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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Jun 25. 2024

쓸데없어 쓸모 있는 산책

매일 걷는데 무슨 산책?


   산책이 취미라고 하면 누가 대본이라도 준 것처럼 비슷한 말이 돌아온다.

   "나도 많이 걸어."

   "출퇴근만 해도 5000보가 넘어."

   그렇다. 일부러 걷지 않아도 걸을 수밖에 없다.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다시 잠드는 순간까지 씻고 먹고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걷는다. 스마트워치가 생긴 다음부터 내가 일상 생활과 출퇴근을 하며 하루에 5000보 정도를 걷는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 건강을 위해 걷는 분들이 1만 보를 목표로 삼는 것에 비해 내 걸음이 좀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1만 보를 채우겠다는 결심은 서지 않았다.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출퇴근으로 하루 2시간~4시간을 보내야 하는 수도권 직장인에게 지하철이나 버스를 향해 걷는 것 외엔 생각하기 힘들었다.


출근길 바쁘게 걷는 사람들, Adobe Firefly로 생성한 이미지


   내 특기는 앉아 있기였다. 오전 3시간, 오후 5시간을 앉아서 보내야 하는 직장인에겐 잘 앉아 있는 게 미덕이었다. 화장실도 자주 가지 않아 서너 시간을 꼼짝 않고 내리 앉아 있을 때도 있다. 가만히 앉아 일할 때면 눈과 손, 뇌에 모든 에너지가 집중된다. 점차 체온은 떨어지고 몸의 각 기관들은 작동을 늦춘다. 그러니 소화가 잘 될 리가 없다. 궁여지책으로 점심을 먹고 시간이 좀 있을 때면 회사 주변을 걸었다. 고층 빌딩 사이를 헤치고 다니며 빌딩마다 마련해 놓은 작은 정원을 구경했다.


점심 시간 회사 주변을 걸으며 찍은 사진들


   걷기는 했지만 점심 시간 회사 주변 걷기는 소화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한 손엔 커피를 들고 남은 시간에 맞게 코스를 설정하고 빠르게 한 바퀴 걷고 난 다음 정시에 복귀해야 했으니까.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엘리베이터 때문에 밥 먹는 시간마저 여유를 갖기 어려웠다. 그나마 운이 좋아야 짧게라도 걸을 수 있었다. 빌딩 숲에도 나무와 풀이 자라고 꽃이 피었지만, 한가하게 감상하는 대신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산책 마니아의 세계로


   그러던 내가 산책에 빠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작년 봄, 회사에서 몇달 간 이어진 지리한 논의 끝에 이상한 결론으로 회의를 마무리했던 날이었다. 아니, 결론은 나지 않았다. 답답함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어 반차를 내고 물이 있는 조용한 곳을 검색했다. 한번 가 봤던 '마장호수'가 눈에 띄어 무작정 차를 몰았다. 금요일 오후라 가는 길이 좀 막혔다. 그래도 회사를 등지고 떠나는 마음은 가벼웠다.


   1시간 4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마장호수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무리에 끼어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호수 쪽으로 난 창을 앞에 두고 앉아 한참 물멍을 때렸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빨간 출렁다리 위에는 웃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 겁이 나 줄을 잡고 조심조심 걷는 사람, 손을 잡은 연인들, 등산복을 갖춰 입고 단체로 온 어르신들이 그득했다. 4시쯤 되자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슬슬 내려가 조금 걸어 보기로 했다.


2023년 4월, 마장호수 출렁다리


   4월, 호숫가에는 연둣빛 잎이 돋아난 나무들 사이로 채도 높은 철쭉꽃이 피어 있었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맑은 오후였다. 걷기에 취미가 없었던 나는 일단 출렁다리를 공략해 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튼튼했다. 사람들의 걸음에 맞춰 다리는 진동했고 나도 그 진동에 맞춰 몸을 출렁이며 걸었다. 잔잔한 바람이 불자 호수에는 잔물결이 일었고 서쪽에서 날아든 햇빛이 물결 조각을 만나 반짝였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 태양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반짝임이 달라졌다. 이게 윤슬이구나 하며 마치 윤슬을 처음 본 사람처럼 감탄했다.


   다리를 건너자 호수에 비친 초록빛 산에 눈길이 갔다. 이른 봄 새로 돋아난 잎들은 연한 연둣빛을 띄었고 그 사이로 피어 있는 꽃들이 생동감을 더했다. 늘 푸른 나무들은 짙은 초록으로 무장하고 제 자리를 지켰다. 무엇하나 같은 초록은 없었다. 그 초록빛에 끌려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풀과 나무들이 저마다 내뿜는 그 초록빛들을 구경하다가 더 짙은 초록으로 물에 반영된 풍경을 바라보며 홀린 듯 걸었다. 새 소리, 물 소리가 음악처럼 들렸고 사람들이 웃으며 떠드는 소리마저 싫지 않았다.


