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매일매일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세기 가까이 고향 부산에서 살다가 2018년 12월, 낯선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부산은 고향이니까 집순이로 살았어도 아쉬울 것이 없었지만, 서울에선 달랐습니다.
집 밖에서 불러주는 친구도 없기에 작정하고 나가지 않으면 일주일, 아니 한 달 가까이 집 앞 마트만 오고 갈 뿐이었습니다.
서울, 하루빨리 익숙해지기 위해선 무리를 해서라도 집 밖을 나갈 이유가 필요했었고, 백화점 문화센터 봄학기 어반스케치 강좌를 등록했습니다.
어반스케치라는 장르가 생소했지만 현장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서울의 곳곳을 다니며 그릴 수 있으리라는 부푼 기대는 수업 첫날 와르르 무너졌지만요.
눈으로 보는 것을 손으로 그린다는 행위가 예상보다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각과 따로 노는 손의 움직임으로 탄생하는 그림들은 하나같이 엉망이었죠. 한마디로 그림에 대한 재능이 없었습니다.
이쯤 되면 문화센터에 개설된 사진 수업으로 바꿀 만도 했지만, 그림을 '포기'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매일 사진을 보고 그리고, 또 그리고, 그렸지만, 그림은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곁을 주지 않는 그림에 더 매달렸습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혼돈스러울 때도, 제가 확진자가 되었을 때도 제 곁엔 그림이 있었습니다.
3년이 넘는 동안 매일 '오늘 안되면 내일 또 그리자'라는 마음으로 그림 연습을 했지만, 현장에 나가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심적부담이 아주 컸습니다. 그릴 장소가 정해지면 전날 밤 카카오 맵에서 길을 찾아보고, 가방을 챙깁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를 주문처럼 외우죠.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이 그림을 보거나, 말이라도 붙이는 날이면 마음은 난리 블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그리기가 여전히 재밌고, 서울이라는 도시를 알아가는 것이 무척 재밌습니다.
서울에 살지만 여전히 부산 사투리도 고치지 못했고, 제게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모른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주변인. 그래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동안 다녔던 장소들 중 자주 찾아가는 곳도 있고, 딱 한번 간 곳도 있지만, 그 장소, 공간에서 느낀 생각과 그림을 글로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