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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Apr 07. 2024

낙차

자전거 타는 여자, 요리하는 남자

 월요일이라 쉬고 있어야할 준석 씨가 웬일로 가게란다. 오늘 중요한 예약 손님이 있어 열었다고. 이 역시 확 인해 보라는 상황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안장 위에 올라 바로 달려간다. 한데 다리가 잠긴 듯했다. 빠르게 달릴 수 없었다. 기어비를 낮추고 회전수를 높여 케이던스로만 달린다. 라이딩 중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좋지 않은 습관이다. 주의를 기울여 타야 안전하다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그러면 안 되지만, 지금은 머릿속이 복잡하다. 잊고 싶지만,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 놀라운 상황이다. 있을 수도 없는 비현실적 상황. 준이. 준석 씨의 아들일 리는 없다. 지금까지 들은 우연으로 단정하는 건 억지다. 확인하고 싶어 달리고 있지만, 마음속 복잡함이 다리를 무겁게 한다. 


한강변을 지나 자전거 도로로 들어서 잠시 업·다운힐 같은 언덕을 하나 지나야 한다. 그리고 서울공항 근처의 직선 주로를 지나면 된다. 건널목도 없고 사람도 별로 없다. 하지만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잠깐 동안의 주의 결핍이었을까. 눈만 깜박였다고 생각했다. 분명 앞을 주시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었나. 앞으로 지나는 팀에게 휘청인 후 브레이킹을 하다 핸들이 흔들렸다. 핸들 바에서 손을 놓진 않았다. 오히려 손아귀 힘을 더 주어 잡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잠시 후 튀어나온 요철을 넘다 전방에 사람이 걷고 있음을 뒤늦게 인지했다. 핸들을 빠르게 틀어 옆으로 비켜서듯 겨우 피했다. 그러나 복잡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파고들었기 때문인지, 페달에서 클 릿을 빼내어 풀어야 하는 것을 잊었다. 서서히 서던 자전거는 그만 측면으로 미끄러졌고, 클릿을 빼야 한다는 습관이 까마득하게 이 순간엔 반작용. 클릿 슈즈가 페달과 체결되어 있는 상황을 잠시 잊었다. 그대로 바닥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잠시 잊었다.


 눈을 떠 보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고개를 살 짝 들어 보니 자전거는 5m 정도 떨어진 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나는 자전거와 어떻게 분리되었는지도 모르게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져 누워 있었다. 벌떡 일어날 힘이 없었다. 일어나려는데 어깻죽지가 욱신거렸다. 다행히 다리는 괜찮았지만 클릿 슈즈 한쪽은 벗겨졌고 슈즈를 조이는 스냅 다이얼은 풀려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천천히 일어났다. 마음속이 복잡해서였을까.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였다. 체결되어 있던 클릿만 잘 비틀어서 빼내었 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래야 하는 습관조차 잊어버릴 만큼 준이 생각뿐이었다. 천천히 일어나 걸어 보니 오랜만의 낙차 치곤 덜 다쳤다 싶은 게 걷는 데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일으켜 세운 자전거도 확인해 본다. 체인도 정상, 손으로 짚어 돌려 보니 휠 구름성에도 이상 없고, 브레이크도 정상 동작, 구동계의 기어 변속에 있어서도 문제없음을 확인. 그러나 잠시 후 어깨가 쓰리고 휑했다. 팔을 뻗은 후 반대쪽 어깨를 잡아 보는데 저지가 찢어져있다. 살갗이 벗겨졌는지 손이 닿자마자 쓰렸다. 


사람들이 모여들며 내 상황을 확인하는데, 빨리 움직여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다시 안장 위에 올라 천천히 페달링해 본다. 괜찮았던 다리도 욱신거리고, 핸들 바에 기댄 상체까지는 참을 만하지만 어깨 통증이 계속해서 밀려온다. 조금씩 누적되었던 피로도 밀려온다. 천천히 페 달링한다. 팔다리 힘이 모두 빠져나간 듯한 통증. 10여 km 를 겨우 달려 도착했다. 안장에서 내리며 이번엔 클릿을 제대로 풀고 땅을 짚어 섰다. 하지만 이번엔 다리가 욱신 거렸다. 아까 낙차 하며 햄스트링이 놀랬는지 이제야 느껴 지는건 또 뭐람.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손님 한 분은 일어나던 참이었고, 수진 이모님은 아일랜드 식탁 쪽으로 앉 아서 준석 씨와 이야기 중이셨다. 


— 어서 와요. 또 보네요. 


— 안녕하세요. 휴우.... 


