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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May 09. 2021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확실히 그렇다.

지난주 격일로 세 번이나 지방에 갈 일이 있었다. 이상하게 기차가 타기 싫어 일부러 장거리 운전을 하고 보니 일만 하고 오기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바람을 쐬어 볼까? 친구를 만나볼까? 하다가 곧 어버이 날이 있으니 지나는 길에 계신 시부모님을 뵈러 들렀다. 코로나때문에 오랜동안 뵙지 못해 그런가 너무나 반가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괜히 죄송스런 마음이 올라온다. 잠깐 뵙고 식사하고 차마시고 나니 곧 일어서야 할 시간이 되었다. 차로 나오니 어머님께서 김치와 물김치를 챙겨주신다. 출발하면서 전화드렸더니 도착할 시간에 맞춰 김치를 담궈 놓으신 것이다. 하려는 말은 지금부터다. 아버님이 말씀하시길 어머님께서 그 전날부터 편찮으셔서 내내 일어나지 못하고 계셨다는 거다. 어머님께서 아침도 못 해 주셔서 아버님이 대충 차려 드시고 나서던 차에 며느리 온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더니 벌떡 일어나 김치를 담그기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아침 차릴 기력도 없던 어머님이 김치를 담그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리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어머님의 몸을 일으키신 것도 어머님의 마음이었다. 보고싶은 마음. 뭐라도 챙겨 보내고 싶으신 마음이 기력없던 몸을 일으킨 것이다. 이 일은 비단 어머님의 일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 그런 경험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 충격적인 일을 만났을 때 숨이 턱 하고 막힌 일.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일을 당했을 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버린 일, 마음이 너무 아픈 것을 꾹꾹 누르고 있는데 가슴 한 켠이 짓눌리다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떨어지는 것처럼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겪어본 적 말이다. 

이번에 또 마음이 보여준 몸의 상태를 경험했다. 큰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 숨 돌리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는데 크게 실망한 일이 연거푸 일어났다. 항상 열정만수르인 나에게 모든 열정이 사라져버렸다. 홍수가 쓸고 지나간 것처럼 내 안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무엇도 시작할 수 없었고 몸도 으슬으슬 춥고 아프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이 산적해있는데 하다못해 텔레비전도 보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일에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 시작하니 일을 시작할 기력마져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행히 곧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멀리서 보내준 메시지 하나 때문이다. 한국에 왔다고. 자가격리 중인데 곧 뵐 수 있을 것 같다고. 그 소식을 기다린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 메시지 하나에 다시 일어나 시작할 수 있었다. 싹 쓸려간 마음에 다시 새싹이 올라온 기분이었다. 다시 일어나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음은 몸을 일으킨다. 


<탄츠위드 5월호 춤추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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