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서 딸들을 만나 저녁 먹기로 했다. 그래서 사당으로 가는 2호선을 탔다.
퇴근시간 강남으로 가는 2호선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탈 때부터 앉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서있는 자리만큼은 확보하고 싶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람들 틈에 끼어 사람을 봤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중년남자.
아래위 정장 양복이 빨갛다 못해 아주 새빨갛다.
넥타이는 잔잔한 무늬가 있는 자주색. 셔츠는 짙은 보라색.
이쯤 되면 범상치 않은 착장을 한 그가 신은 구두는 무슨 색일지 궁금했다.
기대를 저버지 않고, 광이 반짝반짝 나는 빨간 구두까지 신었다.
그의 유일한 무채색은 바짓단 밑에 살짝 보이는 검은 양말뿐.
내 주변에 빨강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남편은 좋아하지만 한 번도 빨간색을 입은 적이 없다.
물론 옷은 내가 구입하지만.
그러면 저분은 부인이 빨간색 양복을 다 사주신 걸까? 본인이 구입해서 입는 걸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안다는 것은 싫어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안다는 것이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새겼겠는가.
핸드폰을 받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형님, 여기가 낙성대니까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요."
억양에서 지방색이 묻어났다.
그가 어디에서 내리는지, 그가 만날 형님은 어떤 색을 입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먼저 내린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를 보고 결심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부터 찾아보기.
어렵지 않고 쉬운 것부터
무슨 색을 좋아하지?
또
나는 어떤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