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지옥 같은 낮과 밤을 보내는 지안과 그저 주어진 삶을 묵묵히 견디는 제대로 된 어른인 동훈. 그 둘 앞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아무 말없이 가만히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의 장소가 이곳 용산 철길이다.
한참이 지나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모습은, 예전에 읽었던 책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그 둘이 기다리는 고도는 정작 책이 끝날 때까지 오지도 않고, 젤 중요한 것은 고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냥 기다리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의 아저씨의 지안과 동훈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아니었다. 책과 달리 둘은 서로를 응원했고, 믿어주는 부모와 형제 그리고 격려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고도인 '평안'에 이르렀다.
[철길 근처, 용산 방앗간. 2022]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고도를 기다린다.
다만 자기의 고도를 아느냐? 모르느냐? 알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었을 땐, 지루한 그 책 끝에 스스로 반문해보았다.
나의 고도는 무엇인가? 그땐 답을 몰랐었다. 몰랐으니 그것이 오면 잡지를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젠 그 답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나 역시 나의 고도는 '평안'이다.
아직도 감정의 기복은 변화무쌍할 때가 많지만,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나와 그림만이 있는 평안의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