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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Sep 20. 2023

엄마는 장래희망이 뭐예요?


  "엄마는 장래희망이 뭐예요?"


 어느 날 7살 딸이 물었습니다. 마흔이 넘어서 '장래희망'이라는 단어를 맞닥뜨리니 어색하기도 하면서 당황스러웠어요. 당장 그럴싸한 대답을 찾지 못해 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엄마는 이미 다 컸는데, 또 뭐가 되어야 해?"


 "엄마는 나중에 할머니가 될 거잖아요. 할머니가 돼서는 뭐가 되고 싶어요?"


  그러네요. 딸의 눈에 저는 엄마에서 할머니가 될 테니, 장래에 무언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었어요. 사실 딸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은 있었어요. 다만 나중에 무언가 되어야 할 미래의 목표가 아닐 뿐이었지요. 저는 지금처럼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제가 좋아하는 독서와 글쓰기를 편안하게 계속할 수 있다면 다른 건 다 필요 없거든요. 그냥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살고 싶은 게 제 솔직한 장래희망입니다.


 '장래희망이 뭐야?'

 어렸을 때는 참 많이 듣던 말이에요. 생각해 보면 저는 어렸을 때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었습니다. 그냥 친구들이 하는 대답을 따라하거나, 어른들이 정해주는 답 중에 골라서 대답을 했어요. 선생님이요. 의사 선생님이요. 대답들이 거의 정해져 있었습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장래희망은 성적 순이 되어버렸고요.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졸업한 학과가 장래희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취직한 후에는, 높은 연봉이 꿈이 되었고요.

 '노벨상을 받을 거야.'라는 철 모르는 어릴 때의 희망은 어른이 되어 제 위치를 처절히 깨달으면서 바보 같은 장래희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백만장자가 될 거야.'라는 사회 초년생의 희망은 집 값과 내 월급 사이의 괴리를 깨달으면서 더 이상 꿈꾸지 않게 되었고요.


 서른 즈음만 해도 화장대 거울 앞에는 인생 목표를 쓴 메모지가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의 기록을 찾아보니 자세히도 목표를 써놨더라고요. 그 목표대로 되었다면 40대 초반인 저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유명한 강연자이자, 빌딩 건물주여야 하더라고요. 지금 살펴보니 웃음만 나오네요.


 분 단위로 계획을 짜고, 잠을 줄여가며 생활해 봤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루고 싶은 것을 모두 이룰 순 없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노력을 했으니 10개 중에 그나마 7개를 이루지 않았냐고 말씀하는 분들도 계실 테고. 노력을 조금만 더 했다면 10개를 다 이룰 텐데, 더 열심히 하지 그랬냐고 질타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삶의 방식에 틀린 건 없어요. 다 맞아요. 다만 제 삶을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거겠지요.


 목표, 꿈, 장래희망 다 좋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 만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조금 더 빨리 나의 꿈을 달성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목표와 꿈만이 우리 삶의 전부인 걸까요? 꿈을 위해 지금의 힘듦을 참아야만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나의 하루는요?

 나의 하루는 온전히 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는지.  

 이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꿈을 이룬다고 잠을 모자라게 자고 있는 건 아닌지.

 계획대로 일을 끝내지 않았다고 식사를 거르거나 시간에 쫓기듯 인스턴트로 대강 때우는 건 아닌지.

 스트레스로 변비가 생기거나,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생긴 건 아닌지.

 내가 오늘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집에 오면 침대에 쓰러지자마자 잠들지는 않는지.


 비싼 돈을 들여 미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음악회를 가기도 하는데. 미술 작품과 음악 공연보다 더 중요한 나의 하루는 온전히 느끼고 감상하며 잘 살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물론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우며 열심히 생활하시는 분들께는 응원을 보냅니다.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꿈과 목표라는 미래에만 집중하느라 현재의 나를 소홀히 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워 그러는 거예요.


 장래희망이 대학 교수, 베스트셀러 작가, 빌딩 건물주였던 예전의 저는 꿈을 향해 바쁘게 살았습니다. 목표를 매일 상기하고, 할 일을 매일 체크하며, 그냥 열심히만 살았어요.

 가족들이 건강하기를 바라며, 독서와 글쓰기만 하면 행복한 오늘의 저는 하루하루를 온전히 느끼며 삽니다. 잠도 충분히 자고, 먹고 싶은 음식들도 천천히 먹고, 오랫동안 불편했던 과민성 대장 증후군도 없어졌고요.


 목표를 위해 달려갔던 예전의 제 모습보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는 제 모습이 더 마음에 듭니다. 꿈을 향해 열심히 사는 사람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거창한 목표가 없더라도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사람도 멋지다고 말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미래라는 목표와 꿈이 현재의 나를 삼키는 삶 말고요. 온전히 지금의 나에 집중하는 오늘의 삶을 살았으면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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