레 일감 놓친 거 아냐?


— 지금은 이사 철이 아니라서요. 원래 시즌을 좀 타요.


— 빈 공간이 많아 보이는데. 저렇게 걸어 둔 자전거 말 이다. 더럽게 송진 가루 날리듯 먼지 발싸개 만들지 말고, 저 공방 앞에 훤하게 내걸고 판다고 올려 봐.


— 에이, 파는 게 아니고 매일 타는 건데요 뭘.


라고 말이 떨어지는 순간 뒤통수가 싸~하다. 그라인더로 한 구획 깎아 낸 듯한 서늘함이 남았다. 정말 그래 볼까? 내가 자전거는 직접 조립해서 만들 수 있는 미케닉으로서 스킬도 있고, 대충 대리점과 수입사 간 공급 경로도 알고, 전문 자전거 숍들과 경쟁하지 않는 선에서. 주업은 공방이 지만 간간이 이런 비수기에 아르바이트 삼아 공방의 일부 를 미케닉 숍으로 쓰면 어떨까. 십 년 가까이 운동으로 스 포츠 사이클링을 하며 여러 공급처와 안면을 터놓은 상황 이라 일부 물량만 개런티로 가져온다 한들 부담스럽지 않 은 수준이리라. 담보가 필요하면 공방을 걸면 되고. 어차피 경제적 문제도 구석으로 몰린 터. 해 보지 못할 게 뭐가 있어.


수진 이모님의 저 한마디 말씀에, 비수기 탈출 프로젝트 는 점점 구체화되었고, 매일 수백 명 지나가는 탄천로 사 람들의 눈에 잘 띄게 한 대 멋있게 걸어 두고, 눈에 더 잘 띄는 붉은색 프레임의 자전거 위에 ‘가자 gO!’라고 네온을 하나 걸었다. 그러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웬걸. 하루에 한두 명씩 공방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질문을 하기 시작했 고, 특히 여름철 뛰기 힘든 사람들의 습성 때문인지, 잠시 그늘 삼아 들어와 자전거의 이모저모를 물어보고는 일주일 뒤엔 구매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멀티숍이 가능하리란 확신은 못 했지만 자전거 도로이기 도 한 탄천로를 앞에 두고 이렇게 호전적 결과를 낳을 줄 이야. 더 재미있는 건, 자전거 상담하러 들어와 앉은 의자 와 상담 테이블을 만져 본 몇몇 손님들의 반응. 자전거 상 담하다, ‘한데 이 가구는 어디서 들여온 거냐.’며 공방 뒤쪽 작업실 유리창에 비친 그라인더를 더 의심스럽게 보는 눈 치. 그때마다 공방+숍의 복합적 이름을 설명하다 보면 가을에 이사할 예정이니 하나 생각해 보자는 반응. 실로 효과 만점의 변화였다.


이 다이내믹한 변화에 감사함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이유를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보다, 작은 런치 테이블을 무료로 받으신 이모님의 흡족한 미소에 오히려 내가 더 감사 할 일이었다.




가게 이름은? 타 보긴 했고?


연락 없던 사람들도 많고 많은 가운데, 내겐 별 영양가 없는 녀석들의 연락. 난 밖으로는 활달해도, 안으로는 하나 하나 참고 살다 보니 아주 친하지 않으면 오랜만의 만남은 부담스럽다. 동창회다, 동호회다 뭐다 다 좋지만 이젠 사람 들과의 만남도 가려 가며 내 생업도 잘 지키고, 무엇보다 운동도 함께 할 수 있는 삶. 이 밸런스를 놓치고 싶지 않 던 어느 날. 초·중·고를 함께 나와 상스러운 욕도 너스레로 받아넘길 사이로, 허물없이 지내 온 녀석의 연락. 하고많은 날들 중에서, 하필이면 완제 가구 납품 때문에 바빠 죽겠 는데 말이지.


양수겸장으로 들어오는 질문을 받고 정신 차려 보니 어 쨌거나였다. 허물없는 사이이다 보니, 아닌 것처럼 냉소적 으로 응대했지만 내 수익과 직결된 터였으니. 굳이 얼굴 보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주문조차도 폰 으로 해 왔다.


— 뭐? 그냥 거기서 자리 잡지 이게 무슨 소리야.


— 원래 돌아와서 내 자리를 만들려고 했어.


— 흠. 장사는 너보다 내가 선배인 건 알지? 시시하게 시작할 거면 안 하는 게 나을 텐데?


— 시시하진 않을 거야. 그래도 손맛은 낼 수 있을 정도 는 되었으니까.


— 조미료 맛은 아니고?


핀잔으로 참견으로 점철된 찐한 대화.


하지만 15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다는 친구를 맞이 하는 우리만의 대화법일 뿐. 그냥 웃어넘긴다.


계속 보게 될 터, 자주 보며 이야기 나눌 터이니 그간의 사정은 잠시 접고 바로 본론으로 간다.


