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리느까 Oct 20. 2024

13화. 고려의 마지막 왕을 아십니까

좌충우돌 세 아이 육아기


"아빠, 조선의 마지막 왕은?"


막내 아이가 뜬금없이 묻습니다.


"고종!"


자신 있게(?) 외쳤으나 답이 틀렸답니다.


"순종이지~롱."

(참고로 조선의 마지막 왕은 '순종이지롱' 님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막내가 깔깔대며 웃습니다.


평소 책 좀 읽는다는 아빠가 퀴즈를 틀리니 그게 그렇게 고소한가 봅니다.


"그럼, 고려의 마지막 왕은?"


막내 아이가 아빠에게 만회의 기회를 주려는 듯 다시 퀴즈를 냅니다.


"공민왕!"


깔깔대며 웃는 것을 보니 또 틀렸나 봅니다.


"공양왕이지롱."

(참고로 고려의 마지막 왕은......, 아시겠죠?)


"아빠, 그럼 조선의 왕을 순서대로 외워 봐."


한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던 아빠의 녹슬지 않은 한국사 실력을 보여줬더니 아이가 놀랍니다.


"오호~ 제법인데? 그럼 고려 왕 외워 봐."


- 고, 고려 왕?


일찍이 고려 왕은 외워 본 적도 없고 시험 문제에서 본 적도 없었지 말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태조 왕건과 삼천궁녀 의자왕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 조선 왕 외울 때처럼 리듬을 넣어 가며 고려 왕 계보를 다 외웁니다.


이게 웬 횡재입니까?


평소 수학 문제 풀이를 눈물 나도록, 아니 진짜로 눈물 흘릴 정도로 싫어하는 아이입니다.


영어는 물론이고요.


그런데 오늘, 역사는 사정이 다르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듣자 하니 방과 후 수업도 역사 과목을 선택했다고 하네요.


마음 같아서는 독서나 글쓰기 등 국어에 흥미를 느꼈으면 좋으련만, 역사가 어딥니까?


아이 엄마는 막내 아이가 또래보다 학력이 떨어질까 봐 영수 학원에 보내자고 합니다.


그랬더니 나보다 아이가 더 반대합니다.


아이가 가기 싫다는데 억지로 어떻게 보냅니까?

(뭘 모르는 모양인데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아빠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처가에 다녀온 후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그 후에 샤워하고 나와 아무리 찾아봐도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전화 좀 걸어 보라고 했더니 거실장 맨 구석에서 벨이 울립니다.


"정신머리하고는"이라고 혼잣말하며 소리 나는 쪽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막내 아이가 뭐라고 합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


순간 또 놀랐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뻤습니다.


역사에 이어 속담까지...?


등잔 밑이 어둡다니, 이보다 더 적확한 상황 설명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까짓 수학 문제 좀 못 풀면 어떻고, 남의 나라말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막내) 아들아!


아빠는 그냥도 너를 사랑하지만, 수식보다 '활자'를 사랑하는 너를 더 사랑한단다.


너는 30대에 꼭 네 이름으로 된 책을 펴내거라.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을 테지.


그래서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이 나이 먹도록 책 한 권 펴내지 못한 아빠의 한을 풀어다오. 



이전 12화 12화. Z세대, 집중력과 어휘력을 향상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