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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Aug 02. 2024

파리 산책기

에펠탑, 물랭 루즈, 몽마르트르 언덕

   지난 봄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영국에 다녀왔습니다. 인상적인 도시들이 많았지만 다시 가고 싶은 도시를 두 곳 선택하라면 파리와 런던, 한 곳만 선택하라면 파리를 택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평소 동경하던 예술가들의 영향이 있었겠죠. 올림픽 시즌이라 파리 곳곳이 TV에 나올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저도 파리에서 찍은 사진들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산책기는 파리 여행의 기억들을 꺼내 보려고 합니다.


   스위스 바젤역에서 TGV를 타고 3시간 만에 파리 리옹역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역이라 그랬겠지만 아직 여기가 스위스인지 프랑스인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단지 표지판이나 간판이 독일어에서 프랑스어로 바뀌었구나 하며 역을 빠져 나왔죠. 리옹역 근처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La Cinematheque Francaise)가 있다는 걸 이번에 사진을 정리하며 알게 됐습니다. 짧은 일정이라 알았다고 해도 들르기 어려웠겠지만 시네마테크는 저에게 파리를 상징하는 몇몇 장소 중에 하나여서 못 보고 온 것이 아쉬웠습니다. 프랑스의 68혁명이나 이를 소재로 한 영화 <몽상가들>, 누벨바그 영화의 거장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의 이야기가 제겐 이곳 시네마테크로 연결되기 때문이었습니다.


By Fred Romero from Paris, France - Paris - Cinémathèque Française, CC BY 2.0, https://commons.wikim


   저녁이 다 되어 도착한 터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파리의 숙소는 명성대로 불편했습니다. 그렇지만 문화유산과 환경 보전에 진심이라는 그들의 얘기를 들어온 터라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탄소 없는 올림픽을 지향하며 경기장을 새로 짓기보다 문화유적지와 관광지를 활용하고 경기장에 플라스틱 반입을 금지하며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국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는 데 얼마나 진심인지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우리나라였다면 첨단기술로 무장하고 편리함을 지향하는 올림픽을 열었겠죠.


   제게 파리는 예술의 도시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 발자크, 모파상, 에밀 졸라, 사강, 프루스트, 카뮈, 사르트르, 보봐르 같은 작가들과 마네, 모네, 마티스, 르누아르, 드가, 들라크루아, 다비드, 로트레크 같은 화가들이 누비고 다녔을 이 거리를 꼭 한번 걸어 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사르트르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파리의 카페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됐죠. 보봐르와 함께 했던 수요 스터디 그룹이 자주 찾았다는 몽마르트르의 추레한 카페 뒤퐁과 두 사람의 아지트나 다름 없었던 몽파르나스 거리의 카페들, 멘 가의 트루아 무스케테르 카페. 요즘엔 우리나라도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카페에서 일하기의 원조는 아마 사르트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일은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혹은 모든 사람에게 속한) 테이블 앞에서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의자에 앉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카페에 가서 일한다.―고독하고 망연자실한 상태 비슷한 것에 도달한다. - 사르트르


몽마르트르 언덕에 위치한 카페


   4월 말 파리의 날씨는 쌀쌀했습니다. 저녁에는 얇은 패딩 점퍼를 걸쳐야 할 정도로 쌀쌀했죠. 대신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습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에펠탑이었습니다. 에펠탑 전망대에 오르려면 대기 시간이 길다는 소문을 듣고 아침 일찍 찾았는데 생각보다 한산해 금방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에펠탑에 오르면 파리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테니 아무래도 이곳부터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았죠. 에펠탑은 파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거리와 위치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철로 만든 거대한 송전탑 같은 이미지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 육중한 덩어리는 참 아름다웠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에펠탑


   에펠탑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에펠탑 하단의 아치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핸드폰을 들고 고개를 최대한 하늘로 꺾어 사진을 찍는 동안 입장 대기 줄이 너무 빨리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만국박람회를 위해 구스타프 에펠이 건축한 철골탑입니다. 이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파리의 경관을 훼손했다며 손가락질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작가 모파상은 에펠탑이 보기 싫어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바로 에펠탑 전망대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고 합니다. 에펠탑이 보기 싫어 매일 에펠탑을 찾았다니 자신의 취향에 충실한 것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일인가 봅니다. 하지만 이제 에펠탑은 파리의 랜드마크가 되어 파리 시민들의 자랑이 되었죠. 멀리에서 볼 때는 직선 형태의 강철을 연결해 만든 것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아치와 직선이 무수히 반복되며 조화를 이룬 모습에 조형미와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에펠탑의 높이는 324m인데 우리나라 63빌딩이 249m이니 63빌딩보다도 75미터나 높은 건물입니다. 135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임을 감안하면 당시 프랑스의 건축 기술이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죠.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무려 555m나 되는 롯데타워가 있어 이제 높은 건물에 대한 열등감은 사라진 듯합니다. 에펠탑 전망대는 3개 층에 있는데 1층 전망대는 지상 57m, 2층 전망대는 112m, 3층 전망대는 276m 높이입니다. 저는 3층 전망대까지 올라 파리 시내를 조망해 보았습니다.

 

 ↖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과 센(Seine) 강 ↗
↖ 앵발리드(Invalides)와 노트르담 대성당 (Cathédrale Notre-Dame) ↗


   파리의 명소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사실 가이드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몰랐겠죠. 파리의 상징처럼 보이는 아이보리색 석조건물과 짙은 회색빛의 아연합금 지붕, 널찍한 대로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53년부터 1870년까지 파리의 시장을 지낸 오스만 남작 개발사업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전까지 파리는 상하수도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해 오물이 넘쳐나는 도시였다고 합니다. 오스만의 개발 정책으로 파리는 근대 도시로 거듭났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사람들이 살던 집은 가차없이 파괴되다고 합니다.


