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의 흔적, 깎아지른 채석장
" 저 위에도 그림 그리던데 여기도 그림 그리는 가봐."
" 예."
" 동호회에서 나왔어요?"
" 예."
USK서울이라는 동호회에 소속 회원이 되고 세 번째 정모 날이 되기 전의 일이었다.
6월 정모가 있기 전 사전 답사 차원에서 화우들과 창신동에 갔던 날.
혼자 내리막길에서 그리는 내게 언덕에서 내려오신 아주머니가 말을 건네셨다.
" 다들 잘 그리시네."
" 감사합니다."
" 그럼 수고해요."
" 살펴가세요."
떠나시는 아주머니를 보내드리고, 시계를 보았다.
약속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부랴부랴 색을 칠하고, 화구들을 챙겨서 언덕길을 올랐다.
내려올 땐 몰랐던 언덕길은 경사로 인해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헉헉거리며 도착해서 단체 인증샷을 찍고, 한 분은 약속 때문에 먼저 가시고 남은 사람들끼리 점심을 먹고,
창신동 골목길을 탐방했다.
골목길마다 미싱 소리가 드르륵드르륵
그 소리 덕분에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라는 노래를 흥얼흥얼 거리며.
USK서울이라는 단체를 가입하고 세 번째 모임인 6월엔 특별한 공지사항이 있었다.
약 한 달간 정모 날 그린 창신동 그림들을 낙타 카페에서 이벤트 전시회를 한다는 공지였다.
정모 날, 예전에 함께 문화센터를 다녔던 분들을 만났다.
인사를 하고,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원래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석장이 있다는 산마루 놀이터 쪽으로 향했다.
카페에서 내려오는 길에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지만 어반스케쳐스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캠핑용 의자, 방석에 앉아서 다들 그림 삼매경 중이셨다.
같이 내려오던 화우들도 하나 둘 원하는 곳으로 자리를 찾아 떠나고.
나와 그림친구 한 명만이 돌산마을 조망점을 찾아 나섰다.
여기저기 흩어진 어반스케쳐스들에게 물었지만 다 들 잘 모르신다고 하셔서 포기하려던 차에 돌산마을 조망점을 찾았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것 같은 좁은 골목 계단엔 이미 세 분이 계단 층층이 앉아서 열심히 그리시고 계셨다.
우리는 계단 말고 돌단 같은 곳에 자리 잡고 채석장을 바라보았다.
돌산마을 조망점에서 바라본 채석장은 돌을 캔 흔적 그대로였다. 위태로워 보이는 돌산 위의 집들과 돌산 밑의 집들은 나의 우려 어린 시선 따윈 아랑곳없이 평화롭다.
다른 취미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그리는 어반스케치는 함께 하면 덜 부끄럽고 서로 의지가 된다. 그날 처음 보는 그림 동지들 덕분에 현장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약속된 4시에 함께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 그린 그림들도 카페 벽에 붙였다.
첫 전시회였다, 아직 이름도 잘 모르고 얼굴도 잘 모르지만 함께여서 너무 행복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