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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eph Nov 01. 2020

김 과장, 집 산다며?

프롤로그



2017년 가을, 남편이 말했다.

"아무래도 너무 비싼 것 같지 않아?"



하루에도 수십 번 드는 생각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올랐는데, 이 돈에 이 집을 사는 것은 순 호구가 되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몇 달만 지나면 또 다른 후회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때 살걸 - 사실 걸리는 것을 꼽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달랑 두식구가 40평대 대형 아파트를 산다는 결심을 주변에 알리는 순간, 엄청난 잔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출생률은 자꾸 떨어지지, 1인 가구며 노인 부부세대로 드글드글한 이 서울에서 제 가치를 빛내줄 최적의 평수는 바로 20평대. 기껏해야 30평대라는 것이다. 40평대는 거래량도 많지 않고 가격도 애매해 환금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가 구석구석 청소하며 살기도 버겁지 않겠냐는 지인들의 조언들. 대부분은 사실이다. 실제로 이 아파트는 같은 단지의 30평대에 비해 가격이 5천만 원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더 큰 집이 더 쌀 순 없으니 마지못해 책정된 가격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30평대랑 5천만 원 밖에 차이가 안 나잖아. 10평에 5천만 원이면 당연히 큰 평수를 사야지. 우리 TV를 봐. 55인치 산걸 아직도 후회하고 있잖아? 하물며 집이라구."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나는 못내 아쉬움이 드는 일례를 찾아 근거를 보탠다. 넓은 집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 됐든 작은 집 보다 더 싸게 팔리진 않을 텐데. 아직 계약서도 쓰기 전이지만 이미 내 재산인 양, 오 년 뒤에 혹은 십 년 뒤에 이 집의 가격은 얼마나 더 올라갈지를 재고 있다. 여러 곳에 집을 둔 다주택자, 임대사업자가 아닌 1 주택자인 이상, 집 값은 그것을 팔아 현금으로 내 손에 쥐기 전까지는 별 의미가 없는 숫자놀음이라고 익히 알려져 있다. 그저 부동산 앱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매물들을 보며, 이야 - 그새 얼마가 올랐네, 그때 집을 사길 참 잘했지! 하는 마음의 위안을 삼기도 하고, 혹시라도 집 값이 떨어지면 웬 도둑놈이 내 집안에 들어와 문짝이라도 하나 훔쳐간 양 아주 기분이 나쁜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위안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했더라면, 같은 예산으로 우리는 이 동네 대장주라는 신축 아파트 20평대를 가는 것이 누가 봐도 옳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웬 뒤틀린 심보인지, 집을 사야지 마음먹은 이후로 인근 일대의 아파트란 아파트는 모두 돌아보았으나, 이상하게도 마음에 차는 곳이 없었다. 으리으리한 커뮤니티센터에 테마파크 같은 조경이 있어도, 집 내부는 하나 같이 원 오브 뎀. 나무 흉내를 낸 플라스틱 마룻바닥에, 칙칙한 싱크대가 좁은 공간에 꽉 차게 들어찬 것을 보면, 그 집을 살만한 현금이 수중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까탈을 부리게 되었다. 과연 어디에 존재하긴 하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는 이상의 집을 찾아 헤매다 지치고 포기하길 수차례였다. 내 집을 산다는 것은, 돈을 마련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원하는 집을 찾는다는 것부터가 큰 산이었다. 사실 전세란 제도는 얼마나 훌륭한가? 이 년 동안 공짜로 남의 집을 쓸 수 있다니. 요즘 같이 저금리 시대에는 월세에 비하면 전세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는 것이 남는 장사라 할만하다. 그리고는 이내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결혼한 지 3년 차. 지방 파견을 다녀오고 사택을 오가느라 벌써 4번의 이사를 했다. 어린 시절부터 꿈틀거리던 정착에 대한 열망이 다시 불을 지핀다. 우리 집을 사자 - 그래. 물론 집 값이 더 떨어질 수도 있고, 아이가 생기면 목동이나 대치동으로 가야 할 수도 있지만, 그건 10년도 더 남은 일일 거야. 정착, 그리고 내 집. 얼마나 꿈꿔온 일인가?



도화지를 찾자. 


어디에도 내가 찾는 집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갈 때쯤, 나는 도화지 같은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원하는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새하얀 도화지 같은 집을 찾자. 적당히 낡아서 다 뜯어내도 별로 아깝지 않을만한 그런 집을 찾아보자. 낡은 것을 핑계로 값이라도 좀 더 깎아 인테리어 공사에 보태면 좀 좋겠나, 남진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었듯이. 물론 나는 앞뒤 양옆 남의 집으로 둘러싸인 공동주택 사이 한 칸이겠지만, 나만의 도화지를 찾아보자고. 집이 필요했다. 2년마다 다음 타깃을 고민하며 누군가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것 말고, 내 이름과 남편 이름으로 등기부등본에 올려진 우리 집. 마음에 안 드는 몰딩을 감추려고 너절한 가구나 천 쪼가리 올려두고 인테리어라고 하는 것 말고, 내 스타일대로 공사해서 완전히 몸에 맞춘듯한 그런 집이 필요했다. 



남편이 다시 말했다. 

"그래. 어차피 난 언제나 네 결정을 따를 거야. 그냥 정말 마지막으로 확신을 얻고 싶었어."



나는 말했다.

"인생에 확실한 건 없지. 그래도 일단 정착을 해야, 다시 떠날 용기도 생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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