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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Jun 21. 2024

프롤로그

하룻강아지였던 첫 번째 백수 시절


   2015년 11월, 서른일곱의 나이에 갑자기 백수가 되었습니다. 적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한 첫 번째 백수 시절은 그저 암흑기였습니다. 당당하게 사직서를 던졌지만, 매달 나가야 하는 주택담보 대출과 공과금, 보험료, 아직 다 갚지 못한 할부금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만 15년을 일하고도 그동안 뭘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죠. 물론 약간의 퇴직금과 한 달 120만 원쯤 되는 실업 급여가 있었지만, 매달 고정 지출과 생활비를 생각하니 그 상태로는 1년을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빨리 재취업을 하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불안한 마음으로 매일 구직 사이트를 샅샅이 열람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백수 시절, 저의 아침 기도였습니다.


   취미도 특기도 일과 관련된 것들뿐이어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읽고 쓰는 것이 회사 업무 중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회사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퇴사한 터라 그마저도 신물이 났습니다. TV로 VOD나 보며 불안과 우울을 달랬죠. 아니, 외면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15년 동안 한번에 일주일 넘는 휴가를 써 본 적이 없는 K-직장인, 나갈 돈은 많은데 모아 둔 돈은 부족한 하우스푸어로 맞이한 백수 생활은 문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누굴 잘 만나지도 않았는데, 그 때처럼 사람이 그리웠던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고립된 기분이었죠. 그저 누굴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서 싫다고 믿어버린 인지부조화 상태였나 봅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우울증을 낳고


   올초 다시 백수가 되었습니다. 8년 만에 다시 백수가 됐죠. 그런데 이번에는 불안하거나 우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유자적한 백수 라이프를 즐기고 있죠.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혹시 첫 번째 백수 생활을 마감하고 들어간 회사에서는 별일 없었냐고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전 회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뒤 저와 함께 새 회사에 입사했던 임원은 몇 달 안 돼 퇴사했고, 제가 들어가서 맡으려던 프로젝트는 보기 좋게 드랍됐습니다. 5월에 정식 입사를 하고 연말까지 팀이 세 번 바뀌었고, 이듬해부터는 내 이력과 상관 없는 신규 사업팀으로 돌아야 했습니다. 잉여 인력이나 다름 없었죠. 그러면서도 경영진 보고를 앞두고 밤을 새야 하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적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넘게 기획한 사업이 번번이 드랍되면서 일의 보람을 찾는 건 사치였죠. 어떤 프로젝트는 업계 전체가 당면한 문제 때문에, 어떤 프로젝트는 기존 사업과 충돌해서, 또 다른 프로젝트는 회사의 예산의 부족해서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내 능력을 의심하고, 때로는 내 노력이 부족한가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저의 자존감이 바닥을 쳤죠. 회사에서 그렇게 좌절을 거듭하는 동안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조카는 사고사를 당했습니다. 가족마저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뭉크, <죽음의 침대>, 당시 꿈에서 자주 본 이미지와 비슷한 작품이다.


   그러던 한여름 어느 날, 점심 시간을 앞두고 회사를 뛰쳐나와 가까운 정신과를 찾았습니다. 몇 달 동안 지속된 위경련, 가위눌림, 선잠에 들면 들리는 환청으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동안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죠. 이런 상황에서 흔해 빠진 소설처럼 저도 자살충동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잊혀지고, 빠르고 깔끔하게 세상을 떠날 방법을 궁리하게 됐죠. 컴퓨터 바탕화면에 유서를 쓰고, 이십 대부터 써 온 일기장을 훼손한 뒤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고, 책은 누구에게 남겨 주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그날, 아세트아미노펜 30알 정도면 되겠구나 하며 단골 약국을 찾았던 그날, 한 통밖에 사지 못하고 정신이 확 들어 회사 근처에 있던 정신과 의원으로 곧장 갔습니다.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걸 직감했는지, 접수를 받는 간호사 분은 예약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간 제게 검사지를 주었습니다. 삼십 분 남짓 검사를 마치고 대기실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대기실 창은 도로를 향해 있었고 화분도 놓여 있었습니다. 차분하고 조용한 음악이 흘렀고 향초도 켜져 있었죠. 마음도 좀 차분해지는 듯했습니다. 잠시 후 진료실로 들어가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진단 결과는 좋지 않았고 30분 정도 되는 상담에서 눈이 붓도록 울었습니다. 눈물이 제어할 수 없이 쏟아졌고 선생님께서는 익숙하게 티슈를 건네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우울증 약과 주1회 상담을 처방했고, 상태가 안 좋으면 병원으로 빨리 연락을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렇게 우울증 치료가 시작됐습니다. 1년을 지속했고 괜찮은 듯해 잠시 쉬다가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다시 증상이 나타나 또 반 년 정도 치료를 받았습니다.





