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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에 불꽃을 구경하자고?

타이베이 101 타워 신년 불꽃놀이 축제를 보러 가다.

by 봄물 Jan 27. 2025

비행기에서 내리니 습하고 미적지근한 공기가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습도다. 




지금 대만은 겨울이라고 한다. 

겨울이란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지만 그 차가운 바람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드는 날씨여야 하는데 대만의 겨울은 미적지근한 온도에 습한 날씨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날씨이다. 온도야 뭐 다니기 괜찮다고 해도 이런 습도는.... 습도가 높으면 내 기분도 눅눅해지는 것 같아서 별로인데 지금 딱 그렇다.


그러나.

이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오늘 자정에 있을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것이다. 


내 기억에 내가 굳이 사람 많고 시끄럽고 복잡한 불꽃 축제를 찾아다니며 본 적은 없다.

자고로 나에게 불꽃놀이란 차 한잔을 손에 들고 내 집 베란다에서 저 멀리 보이는 불꽃을 보는 것이다. 

' 음.....' 하며...

지역 축제에서 불꽃놀이를 할 때 그렇게 구경해 왔다. 집에서 보이면 보는 거고, 안 보이면 안보는 거다. 


친구의 딸은 생각이 달랐다. 10대인 친구의 딸은 12월 31일에 대만을 도착했으니 타이베이 101 타워에서 하는 신년 불꽃놀이는 꼭 봐야 한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꽃 축제라며 여행 전부터 보고 싶다고 했고 여행 일정에 꼭 넣어야 한다고 했다. 

뭐.. 보러 갈 수 있다. 갈 수 있지.


그러나.

나는 지금. 밤이 된 대만에 도착했고,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이동해야 하며,  짐 만 두고 나와 다시 지하철을 타야 하고, 목적지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불 꽃을 봐야 한다는 거다. 

50이 된 나에게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불꽃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며 딸에게  작게 이야기했다. 


" 딸아, 피곤하지 않아?"

" 피곤하긴 한데, 괜찮아."


나의 딸은 20대.. 20대 체력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 낑겨서 불꽃을 봐도 괜찮은가 보다.

50대인 나는 피곤함으로 인해 입술 위쪽이 간질 간질 한 게 입술 물집이 생길 것 같다.  

이미 나는 숙소에 들어섰을 때 오늘의 일정이 다 끝났다. 나는 쉬어야 한다. 

그러나 딸들은 아니었다. 특히 10대 딸은 좋은 자리에서 불꽃을 구경하기 위해선 한 시간은 일찍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해서 숙소는 점만 찍고 나와야 했다. 


" 엄마는 길바닥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 다는 거는 자신이 없다."


나의 한숨이 딸을 향한다.  그리고 친구에게도 향한다.


"친구야. 좀 쉬고 오면 안 되었을까... 도착한 첫날인데  꼭 이걸 봐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든다. 

앞서 있는 10대 딸 뒤에서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도 피곤해... 근데, 꼭 보고 싶다는데 어쩌니.."

"그래.. 그럼 가야지"


나도 할 말은 없다. 이럴 거면 여행계획을 짤 때 나도 참여했으면 할 말이 있다. 그때는 너의 꿈을 다 펼치라고 해 놓고선 이제 와서 어깃장을 놓는 것은 어른 답지 못하다. 




지하철 안은 사람으로 꽉 차있었다. 출퇴근 시간에 꽉꽉 들어찬 우리나라 지하철 같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엄청난 인파가 공안들의 통제를 받으며 질서 있게 역 밖으로 나가고 있다. 

한 시간 전이고 한 정거장 전에서 내리는데도 이렇게나 사람이 많다니..


도착한 장소에는 이미 차량이 통제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거리에는 돗자리를 펴고 자리 잡은 가족들, 삼삼 오오 짝을 지어 돌아다니는 사람들, 겨울 추위에 서로 껴앉고 있는 연인들, 주인 따라 나온 강아지들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앞을 봐도 사람, 옆을 봐도 사람, 뒤를 봐도 사람이다. 이런 곳에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그래도 나는 엄마니까 딸들이 힘들지 않도록 처우를 개선해 주어야 한다.  

정신 차리자!!

우선 딸들에게 문 닫은 상가 한쪽 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라 했다. 주변을 둘러보아 깔고 앉을 만한 적당한 쓰레기를 찾아 주었고, 나와 친구는 딸들을 위해 따뜻한 음료와 먹을 것을 사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섰다. 

무늬만 겨울이라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조금씩 찬기가 몸에 스미는 것 같았다. 


우선 만만한 편의점을 찾아 들어갔고 말도 안 되는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가며 먹거리를 샀다.

딸들에게 돌아가 음료와 젤리 등등 먹거리를 나누어 주고 우리도 딸들 옆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작은 젤리를 먹는데..... 이게 뭔가 싶다. 

