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내 나이 오십을 훌쩍 넘어 육십을 향해가고 있다.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를 보라는 딸의 맘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책을 선물로 보냈다. 이제부터 난 나를 살아갈 시간이다. 하지만 남은 시간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나는 매일 삶의 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깊은 혼란에 빠진다. 정답이 없음이 정답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정답을 외치는 그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 고립되고 고통받기 시작한다.
오늘은 그 고통을 내려놓고 정원의 고요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 최근 소로우의 일기를 읽으면서 자연의 질서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그의 태도가 나를 사로잡았다. 소로우는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며, 그 속에서 진정한 삶을 탐구했다. 나 역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살고자 한다. 물론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나는 자연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가시가 무성한 나무는 가시로 자신을 표현하고, 잎이 무성할 때는 잎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낙엽이 지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모든 것에는 다 까닭이 있으며, 자연은 결코 이유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나무가 낙엽을 떨구며 긴 겨울을 준비하는 것처럼, 나도 나의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 속에서 나도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나이를 먹고 중년을 넘어가며 많은 것들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와인 한 방울이 그 순간 모든 것을 물들이듯, 진실 하나가 내 인생 전체를 채색할 수 있음을 안다. 그 진실을 마주하고, 희석시키려는 몸부림조차 찬란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몸부림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닐까? 자연은 매 순간 순환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데, 왜 나는 두 개의 길을 저울질하며 갈등하고 있을까? 내가 살아갈 길은 이미 내 앞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밤과 낮이 교차하듯, 나는 내 안에 있는 두 개의 존재를 하나로 통합하며,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 정원의 고요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자 한다. 자연이 말하는 진실을 듣고, 그 진실이 내 삶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차분히 기다리며, 내가 갈 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인생도 결국은 자연의 일부로서 순환하며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 나는 불안과 고통 대신, 그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내 인생의 황금들판 가을을 걷는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정답이라는 깨달음. 그것이 내가 오늘 이 순간에 얻은 가장 큰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