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실패한 삶이 아니듯이, 힘겨운 결혼생활이 꼭 성공은 아니다.
이혼했다고 실패한 삶이 아니듯이, 힘겨운 결혼을 유지한다고 꼭 성공한 삶은 아니다.
누구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축복받은 인생이다.
나도 그들이 늘 부럽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혼한 사람들을 비교하면서 내 삶이 우위라고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타인의 시선보다도 중요한 것은 본인의 행복의 순위이기 때문에 그 척도는 자신에게 있다.
타인과 나는 개별적인 존재이다. 동시에 비교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 왜 굳이 비교하고 남보 다 앞서 가야 더 잘 산다고 착각을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우월해지는가?
이혼은 비극이라고 생각하며, 한 배우자와 평생을 사는 것이 유일한 삶의 행복이라는 논리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
모든 이벤트는 개별적 선상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는 것이다. 누구든 결혼 식장에 들어가면서 내가 이혼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듯이,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미래였고, 그저 주어진 현실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주체성 있게 개척해 나간 것뿐이다.
이혼해서 더 행복하다고 생각 할 수도 없고, 결혼이 늘 불행한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이혼 하면서 더 행복해질 수 있고, 어떤 이는 지금 결혼이 너무 행복한 것이다.
다들 각기 다른 상 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면 그만인 것이다.
다만,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은 사람에게 너무도 차가운 시선을 던지지 않길 바란다.
그들도 그렇게 살고 싶어 그리 된 것이 아니고, 이혼을 요청하던, 이혼을 당하던, 그들 모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흔으로 남은 아픔인데, 차별적 시선으로 최소한 돌은 던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들은 당신과 똑 같은 생각으로 결혼식장을 걸어 들어간 사람들이다.
내가 지금 행복해서 당신보다 더 잘나고 멋진 사람이 아니듯이, 이혼했다고 꼭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
가난함과 부유함을 우리는 흔히 비교하지만, 행복함에 있어 더 행복하고 덜 행복함이 비교 될 수 있을까?
가난함과 부유함도 그 정도의 차이에서 객관화시키기 어려운 개념이다.
누구는 추운 날 퇴근하며 오댕 하나 먹는 것에도 행복함을 느끼지만, 누구는 따뜻한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도 이놈의 교통체증이라고 욕을 하기도 한다.
차가 있어서 행복한 것인가? 아파트가 있어서 행복한 것인가?
돈이 많아 행복한 것인가?
물론, 돈이 많으면 행복할 확률은 높겠지만, 그것들이 다 있다고 해도 행복이라는 개념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다 가져 보기도 했고, 그 모든 것을 다 잃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얻다 가도 잃어 보고, 잃다 가도 다시 얻어 보니,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 지긴 했다.
현재 행복이 중요하고 현재의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고 현재의 내가 누구를 사랑하느 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삶은 비교 우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