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과 길상화 보살의 무소유, 성북동 길상사
20여 년 전, 그날은 평소보다 아이들이 일찍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가지는 밤 시간의 여유를 TV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며 육아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다 당시 최고 스타였던 장동건 배우가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있다는 말이 내 귀에 쏙 박혔다.
서울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겐 선망의 도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선망의 도시에 사는 당대의 최고 스타는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했다.
다음 날,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그 길로 서점으로 달려갔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책은 무소유 정신을 반영한 것처럼 일반적인 책 보다 사이즈가 작고 가벼웠다.
물론 책 크기가 작다고 해서 결코 그 안의 내용까지 작고 가벼운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다 재우고, 정말 오랜만에 나를 위해 책을 읽었다.
카랑카랑하고 올곧게 생기신 스님의 외모와 달리,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밤에 다 읽었다.
그 후, 서점에 들를 때마다 법정스님의 다른 책들도 구입했다. 어느덧 나는 스님의 팬이 되었고, 먼발치에서라도 뵙고 싶었다.
당시 스님은 강원도에 계시면서 한 달에 한 번 길상사를 오신다고 했다. 부산에서 강원도는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어 일찌감치 포기. 그나마 희망은 시댁인 경기도에 왔을 때 잠깐 짬을 내서 서울에 가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스님이 돌아가셨다는 뉴스 보도를 듣기까지 끝내 스님을 뵙지 못했다.
그 후 사는 게 바빠서 법정스님도 잊고 살았다. 길상사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2019년 어반스케치를 배우다 보니 길상사까지 갔다.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다. 고급 요릿집이 절집으로 탈바꿈한 데는 법정스님과 김영한의 이야기가 있다.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도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시주를 했다. 건물 40채와 대지 2만 3140제곱미터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규모였다. 대원각을 시주하려는 김영한과 법정 스님 사이에 권유와 거절이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지금의 길상사는 법정 스님이 시주를 받아들이고 2년 동안 개, 보수를 거쳐 탄생된 것이다.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 요약 발췌]
길상사 경내를 천천히 걸었다. 진영각에 들러 스님의 영정과 나무의자도 보았다. 스님의 책 중에 나왔던 나무의자를 보니 스님을 만나 뵌 것 마냥 반갑고 좋아 툇마루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진영각에서 쭈욱 내려오다 보면 길상화 공덕비가 세워진 사당이 나온다. 내가 알기로 << 무소유>>는 스테디셀러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고, 감동을 받았겠지만, 자기가 가진 전부를 길상화 보살처럼 기꺼운 마음으로 보시할 수 있을까?
풀(full) 소유를 향한 욕망으로 매일 아등바등거리는 나는 못했을 일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나 같은 사람들은 무소유를 실천하신 두 분의 행적을 되새기며, 끝없이 차오르는 욕망을 한 조각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길상사를 찾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