   조금 걷다 보니 해가 산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봄이라 낮이 길지 않았다. 그런데 해가 지기 시작하니 풍경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사방이 붉은 금빛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호수는 점점 고요해졌다. 저쪽으로 가면 더 아름다운 풍경이 보일 것 같아 바쁘게 걸었다. 그러고는 드디어 결정적 장면을 마주하게 됐다.


2023년 4월 해가 지는 마장호수


   해가 지는 호수 위에 오리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하늘과 호수는 황금색으로 물들어 빛나고 초록이 가득하던 산은 점점 검게 변했다. 황금색 배경에 검정 실루엣으로 변해가는 사물들이 신비로웠다. 그래서 이 시간을 마법의 시간(magic hour)라고 하는구나 하며 호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아름다운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20분이 채 되지 않아 해는 완전히 지고 호수는 어둠으로 덮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났다. 큰집 앞 강가에서 혼자 송사리를 잡고 이름 모를 열매들을 따고 강둑을 걸어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사촌들은 나이가 많아 큰집에 가면 강가에서 혼자 놀곤 했다. 자주 가도 똑같은 건 없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풍경은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고 매일 달라지는 풀과 나무, 강물과 물고기들을 관찰하는 동안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마장호수에서 보낸 한 나절이 이 기억을 소환했다.


   이날 내가 느낀 감동과 평안의 원천을 찾기 위해 나는 몇주 동안 실험을 했다. 같은 시각에 다른 장소를 가 보고, 같은 장소를 다른 시각에 가 보았다. 일몰 시간에 맞춰 다른 공원이나 산, 경치 좋은 카페에 가 보았고, 마장호수에 해뜰 무렵, 오전, 오후, 해질 무렵에 다시 가 보았다. 때로는 걷고 때로는 뛰었으며 자전거를 타 보기도 했다. 이런 실험을 반복하면서 내린 결론은 '산책'이었다.


산책 ≠ 걷기

   

   산책은 걷기를 수반하지만 여러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목적 없음'이다. 산책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우정이나 사랑이 그렇듯이. 소화가 잘 되게 하려고, 몸이 건강해지려고 걷는다면 이건 운동이지 산책이 아니다. 산책은 아무 이유 없이 걷고 싶은 곳을 어슬렁대며 걸으면 족하다. 그래서 공원에서 파워워킹으로 걷거나 뛰는 건 운동이지 산책이 아니다. 물론, 건강을 위해 걷고 뛰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몸을 단련하는 것도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산책의 개념을 좀더 뾰족하게 하기 위해 목적이 있는 걷기를 제외한 것이다.


   또 다른 조건을 들자면 '관찰'이다.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돌아다니지만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때로는 미각까지 동원하여 내가 걷고 있는 그 장소의 모든 것을 만끽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이든 도시의 작은 골목이든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곳이든 눈 가는 대로 보고, 들려오는 소리를 귀로 듣고 불어오는 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장소와 기온에 따라 달라지는 냄새를 맡다 보면 매일 지나던 거리도 새로운 곳처럼 느껴진다.


2024.4.20. 스위스의 작은 동네에서 저녁 산책 중 찍은 사진


   회사에서는 여럿이 함께 앉아 같은 목적을 향해 일하는데도 자주 외롭고 고립된 느낌이 들었다. 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이 업계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가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다. 아무리 인권을 존중하는 회사라도 직원은 일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것이 고용 노동자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을 검열하며 몰아세워야 하는 것이 일하는 사람들의 숙명이라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에 굳은살이라도 생겨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나만 그랬던 걸까?


   반차를 내고 회사를 뛰쳐나와 마장호수로 향했던 날, 일에 대한 효능감은 바닥이었고 자존감도 마찬가지였다. 살수록 세상은 내 노력에 비례하는 함수가 아니었고 랜덤 함수로 느껴졌다. 더 무서운 건 의지와 노력조차 없으면 더욱 가혹한 세상을 만나게 된다는 것. 그런 세상에서 나는 무뎌지는 쪽을 택했었다. 마음이 어떻든 몸에서 뭘 원하든 견딜 수 있는 데까지 무뎌져서 하는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쪽으로. 그러나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무뎌진 몸과 마음은 내가 그랬듯 언젠가 고장나 버리기 때문이다.


   산책하는 동안 나는 이런 불안과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때로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며 감탄했고, 도시의 골목에서 크고 작은 가게들, 그 속에 살아가는 동식물들을 만나며 위안을 얻었다. 산책이라는 목적의 왕국에서 나는 더이상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는 일, 마음 편한 곳을 찿아 어슬렁거리며 오감동원해 그곳을 만끽하는 일, 쓸데없기 때문에 가장 쓸모 있는 일,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산책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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