— 가게 이름은 지었냐?


— 아직. 위치만 정했어. 수진 이모님 교회 앞.


— 뭐? 우리 동네?


— 응, 들었다. 너도 거기서 공방 한다고.


— 내 먹고사는 데 수진 이모님이 살려 주신 바 있어 이 동네를 사랑하긴 하지만, 음식점들은 하나둘씩 죽어 나가 는 어둠의 밭이라 별로인데.


— 알아. 수진 이모님도 그렇게 이야기하시더라. 그래서 크게 할 건 아니야.


여기서 또 수진 이모님의 경륜이 발휘된 것인가 싶다. 수진 이모님이 무심하게 던지는 몇 마디. 흘려보내기엔 아 까운 명언들이 많은데, 역시나 너도 그 영향권 안이었어. 관심 없는 척으로 일관하는 녀석이 귀는 내밀하게 열고 있 단 말이지.


— 여하튼 동네 좀 둘러보고 자주 이야기하자.

— 이미 가게 터는 잡았고, 한번 와서 인테리어 이야기


좀 하자. 주방 가구는 작업 동선에 맞춰 이미 레이아웃을 잡아 뒀어. 넌 주방 테이블 앞으로 늘어선 아일랜드 식탁 이랑, 기역 자로 붙은 다찌 형식의 바 테이블, 그리고 약간 높은 의자 제작해서 들여놔 주면 될 거야.


— 아일랜드 식탁은 알겠다만 웬 어울리지도 않는 다찌?


— 주방 작업대를 싱크대와 등지고. 작업대의 높이와 손 님들 앉으실 식탁 테이블이 바로 보이게 함께 붙이고 싶어. 와 보면 이해될 거야.


— 어, 그래? 거 손님이 귀찮게 하면 어쩌려고. 여하튼 외국 물 먹은 셰프 티 내기는. 한데 나 인건비 비싼 건 알 지?


— 외상. 원목값은 줄게. 아, 참. 700*350 사이즈 정도 도마 하나 두께 120. 이건 선물로 줄 거라 생각해.


빈대다. 그러나 친구이니 금가루에 뒹구는 빈대라 생각 하자. 한데 마지막 선물이란 단어에선 섬뜩하다. 통화를 마 치자마자 다시 울리는 폰. 무신경하게 들며 말했다.


— 알았어. 준다고, 줘. 선물. 이 자식아!


— 응? 무슨?


— 아, 성희구나. 미안. 다른 녀석인 줄. 너희 둘은 어째 내가 꼭 비싸게 살아 내야 할 시간에 콤보로 연락을 하는 지.


— 둘? 무슨?

— 아, 아냐. 별 얘기 아냐. 신경 쓰지 마. 웬일이니? — 아, 얼마 전에 물어본 것 때문에....

— 뭐? 아. 자전거. 한데 탈 줄은 알아?

— 응. 학교 다니며, 시장 오갈 때 자주 타 봤지. 왜?


— 네가 본 내 것은 좀 달라. 그냥 자전거가 아니거든.


— 알아. 로드인가 뭔가로 부르던데?


— 아니. 동네 마실 나가는 분위기로 타는 게 아니라고.


이제부터 다짐과 각오를 동반한 구매력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손님이 대답할 여유를 주지 말고 계속 뇌까려야 한 다. 저급한 상술로 보일지라도.


— 이런 건 로드사이클이라고 해서. 진부한 역사와 전통 이런 문제란 소린 안 할게. 꽤 많은 열량 소비가 따르고, 몸 상태도 잘 가꾸어야 하고, 코어도 잘 발달해야 하고. 코 어가 뭐냐면 운동력의 중심, 밸런스를 잡는 중요한 근육을 뜻하는데 자전거라는 게 그래. 제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긴장감이 있어야 하는 운동이야. 그래서 일반 러닝이나 하 이킹보다, 같은 운동 시간에 훨씬 많은 칼로리를 소비하는 운동이지. 그리고 말이야.


내 상술이 약간은 먹힌 건지, 아니면 보기 좋게 무시당 한 건지 모르겠지만, 바로 앞서 잘라 먹혔다.


— 갈게. 한 대 팔아. 짧고 명료한 대답.


— 흠.... 우선 사이즈부터 재 보고 이야기하자.


— 자전거 팔라니까.


— 그래. 맞아.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가 마구 페달링해 야 할, 너의 롱 다리 길이를 재야 맞는 자전거를 판다고. 그냥 동네 일간지 구독하면 주는 자전거 아니거든. 10 분이 면 되니 한번 와 줘.


시작은 이랬는데 성희는 나보다 더 독한 녀석이었다. 새 로 알게 된 동네 주민처럼, 구매를 하자마자 뻔질나게 내 숍을 드나들며 초급진적 자전거 덕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3회에 계속...)



이전 01화 #1 선택의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