— 아니, 왜 그래요. 다쳤어요? 이런 이런. 얘, 준석아, 성희 씨가 다쳤나 보다. 어서 약 상자 좀 가져와. 


— 식사 중이셨나 봐요. 저 때문에 괜히 신경 쓰시면 안되는데.... 


— 아, 막 다 먹고 일어서려던 참이에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괜히 생각이 많았던 걸까. 성급했던 마음이 된장 냄새에 풀려 버리는 듯했다. 


테이블석 건너 벽의 위쪽 상부장을 열어 약 상자를 꺼내 오는 준석 씨도 손동작이 빨라졌다. 이모님은 약 상자를 낚아채듯 받아 들고는 얼음팩도 만들라 하셨다. 


— 자, 어디 좀 봅시다. 아이고. 많이 쓸렸네. 얼마나 아플꼬. 이거 소독부터 합시다. 다행히 소독용 솜이 있네. 후 우. 


— 아... 아.... 


— 조금만 참아요. 거의 다 되어 가요. 


소독약이 벗겨진 살갗에 거침없이 던지는 통증. 왜 정신을 차리지 않았냐며 나무라는 듯하다. 핀셋으로 집어 든 소독용 알코올 솜이 붉은색으로 바뀐 걸 보고 나서야 적잖이 다쳤음을 실감했다. 거즈를 꺼내어 누빈 듯한 모양으로 접으시 더니 가위로 사각사각 잘라 내셨다. 찢어진 저지는 아예 뒤로 젖혀졌고 거즈가 그 빈 자리를 그대로 차지했다. 의료용 테이프로 마감새가 비집고 나오지 않게 깔끔하게 붙여졌다. 


— 고맙습니다. 


— 아이고, 어쩌다 이랬수. 어디 또 아픈 데는 없고? 


— 아, 들어오는데 다리를 저는 거 같던데 다리도 다친거 아니에요? 


— 아. 아니에요. 살짝 접질린 듯 좀 욱신거리는 거 빼곤 어깨만큼 다치진 않았어요. 


— 인석아, 어서 그 냉찜질 주머니 성희 씨 줘라. 난 잠시 약국에 좀 다녀오겠수. 기다려 보우. 


— 이모님,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 아, 괜찮아요. 금세 다녀오리다. 여기 앉아 있어요. 


말씀 끝나기가 무섭게 일어나셨고 잠시 뒤돌아보니 이미 문은 열리고 닫히는 소리만 들렸다. 준석 씨는 놀란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 조용히 냉찜질 주머니를 내게 건네곤 계속해서 내 어깨만을 응시했다. 


— 뭘 그리 걱정스레 봐요. 처음 넘어진 것도 아닌데. 잠깐 실수했어요. 살짝. 


— 아, 잠시만요. 된장찌개 해 뒀어요. 금방 드릴게요. 


— 아, 점심은 먹었어요. 


— 네? 그럼 오늘은 ... 아, 절보러 오신 거군요. 그럼 저 때문에 다친 건가요? 이런.... 


—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이실직고하자면.

— 네? 아이고. 아니, 무슨 그런. 잠시만요. 여기 이거 한 잔 드세요. 


오렌지 주스를 건네받아 한 모금 들이켜고는, 바로 물어 볼 것이 있다고하고 그를 아일랜드 식탁 주방 안쪽으로 앉혔다. 


— 이젠 그 상처 이야기 쉽게 할 수 있다고 했죠? 특히 저에게는? 


— 네? 아니, 갑자기 상처는 왜요. 


— 꼭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요.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 네. 당연히. 성희 씨라면 이제 이해해 주리라 믿어요. 그날 밤도 그래서 메시지도....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는데 전화가 울리고 준석 씨가 전화를 받으러 계산대에 다녀온다. 


— 아. 이모님이신데 자주 가시던 약국이 뭔 일인지 출타 중이라고 걸어 두고 문이 잠겨 있대요. 집에 얼른 가셔서 가져오시겠다고 급한 일 없다면 기다려 달라 하시네요. 


— 아.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 괜찮을 거예요. 이모님이 성희 씨가 좋은가 봐요. 게다가 오늘 교회에서 자매결연 맺은 학교에 뭘 만들어 보내 신다고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셨어요. 피곤하시다 하셔서 여기서 식사하시고, 쉬고 계셨던 거고요. 


지금 물어봐야 할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망설여 진다. 괜히 아픈 기억을 다시 이야기해 보라며 채근하는 건 아닐지. 하지만 의문은 풀어야 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나에게 주어진 실타래 같은 숙제일지도 모른다. 그래, 어차피 이야길 한 거니 더 이상 준석 씨를 힘들게 할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냥 하나만 물어보자. 하나만. 


