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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Feb 27. 2023

오렌지빛깔 초장(草場)

신천 목장으로 가는 길


12월의 제주의 거센 바람은 사정없었다. 어찌나 센지 바람을 안고 걸을 수 없어 뒷걸음으로 걸었다. 우리를 밀어주는 거센 바람 때문에 느낌상 조금 빠른 것 같기도 했다. 그나마 일기예보와 달리 눈이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뒷걸음질로 걷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자 마을로 들어갔다. 이름도 모르는 마을. 여행자인 우리는 마을 주민들의 삶이 잠깐이나마 궁금했다. 그러나 현무암 담 너머, 오렌지 지붕, 파란 지붕들에 사는 그들의 모습은 좀체 만날 수가 없었다. 그저 집 앞마당에 심어진 커다란 하귤을 보며 그들의 삶이 팍팍하지 않고 넉넉하리라. 왜냐면 어제 택시아저씨에게 하귤에 대해 여쭤보았더니 " 하귤은 보기와 달리 너무 써서 도저히 먹지 못해요."라고 했다. 제주출신인 딸의 대학친구도, " 먹진 못하지만 탐스럽게 생긴 과실이 예뻐서 한 두 그루 관상수로 심는다고" 했단다. 먹지 못하는 과실을 거의 집집마다 심었다는 것은 제주 사람들 마음은 아름다운 걸 볼 줄 아는 마음과 여유가 있는 것 같다.


한참을 마을 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백구 한 마리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전날 신흥리에서 본 백구 때문에 우리 모녀는 조금 두려웠다. 신흥리 백구는 목이 터져라 짖긴 했지만 그나마 목줄에 묶여 있어서 우릴 물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개는 목줄조차 없었다. 혹시나 우리를 보고 짖을까 봐 아니 사실은 물까 봐 우린 나아가지 못한 채 개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는데 웬걸 는 우리를 향해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 얘 뭐지?"

딸은 잔뜩 얼었다가 개가 하는 행동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러게. 털 상태가 반지르르한 게 유기견은 아닌 것 같은데 견주도 안 보이고."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던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개 한 마리 덕분에 풍경이 더더욱 살아났다.

백구가 마치 우리를 안내하듯 앞서 걸었다. 우리가 쳐지면 심지어 멈춰 서서 기다리기까지 하고.


" 어제 개는 우릴 잡아먹을 듯이 짖더니, 이 개는 뭐냐 ㅎㅎ"

" 엄마, 먹을 거 없제?"

" 사탕 밖에 없지. "


말을 하고 나서도 괜히 백구한테 미안했다. 하다못해 귤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줄 게 없어서.

개가 우릴 끝까지 따라오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는데 백구는 마치 자기 할 일이 끝났다는 듯 마을길이 끝나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길로 가고.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  백구는 크리스마스의 선물 같은 동행이었다.


신청목장으로 가는 길은 점점 바람은 더 거세졌고, 눈발까지 간간이 흩뿌렸다. 딸은 운이 좋다면 신천목장에서 특별한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 특별함을 위해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 속을 걸었다. 우리만 바람 때문에 힘들진 않았다. 올곧게 쭉 뻗은 야자수도 바람 앞에서 휘청거렸고 잎들은 정말 금방이라도 찢어지고 뜯길 것만 같았다.

한 걸음 걸으면 한 걸음만큼 나아간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신천목장.


올레 3코스 팻말에 '신풍 신천 바다목장은 신풍리외 신천리 바닷가에 자리한 목장. 물빛 바다와 풀빛 초장이 어우러진 목장의 풍경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함이다'라고 적혀있었다. 제주도가 아무리 따뜻해도 12월에 풀빛 초장 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린 오직 오렌지빛깔 초장(草場)을 기대했다.

떠나기 전에  지인은 말했다. 12월에 몇 번 제주를 갔었지만 신천목장에서 한 번도 오렌지빛 초장을 보지 못했다고.  과연 우리는 행운이 따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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