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카카오 맵을 확인 했다. 12분을 더 걸어가면 약현성당에 도착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명동성당은 몇 번 갔었지만 중림동 약현성당은 처음이라 약속시간보다 좀 일찍 나왔지만,
구 서울역 마당에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물어볼 만한 사람이라고는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시는 분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쩌지... 파출소에 가서 물어봐야 되나'
다행히 파출소 앞에서 경찰관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다.
서울로 7017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울로 7017로 올라가서 길 끝까지 쭈욱 갔는데 거기서 다시 갈림길을 만났다. 햇빛은 따갑게 내리쬐고, 약속시간은 점점 가까워지고.
물어물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약현성당엔 만나기로 한 화우들이 이미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현성당은 1891년 박해가 끝나고 교회의 전통에 따라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지어졌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 교회 건축물로 당시 견고한 성당을 짓기 위해서 좋은 흙이 필요했었는데, 당시 가장 좋은 흙은 왕궁의 기와를 굽던 지금의 국군 중앙성당 흙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김대건 신부님과 서소문 네거리에서 순교하신 성인의 사신이 43년간 묻혀있던 곳이었다. 순교한 성인의 살과 피가 묻혔던 그 흙으로 세워진 약현성당은 1900년 이전의 몇 안 되는 양식 건축물 중 일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서양으로부터 수용된 건축물로 1895년부터 교육사업과 6.25 후 의료사업으로 우리나라의 발전에 밑바탕이 되었다. [약현성당 홈페이지를 참고 요약함]
서소문 성지의 유래를 김훈 작가님의 책 <<흑산>>에선 '어떤 예조판서가 임금이 백성의 목숨을 거둠은 지엄한 정법이나 해 뜨는 동쪽에서 시행하기에는 거북한 일입니다. 국법으로 죽임을 내릴 때는 토지의 귀신을 모신 사직의 오른쪽에서 시행하라는 뜻이옵니다. 살피건대, 서대문 밖 성벽에서 양천 쪽으로 십 리 떨어진 자리가 사형장으로 마땅할 것입니다. 서소문 밖 사형장은 도성에서 가까웠다. 사형수를 싣고 가는 소달구지는 서소문으로 도성을 빠져나와 난전을 이룬 민촌을 지나 형장으로 갔다'라고 적혀 있다.
[약현성당. 2022]
우리나라에선 더 이상 종교로 인한 비극은 없다. 하지만 뉴스에서 아직도 지구촌 다른 곳에선 종교로 인한 비극이 현재 진행 중인 곳을 종종 보게 된다.
평화로운 시대, 종교 자유가 존중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어떤 종교를 믿든, 아니면 무교든 그 어떤 탄압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선조들의 피의 대가다.
그래서 그 어떤 장소보다 약현성당을 더 잘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림을 다 그려놓고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며칠 뒤 집에서 새 스케치북을 꺼내서 다시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