— 저, 궁금한 게 있는데.... 


— 네? 아, 네. 이 상처요? 


도마 위를 닦아 내던 행주를 옆으로 두고 팔을 살짝 걷어 올리더니 내 앞에 바로 서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 저, 지난주 밤에 이야기해 주시던 첫사랑 이야기 또 꺼내어 미안한데요. 혹시 그 후엔 어떻게 헤어지게 된 건 가요? 


— 아. 아, 네. 한데 좀 의외네요. 하필 지금 이럴 때.

— 너무 무례한 거라면 미안해요. 하지만 꼭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준석 씨에게 다가가려면 또 필요하고요. 


준석 씨는 문밖을 잠시 바라보았다. 잠시 후 자세를 고치더니, 이내 의자를 당겨 앉는다. 그리고 내 눈을 응시하고는 살짝 웃는다. 다행이다. 그에겐 꽤 오랜 일일 테니. 난 사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준석 씨의 부담을 줄여 주고 싶었다. 그래, 순수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보면 된다. 


— 자세히 이야기해 주길 바라요? 그럼 나에게 다가와 줄 거예요? 지금보다 더 가까이? 


— 이미 충분히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준석 씨. 


— 흠. 그렇군요. 고마워요. 그럼.... 


준석은 마사코와 재회 후, 하루가 멀다 하고 다시 만났다. 도심 내에는 사람도 많고, 그녀의 아버지 회사 사람들 도 바삐 매장과 도심 사이를 다니는 터라 눈에 띄지 않게 만나길 바랐다. 도쿄 시부야에서 하라주쿠 방면으로 지나는 길 왼쪽으로 요요기 공원이 있었다. 둘은 주로 JR선 한 정거장 거리를 이동해 공원에서 데이트를 했는데, 베로나에서처럼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하라주쿠까지 이동해 왔고, 준석은 다케시타도리 시장 내의 일터에서 가까운 거리라 빠르게 걸으면 5분 내에 도착했다. 한갓진 호수의 옆 푸른색 잔디나 벤치에 앉아 점심이나 저녁을 준비해서 그간의 회포를 나누곤 했다. 

요요기 공원에서도 호수와 조용한 목로를 지나며, 주변 을 예의 주시하는 그녀의 모습에 미안했다. 자신보다 준석 을 걱정해서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싫었다. 


 재회 후 얼마나 되었을까.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자는 그녀의 제안. 그저 그때의 준석의 숨결을 느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안장 위에 올라 그녀를 태우고 서서히 앞으로 나가는데 5m쯤 지났을까. 뒷자리에 옆으로 비켜 앉은 그녀가 두 팔로 준석을 감싸 안았다. 준석의 등을 감싸 안은 그녀의 품은 따듯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준석에게 이야기했다. 자신이 홀몸이 아니라고. 사실 일본으로 와서 알게 되었다고. 준석은 자전거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부탁했다. 다시 호수 동쪽을 돌았다. 이번엔 아주 서서히. 처음엔 놀랐지만 이내 마사코는 준석의 등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계속해서 몇 번이고 그랬다. 그렇게 알려 주었다. 준석은 그제야 자신의 아이임을 깨달았다. 조용히 한 손을 그녀의 손에 포개어 꼬옥 잡았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당신과 이곳에서 다 시 한번 이야기한다고. 


‘우리는 앞으로도 헤어지지 않고, 사랑할 사이이며, 그 사랑은 그녀와 나만의 소중한 것이라고. 서로 믿고 이야기 하는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고. 당신을 이렇게 다시 만났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이 아이 때문에라도 우린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이젠 운명이자 가족이라고. 준석은 그날 둘의 인연이 밝게 빛나고 있다고 믿었다. 요요기 공원 한복판 길에 자전거를 세우고 그녀를 보니 그녀는 고개만 끄덕이며 웃었다. 준석은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배를 만져 봤다. 봉긋하진 않았지만 예전의 느낌과는 다른 몽글한 느낌이었다. 그녀에게 목례 같은 어설픈 인사를 하고는 다시 그녀를 살포시 안아 주었다. 그 포옹이 그녀와의 마지막 포옹이 될 줄은 전혀 모른 채. 


며칠 후, 다시 요요기 공원.4월 초 벚꽃이 만발하기로 유명한 공원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봄비가 내렸다. 어둑해지는 밤이지만 공원 입구 건너편 화려한 간판들은 변함없이 켜져 있었다. 저녁 손님이 몰린 탓인지 약속보다 십여 분을 늦은 준석에게 마사코는 빗물을 손으로 튕기며 괜한 짜증을 부렸다. 피곤한데 기다리게 했다며. 준석은 마사코의 응석이 오히려 사랑스럽다며 웃었다. 그녀가 쓰고 온 우산은 접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요요기 공원을 걸었다. 


