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것이 새로 생기는 모습,없던 건물을 지어 올리는 모습을유심히 보곤 한다.내 건물도 아닌데 마음속으로 함께 짓게 된다. 이상한 희열이 있다.
그런 날이 있다.
모든 것이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이 가득한 날, 아무래도 진척이 없는 날,
다 포기해 버리고 싶은 날.
다 무너질 것 같은 날.
아무것도 의미 없이 느껴지는 날.
그런 날에 쓴 일기와책을 읽으며 끼적인 독서노트, 책상 위에서 무의식적몰입의 상태가 되곤 했던 시간들. 그것으로 어떤 큰 성과를 기대하진 않았다.하찮지만 버리지 않았다. 그냥 잊지 않았다.내게 더없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좋아서 한 일들이 결국 나의 자산이 된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나는 여기저기에 씨앗을 심어 두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 마음에 새로운 싹을 틔웠다...장기전을 위한 도미노 조각을 하나씩 세우고 있었다.
공사중.
분명 다 부숴내고 볼품없이 엉망진창이던 자리다. 초반에 많은 작업들이 이어질 때는 일만 커지고 도대체 언제 제대로 시작될까 싶었다. 오랜 기초공사 기간은 지루했고 볼 것도 없었다.
레미콘, 사다리차, 트럭 등이 좁은 2차선을 막고 서있어서 통행이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저 답답했다. 저게 언제 되겠어. 그 모습을 보며 뒤엉킨 내 모습 같아서 심란했다. 그런데 골조가 서고 나서부터는 조금 달랐다. 상상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되는 걸까? 다 지어진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머지않아 그렇게 된다는 얘기였다.
나의 정체성도 이와 마찬가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나는 이제껏 살아온 내 모습에서 무언가는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순리자에서 역행자가 되어보려는 동기를 그간의 독서를 통해 조금씩 쌓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역행자가 되기 위해 나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생각은 그렀지만 어떤 과정을 밟아야할지 여전히 어렵다.
매일 오가는 길목이나 집 앞과 회사 앞의오래된 가게들이 트랜스폼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 뭔가는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물어야 할 것은 늘안전하다고 생각한 내 오래된 울타리이고 새로 지어야 할 것은 내 꿈 빌딩이었다.
지금은 새마을금고가 4층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장막을 치고 있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는데 드디어 그 무거운 이불이 걷히고 잠들어 있던 뭔가가 오픈되었다. 자고 있던 게 아니구나. 하루하루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알게 된다.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 공사가 끝났다.이 건물은 한 에너지 상태에서 다른 에너지 상태로 갑자기 변하는 퀸덤점프를 한 것이다. 그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된 과정이 있다.
새시와 창호가 들어가고 외관 자재가 붙고 유리창과 문이 생기고 나니 폼이 난다. 뭐가 되어갈지 짐작이 된다. 단층짜리 오래된 작은 상가 3개가 붙어 있던 자리였는데 얼마 전의 모습이 가물거리는 중이다.
도무지 진척이 없어 보이더니 기초가 다져지고 나서는 일사천리였다. 기초가 그리 어려운 것이다. 기초가 그리 중요한 것이다. 대나무가 눈에 띄게 자라는 게 보이기 시작하기 전 5년의 시간이 중요하듯 임계점을 넘어서고 나면 폭풍 성장을 하게 되어있다. 그것을 또 생각해 보게 하는구나.
한계가 느껴지는 것은 좋은 것이다.
다음 레벨의 시작점에 있다는 것이다.
새시와 유리창, 외벽 같은 외장재가 들어가기 시작하니 멋있어지기 시작한다. 자꾸 쳐다보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건물을 지어 올리는 사람, 일하고 계신 분들이 몇 분 안 되시는 것 같은데도 하루가 다르다. 그러니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그리는 큰 그림, 네온 시티도 가능할 것 같다. 과학적인 근거, 자연훼손, 기술의 부족... 여러 문제들이 분명히 생기겠지만 불가능은 아닐 것 같다는 거지~ 인간은 기어이 해낸다. 실패와 도전을 끌고 가는 것이 인간의 의지다.
상상한다는 것을 아주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는 것. 그것이 바로 상상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그 너머를 생각해 보는 것. 그것도 상상이다. 내가 되고자 하는 것, 그것이 못 되더라도 가보고 싶은 길, 누가 뭐래도 해야 할 것 같은 일. 결국 내가 짓고 싶은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일단 타당한 설계도는 만들어야 한다. 가능해지는 빌딩화? 빌드업? 아주아주 평면적이고 단순했던 나의 이야기도 이제 입체적으로 구축해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한 걸음이 초라해 보일 때조차 한 걸음 내딛으면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차라리 포기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면 된다. 기어이 되게끔 되어 있다.
봤지? 이전에 뭐가 있었건 완전히 새로워지는 거를 봤지? 그러려면 원래 있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다 가져가서도 안돼. 때론 다 부숴내는 용기도 필요해.
오래된 건물을 싹 무수고 모조리 철거한 다음 다시 땅을 고르게 다지고 빔을 심고 철근을 심고, 기둥을 세우고 연결하고 콘크리트로 살을 붙이고 결국 얼굴이 될 이미지가 완성되어 간다. 간판을 올리고 이름이 걸리고 나면 완성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부 작업들 전기 배선, 조명, 수도 시설, 가구, 인테리어 등 모든 것이 고려되어 시작된 일들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뭐부터 하면 좋을까? 정말 행복해지는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은 뭐지?
나의 현장을 수없이 들여다보았는데 끼적여둔 설계도만 있다. 어떻게 완성해야 할지 여전히 모호하다. 그 설계가 옳은 설계인지 아닌지 실험해 보고 싶지만 방법도 모호하다. 이 평면도를 어떻게 입체화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알 수는 없겠지만 블록 하나씩 옮기는 중이다. 새로운 시스템에 나를 넣어보기도 하고 튕겨 나오기도 하면서 찾아간다.
나도 나를 브랜드로 만들 수 있을까?
저 빌딩에 내 브랜드 박을 수 있을까?
여전히 믿음보다 의구심으로 가득한 모호한 물음이다. 더 구체적인 상상을 해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