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다(look)? 보다(see)!

베르툼누스와 루돌프2세

by 도슨트 춘쌤

우스운 그림이다. 이전에 없던 그림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가까이서 그림을 보면 꽃, 채소와 과일을 그린 것 같다. 멀리서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물을 그린 것인가? 사람을 그린 것인가?

주세페 아르침볼도 <베르툼누스>

정작 그림을 그린 주세페 아르침볼도(1527~1593)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그림은 보이는 것과 다르게 ‘웃긴’ 의미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주인이 될 사람이 그림에 숨겨진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할 텐데... 속으로 걱정하는 그였다.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한때 신성로마제국의 궁정화가였다. 그림의 주인공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1552~1612)다. 아르침볼도는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 그리고 황제를 그림의 모델로 삼은 것일까?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


여러분들이 루돌프 2세라면, 이 그림을 보고 어떤 말을 할 것 같은가? 아마 조선 시대였다면,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왕을 능멸한 죄로 큰 곤경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루돌프 2세는 이 그림을 보고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심지어 2년 뒤, 주세페 아르침볼도에게 백작 직위를 수여하였다. 신하들은 이러한 루돌프 2세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황제의 미술적 감각은 확실히 범상치 않다.


루돌프 2세는 무엇을 보고 만족했던 것일까?

사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는 이 당시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동생과의 권력다툼으로 인한 스트레스, 한둘씩 떠나는 신하들과 나날이 하락하는 명성. 언제 황제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거기다 오스만튀르크의 침략으로 인한 공포는 루돌프 2세를 위축시켰다. 위기의 순간, 과거 궁정화가였던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그림 ‘베르툼누스’는 루돌프 2세에게 큰 힘이 되었다. 자신을 풍요와 계절의 신 ‘베르툼누스’와 동일 선상으로 놓은 초상화였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그에게 있어, 백성과 왕국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자 희망의 징조로 보였다.


로마의 명장이었던 카이사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말은 유효하다.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에서 바라본다. 결국, 삶 속 잘못된 시선과 판단은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임을 깨닫게 한다.

루돌프 2세의 반응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사람들은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르게 받아들인다. 왜 그럴까? 그것은 각자가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어 동사 ‘보다’는 ‘look’, ‘see’이 있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사용하는 상황이 다르다. ‘look’은 무엇인가를 단순하게 바라볼 때 사용하는 감각 동사라면, ‘see’는 의도를 가지고 통찰하며 바라볼 때 사용하는 지각동사이다.

역사를 볼 때는 look’이 아닌 ‘see’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어떤 상황을 시간의 변화에 따라 목적을 가지고 바라봐야 역사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황제가 무엇을 보길 원했던 것일까? 베르툼누스는 계절의 신이기도 하지만 변화의 신이기도 하다. 베르툼누스라는 말 자체도 라틴어 베르테레에서 파생했다고 한다. 이 단어는 변하다, 계절이 바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이 그림을 통해 황제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황제는 베르툼누스처럼 백성들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의 메시지를 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후 루돌프 2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이 그림을 바라보며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삶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현실에서 그는 풍요의 신도, 계절의 신도 아니었다. 백성과 나라를 풍요롭게 만드는 ‘성군’도 아니었다. 무능한 황제에 불과했다. 13년간에 걸친 오스만튀르크와의 전투는 대패로 끝났다. 결국, 모든 권력은 동생 마티아스에게 빼앗겨 황제의 위에서 퇴위당했다. 그 후 1년. 그는 프라하성에서 59세의 나이로 쓸쓸하게 유폐되어 죽어갔다.

하루에도 수십만 가지의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호모 사피엔스'에 걸맞게 살고 있는가? 다양한 정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위기의 상황을 대처하고 있는가?

look이 아닌 see로 세상을 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

응답하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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