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세 아이 육아기
퇴근하고 집에 오니 막내 아이가 큰아이 옆에 붙어서 울고 있었다.
"아빠, 항숙이가 수영장에 간다 해 놓고 안 가!"
작금의 상황이 대충 짐작되었다.
그런데 소파에 누워 폰 게임하던 큰아이 배 위에 천 원짜리 지폐가 여러 장 보이는 게 아닌가.
막내 아이가 수영장 동행 조건으로 자기 형에게 돈을 준다고 한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큰아이는 동생과 함께 수영장에 가고 싶은 마음도, 돈 3천 원을 가지고 싶은 욕망도 없는 듯싶어 보였는데 말이다.
아빠와 엄마가 어찌어찌 탁구 하러 갈 준비하는 사이 세 아이가 우르르 집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와 엄마는 큰아이가 함께했으니 보호자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고, 막내 아이는 수영 잘하는 형 앞에서 며칠 전 생존수영 다녀온 경험을 뽐내거나 형만 믿고 '깊은' 물에 가서 놀 수도 있으니 신이 났을 듯싶었다.
아빠와 엄마는 한 시간여 탁구로 운동하고 나와 아파트 내 탁구장 바로 옆에 있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대형 유리 건너 수영장에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아이들이 먼저 집으로 간 것이라고 단언하고 느긋하게 저녁 공기를 만끽하고 걷는 품이 흡사 큰아이만 믿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한데 집에 와 보니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아..
.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허락을 받았든 아니든 집 밖에서 아이들 사고가 얼마나 많은가?
해 저문 지도 오래되어 깜깜한 밤이 되었는데 초중고 세 아이가 몰려다닐 것을 상상만 해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큰아이는 수영장에 간다는 이유로 휴대폰도 집에 두고 간 터다.
바로 그때, 막내가 큰아이에게 준 3천 원이 떠올랐다.
막내가 형을 꾀었건 큰아이가 무단 외출을 주도했건 간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나 '죽은소' 등지를 찾아 세 아이가 동네를 활보하는 것만 같았다.
샤워할 때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고 하는데, 씻는 도중 의심을 넘어 불신감마저 들고 있을 때, 멀리서 "뿌엥~"하고 터지는 막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일단은 무사히 집에 들어온 것이니 안심하며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필경 큰아이가 막내 아이에게 아무것도 사 주지 않았거나 이미 사 준 사탕을 뺏어 먹었거나, 하고 생각하는데 '왜 자기들을 두고 먼저 집에 와 있냐'라고 막내가 아내를 다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헉!
엄마 아빠가 탁구하고 나와 수영장 안을 살필 때 아이들은 샤워장에 있었을 뿐, 우르르 동네를 몰려다닌 적이 없었던 것이다.
3천 원에 아이들의 순수를 악마에게 팔아넘긴 못난 아빠는 고개를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