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라는 간단한 방법, 그리고 소원의 방

<도망이 아닌>

by 이두래

사과라는 간단한 방법, 그리고 소원의 방



잠깐 스친 인연들 앞에서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털어놓고

무너지기도 했다.

어쩌면 다시 안 볼 사람들이라

약한 모습을 맘껏 보여준 걸

... 지도 모르겠다.


내가 회복하는 방법은

오직 사과를 받는 일뿐이고

가장 간단한 방법 역시

사과받는 것이라며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왜 움츠려 들어 있냐며

힘과 용기를 쏟아내주셨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도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민망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사실 내가 세부에 도착했을 때

숙소에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나는 지레 겁을 먹고

혼자 다른 곳으로 피해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나를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기분도 들었다.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주로 밥을 먹었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무료 셔틀버스는 타지도 않았다.

지프니만 이용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영호가 참 듬직한데 귀엽네요.

영호가 인사를 너무 잘해요.

인사를 하루에도 백번은 하는 것 같아요.

윤호가 참 사랑스럽네요.

윤호가 잘 삐지기는 하는데

그게 또 귀엽네요. 딱 막내 같아요.

아들만 둘인데,




어쩜 엄마 얼굴에 그늘이 없네요.



!!!



대가 없이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들.


버텨야 하니까,

티 내지 않으려

괜찮은 척하느라

온 힘을 쓰고 있다가

언젠가부터

사르르 녹았다.


점점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기 시작한 것 같다.

억눌려 있던 마음들이

터져 나오면서

그 속에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사람들의 손길,

온기가

조용히 차오르고 있었다.


온기는

나를 각성하게

만들었다.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그들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
나는 늘
침묵하거나
용서해야만 했다.

그들은
더 이상 어른이 아니었고,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바로 잡았고,
이제 그들도
내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것도 안다.

언젠가,
'모른 척'이 무기라 믿는
그들의 평온한 일상에
폭풍이 찾아올 것이다.

침묵은 포기가 아니고,
사과는 도망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 도망조차
똑똑히 보았다.

나는 말 대신,

조용히 기록하고 있다.
잊지 않기 위해.
누구도 다시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조용하고, 따뜻한 사람들은

여전히

때때로

안부를 묻기도 한다.

괜찮아지고 있느냐고.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우린, 소원의 방을 만들었다.

말하면 이루어지는 톡방이다.


흘러 보내는 꿈이

현실이 되는 방이다.

그렇게 나는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쓰고 있다.



#작가노트

잘못 없는 이들이
조용히,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준 덕분에
조금은 덜 부서졌습니다.

하지만
사과는 여전히 멈춰있습니다.
잘못은, 그 순간이 다가 아닙니다.
알고도 사과하지 않은
그 이후에도 더 크게 자랍니다.


오늘은

그림이 없습니다.

오롯이 사람의 언어로만 전하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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