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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Chair, 그리고 세상

by 정흐름 Mar 19. 2025





"Musical Chair 게임할 사람?"


우리 어린이집 4세반의 최고령자 Casey 선생님이 소리친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든다. 손보다 더 높게는 신발, 발가락, 공중제비를 도는 모자, 장난감이 날아오른다. 그보다 더 높이는 흥분의 비명소리! 목뒤에 털이 쭈뼛 솟는다, 얘들아!

의자 뺏기 게임은 아이들도 익숙한 놀이지만 오늘은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원이 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꼭 지금 참여할 사람만 손을 들라고 선생님이 말한다. 몇몇 아이들이 손을 내린다. 그렇게 15명이 모이고, 룸 가운데 의자 14개가 줄지어 놓인다.  아이들 손마다 마음껏 흔들 수 있는 색색의 스카프를 쥐여준다.

음악이 나오면 아이들은 춤을 추며 빙글빙글 의자 주변을 돌다가, 음악이 멈추면 얼른 빈 의자에 앉아야 한다. 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아이는 게임에서 탈락. 그리고 매 라운드마다 의자가 하나씩 줄어들고, 마지막에 남은 한 개의 의자를 차지하는 사람이 게임의 승자가 된다.


Casey 선생님이 음악을 튼다. 아이들은 곧바로 음악에 몸을 맡기고 신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카프들이 오색선을 그리며 앞서고 뒷 선 친구들을 간지럽힌다. 어떤 아이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뛰고, 어떤 아이는 엉덩이를 씰룩이며 걸음을 장단에 맞춘다. 처음에는 살짝 수줍어하던 아이들도 점점 분위기에 녹아들면서 자유롭게 몸을 흔든다. Casey는 근엄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지켜보며 혹시나 부딪히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그러다 가끔 아이들에게, 그리고 동료들에게  장난스럽게 윙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사실 Casey는 표정만 무심할 뿐, 누구보다 신나게 리듬을 타는 사람이다. 허리는 가볍고 손가락으로 튕기는 박자가 음악과 딱딱 맞는다. Casey의 무릎 위로 늘어진 우아한 스커트가 살랑이며 나부낀다.


오늘 선곡된 음악은 전부 80년대 히트곡이다. 아바의 Dancing Queen으로 시작, 곧 마이클 잭슨, 퀸, 휘트니 휴스턴, 립싱크, 왕년에 롤러장에서 미러볼 아래 롤러스케이트 좀 탔다 하면 알 수 있는 댄스명곡들이 이어진다. 아이들이 익숙한 음악은 따라서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 아련히, 그리운 얼굴 둘이 떠오른다.


‘쌍둥이 남매였었지. 그리고 비틀스...’


오래전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할 때 초등학교 3학년 쌍둥이 남매를 만났었다. 회화는 서툴렀지만, 비틀스 노래 가사는 줄줄 외우던 아이들. 알고 보니 아빠가 운전할 때마다 비틀스 음악을 튼단다. 그 덕분인지, 언어감이 자연스럽고 외국인 선생님과 소통하는 걸 낯설어하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쌍둥이와 서로 좋아하는 비틀스 음악을 부르고, 팝송을 수업으로 연결해서 다 같이 합창을 하는 등 수업이  풍부해졌던 기억이 있다.

내가 한참 그 시절 아이들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동안 Casey는 이제 아이들의 신청곡을 받고 있다. 대부분 제목은 모른다. 그저 "저번에 틀어준 그 음악 음음음... 이거요!" 하면, DJ Casey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노래를 찾아 틀어준다. 그렇게 한 곡 한 곡이 이어지면서,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음악과 함께 세대를 초월하는 소통을 하고 있다.


Musical Chair의 몇 가지 교육적 의미를 생각해 본다.

-신체 발달: 음악에 맞춰 움직이며 균형 감각과 속도감을 기른다. 집중력 향상도 당연하다.

-사회적 기술: 순서를 기다리는 법, 친구들과의 공정한 경쟁을 배운다.

