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졸업까지 왔습니다. "M. Sc. Bauing."드디어 받았습니다.
네, 결국 저는 원했던 건축매니지먼트가 아닌, 전혀 예상치 못했던 ‘풍력 에너지’ 분야에서 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주제는 “Analyse und Simulation der Aushärtungsprozesse bei der Herstellung.”
제조 과정에서의 경화 공정을 분석하고 시뮬레이션하는 내용이었죠.
제목부터 좀 어렵죠? 맞습니다. 저도 어려웠습니다. 논문을 다 쓰고 디펜스까지 마친 지금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다 보니… 솔직히 대부분 다 잊어버렸습니다.
제가 쓴 논문의 주요 내용과 작업의 수행은 크게 5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서로 다른 에폭시 수지 시스템의 반응 동역학에 대한 속도 방정식을 연구합니다. 이어서, 방정식에 대한 연구가 수행된 이후에는 수치 방법을 Python을 사용하여 구축하고 실질적으로 시뮬레이션을 위한 코드를 생성합니다. 그런 다음 시뮬레이션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결과를 얻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논문의 결과와 병렬적 비교를 통해 시뮬레이션의 정확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온도 조건하에서 시뮬레이션 및 경화 과정을 분석하고, 발열량을 계산하고 시뮬레이션의 결과값을 Python 프로그램을 사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비교 문헌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네… 여전히 어렵죠? 하지만 사실, 제가 어떤 논문을 썼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이 논문을 쓰기까지의 시간과 과정입니다.
총 8학기. 그 시간 동안 수없이 부딪히고, 깨지고, 무너졌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 그게 저에겐 더 큰 의미입니다.
총 120학점. ausreichend라고 해서 점수로 4.0. 딱 통과 커트라인 점수로 시험에 통과한 수업도 여러 개. 물론 1점대의 좋은 점수로 이수한 수업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딱 커트라인 그 언저리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평균 학점 2.3이 이를 말해주죠. 1.0이 가장 높은 독일 학점 시스템에서 2.7이라는 점수는 좋지 않은 점수입니다. 객관적으로요. 하지만, „최종진짜최종진짜마지막진짜진짜마지막“ 이라고 저장하는 파일명처럼, 저의 독일 대학생활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남은 건 „Urkunde (졸업장)“ 그리고 „M. Sc. Bauing“ 라는 타이틀 하나였습니다. 원래도 졸업식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는 독일의 대학에서 코로나를 거치면서 간단한 오프라인 행사마저 취소가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과 거주지가 왕복 4시간 거리였기에, 결국 졸업장은 우편으로 받았습니다. 그 종이 한 장을 받아 들고는 뭔가 허탈했습니다. 이 몇 장의 종이를 받고자, 더 정확히는 이 한 장의 졸업장을 받고자 이 긴 시간을 견뎠다니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후련했습니다. 석사과정을 하면서 너무나도 많은 고생을 하였고, 위기를 겪었습니다. 외적으로도, 그러니까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내적으로도 말이죠. 하지만 그 긴 시간을 견디고 결국 처음 독일로 나올 때 품었던 그 결실을 맺었습니다. 시간은 많이 지연되었고,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 결실이 비로소 제 손에 들어온 것이죠.
이제 떳떳하게 누가 물어본다면 대답할 수 있습니다.
„어? 지금 뭐 하고 지내냐고? 나 석사과정 다 마치고 지금은 독일 건축사 사무소에서 현장관리자로 일하고 있어.“
라고 말이죠. 그렇게 저의 독일생활 챕터 2. 그 두 번째 막은 종착지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사실, 남은 건 종이쪼가리 한 장과 명함의 한 줄이 다라고 말했지만, 많은 것이 남은 4년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서 많은 이야기를 전해드렸던 것처럼 무너지기도 했고, 위기를 겪기도 했고, 심적으로 바닥을 쳐보기도 했습니다. 정말 한 발만 내딛으면 포기라는 방으로 들어가는 단계까지 가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 끝에 저는 남들이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것이 변해있었고,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 변한 건 무언가를 대하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느리더라도 끝까지 가보았기에, 목표를 이루어보았기에, 그 꾸준함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영화 „짝패“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거더라.“
저는 정말 그 말에 깊이 공감을 합니다. 영화에서 이범수 배우님이 연기한 „장필호“라는 인물은 대한민국 영화사에 남을만한 악역이지만, 저 말은 너무나도 강렬했고, 인상 깊었습니다.
저도 오래갔고, 결국 끝까지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한 놈이 되었습니다. 한 번 강한 놈이 되어보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강한 놈 별거 없구나. 언제든 나는 다시 한번 강한 놈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말이죠. 이는, 앞으로 계속해서 깨지고 부닥치고 알을 깨고 나아갈 저의 인생에서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면서 앞서와는 또 다른 결의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내가 미처 몰랐던 분야라고 할지라도 새롭게 배우고 깨치며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 면접을 볼 때 많이 들었던 질문이 „전공은 건축매니지먼트인데 왜 논문주제는 이것으로 정했죠?“ 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대학교 내부의 문제로 인해 건축매니지먼트로 논문을 쓰기에는 1년 이상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미 학생논문을 작성하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더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논문 주제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제가 해 나갈 업무와는 분야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분야입니다. 하지만 해당 논문을 마무리하고 졸업을 하면서 제가 지금까지 미처 경험해 보지 못했던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 회사에서도 일을 하면서 제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그 어떤 것도 저는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이죠.
끝까지 해냈다는 뿌듯함에서 오는 자신감, 그리고 새로운 분야의 과제를 해결했다는 자신감. 이 두 가지 자신감은 실질적으로 가장 큰 결실인 대학 석사과정 졸업장을 넘어 대학생활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결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