다음 주엔 그렇게 반대하시는 아버님은 쉽지 않으니 우선 어머님이라도 찾아뵙자고 했다. 준석은 당연히 찾아뵈어야 한다고 대답하곤 마음속으로 준비했다. 그녀를 힘들지 않게 하리라. 온 마음과 인생의 경로가 그녀와 함께 있음을 그녀의 부모님께 설명하리라. 오래 걸려도 반드시 설득해 내리라. 이제 어엿한 내 가게를 꾸릴 기반을 마련하고 있고, 미래에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가장으로서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리라는 의지를 세워 보았다. 내리는 비에 그녀의 팔에 소름이 오른 터라 준석은 자신의 카디건을 그녀에게 입혀 주었다. 


그러곤 요요기 공원 장미 공원을 지나 메이지 신궁 쪽 입구 광장으로 나올 때였다. 큰길가로 나오는 터라 그녀는 자신의 우산을 펴고 있었고, 한 걸음 뒤쪽에 서 있던 준석은 뒤에서 달려드는 차를 보지 못했다. 


한순간이었다. 


미처 피할 새 없이. 굉음을 내며 달려든 차량의 헤드라이트만이 눈에 비추었다. 달려든 차량은 준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한 걸음 뒤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도 함께 허공으로 솟았다. 보닛 위로 던져지듯 쓰러진 그녀와 준석. 준석은 쓰러지면서도 그녀만을 응시했다. 그녀를 잡아 주어야 했다. 이윽고 보닛에서 떨어지며 그녀를 가까스로 감싸 안았다. 그뿐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그게 다였다. 


— 이런. 사고였군요. 


—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 그렇다고 볼 수 있다뇨? 


—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 차가 그녀의 회사 소유의 차라는 걸. 차량에 탄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뺑소니라는데 차는 꽤 멀리에 버려져 있었다고 하고요. 


그뿐이었다. 그때까지의 기억은.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 다. 의식을 잃고 있다 깨어난 건 일주일 만이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병원의 간호사와 간간이 방문하는 경찰에게 들었다. 우린 보도블록으로 함께 떨어졌고, 더 불운하게도 우두 커니 서 있는 소화전으로 떨어졌단다. 다행히 그녀를 감싸 안았지만 나는 왼팔과 어깨 축으로 돌며 소화전으로 떨어졌고, 그녀는 차도 방향으로 그대로 쓰러졌다고. 내 팔은 으스러져 세 차례 수술을 거쳤다. 깨어보니 딱딱한 석고로 깁스를 한 상태로 행거 줄에 걸린 채였다. 처음엔 팔만 다친 줄 알았는데 움직이기 힘들어 살펴보니 허리까지 다친 상태로 누워 있어야만 했다. 보름여 가까이 누워 있는 상태로 내가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하나였다. 마사코. 그녀는 어디있냐고. 


그 뒤로 두 달여 만에 일어나 앉을 수 있는 상태로 호전 되자, 병원장이 병실로 들어와 문을 닫고 앉았다. 

그녀는 깨어나지 못했다 했다. 목 아래 임파선에서 복부 그리고 하복부까지 크게 다쳐 종합병원으로 옮겼다고.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걸 왜 이제 야이야기해 주냐며 따져 묻는 내게 병원장은 고개만 숙여 인사하곤 무심히 나가 버렸다. 


퇴원 후, 계속해서 그녀를 찾아 헤매었다. 시부야 매장과 신주쿠, 교토로 연결되는 모든 매장과 본사까지. 심지어 그 녀를 찾아 헤맨지 보름여가 되어 가던 날, 그녀의 본가를 알아내 출근하는 아버지 차 앞에 무릎 꿇고 빌었다. 그녀를 한 번만. 한 번만 만나게 해 주면 다신 찾아오지 않겠 다고까지 했다. 차가 옆으로 비켜나더니 창문이 살짝 열렸다. 그러곤 차디찬 어조로 무심한 한마디만 뱉어 냈다. 


- “너 때문에 내 딸이 죽었다.”


