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기울기에 주눅 들지 않기로 했다

서울로 7017에서 본 구 서울역사

by 삼도씨
Screenshot_20220730-224020_Instagram.jpg [구 서울역사. 2022]

구도보다 기울기가 문제였다, 처음 그림을 배울 때부터.

서울의 공중 정원인 서울로 7017에 처음 갔을 때, 동서남북 사방으로 막힘없는 풍경은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었다.

그중 구 서울역사는 비잔틴 풍의 원형 돔 아래 네 곳의 작은 탑과 벽체 모서리 장식은 르네상스적인 외관으로 보기엔 무척 아름답지만, 그리기엔 정말 힘든 건축물이다. (물론 나만 그럴 수 있다.)


구 서울역사를 몇 번 도전했었다. 그런데 번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안 될까?

나의 결론은 구도보다 건물의 기울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건물이 엉성하고 어정쩡하다는 거.


어반스케치를 하기로 한 그날은 화우 한 분이 친구분을 데려왔다.

서울역 2번 출구에서 만났고, 서울로 7017에서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각자 그리고 싶은 장소로 흩어졌다.

여전히 풀지 못한 수학 문제 같은 구 서울역사.

그날은 정말 구 서울역사를 잘 그리고 싶었고, 비록 거리는 멀었지만 꼼꼼히 관찰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선을 슥슥 그었다. 광장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강우규 의사 동상까지.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갔고, 모였고, 흩어졌다.

역이란 원래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흩어지는 장소니까. 그러다 강우규 의사 동상 뒤편으로 의자를 들고 와 앉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곧 합창소리가 들렸다.

서울역이 종교 모임을 하는 장소라는 걸 그때까지 파악 못했던 나는 저 사람들을 그릴 것인가? 뺄 것인가?

살짝 갈등했지만 사람들을 나의 풍경 속에 담았다.

그리고 보니 덩그러니 구 서울역사만 있는 것보다 사람들이 있으므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주눅이란 감정은 사람도 그림도 소심하게 만든다. 서울 공중 정원에서 그린 구 서울역사 기울기가 100%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손도 못되던 수학 문제를 공식을 대입하며 떠듬떠듬 푸는 것처럼, 매일 성실하게 연습한다면 나의 그림도 더디지만 조금씩 앞으로 성장하고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더 이상 기울기 따위에 주눅 들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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