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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이력서

by 콩소여 Jan 06. 2025

  결혼을 결심할 즈음엔 내 집 마련에 대한 욕심이 크게 없었다. 집이라는 것이 꼭 사야 하는 것인지, 큰돈이 필요할 때 팔기도 쉽지 않은 집에 다들 왜 이리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도 다 옛말이었다. 남녀가 평등한 이 사회에서 그런 틀에 박힌 생각 자체가 거슬렸다. 딱히 내 집이란 것 없이 세상에 널리고 널린 집을 자유롭게 이용하며 이곳저곳 옮겨 다니고 싶었다.


  투자의 기본은 종잣돈 마련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정확히 1년 6개월째였고 모아둔 돈은 통장에 몇백이 다였다. 오랜 수험생활 탈출을 기뻐하며 월급을 물 쓰듯 펑펑 써버린 탓이었다. 경제관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었다. 남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양쪽 집에서 무일푼의 사회초년생들을 위하여 살림 집 마련을 위해 각각 오천, 삼천 만원씩 도와주셨다.


  신혼집은 저녁에 슬리퍼를 신고 집 밖에 나서면 원하는 것은 모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명 ‘슬리퍼 상권’의 18평 아파트를 전세로 구했다. 저녁에 어슬렁거리며 밖으로 나가면 무엇이든 사 먹을 수 있었고, 어디든 재미난 것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집에서는 개미가 벽을 타고 줄지어 행진했다. 보통 개미가 있는 집엔 바퀴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낮엔 개미군단이 일하고 밤엔 바퀴벌레가 자주 출몰했다. 침대, 소파, 화장대, 텔레비전을 신혼 가전 가구로 들였다.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은 집주인이 쓰라고 놓고 갔다. 작은 집에 가구까지 들어차니 정작 걸어 다닐 공간은 거의 없었다.


  어느 날 직장 동료들의 권유로 공무원 임대주택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내 집 마련의 의지가 없던 터라 입주자 신청 후 선정되었을 때, 마치 청약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기뻐했다. 뻥 뚫린 초등학교 전망에 24평 아파트는 대궐 같았다. 벽지 상태도 나쁘지 않아서 바로 이사해도 되었지만, 개미소굴 탈출 기념으로 한껏 새집 기분을 내고 싶었다. 굳이 멀쩡한 벽에 셀프 페인트칠을 하기로 했다. 친환경 페인트 선정부터, 어떤 색으로 칠할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고민하면 할수록 예쁜 색들이 아른거려서 결국 모든 공간을 다 다른 색으로 칠하기로 했다. 수소문해서 멀리 매장까지 찾아가 페인트를 사는데 사장님이 물으셨다.


  “혹시 어린이집 하세요?”


  “아뇨, 이렇게 다양한 색으로 칠하면 많이 이상할까요?”


  “하하하... 보통은 한두 가지 색으로 포인트만 주죠.”


  고개를 끄덕이며 계획대로 페인트를 구입했다. 결사반대가 아니면 나에겐 긍정의 신호였다.


  마스킹 테이프로 집안 곳곳에 테두리를 두르고 바닥에 비닐을 깔고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바로 후회가 되었다. 생각보다 일이 고되었다. 색이 바로 예쁘게 나오지 않고 여러 번 칠해야 원하는 색이 나왔다. 나중엔 부족한 페인트 양을 메꾸기 위해 전신의 힘을 주어 롤러에 남은 페인트를 쥐어짜듯 여러 번 덧칠해야 했다. 저렴한 비용으로 셀프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딱 맞게 구입한 페인트통을 하염없이 흘겨보았다. 막노동도 이런 막노동이 없었다.


  거실은 민트, 안방은 하늘색, 주방은 주황색, 옷방은 핑크, 아이들 방은 연두색으로 칠했다. 이제야 내 집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는 남편이 인테리어에 감각이 있었다. 나는 그저 남들과 다른 공간, 특이한 구조에만 목을 맸다. 남편은 그런 나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자신만의 감각을 살려 빨간 장, 시스템 행거, 철제 캐비닛, 카페장, 아일랜드 식탁, 매립형 센서등, 바의자 등을 요즘 핫하다는 인테리어 가구, 소품들을 공격적으로 구입하였다. 그렇게 유명한 신혼집 감성 아이템이란 아이템은 죄다 모아 놓은 집이 완성되었다.


  “이게 유명한 코너 선반이라는 건데 어디에다 둘진 모르겠지만 일단 사봤어.”


  “아, 그래! 여기다 두는 건 어때?”


  “그래, 놔둬 보고 별로면 나중에 또 옮기자.”



브런치 글 이미지 1

  신혼집인지 어린이집인지 정체성이 혼란스러웠던 그곳에서 더 이상 재계약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서야 내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 온 지 6년 만이었다. 살 수만 있으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여러모로 살기 편한 곳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되어 우리의 발목을 붙잡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 희희낙락하며 여행 다니고,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면서 즐기는 동안 주변의 아파트값들이 무섭게 올라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집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이곳저곳을 알아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계획 없이 무지하게 살았는지를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래도 부부가 일심동체로 이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단 주거지역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나쁘지 않아서 근방의 아파트로 물색을 시작했다. 여러 군데 아파트를 다니며 소위 ‘임장’이라는 것을 했다. 부동산 쪽에 박학다식한 친구의 의견을 참고해 후보 아파트들 중 최종 결정을 하게 되었다. 동시에 대출을 알아보러 백방으로 뛰어다녔는데, 영혼까지 끌어모아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다 받는 ‘영끌투자’를 하게 되었다. 둘이 벌어서 한 사람의 월급은 고스란히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식이었다.


  낮 동안엔 발로 뛰고, 밤엔 각 집의 장단점과 자금 마련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집을 사야겠다고 결심하고 부부가 동시에 뛴 지 2주 만에 지금의 보금자리에 세 번째 둥지를 틀 계약을 성사했다. 다 끝나고 나니 둘 다 살이 4킬로씩은 빠져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집값이 가장 높을 때, 가장 높은 탑층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 동네 최고의 바람 맛집, 낮동안 햇살이 집안 구석구석 한가득 들어차는 화이트 톤의 하얀 꼭대기 집. 잘 이용하지 않는 다락은 제쳐놓더라도 덕분에 층고가 높아 시원한 개방감을 자랑하며 세상 조용한 이곳에서는 커피 한잔만 마셔도 세상 부러울 곳이 없는 멋진 커피숍이 된다. 이렇게 좋은 집을 왜 이제야 만났을까.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나에게 집은 부동산이기 전에 아늑한 안식처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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