차창 밖으로 짧게 뱉어 내진 그 말. 내게 가죄하는 강한 어조가 담겨 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에 대해 냉담하게 일갈하지? 그 뒤로도 계속해서 찾아갔지만 1년 내내 문전 박대당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경찰에 신고까지 했으나 사망자 사건으로 회부되어 조사는 진행 했지만, 피해자 측에서 추가 조사를 반대해서 중지되었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잔인할 수 있는지. 자신의 딸이 죽었는데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자주 찾아간 경찰서에서 수십 차례 설명한 사정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했다. 1 년 가까이 계속되는 항의에 취업 비자를 들먹였다. 그리고, 오히려 궁지로 내몰렸다. 


그 후론 지쳐 버렸다.6개월 가까이 골방에 틀어박혀 울다 지쳐 자곤 했다. 그녀의 이름만 허공에 메아리처럼 부르곤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어느 날 매장 영업에 참여하 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업 비자 만료는 현실이 되었고, 야속한 나라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이모님이 봐주셨던 집에서 방에 틀어박혀 모든 이들을, 세상을 원망하며 지냈다. 첫사랑은 그렇게 처참했고 긴 상처를 남겼다. 


— 여기까지예요. 다행히. 이젠 아프진 않습니다.


십수 년도 더 된 이야기니까요. 


낙차로 인해 아팠던 어깨를 움켜잡고 있는 성희. 뺨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흔한 게 사랑 이야기라지만, 그렇게 보기엔 준석의 기억과 경험은 너무 일방적이고 차가웠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그에겐 현재 진행형처럼 느껴진 십수 년간 의 시간이, 기억이 날 때마다 흔들리던 팔이 아픔으로만 기억되었을 게다. 


— 왜 그리 팔을 가렸는지. 왜 그리 아파했는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준석 씨 마음을 더 힘들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꺼내기 싫은 기억일 텐데. 


— 아니에요. 다 털어놓고 보니, 오랜 악몽에서 이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아 후련하네요. 


— 하늘에 있을 그분도 이제 자유로워졌을 거예요. — 그럴까요?


— 네. 왜냐면.... 


‘드르륵’. 


—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침 약사 아주머니가 문을 잠그고 어딜 갔지 뭐니. 한참 돌아서 왔네. 


수진 이모가 손에 들린 봉투에서 파스와 몇 가지 약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 두며 성희 모습을 살핀다. 파스를 한 장 꺼내어 성희 손에 건네주시고는 무릎을 살펴본다. 접질려 욱신거리는 느낌의 무릎 바깥쪽으로 파스를 한 장 붙이는데 준석이 어느새 옆으로 와 돕는다. 


— 시간도 꽤 지난 듯한데, 남겨도 좋으니 식사 조금이라 도 하고 가요. 회복하는 데 필요할 거예요. 


— 그래요. 오늘은 아주 구수한 된장찌개라우.

— 네. #엄마의 된장찌개 느낌이 날 거예요. 들고 가요. 


저도 아팠을 때 이모님이 해 주신 걸 먹고 힘을 냈어요. 


— 그랬다우. 저 녀석 한국에 오자마자 집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안 하더니 그랬다니깐. 엄마, 밥 달라고. 


— 네, 지난번에 말씀하셨었죠. 예, 그럼 조금만 주세요. 준석 씨. 정말 조금만 먹고 갈게요. 


— 한데 이제 한마디 해야겠수. 내 길 건널 때도 무섭지 만. 이 자전거가 이렇게 한눈 팔면 무서운 운동이라는 건 맞는 것 같지 않수? 종종 들려오는데, 어린 녀석들 아픈 데 쓰겠다고 해서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곳에도 이것저것 비용이랑 이런 의약품을 보내 준다우. 


— 후원도 하시고 정말 멋지세요. 이모님. 


— 이젠 아들로서 준석이가 있지만, 꽤 오래전에 보낸 그 녀석 때문에 시작한 것이긴 해요. 큰 비용을 보내는 건 아니니 대단한 건 아니지. 그저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이런 후원이 좀 더 커져서 내 하늘에 있는 그 녀석에게도 좋은 기운이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뿐이라우. 


— 꽤 도움이 될 거예요. 정말 좋은 일 하시는 거고요. 존경스럽습니다. 이모님. 


— 함께 후원하는 장로들 이야기로는, 낙동중이래나 뭐래 


나. 크진 않은 운동부라지 아마. 많이들 다친다고 하더이다. 그러니 성희 양도 조심해야 해. 오늘처럼 다치면 안 돼요. 


— 네? 어느 학교라고 하셨죠? 지금? ...낙... 낙동중이라 고 하셨어요? 


— 응? 응. 아마 그럴 거유. 내 폰이 어디 있나. 아 여기 있네. 잠시만... 그래요. 이 녀석들이라우. 낙동중 맞네. 얼마 전에 입상한 게 있다고 하던데. 후원해 주셔서 감사하 다고 사진을 보내왔더라고. 이것 보슈. 


