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위기는 기회였나 봅니다.

조용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by 그림크림쌤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싶습니다. 불과 8년 전까지만 해도 책도 잘 안 읽던 제가, 제 이름 석자가 박힌 책을 낸 출간작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예전 제 모습만 기억하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는 우려 섞인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네가 책을 냈다고? 너 책도 잘 안 읽잖아!" 오늘 날짜로 정확히 출간 한 달이 되었는데, 다행히 아무도 제게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책 제목에 떡하니 'ADHD'라고 쓰여 있는데도, 제게 아무도 "너 ADHD였어?"라는 말조차 하질 않아 정말 다행입니다. 실명을 걸고 출간하기로 해놓고 사람들이 ADHD라고 비웃거나 무시할까 봐 긴장을 많이 했었거든요.


역시 위기는 기회인 가 봅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돌이켜보니 전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8년 전 심각한 교권침해로 터진 불안증으로 제 상담을 해주던 선생님이 제게 <빨간머리 앤> 책을 추천해 주었거든요. 저와 많이 닮아서 위로가 될 거라며 추천해 주셨지요. 그렇게 저는 <빨간 머리 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독서의 세계에 재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담선생님은 알고 추천할 걸까요? 사실은 빨간 머리 앤이 전형적인 주의력결핍 우세형 ADHD이며, 저 역시 그렇다는 사실을요.)


8년 전 심리적 위기에 봉착한 저는 <빨간 머리 앤>으로 그렇게 끊어진 독서에 재입문했습니다. 그때부터 비공개 블로그를 저의 대나무숲 삼아 마음이 힘들고 불안할 때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요동치는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멈추고자, 그림을 그리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일의 본격적인 시작은 3년 전 두 번째 위기 봉착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된 아들의 ADHD 진단, 40대 초반인 저의 백내장 진단, 교사엄마인 저의 ADHD 진단, 친정 엄마의 파킨슨병 발병 등 여러 몸과 마음의 위기가 도미노처럼 차례로 저희에게 찾아왔거든요. 그래서 저는 미친 듯 달리며 공부할 때마다 공개 블로그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적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다시 보려고 말입니다.


그렇게 힘들 때마다 글을 쓰다 보니 저도 모르게 꾸준히 글을 썼나 봅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출간도 하게 되어 신기합니다. 첫 책을 내고 나니 자꾸만 '두 번째 책은 뭘 쓰지?'라는 생각이 고개를 듭니다. '빨리 책 기획을 해야 하는데' 싶어 벌써부터 초조합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번 책이 잘 팔리는 책을 내려고 쓴 게 아니잖아! 나로 인해 ADHD로 태어난 내 아이에게 나의 ADHD와 모든 학교생활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썼더니 책이 된 거잖아! 정신 차려 그림크림!'


벌써부터 마음이 혼탁해지며 초심을 잃어가는 걸까 싶어 제 스스로에게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도 고개를 듭니다. '네가 언제부터 작가였다고. 착각하지 마 그림크림. 너 따위가 뭐라고!' 한평생 ADHD로 살아왔기에 저는 자존감이 많이 낮습니다. 한껏 낮은 자존감이 다시 고개를 치켜듭니다.


마음을 다잡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래,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자. 2쇄까지 갈 책이 아니라,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자.'


그리고 다짐합니다. '하루하루의 판매지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자. 바꿀 수 없는 걸 바라보며 불안해하지 말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그것만 생각하자.'


'그냥 컴퓨터 앞에 앉는 거야. 그리고 전원을 켜. 블로그든, 브런치스토리든 하루에 하나씩 글을 쓰자. 그냥 쓰자. 이 세상에 공개된 블로그와 브런치북이지만, 생각보다 너에게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쓰자.'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한결같이 존중해 주고 좋게 봐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실명을 밝힐 용기도 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늘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요새 브런치북 연재에 구멍이 자꾸 생겨 죄송합니다. 핑계를 대어 보자면 책 출판사 유튜브 채널인 <에듀니티 TV> 유튜브 영상 촬영과 출간기념 온라인 강연회 등에 쓸 대본과 발표 준비로 조금 바빴습니다. 사실은 제가 주의력 전환이 어렵고 동시에 두 가지 일 진행이 어려운 ADHD라 더 그랬습니다.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 주세요...


아래의 <에듀니티 TV>에 제 첫 번째 영상인 '19년 차 현직 교사(ADHD 아이를 키우는)가 알려주는 ADHD의 오해와 진실'편이 올라왔습니다. 남은 영상들도 꾸준히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제 책 내용에는 없는 번외편도 많이 있습니다 :)


https://youtu.be/CFW8pDR9WLk?si=eIRQ1NRDmgSToq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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