-감정 조절: 탈락의 경험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고 승패를 받아들이는 법을 익힌다. 경쟁에 매이지 않고 순수한 즐거움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음악적 감각: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리듬과 멜로디에 대한 감각을 키운다.  

-세대 간 문화 교류: 부모 세대의 음악을 듣고 경험하며 세대 간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이들 사이에도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된다.


게임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교육자인 나에게 다가와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아까 그 노래 알아요? 나는 그 노래가 좋은데!" 

“나도 아바 노래 완전 좋아해! 너희들 춤추는 거 봤어. 나도 같이 춤췄는데, 봤니?”

“네, 봤어요. 그 노래가 뭐라고요?

"아바에 댄싱 퀸."

"아바? 댄싱 퀸. 어떻게 이 노래 알아요?"

“아주 유명한 80년대 노래야."

“선생님 몇 살이에요? 우리 엄마 아빠는 몇 살인데."


이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 공감의 깊이가 깊어지고 타인과 자신을 연결하며 세상의 넓이가 확장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음악을 통해 더 많은 세대 및 세계 통합 활동을 계획할 수 있다.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를 초대해 어릴 때 즐겼던 음악을 아이들과 함께 듣고 춤추며 교감을 나눌 수 있다.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다른 나라의 댄스곡으로 musical chair를 할 수도 있다.


한편, 꼭 의자를 뺏어 앉는 방식, 한 사람은 탈락하게 하는 게임의 방식이 내 개인적인 가치관과는 잘 맞지 않는다. 경쟁이라는 룰에 충실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사람의 마음이나 인격이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기 때문이다. 의자를 차지하지 못해 시무룩해지고, 속상한 마음에 팔짱을 끼고 돌아서기도 한다. 그런 친구를 보고 어쩔 줄 몰라 연신 선생님과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도 있다. 선생님의 손길을 거부하고 울며 웅크리기도 한다. 아이들의 마음은 투명하다. 반면에 자연스럽게 친구를 달래주며 위로하는 아이도 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작은 사회 안에서 균형을 잡아가려는 모습, 인간애와 또 다른 공감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   

경쟁에서 밀려나는 실망을 견디고 다시 도전하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지만, 그것만이 교육적 성공은 아닐 테다. 처음부터 관심이 없어서 아예 참여하지 않는 아이도 있고, 순수한 즐거움을 선택해 친구와 함께 동반 탈락을 결정하는 아이도 있다. 또 어떤 아이는 스스로 의자를 양보하고, 어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의자를 놓고 마음대로 놀이를 한다. 이 모든 마음과 결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때,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워나가고 다양하게 자신을 표현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타인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태도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순수한 즐거움을 아는 마음, 친구를 아끼는 마음, 자유롭기를 택하는 마음, 똑같은 관심이 없어도 되는 마음, 스스로 자기를 허용하는 마음, 자신의 창의로 놀이를 주도하는 마음, 그리고 행동. 그런 것들이 세상이 더 건강하고 다채롭게 될 수 있는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친구들아! 

세상에는 의자가 14개만 있는 게 아니야. 남이 정해서 보여주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거든. 진짜 넓은 세상의 현실에는 너희를 위한 자리가 한 개가 아니라 무궁무진하게 많단다. 어디든지 가서 털썩 니 몫으로 앉아라. 세상은 끝없이 넉넉하니까.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다음에는 자기 자리 만드는 법을 같이 해보자. 자기 의자를 만들어 장식해 보든, 스카프 한 장을 깔고 바닥에 앉든, 땅을 파고 앉든, 공기 중에 스쿼트 자세로 앉든, 상상할 수 있는 자리는 다 존재하게 하자.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는 구석이든 나무그늘이든. 혼자 앉든 같이 앉든. 앉든지 서든지, 눕든지, 뛰든지, 한 개든 백개든. 언제나 너희들은 자리가 있다. 귀한 우리 여러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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