이럴 수가. 낙동중. 준이 학교다. 사이클부. 한 줄로 자 전거를 왼쪽에 두고 늘어서 있다. 모두 헬멧은 벗어 핸들 후드에 걸어 두었다. 사진에 보이는 한 명씩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재차 확인해 본다. 가장 왼쪽은 그 코치님. 준이네 코치님이 서 계시고, 준이는 맨 왼쪽에서 세 번째. 준이다. 준이 맞다. 


이게 무슨 일인가 도대체. 오늘에서야 모든 일들이 정리가 된다고 하지만 우연 중에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준석 씨는 이런 사실을 아무것도 모른 채, 이모님이 보여 주는 사진은 보지도 않고, 그저 나를 위해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다. 준이의 존재조차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음식을 만드는 데에만. 주방 쪽으로 돌아서서, 자신이 향하는 사람의 존재를 알지도 못한 채. 




#셰프 로그: 엄마의 된장찌개 


이젠 성희 씨가 나에게 좀 더 다가올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아픈 마음을 이해할 줄 알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눈빛을 가진 그녀는 이제야 제 마음을 좀 알아주는 것 같아 기쁘다. 한참을 돌아서 기억의 한편에 꼭 닫아 두었던 것. 닫아 둔 문 앞에 서면 항상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기억. 그 기억의 문을 열어 이제는 가두지 않고 해가 들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길을 깨끗하게 정돈했다. 해가 든 그 길을 따라 그 아픈 기억들도 이제 가라며 손흔들어 배웅해 주었다. 이렇게 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라도 성희 씨가 나타나 그 배웅을 도와주었다. 배웅한 이 대신 이제 내 아픔의 상처를 치유받았으니, 성희 씨에게 온전히 다가서려 한다. 한국에 들어와서 막 놓았던 정신을 추스르고 일어난 첫날 먹었던 음식인데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기억. 아마 내 치유의 시작은 거기에서부터일지 도 모르겠다. 따듯한 온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음식. 지금 낙차로 아픈 상처로 두 팔을 움츠려 앉아 있는 성희 씨를 치유해 주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최선을 다해 해 보자. 그녀를 위해. 진심으로 다가설 수 있는 그녀를 위해. 


내어놓은 이유: 


낙차로 인해 그녀의 근력에 이상이 있을 것이다. 이곳저곳. 몸이 움츠러든 상태로 떨림이 느껴진다. 이런 상태에서 무엇을 먹을지보다는 가장 친근한 음식이 좋을 것이리라. 


내어놓는 생각: 


내가 힘들었을 때 기억에 남는 음식이었으니 그녀에게도 좋으리라. 예상하지 못한 순간적인 사고로 이곳저곳이 멍 일텐데 그녀는 지금 모르고 있다. 해감된 모시조개가 근력 회복에도 좋을 것이고, 상처 회복에도 좋으리라. 내게 봉크 여신으로 첫인상을 남겼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내게 관심을 보인 여성이다. 내겐 가녀린 여자처럼 느껴진다. 힘든 운 동을 했다지만 오늘은 그녀의 호흡에 내 도움이 필요하다. 


이 요리의 특징: 


가장 중요한 것은 진한 향의 국물이다. 맑고 순한 맛도 좋을 테지만 진한 된장의 향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 줄 것이다. 



준비하기: 


무 한 토막, 애호박 반 개, 감자, 대파와 양파, 두부 1/3모, 바지락, 국물용 멸치 다섯 마리, 쌀뜨물, 된장 2큰 술, 소금, 다진 마늘. 


우선 모시조개의 해감은 미리 해 두자. 물을 받아 소금을 한 숟갈 물에 넣고, 바락바락 문지른다. 여러 번 헹굼해 준 후, 물을 다시 받아 소금 1스푼을 섞어 둔다. 그리고 해감 양푼 위를 덮어 어둡게 해 두자. 이 녀석들은 어두워 야 머금은 흙 소금을 뱉어 내리라. 


요리 시작: 


무가 익으면 부드럽게 식감이 좋긴 하지만 감자와 섞어도 좋다. 대파, 애호박, 고추, 무, 감자 등을 송송 깍둑썰기 를 해 둔다. 멸치 대가리를 떼어 내고, 국물용 멸치로 프라이팬에 1분간 데치듯 익힌다. 구수한 향과 함께 비릿한 내음이 사라져 좋다. 