우울증을 극복하며 알게 된 무용지용(無用之用)의 가치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알게 된 건 몸과 마음은 연동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몸이 장시간 고통에 노출되면 마음도 망가지기 쉽고, 몸이 건강하더라도 마음이 장시간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몸도 망가지기 쉬웠습니다. 제 경우도 몸이 먼저인지 마음이 먼저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디가 먼저 망가졌든 두 가지를 동시에 건강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또 반드시 내 몸과 마음이 고장 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죠. 그래야 고치려고 노력할 테니까요.


   다행히 나는 비교적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잘 따르는 환자였고,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그러나 반 년이 지나도록 호전될 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상태가 더 나빠져 점점 더 센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회사 일을 하면서 졸기 일쑤였고, 그럴 때면 동료들에게 나를 깨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당부대로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는 루틴을 만들기 위해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헬스장은 일 년 등록을 하고도 재미가 없어 꾸준히 가지 못했고 실내 골프 레슨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필드에 나갈 일이 별로 없을 듯했지만, 골프공을 뻥뻥 쳐서 날려 보낼 때마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몸과 마음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면증은 여전했고 피부는 작은 자극에도 부풀어올랐으며 구토도 잦아졌습니다. 잦은 구토로 항상 식도가 아팠고 코피도 자주 났습니다. 몸의 고통이 극에 달해 삶에 대한 의지는 다시 꺾여 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몸에 뭔가 큰 이상이 있는 것 같아 종합 검진을 받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원인을 찾을 수 있었죠. 담낭에 팥알 만한 담석이 가득 차 염증을 일으킨 상태였습니다. 수술로 담낭을 제거하고 두 달이 채 안 되어 다른 수술도 해야 했습니다. 두 번의 수술에서 마취제가 몸에 들어오는 순간 이제 고통이 멎었구나, 이렇게 깨어나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술 뒤 몸은 빠르게 회복됐고 육체의 고통이 사라지는 동안 마음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큰 일을 치르고 나니 더 늦기 전에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미루지 않고 해 보기로 했습니다. 서핑에 도전하고, 유치한 드라마에 빠지고, 좋은 사람들에게는 작게라도 마음을 표현하고, 가고 싶었던 곳에 가 보고, 먹고 싶었던 것을 줄 서서 기다리며 먹었습니다. 퇴근 뒤에는 혼자 볼링을 치고 볼링장 아래에 있는 코노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산책도 다녔죠.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겠지만, 저로서는 시간과 돈이 아까워 선뜻 하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이렇게 쓸데없어 보이지만 즐거운 일에 몰두하면서 우울증에서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다시 삶의 에너지를 회복했지만,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성공하기 위해, 쓸모 있는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일은 이제 관심에서 멀어졌으니까요. 무용해 보이는 일을 즐기며 내 상태가 어떤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 가고 있습니다.


 “쓸모가 없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야 무엇이 참으로 쓸모가 있는 것인가를 말할 수 있다. 땅이 넓지만 사람이 서 있는 데는 발을 둘 곳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발을 둘 곳만을 남기고 그 주위를 깊숙이 파 버린다면 사람이 서 있을 수 있겠는가?”
-≪莊子(장자)≫ 外物篇(외물편),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그동안 저는 내 발을 둘 곳만 바라보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똑바로 서기도 어려운 지경이 됐죠. 이제는 내 발이 딛고 있는 땅과 연결된 더 넓은 땅들도 바라보며 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무용한 일들 중 저에게 가장 유용한 일은 산책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얻은 에너지로 이렇게 글도 쓰고 다시 공부도 시작했죠. 앞으로 연재할 글은 바로 이 무용지용의 최고봉, 산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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