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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vs 대한민국

왕과 돼지

by 멧별 Jan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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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보면 조선의 왕은 항상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 말은 바로 ‘역모’다. 구중궁궐에 살기 때문에 세상 밖의 일을 잘 알 수 없기에, 누군가 내란을 일으켜 본인의 자리를 빼앗을까봐 매 순간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조선은 양반이라는 귀족 신분제를 기반으로 수립된 국가이고, 법치국가를 표방했으므로 왕이라고 해도 독단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일도 그리 많지 않았다. 적장자 세습이라는 원칙도 있었지만 그 조건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저런 변통으로 대를 이었다. 좋은 왕도 있었고 나쁜 왕도 있었지만 오백 년을 버텼다는 점에서 세계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조선은 망했다. 가장 비참한 경우로 나라 안에서부터 무너진 경우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권문세가의 권력과 재력 독점이 만연하고, 신분사회가 극으로 치달으면서 인구의 절반 정도가 노비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세금을 낼 사람, 군역의 의무를 질 사람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어 국가 경제 및 안보가 최악이었고, 양반들의 더 많이 가지려는 권력다툼은 끊임없었다. 계급사회의 폐단은 심각해서 하층민들은 개돼지 취급을 받아야 했고, 참다못한 도망과 분노가 결집된 민란이 발생하곤 했다. 구한말에 이르러 요즘도 신문에 나오는 소위 ‘아무것도 모르는 왕’과 권문세가 출신의 ‘정치색 짙은 왕비’는 오백 년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다. 부부는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또 다른 외세를 끌어들이는 참 신박한 수를 둬서 나라를 시원하게 말아먹는다.
 
내게는 조선 역사를 보는 가장 애처로운 세 가지 포인트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왕이었던 선조다.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미 다뤘기에 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끊임없이 본인의 권력에 대한 주변의 충성을 시험했다. 의심에 기반을 둔 그는 백척간두의 조선을 그나마 지켜내고 있는 이순신 장군을 의심했고, 아들 광해군의 멀쩡함을 질투했고, 왕좌를 쌀보리 게임처럼 줬다 뺐었다 하면서 신하들과 왕세자를 함께 괴롭혔다. 그렇게 힘들게 왕이 된 광해군은 명나라에 사대하는 자들의 반정에 의해 폐위되고, 대를 이은 인조는 우리가 잘 아는 남한산성 삼배구고두례의 주인공이 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자들이 과연 왕이라는 한 국가를 통치하는 자리에 있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을 남기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양반들이 ‘백성’이라고 칭하는 이 땅 민중들의 우직함이다. 양반들이 통치수단으로 한자를 독점하면서 공자왈 맹자왈 하는 고대 철학을 근간으로 통치를 이어가던 조선에서, 당장 내일 먹을 피죽도 없는 상민이나 천민들까지 충忠과 효孝와 예禮를 지키며 살았다는 점이다. 살기가 정말 개 같은 상황에서도 예를 갖춰 인사하고, 상을 치르고, 혼례를 치르는 법도를 나름의 방식으로 따랐던 사람들. 동학농민전쟁에서도 동학군이 왕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하니 말 다한 것 같다. 그 우직한 사람들은 외세가 침략하면 참 어리석게도 또 의병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이 끝나면 왕에 의해 역적으로 몰리고 관군에게 도륙당하기를 반복했다.

세 번째는 양반들의 평민들에 대한 횡포였는데, 특히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꼽을 수 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서자들이 탄생하여 어이없는 차별을 받았고, 그 와중에 계급사회의 부조리가 선명해져 국가 불안정의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홍길동전을 보면 그 실태를 알 수 있다. 서양의 초야권(Primae Noctis, 프리마 녹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제도와 조선 양반들의 행태는 놀랍게도, 아니 놀랍지도 않게 맞닿아 있다.


조선이 망하고 약 110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은 혼란스럽다. 각종 위법한 것들로부터 국민과 국가를 지키는 임무를 맡은 공무원이 검찰이다. 그 임무 수행을 위해 그들에게는 사법권과 행정권 중간 즈음에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는데, 일부 검찰들은 그것을 권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또 그 권력이 필요한 자들은 어떻게든 검찰들과 관계를 맺고자 애쓴다. 손에 몽둥이가 있고, 사람들이 그 몽둥이 아래 굽신거리고, 몽둥이 맞은 자가 피를 흘리며 용서를 구하게 되면 인간의 뇌는 묘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 맛에 취한 어떤 자가 그의 권력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음흉한 배우자의 배후조종에 이끌리고, 그의 유명세가 필요했던 사악한 정당의 꼬임에 빠져, 독재와 폭력에 의한 질서가 그리운 자들의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술자리에서 후배들을, 때론 선배들도 거느리고 마초 놀음을 하는, 사람에게 충성하진 않지만 검찰이라는 조직에 충성하는, 기계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하고 유죄로 만드는 일에 능숙한, 일면 신념이 있어 보이기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무식한 자인 것 같다. 고시를 통과하기 위해 법조문을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외운 것 외에는, 인생의 어느 한 구석에서도 국가와 국민에 대해, 특히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해 본 흔적도 없는 자이기도 했다.


정황 상 추측되는 바는 이렇다. 그는 지지율 하락, 명태균 게이트, 김건희 명품백, 의료대란, 야당의 탄핵 및 특검 압박 등에 대해 자기반성을 하기보다는, 검사의 시각에서 범죄자로 의심되는 세력들불순한 공격이라고 여긴 것 같다. 좌경 종 세력이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훼손하고 있다는 유튜브 기반 망각에 빠져, 그것들을 한번 혼내줘야 한다고 술을 마시며 생각했을 것이라 본다. (그는 과연 유튜브가 유튜버라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그런 심중을 편향된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고교 동문 군세력과 공유하고, 비주류 군세력 떨거지들은 충성심의 발현으로 두목을 돕기 위해 계엄이라는 계획을 짜기에 이르렀으리라.


북한의 오물풍선 부양 거점을 타격하고, 북한이 대응할 경우 그를 빌미로 계엄령을 발령하여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싹 잡아서 집어넣고 조용하게 평안하게 독재를 하겠다는 계획 말이다. 그가 속한 당은 싫든좋든 당론이라는 명분으로 내란수괴 편에 선다. 집권여당의 국회의원들은 왕을 앞세워 권력을 유지하려는 조선시대 양반과 매우 닮아있다. 그는 이제 구중궁궐에 숨어 법집행을 거부하며 나오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자기들만 아는 국법을 이용해 다 해쳐먹었듯이 법을 이용해 면피할 생각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던 대한민국은 어떤 광인의 행동으로 인해 전혀 새로운 시선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계엄군이라는 치욕스러운 이름, 경호이라는 이름으로 동원된 무고한 병역의무 수행자들, 군인들, 공무원들이 경험한 트라우마에 대해 피해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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