춥고.. 배고프고.... 남의 나라에서 거지가 된 기분이다. 


" 이모. 이제 저기로 가서 자리 잡아야 해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자리 없어서 못 봐요 "


'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거리 중간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난 안 가련다. 힘들어서 못 서있겠어. 

 니들이나 보고 와라. '라는 말이 목까지 차 올랐지만.. 


".. 그래. 가자. 언제 또 여길 와서 이걸 보겠니. " 


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어떻게든 좋고 괜찮은 자리를 찾으려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자리를 잡고 있으니 사람들 머리 위로 핸드폰 천지다. 어떻게 하면 동영상이 잘 나올지 각을 재는 것 같다. 내 발아래에는 어느 집 반려견인지 모르겠지만 코기도 있다. ' 너도 참 불쌍하다... 이래 사람이 많은데...'. 

이래 저래 사람 구경 하고 있으려니 아팠던 허리가 더 아프다. 그냥 서 있어서 그런지 피로가 와서 그런지 다리도 아프다. 허리를 접었다 폈다 하고 다리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몸을 달래 봐도 아프다. 

내 이렇게 불편하고 아픈데, 이 아픔과 비교하여 봤을 때 어쭙잖은 불꽃이라면 내 가만있지 않으리라. 


조금 있으니 타이베이 101 타워 꼭대기 층에서 전광판으로 카운트가 그려진다. 

10,9,8,7,6......

사람들도 큰 소리로 카운트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ten, nine, eight, seven, six......

신난 딸들도 핸드폰을 들고 따라 한다. 

3.

2.

1.

0.

곧 엄청난 양의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생각보다 화려하다. 

사실 이렇게 화려한 불꽃은 처음 본다. 불꽃을 구경하고 있으니 잠깐 동안은 아픈 것이 인식되지 않았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렸다. 

사람들은 환호를 했고, 사람들의 핸드폰은 더 높이 들렸다. 

앞에 있던 젊은 연인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키스를 했다.  

아.... 이 사람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영상이 아닌 실제로 남의 키스를 목격하니 왠지 불쾌하다. 

그나마 화려한 불꽃 때문에 들떴던 내 감정이 다시 가라앉았다. 


' 여기서 왜 이러세요.... 서양 영화를 많이 봤나...  뒷사람이 불쾌하다고.. 이 젊은이들아..' 




화려했던 불꽃이 끝났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숙소로 돌아가려면 왔던 대로 다시 이 많은 인파들 사이에 낑겨 펭귄 걸음으로 걸어가야 하고, 지하철에서도 낑겨 20분 정도를 가야 하고, 후들거리는 이 다리를 이끌고 15분 정도를 걸어야 한다. 

화려했던 10분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깜깜한 내게 10대 친구딸이 말한다.


" 너무 좋지 않았어요? 정말 너무 멋졌어요. 인생에 한 번쯤은 꼭 경험해 봐야 할 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

".. 하하 그래 하하 그랬어... 하하 "


대답은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제발 기적적으로 지하철에 자리가 나서 앉아서 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가득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 방으로 갔다. 기분 좋게 해어지면서 내일 일정을 위해 오전 8시 30분까지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대자로 뻗고 싶었지만 씻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딸보다 먼저 씻기를 했다. 

욕실에서 거울을 보니 아까 간질 간질하던 윗입술에 물집이 두 개나 올라왔다. 


" 아... 이런.. 아프다... 후끈거리더니.. "


씻고 난 후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남편과 아들을 위해 가족톡에 이야기도 남기고 사진도 남기고 해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싫었다. 그럼에도 습관을 따라 TV를 켰다. TV를 켜 보면서 잠을 청하던 습관이 있어서 TV를 안 보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이다. 

딸이 씻는 동안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돌리니 대만 뉴스가 나온다. 

뉴스에는 오늘 이루어진 신년 불꽃 축제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 그냥 TV로 봐도 괜찮았었겠구먼. '


눈이 저절로 감긴다.


'... 너무 피곤하다 아아 아...... '

' 내일 아침을 먹지 말고 잘까.. ' 

' 내일 물집 생긴 게 커지면 안 될 텐데... 아.. 마스크를 써야 하나... '

' 딸들 따라다니기 정말 힘드네.. 다음에 가면 그냥 패키지 가자 해야겠다.'

' 아이고.. 되다.. '


머릿속에서 산발적으로 생각들이 떠다닌다.  생각이 정리가 안된다.

딸이 다 씻고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 엄마. 자? "

".... 아니...."

" TV 끈다."

".... 소리 듣는데...."

" 끈다 "

"......... 응"


그래 내일은 내일의 내가 또 견뎌 내겠지. 

오늘은 이걸로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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