쌀을 씻은 다음, 쌀뜨물을 버리지 않고 냄비에 별도로 받아 두되, 된장을 넣고 첫 물은 버리고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물을 쌀뜨물로 받아 뚝배기에 넣는다. 우선 손질한 다음 데쳐 둔 멸치와 썰어 둔 무와 함께 넣고 끓인다. 단, 뚝배기의 정량 물의 1/3에 해당하는 정도만 넣고 끓여 낸 다. 


여기서 진한 향의 국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된장과 쌀뜨물과 무를 넣고 1/3 더 쌀뜨물을 넣고 끓이는, 이런 식으로 세 번으로 나누어 끓이면서 좀 더 진한 향과 색이 나오는 된장국을 끓여 낸다. 운동 후 먹어야 하는 그녀를 위해 쌈장을 한 숟가락 넣어 당도를 조금 올려 주자. 그리하면 더 구수하리라. 


여성에게 좋은 냉이 된장찌개로 끓여 내어 구수함과 함께 시원한 향을 즐기도록 해 주자. 냉이 나물이 그 방법이다. 데친 냉이를 간장 또는 살짝 참기름에 버무린 후 이때 함께 넣어 준다. 


이제 다 끓으면 멸치를 걷어 내자. 비린내 없이 구수함만 남는다. 애호박, 감자, 야채를 넣어 준다. 마지막으로 찌개 국물이 팔팔 끓을 때 해감해 둔 바지락 모시조개를 넣어 준다. 팔팔 끓어야 바지락이 입을 벌린다. 마지막으로 두부 1/3모를 넣고, 청양고추를 아주 조금만 채 썰어 넣는 다. 


뽀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쌀밥과 함께 내어 준다. 입을 벌린 모시조개를 위로 보이도록 배려해 주자. 첫 한 모 금과 함께 모시조개의 쫀득한 식감이 그녀의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다. 




희망 



모두가 한곳으로 향해 있었다. 아버지의 나라로 데려가 달라는 그녀 마사코의 마음. 할아버지를 떠나 이곳에서 지내다 반드시 유명해져서 아버지가 찾아오실 거라 믿는 준의 마음. 아들을 먼저 보냈지만 이젠 아들처럼 지내며 보살피는 아들이나 다름없는 준석 씨와 하늘에 있을 아들에게 더 복이 가라며 후원하는 이모님의 마음. 그리고 그녀를 잊지 못한 채 살아온 그의 설움 맺힌 마음. 


준석 씨의 사랑이후 상처는 어쩌면 예견되었을 수도 있다. 몰랐다 할지라도 해후의 상황에서 둘은 어쩌면 또 다른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둘 모두가 아니라면 그녀만이라도. 하지만 그런 이별을 바랐던 건 아니었으리라. 그들도 모를 상황에서의 이별일 줄은 몰랐으리라. 둘의 사랑이 거기에 멈추어 있음을 알지는 못했으리라. 그리고 사랑의 결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으리라. 하지만 정말. 어쩌면 예견된 이별을 그녀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데려가 달라는 부탁이 마지막 유언이 었다면 그녀는 안타까운 이별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모님의 후원은 어떤 의미였을까. 꽤 오래전 아들을 먼저 보냈고, 아들이 남긴 빈자리는 준석 씨가 왔다손 치더라도 메워지지 않을 슬픔이리라.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었을까. 후원회는 교회라지만 이모님도 장로로서 후원에 앞장섰다는 건 다른 의미였었지 않을까. 그리고 그 후원의 마음이 준이에게도 닿아 있으리라. 


인연의 반대말은 상처라 했고, 외로운 이의 눈은 외로운 이가 알아본다 했다. 가족의 존재 여부를 떠나, 어떠한 가족사 속에서 살아왔는지. 처음 준석 씨를 보았을 때, 준석 씨의 가게를 방문했을 때 느꼈다. 온화한 분위기 속에 내려앉아 있는 그의 외로움을. 그가 가꾸어 요리해 온 시간 이 지금 당신의 식탁 앞에 앉은 이에겐 안온한 조명뿐인 것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준석 씨는 느끼는 듯했다. 그들이 “다시 올게요.”라고 말하는 것의 반가움을. 그의 외로움을 채워 줄 요리를 이용해 다시 돌아와 앉아 줄 손님이. 그 손님과 나눌 또 한 번의 대화가. 그에겐 외로움을 달랠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모른다. 서로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왔고, 어떻게 다가서 있는지.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나라는 여자가 이유 없이 왜 서 있는지. 교차로 한가운데 낯선 이들의 시선은 바뀌었다. 마치 마지막 결승선 100 미터 전 스프린트 지점에서부터 자리싸움하는 긴장감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지금 이곳에서 모든 이들의 사정을 알게 된 이 시점은 그런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스프린트를 하며 최고의 속력으로 달려 나가 결론을 내고 포디움에 올라서야 할 그 시점. 


