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동 빌라 키즈
2002년 6학년 2학기부터 꿈의 빌라에서 등교를 했다. 드디어 나는 친구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여 같이 놀 수 있게 되었고,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6학년 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야인시대는 우리 초등학생들에게도 큰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야인이 될 거야~” 야인시대에 과몰입해 있는 반 친구 9 명과 개코 팬클럽 다음 카페를 만들었다. 우리는 특히 성동일 씨가 연기한 개코를 좋아했는데 코짜 돌림으로 서로의 별명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코가 큰 편이라 왕코가 되었고, 코가 뚱뚱한 친구는 뚱코, 개그를 담당한 친구는 개코를 했다. 마침 부천시 상동에 야인시대 세트장이 있었고, 야인시대에 진심인 우리는 6학년 마지막 소풍을 떠났다. 배우의 외모보다는 배우의 역할을 좋아하며 장난스럽게 따라 했던 우리의 순수했던 모습은 중학교에 입학 후 많이 달라졌다.
2003년 중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중학교는 입학 배정은 전입되어있는 집에 따라 결정되는데 소사동에서 신축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 중학교를 가게 되었다. 한신아파트, 삼익아파트 인근 지역의 주거지 신축 아파트 단지의 아이들이 모였다. 중학교에 입학해 보니 아이들이 메이커 가방과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나는 브랜드를 전혀 모르고 있었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저축해온 40만 원으로 교복, 가방, 신발, 떡볶이 코트를 부천역 지하상가에서 사서 입학 준비를 했다. 한 아이가 내가 있고 있는 카디건을 갑자기 뒤집더니 “이건 어디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한신시장에서 옷가게 샀는데?”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교복은 아이비, 스마트, 엘리트 브랜드로 가방은 라이프가드, 잔스포츠, 나이키, 아디다스, 레스포색, 신발은 나이키, 아디다스로 브랜드를 착용하고 있냐 아니냐로 구별 짓게 되었다. 어느새 나도 그 사회에 적응되어 가기 시작했고 브랜드를 착용하게 되었다. 실질적인 경제력보다 어떤 것을 걸치고 있는지가 중요 해 졌다. 우리 학교는 2주에 한 번씩 자율 복 데이를 했다. 자율복을 입고 오는 날이면 아이들의 브랜드 경제력이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중품아 단지가 아닌 아이들은 중학교 3년 동안 매일 같이 대머리 산을 오르며 등교를 했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 범박동 현대 홈타운 아파트가 준공되었고, 소사 주공 뜨란채 아파트가 막 지어지고 있었다. 소사 주공 뜨란채 공사로 대머리산이 파이고 흙 길이 되었다. 대머리산이 아파트 단지로 이어지는 길이 되기 전까지 대머리 산은 주택에 사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우리 옆집엔 같은 반 친구 M이 살고 있었다. M은 언니와 남동생이 있었고 그의 언니는 반윤희 st을 소화하는 언니였다. M은 그런 언니의 패션감각과 트렌드를 닮았고 같은 반 친구이자 옆집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전파해 주었다. 우리는 작은방 창문을 내다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고 작은방 창문을 통해 서로 옷과 물건을 빌려 줄 수도 있었다. M의 영향으로 Ceci 잡지에서 부는 부록 상품을 받기 위해 잡지를 구매하기 시작했고, 온라인 쇼핑에 눈이 뜨기 시작했다. M네 집은 소사 뉴타운 호재로 우리 빌라가 2배가 되었던 2006년에 집을 팔고 부천역으로 이사를 갔다. M네 집이 집을 팔고 나갔던 집값은 2021년 현재에도 최고가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