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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Sep 02. 2021

나를 언니라 부르던 언니

바로 지금 여기에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몇 해 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이 경기도 광주에 있던 시절. 무용치료사로 첫 정신과 환자들을 만났다. 수련하면서 국립서울병원 세션을 참관하기는 했었지만 주치료사로 환자들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경기도 광주에 들어서고도 한참을 들어가면 마치 비밀의 정원 같은 곳에 병원이 위치해 있었다. 숲도 예쁘고 환경이 잘 조성되었건만 그들은 철창문 안에서 허락된 시간만 간호사들의 보호감찰아래 자연을 즐길 수 있다. 


몇 번의 단계를 거쳐 무용실(다목적실이라고 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에 도착하면 다양한 환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서부터 조울, 우울증, 품행장애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병명도 나이도 다양한 그룹이었다. 갈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데 대신 지난주의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매주 만나지만 매주 새로운 선생님을 대하듯 자신을 소개하고 나의 소개를 기다린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선생님이세요?” 그 중 유독 나를 반가워하는 한 분이 있었는데 항상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환자다.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꼬박꼬박 언니라고 부르던 그 환자에 대해 자세한 내역을 알 수 없었지만 무용치료사로 그녀의 움직임을 기억하고 있다. 


조금 통통한 체형에 앳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무게감이 없었다. 체중이 있고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무게감이 없다는게 무슨소리일까? 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 속 유령을 떠올려보자. 유령이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 발자국 소리를 내던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얼굴옆까지 다가와 무섭게 얼굴을 들이미는 유령의 움직임을 무게감이 없다고 표현한다. 환자들의 움직임에서도 그런 유형의 움직임들이 관찰된다. 걸음걸이에서부터 몸의 다양한 동작들은 마치 무게를 가지지 않은 것처럼 가볍기만 하다. 바닥을 쿵쿵 굴러보자고 해도 ‘쿵’소리를 내지 못하는가 하면 서로 손을 밀어보자고 해도 힘없이 밀리기만 한다. 손바닥위의 꽃잎을 불어 날리지 못하는 등의 의도적 숨쉬기가 안 되는 것처럼 신체의 각 부분에 의도적 힘주기 역시 이들에겐 어려운 과제이다. 


이들의 이런 움직임은 그들의 마음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에 매몰되어 있기도 하고 환청이나 환상에 사로잡혀 있어 현실감을 잊은 그들의 움직임에는 무게감이 없어 의도적으로 힘을 주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그들과 만날 때마다 자신의 무게를 느껴볼 수 있도록 돕는다. 밀고, 당기고, 바닥을 구르고 신체를 두드린다. 그 때 그들의 몸과 마음은 바로 그 자리, 병원 안 무용실에 있으며 실제로 바로 옆에 존재하는 동료 환자, 간호사, 선생님을 인식하게 된다. 현실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게감이 없는 움직임은 병원에만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지금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나를 잃어버릴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다 보니 나 역시 지금의 현실에 있지 못하고 그 시절, 그 곳에 가 있다. 그 때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간을 온 몸으로 겪어내고 있을 때였다. 그 시간에 내 몸에 새겨진 기억들이 다시 도드라져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감이 밀려온다. 마치 몸 곳곳에 센서들이 배터리를 잃어(기억에 잊혀졌으니까) 빛을 내지 못하다가 다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생각에 깊이 빠져들 때 우리는 현실감을 잃고 생각 속 그 시점에 존재한다. 누군가 때문에 많이 힘들 때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게 분노가 가득할 때 역시 내 속에 나는 사라지고 나 대신 그 사람이 나를 지배한다. 온통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결국 나의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고 만다. 나를 사로잡는 어떤 것을 떨어 버리고 싶을 때, 지나가 버린 일 혹은 아직 오지 않은 일로 현실을 살아내지 못할 때 무게감 있는 움직임으로 현실감각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두 발을 바닥에 딛고 서서 발꿈치부터 천천히 걸으며 무게를 느끼고 쿵쿵 굴러 봐도 좋다. 두 손으로 벽을 밀거나 무거운 탁자를 밀어내도 좋고 몸의 구석구석을 두드리고 문질러도 좋다. 바로 지금 여기에 온전한 나로 있을 때 몸과 마음은 통합을 이루고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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