   당시 파리의 도시 개발 사업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발터 벤야민은 그의 책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오스만의 파리 개조 사업의 목적을 바리케이드(Barricade)를 저지하는 것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좁은 골목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정부에 맞서 싸우는 성난 시민들을 경험한 권력자들이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도로를 넓히고 구획을 나눠 부르주아들의 도시로 만들었다는 것이죠. 과정은 아름답지 못했지만 그 결과 파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누군가를 짓밟고 얻은 아름다움이 아름다울 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혁명의 도시이자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는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에펠탑에서 내려와 본격적으로 파리 시내를 여기저기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틀 동안 파리에 머물며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개선문, 콩코드 광장, 트로카데로 광장, 센 강의 유람선, 사마리텐 백화점 등등 발바닥이 아프도록 다녔는데 가장 심박수가 높아졌던 곳은 몽마르트르 언덕이었습니다. 몽마르트르로 가는 길 툴루즈 로트레크의 아지트였던 물랭 루즈가 눈앞에 나타나자 심박수가 높아지기 시작했죠.


물랭 루즈(Moulin Rouge, 빨간 풍차), 1889년 만들어진 카바레


   물랭 루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툴루즈 로트레크의 그림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귀족 출신이지만 어릴 때 다리를 다쳐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로트레크는 귀족들의 위선을 혐오했고 물랭 루즈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희, 창녀, 세탁부, 서커스, 술집 같은 것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의 작품들


   그는 포스터와 유화, 석판화 등의 작품을 남겼는데, 스승으로 여긴 드가, 친구였던 고흐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살던 1800년대 말 파리는 인상주의 화가, 보헤미안,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집결지였죠. 그렇게 흥청이던 파리에서 그는 유흥을 즐기면서도 귀족들의 위선을 풍자하고 화법을 연구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절제되지 않은 생활 탓에 그는 매독과 알코올 중독, 정신착란 등에 시달리다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화려한 색채와 강렬한 선에 마음을 뺏깁니다. 그런데 저는 그의 그림에서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듣지 못하는 사람이 그린 그림처럼.


   물랭 루즈의 환상을 심어준 두 번째 계기는 2001년에 개봉한 영화 <물랑 루즈>였습니다. 영화관에서 본지 벌써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저는 이 영화를 물랭 루즈에서 펼쳐지는 보헤미안들의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진리, 아름다움, 자유,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물랭 루즈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이 영화의 강렬한 기억은 파리에서 물랭 루즈 앞을 지날 때 다시 심박수를 높이고 말았습니다.


영화 <물랑 루즈> 포스터


"This story is about truth, beauty, freedom. But above all LOVE."


   다시 마음을 진정하고 몽마르트르로 가는 길. 파리에서 소매치기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는 경고를 너무 많이 들어온 터라 지갑은 점퍼 안 주머니에 단단히 넣고 가방 없이 길을 나섰습니다. 평평한 파리에서 불쑥 솟아오른 몽마르트르 언덕은 가난한 예술가, 철학자, 젊은이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토론하는 곳이었습니다. 거리에 들어서면서부터 아기자기한 작은 가게들이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던 이들의 초상화나 엽서, 그림 작품으로 만든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사마리텐 백화점에서도 소비 충동을 느끼지 않았던 나인데, 이곳에서는 자꾸만 지갑을 열고 말았죠.


몽마르트르 언덕의 카페와 기념품점, 푸니쿨라


   이 거리에서 먹고 마시고 토론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 쓰던 이들이 떠올라 어떤 풍경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거리 구석구석을 걸으며 truth, beauty, freedom, love를 되뇌고 보헤미안의 공기를 느껴 보려 했습니다. 이 거리에서 좀더 머물고 싶었지만 몽마르트르 언덕의 최종 목적지는 사크레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é-Cœur)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푸니쿨라를 타고 좀더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사크레쾨르 대성당. 회전목마가 있는 중간 지점에서 성당을 올려다 보니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 같았습니다. 비잔틴 양식의 돔 지붕이 이곳이 파리라는 것을 잠시 잊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계단을 올라 마주한 성당의 모습은 웅장했고, 직선과 곡선의 조화가 절묘하게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건축물들을 보며 자란 아이들의 미적 감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부러움도 들었죠. 올림픽을 앞두고 성당 앞 계단은 올림픽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결혼식 촬영을 하는 사람들, 셀카를 찍는 사람들,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공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계단 아래에서 성당을 바라보다 성당으로 올라가 성당이 바라보는 파리를 내려다봤습니다.



   성당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가는 길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양이들이 도로에 흘러가는 물을 할짝할짝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배수로를 만들 때 도로에 박아넣는 돌블럭의 높이를 조금 낮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가도록 했는데, 고양이들이 이 물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죠. 검정고양이, 얼룩고양이, 흰고양이가 차례로 나타나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몽마르트르여서 그랬는지 이녀석들도 뭔가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길거리 화가의 옆에서 간식을 얻어 먹기도 하고 옆에 엎드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녀석들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죠. 이렇게 좋은데 또 다른 곳에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파리에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니 걸음을 재촉해야 했습니다. 센 강의 야간 산책은 이전 글에서 다루어 이 글에서는 생략하였습니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기념품점에 들러 툴루즈 로트레크의 굿즈들을 맘껏 사오기로 결심하며 파리 산책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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