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보야! 보이는 게 다는 아니야!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두 얼굴

by 도슨트 춘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명언이다. 이 명언의 주인공은 나폴레옹(1769~1821)이다. 사실, 이 명언은 오역이다. “불가능이란 단어는 프랑스어에는 없다.”가 맞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폴레옹은 ‘불가능’이라는 단어와 멀어 보이는 인물이기는 하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코르시카의 촌뜨기에서 프랑스 제정의 황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불가능’이 없어 보이는 남자. 1800년, 그는 이탈리아 방면의 사령관이 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공략은 쉽지 않았다. 제노바에 갇힌 프랑스 군을 구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절약해야 했다.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알프스를 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험준한 알프스 생 베르나르 협곡을 5만 명의 군대와 1만 마리의 말, 수많은 대포와 물자를 가지고 넘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알프스를 넘었고, 마고렝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했다. 그 후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남자’ 나폴레옹의 이 일대기는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한 화가에 의해 이 사건은 명작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바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1802)가 그것이다.

image06.png 자크 루이 다비드 <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이 그림 속 나폴레옹은 ‘역경을 극복한 영웅’의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경사진 협곡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흰 말을 타고 넘어가고 있는 나폴레옹. 병사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영웅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굿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강력한 비전을 가진 리더. 혜안이 담긴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나폴레옹. 바위에는 알프스를 넘었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역사 위인의 반열에 오른 나폴레옹의 위엄이 잘 드러난다.


나폴레옹도 이 그림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버전을 만들어 소장했다.

이 그림이 그려지고 나서 2년 뒤, 1804년 나폴레옹은 프랑스 제정의 황제가 되었다. 어쩌면 이 그림의 영웅적 이미지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지는 사람을 흔드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린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한때 루이 16세를 위해 그림을 그렸던 전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권력자의 기호에 맞는 그림을 그렸다. 신고전주의의 대가 자크 루이 다비드. 그는 자신의 그림에 권력자의 욕망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녹아냈다. 그렇게 그는 나폴레옹을 위해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후 조작된 나폴레옹의 역사적 이미지는 그대로 <나폴레옹 대관식>(1805~1807)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대관식>

누구 이렇게 위대한 나폴레옹의 이미지가 담긴 그림을 보고 나폴레옹을 평가 절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그림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그림은 사실, 철저하게 조작된 그림이기 때문이다.

실제 알프스를 넘었던 나폴레옹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나폴레옹은 화려한 백마를 타고 알프스를 오르지 않았다. 그는 볼품없었던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올랐다. 날씨도 추웠기 때문에 상당히 몸도 좋지 않았다. 거기다 알프스를 넘으며 많은 병사들이 절벽에 떨어졌다. 병사들과 함께 알프스를 오른 것도 아니었다. 병사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나중에 따라 올라갔다. 직접 병사를 지휘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자크 루이 다비드는 자신의 그림을 왜곡해서 그렸던 것이다. 나폴레옹의 마음에 흡쪽 하도록 말이다.

폴 드 라로슈,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이 몰락 한 이후 그림을 그렸던 폴 드 라로슈는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실제 역사적 장면과 부합하도록 그렸다. 굳이 몰락한 나폴레옹에게 아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같은 사건, 같은 인물을 모델로 그린 그림이지만, 화가의 의도에 따라 그림의 결과물은 완전히 달랐다.

두 화가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우리에게 큰 메시지를 담겨준다.


“역사적 실체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화가가 살았던 시대,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졌던 그림처럼.

역사도 시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치적 의도에 의해 충분히 왜곡되고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역사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역사서는 기록된다. 역사서의 집필자의 성향에 따라 동일한 사건, 인물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진다.

고려시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이 대표적이다. 묘청을 진압했던 김부식은 묘청의 서경 천도를 반란으로 규정했다. 반면,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 천도를 하나의 운동이자, 일천년래 제일의 사건으로 규정했다.

김부식은 묘청의 서경 천도를 체제를 뒤집는 불온한 행동으로 봤다. 그러나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 천도를 자주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반란'으로 규정한 반면 다른 쪽에서는 '운동 혹은 혁명'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이러한 의도된 ‘왜곡’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독재정권의 입맛에 따라 민주화운동은 ‘빨개이’들의 선동으로 낙인찍혔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은 정권의 왜곡된 정보를 비판 없이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민주화를 부르짖던 학생과 시민들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image03.png 역사에서 우리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깨닫는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두 그림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세상의 숨겨진 의도를 잘 파악하며 살고 있나요?”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것,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해석이 만난 학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를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의 ‘의도’를 잘 보지 못한 것이다. 역사는 ‘사실’을 다루지만,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실’ 속에서 현재의 ‘해석’을 분석하여, ‘진실’을 찾아가는 학문.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역사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상의 여러 '의도'를 발견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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