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안 뜨려나?
“선생님, 옆 반 애들이 우리 반에 오고 싶대요. 6학년 선생님 중에서 우리 담임선생님이 제일 착하다고요.”
“음... 난 착하다는 말 싫어하는데.”
“네? 왜요?”
“착한 건 별로 매력이 없어.”
“그럼 어떤 선생님이란 소리를 듣고 싶으세요?”
“음... 마녀쌤?”
“에이…….”
몇 년 전 종영한 드라마 ‘여왕의 교실’을 매우 감명 깊게 보았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고현정이 연기한 ‘마녀쌤’ 마여진 선생님은 늘 아이들을 차갑게 대한다. 그러나 그 심중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해 가길 바라는 깊은 뜻이 있었고 결국 아이들은 알을 깨고 나와 한층 성숙해져서 졸업을 맞이하게 되는 내용이다.
아이들로부터 착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기분이 영 별로다. 옆 반에 민폐를 끼칠 수 있는 교사가 바로 착한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허용적인 교사의 옆 반 선생님은 1년이 피곤해진다. 우리 반에서는 안 되는 것이 옆 반에서는 허용되기 때문에 아이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들 기준에 착하다는 건 무슨 짓을 해도 혼내지 않는 선생님을 뜻한다. 모범적인 아이들은 착한 선생님 반에서 지내는 1년을 힘들어하기도 한다.
초임 때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아이들의 언니, 누나처럼 수업 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학생들과 수다를 이어갔다. 이 모습에 지나가던 다른 반 선생님이 이 반에 아이들만 있는 줄 알았다는 말이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너무 친구처럼만 지내다가 선생님으로서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면 괜스레 아이들에게 버럭 소리만 질렀다. 그 당시 한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평소엔 여자 목소리로 말하다가 혼낼 때는 남자 목소리로 바뀌어요.”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선생님의 모습에 아이들도 나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교직 경력 4~5년 차쯤엔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신규의 열정이 끝나고 시들어 버린 꽃처럼 억지로 꾸역꾸역 출퇴근하는 생존형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신규가 아니어도 늘 신규 같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연수에 참석할 때마다 맨 앞자리는 항상 나의 고정석이었다. 매년 과목별로 수업을 연구하고 잘 된 수업을 뽑아 서로 나누는 ‘교실수업개선실천사례연구발표대회’가 열린다. 공문으로 연구대회 소식이 올때마다 들뜬 마음으로 모든 과목 대회 입상을 목표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대전에서 영어로 수업도 최고로 잘하고 배구도 잘하는 미녀 선생님으로 유명해지는 백일몽을 꾸며 그 꿈을 시각화한 비전 보드도 여기저기 그려놓았다. 탁월한 인성교육으로 각계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교육계의 별이 되어 현직 대통령이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직접 학교를 방문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러나 내가 열심히 한다고 아이들이 잘 따라올 것이란 건 큰 착각이었다. 아이들을 위한다고 생각한 나의 모든 다그침과 질책들은 아이들을 힘들게만 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라는 큰 벽에 부딪혀 교실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교권을 침해하는 아이의 폭언을 들으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그해 병 휴직을 신청했다.
어렸을 때 즐겨 불렀던 노래의 한 구절이다.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건데…….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어린 시절의 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내가 아이인 채로 생각, 그 감정을 고대로 간직한 채 크기만 하면 전혀 어려울 게 없을 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도 그때 그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일기장에 꾹꾹 눌러써 가며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어서 교단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나는 교실에서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아이의 생각은 어쩔 땐 철없기 그지없다. 어쩜 이렇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까 싶을 정도로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른들의 생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자기들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어른들 마음대로 한다고만 생각한다. 둘 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양쪽 세대를 경험한 어른들이 먼저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경청하고 이해해 주고, 기다려 줘야 한다. 섣부른 판단과 평가는 자칫 아이들을 오해하고 그들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
벌써 세 번째 학교로 옮긴, 경력 10년 차인 지금은 여유로운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하루하루 무사히 별일 없이 지내는 게 내 꿈이다. 좋은 아이들, 좋은 학부모 만나게 해 달라고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학교를 7바퀴 돌며 기도했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7일째 성을 7바퀴 도는 이스라엘 민족처럼 돌고 또 돌았다.
매일 아침 수업 시작하기 전 아이들 앞에서 왼손을 번쩍 들고 세 가지를 다짐한다.
‘배움의 세계에 아이들을 초대하겠습니다, 판단과 평가를 하지 않고 기다림과 미소로 한 명 한 명 존중하겠습니다, 놀이와 함께 즐거운 수업을 만들겠습니다.’
앞에서 선생님이 무엇을 하든 신경도 안 쓸 것 같은 아이들이 이 다짐을 한 번이라도 빼먹으면 오늘은 왜 안 하냐고 넌지시 물어본다. 내 입으로 뱉은 말이니 오늘따라 아이들이 심하게 떠들어서 혼내고 싶어도 혼낼 수가 없다. 미소를 머금고 아이들에게 묻는다.
“오늘따라 조금 소란스럽다? 무슨 일 있어? 지금 꼭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야? 이제 선생님이 좀 말해도 될까?”
갈수록 교직의 권위가 떨어지고 있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온갖 민원과 악성 댓글에 시달리며 아동학대로 고소당하지 않게 한 발 한 발 위태롭게 나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고 싶다. 책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 사회, 과학, 음악, 미술……. 해줄 이야기, 들을 이야기, 나눌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바로 얼마전 스승의 날 편지 한 통 못 받고 저녁에 맥주 한 캔 하면서 신세 한탄했지만, 그래도 다음날 학교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다. 엄청난 가르침을 전수하는 것도, 문제 행동의 아이들을 개과천선 시키고 싶은 것도 아니다. 기억에 남는 선생님,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러 간다. 나는 이제 교실의 여왕이 아니다. 교실의 주인은 아이들이다.
*대문사진 출처: mbc 여왕의 교실 공식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