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프랑스 노동자들의 여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당신을 44번 갤러리로 안내해서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가 1884년에 완성한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Bathers at Asnières> 앞에 함께 고요히 앉을 것이다. 같은 갤러리에는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거장들의 작품이 여럿 걸려 있는데, 그중에는 소위 유명하다는 것에는 사족을 못쓰는 전형적인 관광객들이 몸싸움하다시피 해야 겨우 얼굴을 그림 앞으로 구겨 넣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고흐(Vincent van Gogh)의 <해바라기>를 포함해 고갱(Paul Gauguin)과 모네(Claude Monet)의 작품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이 고요한 물가 풍경이다. 당시 스물다섯도 되지 않았던 쇠라는 19세기 후반 도시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파리 근교의 센 강변을 배경으로, 가로 크기가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에 센 강가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 작품은 크기뿐만 아니라 주제, 구성, 색채, 기법 등 여러 면에서 야심 차다. 물론 아름답다. 그래서 자꾸만 시선이 가는데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림이 건네는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시대와 장소를 훌쩍 건너뛰어 묻고 싶은 질문이 이 그림에는 많다. 내 생각에 그건 이 작품이 지니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때문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이 작품을 흘낏 보고 별생각 없이 <해바라기>로 향하는 관람객들은 강변에 허여멀건한 남자들이 몇 명 앉아 있는 거대하고 화사한 그림 정도로 이해하겠지만 실은 아주 많은 이야기와 미세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강둑에 앉아 있는 남자들의 모습이 어떻게 뽀오얀 대리석 조각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지 한 번 보라. 그림 중앙에 앉아 있는 남자의 구부정한 자세가 관람자에게 전달하는 언어. 그의 옆얼굴은 모자 그림자에 가려져 왠지 어둡고 우울하다. 강가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호작용하지 않는 점은 이상하다. 이 외로워 보이는 남자들의 상태를 반영하듯 강가를 비추어야 할 태양은 강 너머의 저 멀리 공장과 기차에서 나오는 연기로 가려져, 화면 전체가 미묘한 회색빛으로 덮인 듯하다.
쇠라는 전통적으로 성경이나 신화, 혹은 역사 이야기를 다루는데 사용하던 거대한 캔버스를 노동자들의 여가를 그리는 데 썼다. 이런 특징은 시카고에 소장된 쇠라의 또 다른 작품인 <그랑 자뜨 섬의 일요일 오후 A Sunday on La Grande Jatte>(1886)에서도 마찬가지로 두드러진다. 이 두 작품에서 인물들은 역사화에서 그렇듯 위엄 있게 실재 사람 크기로 그려졌다. 하지만 쇠라의 묘사는 르누아르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이 주로 보여주었던 여가와는 다르다. 잘 알다시피 그들은 공원이나 정원을 배경으로 생명 넘치는 중산층의 여가를 다루었다. 르누아르가 즐겨 표현했던 피부에 떨어지는 빛, 상기된 볼, 그림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싱그러운 공기를 떠올려보라.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센 강변에서의 여가가 왜 이토록 고요한가? 어째서 쇠라는 ‘즐거움’을 쏙 빼놓고 이 주제를 다뤘나? 당시 파리 시민들은 한껏 차려입고 튈르리 공원에서 음악회도 관람하고 몽마르트르에 있는 물랭 드 라 갈레트 (Moulin de la Galette)에서 춤을 추면서 놀지 않았던가?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는데 이들은 어째서 여전히 고독하고 뚱한가? 공장이 들어서고 도시에 일자리가 많이 생겼는데 기쁘지 않은가? 도시의 발전 속에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나는 바로 이런 질문이야말로 이 그림을 더 풍부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림이 제작된 시대와 장소로, 작가에게로 다가가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언급했다시피 중산층이 아닌 노동자 계층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말은 그림의 주인공들이, 아마도 위생 설비가 열악한 빈민가에 살면서 파리 외곽의 공장에서 노동했을 가능성이 크고, 노동 시간은 주 6일에 매일 10-12시간은 족히 되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당시 임금은 매우 낮았기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를 포함해 가족 전체가 노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흔했다. 또 장시간의 근무 시간은 노동자들의 육체적 피로와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이 그림의 제작 시기와 비슷한 때에 출판되었던『제르미날』(1886년)에서 에밀 졸라(Emile Zola)가 보여준 탄광 노동자들의 실상이라든지 또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더 앞서지만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레미제라블』(1862년)에서 판틴(Fantine)이라는 인물을 통해 노동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인생 저 밑바닥까지 끌고 갔는지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도시화 속에 소외된,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