 하나는 분명하다. 그들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십수 년간 떨어져 있었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어디로부터 왔고, 얼마나 그리워했으며, 왜 서로를 모르고 지내 왔어야 하는지도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한다.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며, 필연적으로 다가가고 있었음을. 


누구도 아닌 내가 알고 있다. 준석 씨와 준이. 그들은 만나야 한다. 설사 우연의 일치로, 서로 다른 피로, 그저 스 쳐 가는 우연이라 할지라도. 알도록 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연이 가져온 지금의 이야기는 나만이 알고 있다. 그의 슬픔, 그 녀석의 그리움, 그리고 우리의 시간을. 


 화요일. 마음이 복잡해서였을까. 놀라서였을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늘 밤엔 반드시 이야기해 야겠다. 곰곰이 풀어 본 실타래를. 그들의 시간을. 그들이 알고 있는 서로에 대한 모든 것을. 


‘저. 오늘 퇴근하다 잠시 들러도 될까요? 식사보다는 이 야기가 하고 싶어요.’ 


메신저로 보낸 문장에 오늘따라 답신이 없는 준석 씨. 그가 남겨 둔 그리움이 또 다른 사랑으로 남아 있었음을 그도 아는 걸까. 어쩌면 그녀가 먼발치 저 하늘에서 이 모든 이야기들이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가늠자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희 씨. 언제든 오세요. 이젠 연락 없이 그냥 오셔도 됩니다.’ 


그가 가진 나에 대한 생각은 이제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 애정일까. 나 역시 처음엔 호감이었고, 그 다음은 연민이었고, 앞으로는 인연처럼 느껴지리라. 아니 이 모든 이야기의, 이 운명 같은 로드의 교차로에 내가 신호등처럼 서 있다는 것은 인연임에 충분하리라. 


그들의 시간을 허물어 줘야 한다. 다가설 땐 우연이라 할지라도 마주 선 상황에선 손이라도 펴거나, 어깨라도 들 썩이거나, 인사라도 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 사랑이라는 관념을 넘어, 숙명이라는 온정을 담아 그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그 벽을 조금씩 허물어 주고 싶다. 서로 몰랐던 시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나면 내가 그들에게 전한 그녀의 마음을 담아 하나씩 어루만져 줘야 한다. 


사실 마음 한편에선 어지럽다. 불과 1년 새도 아니라 겨울 끝에서 가을 끝까지 벌어진 이 한 시즌의 이야기가 그 어느 해보다 내겐 크고 높다. 서로 알게 된 인연의 크기는 너무 크고, 그 큰 인연의 이야기를 풀어낼 산은 높다. 높은 산은 그만큼의 경사도에서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다시 오르라는 이유를 남긴다. 그들에게도 이유가 있다. 마사코라는 이름의 그녀도 그 이유를 알고 남겨 주었으리라. 


곰곰이 만약을 생각해 봤다. 내가 만약. 사이클을 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현우 오빠의 SNS 를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현우 오빠가 준석 씨 가게로 가라 하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까. 낙동중 팀을 만나지 않았다면, 준이 아닌 다른 아이와 친해졌다면, 하오고개에서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준이에게 가족 이야 기를 묻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이 모든 게 과연 우연 일까? 


모든 게 필연이었다. 


현우 오빠의 소개로 준석 씨에게 왔고, 준석 씨의 이야기와 준의 이야기가 맞닿아 있고, 이모님의 조언과 사랑이 그들 사이에서 작용하고 있었음을 알아 버렸다. 그리고 한국으로 건너온 할머니의 사랑이 그들에게 다시 만날 필연임을 그녀가 원했을 것이다. 더불어 이 모든 게 어쩌면 나라는 사람에게 다시 시작되도록 벌어지는 필연일지 모른다. 


오늘 그를 만나 모든 걸 풀어내리라. 내가 알고 있는 시작과 끝을. 그들의 사정과, 만나야 하는 당위성을. 조금이라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이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누어 봄직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해 보리라. 


어쩌면... 이 모든 게 마사코 그녀가 내게 하는 마지막 부탁이리라. 


‘드르륵.’ 


— 저 왔어요. 


— 아, 성희 씨. 영업 마무리하고 정리 중이었어요. 잠시 앉아서 기다릴래요? 


— 아. 그럼 마무리하시고, 저는 요 앞 벤치에 있을게요. 밖에서 이야기해요. 


— 그럴까요? 그럼 빨리 정리하고 나갈게요. 먼저 가 계세요. 



(마지막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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